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키우는 엄마99 울보 바보 여행 우리의 시간 오후 5시 45분. 우리는 여기에 더해 두 개의 시간을 더 산다. 보스턴의 두 번째 날을 보내는 채윤이는 잠에 들어 있고, 휴가 후 복귀한 현승이는 3교대 저녁 근무에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깨어 있는 낮 시간, 여름휴가로 자유로운 시간이다. 8월 7일에 채윤이를 미국에 보내고, 8월 8일에 현승이를 부대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텅 빈 집으로 돌아가지 않거나 못하고 2박 3일 밖으로 나돌고 있다. 둘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세계는 충만했다. 둘이 함께 하는 것으로 가득찼었다. 셋이 되고, 넷이 되었을 때 새로운 충만함이었다. 양희은의 노래 가사처럼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는 이렇듯 늙었고, 두 아이는 어른이 되어 떠났다. 그리고 다.. 2025. 8. 9. 무한 의미 부여 작년에 현승이 군대 갈 때는 "의미 부여 금지령"이 내려졌었다. 채윤이는 그런 것 없어서... 막 모든 사소한 것에 의미 부여 놀이를 하고 있다. 며칠 안 남았으니까... 청소해 준다. 그래, 며칠 안 남았으니까 설거지 면제! 그래,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운전해서 태워줄게. 거침없이 종말론적 사랑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핸드드립 커피는 셋이 먹는 마지막 커피이다. 오랜 세월 부부잔으로 아침 커피를 마시다가 채윤이가 이제 커피맛을 알게 되어 가끔 세 잔을 내리곤 했었는데 말이다. 두어 주 원고 쓰는 일도, 무엇도 다 멈춘 상태로 지내고 있다. 순대국밥? 고사리 순대국밥 먹으러 갈까? 그렇게 나가서 어디 먼 데 카페에 다녀오면서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하고. 운전 기사로 대기하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 2025. 8. 6. 미안하다, 중독자라 네 권의 책과 커피와 빵이 있는 비슷한 사진이 휴가 때마다 여러 장이다. 어딜 가든 그 지역 독립서점을 찾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사고, 그걸 들고 카페에 가 앉아 읽는다. 그러려면 뭐 부산, 경주까지 가는지 모를 일 아닌가. 서점과 카페는 동네에도 있는데. 나름 우리 가족만의 여행 루틴이고 좋기도 한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든다. 어렸을 적에는 넷이 같이 춤도 추고 노래하고 게임도 하고 제법 몸으로 놀았는데. 크면서는 입과 머리로만 놀았던 것 같다. 그 흔한 캠핑 한 번 가보지 못했고.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둘 다 머리형에다가 책 중독자들이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또 다른 지브리 풍 사진인데... 저번보다 더 늙은 부부가 되었다. 자꾸 빠르게 늙는 것이 책 때문인가봉가. 2025. 8. 4. 젊음과 늙음의 기본값 다음 주 출국을 앞둔 채윤이, 누나의 일정에 맞춰 휴가 나온 현승이와 네 식구 여행 중이다. 뒷좌석 아이들이 지브리 사진 놀이를 하며 킬킬거렸다. 26년 세월을 드러내는 두 이미지가 재밌고 좋다. 1999년의 제주, 2025년의 부산. 저 싱그러운 젊은이들이 주름진 중년이 되었다. 분명 웃으며 찍었는데, 수심 한 스푼의 무표정한 얼굴이다. 챗GPT의 객관적 시선이니 사실이려니 한다. 그러고 보면 왼쪽의 젊었을 적 사진에서도 저렇게 활짝 웃진 않았다. 젊음과 늙음의 기본값이려니. 늙음의 기본값을 잘 헤아리고 받아들여야지. 해변의 셀카 남매에게서 젊음의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둘이 서로 다르고, 우리의 젊음과도 다르지만 싱그러운 것만은 분명하다. 저 고유의 싱그러움에 어떻게 다다를 수가 없다. 지켜봐 주고,.. 2025. 8. 1. 너네 엄마 금쪽이 아침 묵상과 기도를 마칠 즈음이면 벌컥, 벌컥, 벌컥 방문이 세 번 열리고 시간 차 공격으로 세 사람이 나온다. 오늘은 두 전사가 참전을 포기하고 현승이만 벌컥, 하고 등장했다. 채윤이는 연습 때문에 학교 앞에 고시텔을 잡아 나갔고 JP는 아직이다. 둘이 마주 앉아서 막 되는대로 아침을 먹었다. 아빠가 오늘 정말 아홉 시까지 자려나? 왜애? 어제 아빠가 그랬잖아. 오늘 월요일이니까 아홉 시까지 늦잠 잔다고. 그으으으....래? (얼음 박스 찾으며... 아드레날린 폭발!) 엄마, 제발... 그냥 조용히 자게 해 줘. (아, 우리 엄마 금쪽이지...) (안 들림)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엄청 큰 소리로 노래하기) 엄마, 하지마아... 아, 아... 말하지 말 걸... 금쪽이... 하지 말라.. 2023. 9. 18. 개강 첫 주 금요일 나도 개강, 채윤이도 개강, 새내기 현승이도 입학 후 개강. 개강, 개강, 개강. 집 떠나 낯선 곳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현승이는 설레는 주말이겠다. 부산으로 대학 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채윤이는 오랜만에 학교 피아노 앞에 앉았고. 20년 넘게 한 집에서 뒹굴던 네 식구가 이제 노란 카톡방 안에서 만나네. 뭔가 안심이 되면서 동시에 푸근한 것으로 가득 차는 마음이다. 느슨한 연결이 좋다. 두 아이가 대학생활에 적응하고, 누리며, 젊은 날을 보내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개강 첫 주, 애들은 잘 지낸다. 나만 잘하면 된다. 2023. 3. 4. 세상의 모든 엄마 『우아육아』 개정판을 내고, 뭔가 세상에 돌려줘야 할 것 같아 교회에서 육아 세미나를 열었다. 나 살자고 쓴 글들이었다. 나 살자고 마음 가는 대로 쓴 수백 편의 글이 『토닥토닥 성장일기』라는 책이 되기까지, 장인정신의 편집자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잊지 못한다. 그 책이 새 옷을 입고 나왔는데, 새 옷을 입혀준 출판사에도 다시 고맙다. 내가 입은 은혜를 어떻게든 세상에 돌려야겠다는 마음이다. 우리 교회 젊은 부부들, 그들의 아이들은 또 다른 은총의 선물 같은 사람들이다. 사랑 없는 거리를, 메마른 땅을 종일 걷는 심정이던 시절, 나를 웃게 했던 사람들이다. 감사를 감사로 갚는 게 좋은데, 책을 만들고 개정판까지 내준 분들은 멀리 있으니 가까운 곳에 뭐라도 하자! 교회에 육아 세미나를.. 2022. 10. 13. 지브리와 함께 경주여행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는 영덕까지 해안도로를 달렸다. 내게는 2박 3일 여행 동안 제일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저 달리기만 해도 좋을 바닷가 길이지만. 바다 색깔이 투명하게 파랗고 말로 할 수 예뻤다. 뒷좌석 DJ 채윤이는 지브리 영화 OST를 다양한 버전으로 틀어주었고. 아, 현승 DJ는 일이 있어 먼저 고속버스로 올라가서 아쉬움 반, 편안함 반이었다는 것도 말해 두어야. 남매의 다른 음악 취향이 서로에게 퍽 도움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취향을 대화 주제 삼아 잘 놀기도 하던데. 자동차 안 뮤직박스만 되면 취향 충돌로 예민해지곤 한다. 네 사람, 특히 엄마 아빠의 취향 저격이 관건일 텐데. 그것도 경쟁인가 싶기도 하고. 단독 DJ 채윤이가 알아서 돌려주는 플레이 리스트는 그냥 좋았고. 오른 .. 2022. 2. 6. 남매, 관계의 거리 "집에 들어올 때, 현관 키 누르면서 잠시 고민할 때가 있어. '누나랑 싸웠던가, 화해했던가?' 생각을 해야 해.. 누나한테 재밌는 얘기 할 게 있는데, 싸운 상탠지 친한 상탠지 헷갈려서 생각해보고 콘셉트 잡고 들어와야 하거든." 남매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백으로 본다. 정말 잘 싸우고 정말 친한 남매다. 싸울 때 보면 어떻게 저렇게 서로에게 잔인하게굴 수 있을까, 싶은데. 친할 때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기타, 키보드를 붙들고 앉아 하염없는 음악활동도 한다. 불국사 다보탑 앞에서 찍은 세 장의 남매 사진이다. 남매 사이 친밀감 발달단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가족 여행에서 다시 들른 불국사. 일명 '세월 가족사진'을 위한 여행에 다름 아니다. 첨성대, 다보탑, 불국사 앞 .. 2022. 2. 3. 꼴찌로 태어난 토마토 머리 싸매고 과제하기 동지. 종강 동지. 김채윤 동지가 내 산책에 따라붙어 산책 동지가 되었다. 어떻게든 따돌려 보려고 했는데, 결국 따라붙었다. 의기투합하여 걷는 길은 고속도로와 탄천 사이 농로, 에서 외롭게 매달린 '토마토마트'를 발견했다. 토마토마트는 어릴 적에 채윤이가 방울토마토를 부르던 이름이다. "와, 꼴찌로 태어난 토마토다!"라고 내가 말했다. 채윤이 어릴 적에 읽어주던 그림책 제목이다. "어, 나 그 책 생각나는데..." 채윤이도 말했다. 어릴 적에 읽어주던 그림책, 함께 불렀던 노래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엄마 아빠이다. 아이들의 기억은 제목 어렴풋, 반복되던 문구나 운율 어렴풋이다. "달님 안녕" 하고 그때 그 그림책 얘기가 나오면 줄줄 외우며 신나는 건 엄마 아빠다. 꼴찌로 태어난 토마.. 2021. 12. 27.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