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영원에 잇대기3282 젊음도 사랑도 소중했구나 병원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정문 근처의 연보라색 수국이 자꾸 윙크를 해서 오전 산책을 하게 되었다. 수국 옆에 엉겅퀴 같이 생긴 애가 있어서 "이름이 모니?" 했더니 "리아트리스"란다. 이러고 놀고 있는데. 저쪽에서 주황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가 아기를 앞으로 안고 살살 걷고 있는 것이다. 너무 예뻐서 슬쩍 사진에 담았다. 목발에 의지해 천천히 걷는 내 속도와 그의 걷는 속도가 비슷하다. 가만 보니 꽃이 보이면 그 앞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너무나 예쁘고 마음이 뭉클했다. 모두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 지금 상가 빠바와 메가커피에는 어린이집 보낸 엄마들로 바글바글이다. 저 엄마는 아직 24시간 독박 육아 중이구나. 그 와중에 아기를 안고 산책을 나왔네. 아기에게 꽃을 보여주며 뭐라 말하고 있을까?.. 2025. 7. 1. 제철 밥상 나는 농부도 아닌데, 감자 철에 감자가 풍년이다. 감자 샐러드 만들 때가 됐다는 것인데, 오래 서 있을 엄두가 안 나서 못하고 있다. 그래도 감자로 뭔가 맛있는 것을 해야 하겠기에 제철 감자, 제철 호박, 제철 양파, 제철 두부, 제철 스팸을 때려 넣고 제철 찌개를 끓었다. 상추를 비롯한 야채 선물이 풍성하게 오고 가는 시절이다. 선물 경제가 따로 있나! 초록이들이 판을 치는 초여름의 초록색 선물 경제이다. 된장으로 무친 쑥갓 나물을 좋아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채윤이도 쑥갓을 좋아한다고! 그 식성을 며칠 전 샤브샤브 뷔페에 가서 알았다. 파 마늘에 된장만 넣고 싱싱하게 무쳐서 잘 먹었다. 제철 밥상! 2025. 6. 30. 놀이터에 설레는 마음 엄마, 누나 사춘기 아니야. 완전히는 아니야. 애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 "놀이터다!" 그럴 때 "어디, 어디?" 하면 아직 애들인 거야. 누나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아직 놀이터에 설레. 그러니까 사춘기는 아니야. 오래전에 현승이가 어린이 감별법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경험에 의거해 청소년 감별법도 내놓았지. "맥날(맥도날드)" 간판에 설렌다면 아직 청소년...) 그렇다면 나는 어린애가 된 것 같다. 깁스하고 나서 놀이터에 그렇게 설렌다. 정확히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이 아파트는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데... 젊은 부부와 함께 아이들이 천지삐까리이다! 이 동네 아이들은 왜 이리 인사도 잘하는지 "안녕하세요?" 청명하고 말랑한 목소리를 상시로 듣는다. 이런 아파.. 2025. 6. 30. 만들지 아니한 국수 6주 만에 깁스를 풀었다, 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4주는 더 목발과 함께 걸으란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발을 땅에 디디는 것이 어디냐며 힘을 낸다. 두발을 땅에 디디고 혼자 식사준비를 했다. 열무국수와 한입 떡갈비 구이! 채윤이가 "와아, 이거 엄마가 만들었어? 너무 맛있다!"라고 한 것은 한 입 떡갈비였다. 설마... 채윤아. 비비고가 만들고 엄마가 손수 구웠어. 채윤이와 그 애의 아빠가 이구동성으로 열무국수도 넘넘 맛있단다. 이건 엄마가 했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 열무김치는 내가 한 게 아니니 말이다. 생각해 보라고. 떡갈비를 만들고 열무김치를 담그는 일은 얼마나 많은 자잘한 노농과 정성이 소요되는 것이냐고. 나는 15분 만에 점심 준비를 했는데. 완제품 떡갈비와 열무김.. 2025. 6. 27. 꽃밭에서 죽으란 법이 없더라고. 깁스하고 가장 큰 박탈감은 '나가서 걷지 못함'이었는데. 나가서 들꽃에 눈 맞추고 귀를 간지르는 새소리에 노래하고, 바람에 마음을 맡기는 그런 '걷기'를 할 수 없다는 게 절망적이었는데. 되더라고. 아파트 정원 정도는 얼마든지 누리겠더라고.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지는 못해도 답답한 발 내밀고 인증샷은 가능하더라고. 6주 지내는 동안 봄꽃 가고 여름 꽃들이 피는 걸 다 보게 되더라고. 내일 모레 깁스 풀기 전 마지막 산책이려니 하고 아침부터 나갔어. 오후부터 내일까지 비가 온다기에... 수국이 한창이야. 두 발로 걸으며 수국을 즐기게 될 거야. 오늘은 목발 짚고 한 번에 2천 보를 찍었어. 계단도 잘 오르내리고 네 발걸음이 완전 빨라졌거든. 고맙더라고. 네 발로라도 이렇듯 좋아하.. 2025. 6. 24. 위험한 여자, 쓰는 여자 출옥이다. 격주로 글을 쓰던 연재 감옥, 글 감옥에서 출옥이다. 《슬픔을 쓰는 일》이 '쓰인 글'로서 그냥 흘러나온 글이라면, 이번 '신앙 사춘기 너머'는 짜내고 짜내어 '써낸 글'이다. 게다가 청탁이 아닌 '자발'로 시작한 글이다. 글을 시작하며 했던 인터뷰에서는 독자의 요청이라고 했지만, 내 안의 어떤 사람의 요청이었다. 이걸 써야 자유를 얻을 것 같았다. 찌르고 싸매는 글을 쓰고자 했는데 찌르기만 하고 충분히 싸매지 못한 채 마치고 만 것 같아서이다. 2019년 이후로, 누구도 지우지 않은 부담감과 책무감에 어깨가 무거웠다. 나 자신에 대한 책무감이다. 그래서 징징거릴 수도 없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쓰는 글이니까. 글이야 쓸 때는 괴롭지만, 그에 못지않은 생산의 기쁨이 있다. 산고 끝의 출산처.. 2025. 6. 22. 아웃플루언서 인터뷰 필름포럼의 성현 목사님이 진행하시는 유투브 인터뷰 영상이다. SNS에 소개글로 붙여주신 말이 좋아서 그대로 가져왔다. 거기 붙인 내 댓글도 그대로. 분열되지 않은 삶누구나 머리로는 알지만, 일상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 일들을 감당하면서 허덕이고, 누굴 위해, 무얼 바라며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정신실 소장님께 사모, 작가, 연구소장, 강연 등등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삶이 힘들지 않으신지 물었을 때, 환하게 웃으시며 ‘괞찮아요’ 라고 답하시면서 ‘그게 다 저니까요. 제 안에 일관성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하시던 순간, 제 안에 묵직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나를 괜찮지 않게 만드는, 그러나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과 만남에 허비한 시간들이 얼마나.. 2025. 6. 20. “아버지 하나님 너머“ 연재 중인 마지막 글 하나를 남겨두고 있다. 가장 인기 없는 글이 되겠지만, 어쩌면 가장 쓰고 싶은(그래서 정말 쓰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담지 못하게 되어 버린) 글이다. 글이 발행되고 며칠 지나면 이렇게 카드뉴스 형식으로 기사가 한 번 더 올라오는데. 뽑아낸 문장이 마음에 든다. "넌 네가 한 밥이 그렇게 맛있냐?" 개그맨 전유성이 했다는 말인데 내 심정이다. 내가 한 요리가 맛있어 죽겠는 느낌으로 뽑아낸 문장들이 마음에 들게 맛있다. 요즘 《내면 일기》라는 책으로 남의 일기를 공식적으로 훔쳐 읽는 중이다. 아니 에르노의 인터뷰가 어쩌면 그렇게 내 이야기 같아서 그 부분만 여러 번 읽었다. 내가 공적으로 써낸 모든 글의 출처가 내 일기장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면에서 아니 에르노는 내게 단군 .. 2025. 6. 9. 유에서 유를 창조 누누히 말하지만, 요리는 신성한 창작활동이다. 창의적인 활동의 결과물이 있어서 보람이 있다. 글쓰기나 요리나 결국 완성되어 나온 것으로 만족감을 얻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요리는 참으로 글쓰기와 비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창작활동이다. 채윤이가 사 온 인스턴트 일본식 라멘이 있었는데. 여기에 '차슈인 척' 하는 삼겹살 조각과 딱 잘 삶아진 계란과 실파를 넣었더니 참으로 근사하게 되었다. 이런 걸 두고 유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하지! 목발 투혼의(주방 보조 있음!) 작품이라 더 자랑스럽다. 라멘집 부럽지 않았다. 요즘 이래저래 좀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JP이 진심으로 맛있어 하는(데 표현을 평소보다 더 못함) 것 같아 나 혼자 스르르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먹을 것을 맛있게 만드는 일은 참으로 신성.. 2025. 6. 8. 친구이며 동료 소유한 유일한 명함이 'Ruah루아영성심리연구소'의 것이고, 직함이 소장이지만. 연구소를 직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직장이면 최소한의 생계 보장이 되어야 하건만 그렇지 못하고. 신앙, 기도, 사랑, 소명 같은... 오늘의 나를 지탱하는 의미 공동체이니 남편의 말처럼 '교회'라 부르는 것이 그나마 가장 적절하지 않은가 싶다. 5, 6년 해온 연구소를 리뉴얼하면서 연구소 이름에서 '정신실'을 뺀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살 것 같다. 내가 한 것 맞다. 혼자 걸어온 외로운 기도의 길이 있어서 가능했던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였다. 하지만 혼자 기도하던 내게 다가와 준 벗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공동체였다. 선물 같은 사람들이다. 연구소 이름에서 정신실을 빼고, 동시에 연구소 실무에서 한 발 물러났다. 연구.. 2025. 6. 7. 이전 1 2 3 4 ··· 3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