『우아육아』 개정판을 내고, 뭔가 세상에 돌려줘야 할 것 같아 교회에서 육아 세미나를 열었다. 나 살자고 쓴 글들이었다. 나 살자고 마음 가는 대로 쓴 수백 편의 글이 『토닥토닥 성장일기』라는 책이 되기까지, 장인정신의 편집자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잊지 못한다. 그 책이 새 옷을 입고 나왔는데, 새 옷을 입혀준 출판사에도 다시 고맙다. 내가 입은 은혜를 어떻게든 세상에 돌려야겠다는 마음이다. 우리 교회 젊은 부부들, 그들의 아이들은 또 다른 은총의 선물 같은 사람들이다. 사랑 없는 거리를, 메마른 땅을 종일 걷는 심정이던 시절, 나를 웃게 했던 사람들이다. 감사를 감사로 갚는 게 좋은데, 책을 만들고 개정판까지 내준 분들은 멀리 있으니 가까운 곳에 뭐라도 하자! 교회에 육아 세미나를 열고, 다른 교회 강의가 없는 주일을 골라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아이 키우는 젊은 부부들을 새롭게 마음에 품자니, 채윤이 현승이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아난다.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데, 돈 주는 베이비 시터에게 맡기긴 싫었다. 엄마가 우리집 근처로 이사를 와 아침저녁 출퇴근하며 채윤이를 키워주셨다. 팔십을 바라보는 엄마였다. 내 이기심을 채우다 채윤이 돌보던 늙은 엄마의 허리가 무너졌던 때가 기억난다. 엄마 걱정 채윤이 걱정에 직장에서 일하다가도 줄줄 눈물이 났다.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데 '단지 돈 때문에 아이 키워주는 분'을 찾기는 싫은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하남으로 이사를 했다. 도망쳐 나왔던 '시댁 구역'으로 다시 들어갔다. 젊고 건강한 시부모님이 아이들을 키워주셨고, 급기야 한 집에 살게 되었었지. 내 딴에는 아이들을 위해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볼모 잡힌 세월이었다.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싸이 클럽에 쓰던 육아일기였고.

이젠 둘 다 성인인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성인일 수가 없다. 또 이렇게 불안한 성인일 수가 없다. 현승인 안식년 이후 고등학교 진학하여 한 해 늦은 고3이고, 채윤이는 유학 준비생이다. 내가 고3일 때 늙은 우리 엄마는 생전 해보지 않은 삼색 샌드위치까지 만들었었다. 완두콩, 삶은 계란 흰자 노른자로 만든 삼색 샌드위치였다. 야자 하고 집에 오면 간식이 아주 끝내줬었다. 내가 강의로 집을 비운 날 우리 집 고3 현승이는 삼색 샌드위치는커녕 편의점 3종 세트로 끼니를 때운다. 이런 날도 있지만, 먹고 싶은 걸 뚝딱 만들어 줄 수 있는 날도 있으니 크게 괘념치는 않는다. 영어 공부와 입시 레슨비를 위해서 야마하 피아노를 팔아버린 채윤이도 있다. 한 푼 두 푼 모아서 그 피아노를 사고 처음으로 치면서 울었던 영상이 있다. 단 한 번도 네 인생 네가 책임지라 말한 적이 없는데, 채윤이는 이렇듯 독립적이다. 새벽에 일어나 영어공부를 하고, 밤 11시가 되도록 피아노 연습을 한다. 열심히 하지 않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이다. 음, 현승이는 열심히 하는 게 싫은 아이이고... 고3 현승이는 늘 할 만큼 한 후에 기타 몇 곡을 치고 일찍 잠에 든다.

열심히 해서 걱정인 아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걱정인 아이. 입시가 코 앞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키우진 않는다. 그냥 같이 살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는 방법을 모르는 채윤이가 자랑스럽고 안쓰럽다. 열심히 하는 게 싫어서 낼 수 있는 열심도 내지 않는 현승이가 사랑스럽고 안쓰럽다. 두 아이 다 너무나 마음에 들고, 한편 불안하고 미안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내가 할 일이나 열심히 하는 수밖에, 그리고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는 수밖에...

열심히 할 아이는 열심히 하고, 열심히는 안 하지만 할 것은 하는 아이들이다. 채윤 현승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미안하고 고마워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크게 없으니 그냥 교회 육아 세미나나 잘해보려고 한다. 내 아이 네 아이가 다른 아이가 아니니까. 큰 이모, 또는 할머니 마음으로 교회 아가들 품는 게 우리 채윤이 현승이에게 하는 거지! 그러고 있는데, 채윤이 현승이의 또 다른 엄마가 되어주시는, 어떤 엄마의 마음이 소고기에 담겨 왔다. 요 며칠 소고기 처묵처묵하는 나날이다. 많이 먹고 힘내라! 이 가을의 끝, 겨울이 시작된 어느 날에 우리 채윤이 현승이 둘이 함께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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