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을 맞아 공인 목사로서의 짐을 벗은 남편과 좋은 아침을 누리고 있다. 렉시오 디비나 티키타카. 공인 목사로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말씀 묵상을 가르치고 나누는 일이었지만, 자연인 JP로서는 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 가장 잘하고 싶고, 늘 하고 싶은 것이 기도이고, 그중에 "말씀에서 솟아나는 기도"이다. 남편 블로그에 그날의 묵상이 "티키" 올라오면 댓글로 달아 "타카" 한다. 그분의 이끄심을 느낀다. 감사한 아침들이다. 어제의 묵상이다. 사순시기, 마태복음이 새롭게 읽힌다. "과정으로서의 수난"이다. 예수님을 위한 과정뿐 아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과정인 것이 알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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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마 17:27)
“저들을 공연히 건드릴 것 없으니”(메시지성경)

수난을 향해 한 걸음 씩 나아가시고 예수님이 느껴집니다. 제자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곧 예수님 자신의 준비인가 봅니다. 다시 고난받을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근심합니다. 그 와중입니다. 세금 내는 문제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구비시킵니다. (베드로와 자신을 하나로 묶어서 "우리가"라는 주어를 쓰십니다.) 임금의 아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지만,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저들을 "(우리가 저들을) 공연히 건드릴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저들이 요구하는 건 내는 것이 낫습니다. 저들이 때리면 맞는 게 낫습니다. 저들이 빼앗아가면 빼앗기는 게 낫습니다.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 (17:22, 메시지성경) 을 공연히 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베드로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할 운명의 길에 오른 베드로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제 곧 수난의 때가 오고, 당신의 때가 끝을 향하는 것을 아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구비시키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돈이 없는 베드로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입만 열었는데 꼭 필요한 만큼의 동전을 얻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물고기 잡는 일은 베드로에게 가장 익숙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당하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베드로를 위해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로 체험을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두고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이 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야, 결국 그 사람들이 이길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손에 넘겨서 죽게 돼. 그들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거야. 나와 네가 지고 실패한 것처럼 보일 거야. 세금을 징수하는 그 사람들이 강해 보이지만,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 세금 따위는 내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과 관계하기 원치 않는 사람을 공연히 건드릴 필요가 없단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저자세도 고자세도 아닌 정자세로 지킬 것을 지키도록 해. 원하는 것을 줘. 싸우지도 말고, 괜한 올무에 걸려들지도 마. 네가 가장 잘하는 고기 잡는 일 정도의 대가를 치르면, 필요한 기적을 볼 수 있을 거야. 나의 죽음을, 나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베드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 권력자라 해도, 강해 보여도,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

 

마태복음 17:22-27

22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곧 사람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23 사람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여러분의 선생은 성전세를 바치지 않습니까?"
25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바칩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냐?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주민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들이느냐? 자기 자녀한테서냐? 아니면, 남들한테서냐?"
26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남들한테서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자녀들은 면제받는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서 그 입을 벌려 보아라. 그러면 은전 한 닢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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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돌아가신 엄마의 생신이었다. 우리 나이로 100세 생신이다. 내년은 우리 엄마 탄생 100주년 기념의 해이다. 내일은 엄마의 기일이다. 4년이다. 마침 이때 '그리운 얼굴'을 주제로 기고글을 쓰고 있다. 일주일을 끙끙거리며 눈물을 훔치며 엄마 얘길 또 썼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려움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빨리 쓰고 털고 싶은데, 빨리 잘 쓰기 위해서 엄마를, 그리운 얼굴을 계속 떠올려 마주해야 한다. 도망치고 싶다. 빨리 탈고를 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탈고를 위해서는 이 고통에 머물러야 한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도망갈 수는 없고, 그 마음에 머무르자니 헤집어지고 헤집어져 글을 쓸 수 없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그래도 거의 다 썼다. 엄마 생신, 엄마 기일 사이에 낀 오늘 탈상... 아니, 아니 탈고할 것이다. 글을 쓸 수 있어서, 글 쓸 기회가 주어져서 엄마를 자꾸 새롭게 만난다. 엄마를 새롭게 만나는 것은 다름 아닌 나를, 하나님을 새로 만나는 일이다. 

 

노트북 옆 프리지어가 향기로 함께 한다.

밤에는 초도 켠다.

낮으로 밤으로 향기와 빛으로 함께 하는 그분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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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 압박도 있고,

줌 강의도 있고,

아침 식사는 호이호이 꿀호떡이었는데,

"아아, 며칠 동안 호텔 조식 먹었는데..."

캄보디아 단기선교 다녀온 사람들의 한 마디에

바로 일어나서 스크램블드 에그와 토마토 구이를 만들었다.

호텔 조식, 캄보디아 호텔 조식과 혼자 싸움.

몹쓸 승부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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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라 불리던 현승이가 대입에 재도전 하여 다시 새내기가 되었다.  첫 학기 시간표가 이렇다고 한다. 이 시간표에 왜 이리 마음이 왈랑거리는지 모르겠다.  물론 현승이가 마음에 들어하니 엄마로서 좋은 것은 기본인데...
 
어렸을 적에 국문과를 꿈꿔본 적이 없었는데 이 시간표, 특히 <국문학개론>과 <현대문학작품읽기> 과목을 보자 못 이룬 꿈을 이룬 느낌으로 마음이 파르르 설렜다. 설렜다는 말이 맞다. 선망이 있었던가 보다. 중고등 시절 내내 꿈꾸던 학과는 영문과였다. 영어 과목이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네가 너 자신이 되는 것이, 너로 가장 아름답게 꽃 피우는 것이 엄마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동생을 사랑하는 가장 큰 사랑이고, 인류를 위해 가장 크게 기여하는 일이야"라고 Carl Jung의 가르침으로 멘토링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멘토 없이 좌충우돌 엄마의 딸이고 동생의 누나라는 책임감으로 선택한 20대의 진로와 많은 결핍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임을 안다. "너 자신이 되는 것이 이웃 사랑, 인류 사랑, 하나님 사랑을 사는 것이다." 라는 명제를 온몸으로 깨우치고 가르치고 있으니, 그런 가정은 불필요한 것이다. 현승이 시간표에 설레는 마음은 기분 좋은 에로스 에너지, "정신실 사롸 있네!" 살아 있다는 신호이다.  
 
우리 현승이 "되어야 할 자기"가 되어
그 누구도 아닌 현승이로 활짝 꽃 피우길...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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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5년 전의 포스팅이라며 올라왔다. 엄마 생신잔치이다. 우리 집에서 내가 생신상을 차려 드렸다. 엄마 생신을 지낼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저 날이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4주기 추도식이 며칠 남지 않았다. 엄마의 마지막 생신을 추도식을 기억하는 봄날이다. 

“맞는 놈이 여기 쳐라, 저기 쳐라 허남? 혀주는 대로 먹는 거지”

이라니... 우리 엄마도 충청도 화법 쩔었었네! 돌아가신 엄마가 웃음을 준다. 5년 전 페이스북에 올렸던 엄마 이야기를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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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폭, 순진무궁 우리 엄마(2019년 3월 5일)

생신상 차린다고 떠벌이고 생색 낸 김에 애기가 된 우리 엄마 얘기에 음식 자랑까지 해본다.

#1

딸 채윤이가 외할머니 생신 미역국을 끓여 드리고 싶다고 전날 밤부터 공을 들였다. 엄마랑 통화하며 기분 좋으시라고(미리 감동 먹으시라고!)알려드렸다.

“엄마, 채윤이가 할머니 생신 미역국을 끓였어. 내일 와서 채윤이 미역국 맛 봐.”

“미역국? 나 미역국 안 좋아하는디. 사골국이 좋지!”

#2

이런저런 메뉴를 짜서 장을 잔뜩 봐놓고 엄마를 떠봤다.

“엄마,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어? 뭐 해줄까?”
“맞는 놈이 여기 쳐라, 저기 쳐라 허남? 혀 주는 대로 먹는 거지”
“그래도 엄마 생신이니까 엄마 드시고 싶은 거 해야지. 뭐 먹고 싶어?”
“뭐 먹고 싶냐고? (침 꼴까닥) 치킨!”

요즘 정말  (평생 입에 대지 않았던) 치킨 피자를 드신다. 여러 번 여쭤봐도 비슷한 대답이다. 우리 집 오는 길에 동생이 마지막으로 물었단다.

“엄마, 치킨! 불고기! 뭐 먹고 싶어? 누나한테 뭐 하라고 해?”
“나? 뭐 먹고 싶냐고? (침 꼴까닥) 짜장면!”

자장면, 치킨을 향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결국 저 음식을 다 차리고 엄마를 위해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실화!) 물론 치킨은 손주들이 다 먹고. 엄마는 잡채랑, 싫다던 미역국 건더기 없이 국물만 해서 맛있게 드셨다. “우리 채윤이가 끓인 미역국 맛있게 잘 먹었다. 미역국이 제일 맛있다.” 하셨다.

순진한 애기가 된 엄마는 입맛도 초딩이 되고, 갈수록 빈말을 못하시니 일상이 팩트 폭행인데. 팩트로 한 대 얻어맞으면 바로 큰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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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넘은 육아일기 "푸름이 이야기"의 푸름이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푸름이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 그 말이 죄다 자랑인 듯하여 도통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간단하게 자랑하자면, 좋은 재즈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과 공연을 하는 영광을 누렸는데, 교수님이 보통 교수님이 아니라서 이게 좀 믿어지지도 않는 일인데. 열심히 잘했습니다. 

 우리 채윤이 대학생활 4년은 보석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친구면 친구, 공부면 공부, 음악이면 음악 모두 A+입니다. 친구와는 치열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화해하고 치열하게 좋아하고 죽도록 놀며 합주하고.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처럼 교양과목 하나까지 재미있게 공부하고, 음악은, 아... 우리 채윤이 음악은... 이제 엄마가 감히 논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네요. 졸업공연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을 돕느라 제 곡 만들 시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 곡도 멋지게 작곡했습니다. 고마운, 멋진 딸입니다.

“투철한 진리탐구 의식을 가지고 시종일관 성실하게 학업에 임하여 발군의 성적을 나타낸" 것 인정! 완전 인정! 채윤이 졸업식 즈음하여 어떤 노래의 멜로디가 혀끝에서 달랑거렸는데 뭐지? 했더니 "Sound of Silence", 영화 <졸업>의 OST네요. 멋진 재즈 언니로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을 연습, 또 연습에 매진했는지. 만 시간, 이만 시간의 혼자만의 연습 시간,  Sound of Silence! 
 
우리 채윤이 "되어야 할 자기"가 되어
그 누구도 아닌 채윤이로 활짝 꽃 피우길...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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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새, 새소리는 내게 현존하라는 메시지이고 현존은 다름 아닌 그분을 향한 깨어남이다. 어느 순간, 어디에서나.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일도 비슷한 표상이다. 이제 침묵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저 잔에 커피를 내려 마시면 커피 향에 새소리, 그리고 가만하고 착한 아름다운 사람까지 떠오르니... 이건 잔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이다. 

 

저 잔에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나갔다. 새들의 서식지도 아닌데 귀를 사로잡는, 박새로 추정되는 새의 소리이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오래오래 올려다보며 들었다. 한참 듣다 폰카메라를 들어서 촬영을 하고, 그리고도 한참 서서 듣는데도 그 자리에 앉아 긴 노래를 불렀다. 작고, 가만하고 착한 새이다.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독수리가 그리 강한 새가 아니라고 한다. 힘과 권위를 표상하기 때문에 여러 나라와 지도자들이 문장으로 삼는 것이 독수리인데. 실제로 독수리의 울음 소리는 귀엽다고 할 정도로 작은 소리에다 그 멋진 비상 역시 힘찬 날갯짓이 아니라 최대한 바람에 몸을 실어 나는 게으른 방식이라는 것이다. 강한 부리와 발톱 때문에 먹이를 포획하는 데는 빠르지만 제 영역을 지키는 데는 그리 신통치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작은 새들이 더 강하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 자주 힘과 용기를, 그리고 권력과 용맹함을 혼동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다. 새를 관찰해보면 오히려 작은 새들이 자신보다 훨씬 큰 상대에게 용기 있게 대항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큰 소리와 함께, 깃털을 최대한 부풀리고, 강하게 날갯짓을 함으로써 누가 봐도 더 강해 보이는 적을 뒷걸음치게 만든다. 제비갈매기가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자신의 영역 위로 날아오는 갈매기를 어떻게 내쫓는지 보자(제비갈매기는 갈매기보다 몸집이 작다). 부리로 어찌나 맹렬하게 공격을 하며 달려드는지, 갈매기는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 또 주목할 점은 전혀 화려하지 않은 깃털을 가진 새들이 자신의 영역과 새끼를 잘 지켜낸다는 점이다. 반면 멋진 깃털을 뽐내는 수컷은 위험이 닥치면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66쪽

 

작고 화려하지 않은 새같은 사람이 있는데, 세상을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라 여겨 도망치고 숨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꿈이 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속일 수 없는 진실인데. 그의 꿈이 그렇게 말한다. 허둥지둥 도망치는 것 같지만,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며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에게 당하고 말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들어주고 당해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빈틈을 찾아내고 적시에, 정확하게 찌르는 힘과 판단력이 있다. 그 힘을 막무가내로 공격적으로 쓰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라도, 행여 대적해야 할 상황이더라도  가만히 공격하여 꽃봉오리 지듯 떨어트린다. 이제 그가 자신의 힘을 믿을 때가 되었다.(꿈의 내용이다) 자신의 가만한 힘을 믿어줄 때가 되었다고 꿈이 말하고 있었다. 꿈에서 깨면서 들었다는 노래의 가사가 이렇다. 저 잔에 커피를 마시고 나가서 만난 새가 오래도록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아마도 이랬던 것 같기도. 

 

나의 은총을 입은 이여 너를 아노라 
너의 마음을 내가 아노라
나의 사랑을 아는 이여 함께 가노라
내가 친히 함께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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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르망 장 드로아스(Germain-Jean Drouais, 1763-1788), 예수님과 가나안 여자, 1784년

 
자녀와 개,
누가 자녀이고, 누가 개인가?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녀와 개를 구분하고 차별하시겠다는 뜻인가? 예수님이 그런 분인가?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라고 말씀하셨던 분 아닌가. 바리새인들 안에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의식, 자녀라는 특권 의식을 꿰뚫으시고 발에 차이는 돌로 여기셨던 분 아닌가. 발이 차이는 돌에 비하면 개는 더 나은 것 아닌가.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대화의 기술을 통해 그 반대를 피력하려는 예수님이 느껴진다. 사려 깊고 따뜻하고 지혜로운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간절히 간청하는 여인을 귀찮아하는 제자이다. 이방 여자 한 사람의 필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예수님이 이 (이방인) 여자를 어떻게 대할까, 꼬투리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눈들이 또한 번득이고 있다. 
 
"자녀"임을 자처하며 우월감과 특권의식에 싸인 이들의 마음에서 울리고 있는 바로 그 말을 예수님께서 육성으로 들려주신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옳거니! 했을 것이다. "이제야 바른말을 하는군! 어디 여자, 그것도 이방인 여자와 말을 섞고 부탁을 들어준단 말인가. 이제야 유대인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는구만!"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 예수님이 절실한 사람 가나안 여인의 마음을 예수님은 아신다. 여인 안에 있는 절실함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서 어두운 배경을 만들어 내시는 예수님의 빅 피처이다. 말로 가르치는 설교가 아니라 체험 자체로 가르치신다. 개가 되든 무엇이 되든 오직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이 온몸으로 내보이는 간절함을 드러내신다. 이것이 필요하다고. 이 가난한 마음이면 된다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몸으로 대면하고도 회개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자녀"임을 자부하는 특권의식의 소유자들이었다. 자기 확신에 매몰되어, 자기가 지키는 율법조항 몇 개를 무기 삼아 꼬투리 잡기에 혈안이 된 바리새인들은 그 어마어마한 성육신, 신의 현현을 눈앞에 두고도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가난한 마음이 복되다고 하신 산상수훈 첫 말씀을 기억한다. 치유와 성장이 필요하여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일이다. 기적같은 치유와 성장을 내 눈앞에서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하나같이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금이 간 존재, 진창에 빠진 자신을 또렷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결국 치유되고 성장하고 만다. "이만하면 됐지" "나만큼만 하라고 해" "내가 너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한 게 얼만데..." 하는 태도로 치유와 성장에 닿는 것을 보지 못했다. 높은 자만심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함께 병들게 한다.
 
주님, "자녀"라는 확신이 만든 우월감과 특권의식으로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 시간들이 부끄럽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순간순간 분출하는 우월감으로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이쪽 저쪽에 벽을 세우기도합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가난한 마음 하나로 족한 저이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
2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7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28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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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MBTI_2

 

 

안녕? Jung 쌤이야. 내 유형 기억나? 지난 호 첫 만남에 유형 먼저 밝히고 시작했었는데. 교회 청년부에서 처음으로 MBTI 검사를 했던 때가 생각나네. INFP가 나왔어. 정말 내 유형 같았어. 어쩌면 이렇게 나를 잘 설명하지 싶었고. 그런데 친구가 그러는 거야. “네가 어째서 내향형이야? 넌 E야!” 이 말에 어찌나 화가 나고 흥분이 되는지.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검사결과도 그렇고, 유형 설명을 읽어봐도 나는 확실히! I였거든. 문제는 I이면 I였지, E라는 말 한마디에 뭐 그렇게 분노 버튼이 눌리고 그러냐는 거지.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 며칠 동안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어.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하고 묻고 또 묻고 그랬지. 그럴수록 미소 한 번 지어주고 입을 떼지 않았어. 작심을 했거든. 말을 줄이자, 말을 하지 말자. 일기 쓰고 기도하며 하루를 돌아보는데 내가 너무 가볍게 느껴지는 거야.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고. “아까 그 말을 왜 했을까? 바보!” 밤마다 이불킥이었지. 말없이 조용한 친구들이 참 멋있고, 심지어 성숙해 보였어. 그래서 결심했지. 나도 앞으로 말을 줄이고 진중한 모습을 보이자! 음... 하지만 며칠 못 갔다는 거! 나는 실은 빼박 외향형 맞거든.
 
MBTI에서 하는 외향형에 대한 설명이 “가볍고 피상적이다”로 들렸어. 또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다는 것은 주장이 강하다는 뜻으로 이해가 됐고. 그런 사람은 미성숙하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친구가 하는 “너 외향형이잖아.”라는 말이 “너는 가볍고 피상적이고 이기적이야”라고 자동 번역되어 들렸던 것 같아. 이기적인 건 나쁜 거니까. 외향적이란 말이 심지어 “나쁜 성격이다.”라고 들린 거지. Jung 쌤의 이런 경험에는 많은 오류들이 있어. MBTI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자아상까지 더해져 흥분 ‘씩이나’ 하게 된 거야.
 
일단 말이 많으면 외향, 말이 없으면 내향이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본질적인 설명이 아니야. 외향과 내향은 에너지의 방향으로 이해해야 해. 정신의 에너지를 쓰거나 채우는 방향이야. 외향형은 그 정신 에너지를 주로 자기 밖을 향해(‘객체’라고도 해) 쓰지. 내향형의 정신 에너지는 자기 자신(‘주체’)을 향해. 예를 들어, 몸과 마음이 지치고 피곤한 날이라고 쳐. 몸살 기운도 좀 있어.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 마음먹고 쉬고 있는데 친구들이 불러. 단톡에서 와글와글 난리야. 어디서 모여 있으니 나오라고. 없는 기운 끌어올려 나갔어. 가서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고 떠들다 보니 언제 아팠냐는 듯, 몸살 기운 싹 다 달아나고 에너지 빵빵하게 충전된 느낌 받는 사람, 손? 외향형들이 정신의 에너지를 받는 방식이야. 밖을 향해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동시에 충전하게 되는 거지.
 
반면 내향형들은 비축해서 충전해. 자연스레 안으로 향하게 되지. 딱히 피곤하거나 지친 몸도 아닌데, 심지어 꽤 괜찮은 상태였다고 쳐. 많은 사람 모인 곳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배터리가 방전되는 느낌이 드는 거야. 와글와글 얘기하는 사이에 앉아 있기만 해도 기가 빨려 나가. 내향형의 정신 에너지 역동이지. 혼자만의 시간, 멍 때리는 시간이 내향형에게는 충전하는 시간일 거야. 내장형 배터리지. 그러면, 사람 만나는 걸 힘들어하면 내향형일까? 그건 아니야. 내향형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할 수 있지. 그런데 어쨌든 자기 밖으로 향할 때 외향형보다 훨씬 에너지가 많이 들 거라는 거지. 당연히 외향형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할 수 있고. 본질은 에너지의 방향이야.
 
E들은 말을 하면서 에너지도 받고 생각도 정리하고 그래. 내향형은 자기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머금고 있어야 말이든 뭐든 조금 나오고 말이야. 거기서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어. 내향들은 가만히 있는 침묵의 공간이 편하고. 반대로 외향형은 말 없는 시간 그 자체가 어렵지. 침묵이 불편해서 아무 말 던지다 실수도 막 던지고. 내향형은 ‘가만히 있음’이 자기 에너지 레벨에 충실한 것이지만, 오해를 유발하기도 해. 함께 있는 사람은 “쟤는 왜 물어보면 답을 안 해? 삐졌나? 내게 관심이 없나?” 할 수 있겠지. 내 유형에 충실할 뿐인데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거든. 사실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야.
 
Jung 쌤이 처음 MBTI 검사에서 내향형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 “너 E 아냐?” 하는 말에 분노 버튼이 눌렸던 것을 잘 봐봐. 성격의 어떤 부분을 ‘좋다, 나쁘다’로 보는 선입견이 있었던 거지. 나의 진짜 유형(true type)을 알고 E를 받아들였을 때, 큰 자유를 얻었어. 아, 나는 말을 해야, 마음 맞는 친구들과 떠들고 웃고 할 때 살아있는 것 같지! 이게 나쁜 게 아니구나. 자연스러운 성격이구나! 억지로 말을 참아서 I 흉내 낼 일이 아니구나! 외향형인 나를 받아들이니 내향형 친구들이 있는 그대로 보이더라고. 말없이 가만히 있는 모습에 “뭐가 불편한가?” 괜히 눈치 보는 일도 덜 하게 되고 말이야. 이렇게 내 진짜 유형을 찾고 받아들이면 자유가 생겨. 나를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훨씬 쉽게 수용할 수 있거든. 그래서 말인데, 너는 어때? E야, I야?
 

 

 

<청소년매일성경> 3,4 월호 기고글

 

한 주에 두세 번은 아침부터 출근을 한다. 출근 거리 1미터. 긴 테이블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 자리로 도보로 옮겨가 zoom 사무실에 출근카드 찍기. zoom 강의가 있는 날에 늦잠 자는 아이들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세상에!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찌뿌둥한 기분으로 나와서 이걸 발견하고 기분이 막 좋아졌다나 뭐라나. 그래? 그러면 또 참을 수 없지! 다음 날 또 zoom 사무실 출근 전에 샌드위치 밥상을 차려 놓았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건 참 좋은 거라...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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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오전 줌강의를 마치면 배가 고플 대로 고프다. 자장면을 시켜 먹을까? 생각했는데 모처럼 네 식구가 다 있네! 뭐라도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애호박과 두부를 꺼냈다. 현승이가 "된장찌개 끓이게?" 한다. "왜애? 된장찌개 먹고 싶어?" 하니 "아니, 재료가 딱 된장찌개잖아." "오~ 그러네! 그런데 된장찌개 아니야. 잔칫집 분위기 만들 예정이야...."
 
호박전과 김치전과 두부부침을 했다.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 기름칠이 필요한 영혼이다. 왁자지껄한 냄새로 영혼의 흥을 돋구고 싶었던 것 같다. 생애 가장 고군분투하며 지낸 7년을 마무리하는 JP를 격려하고 싶은데 냉장고에 준비된 재료가 없고, 나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JP 만큼이나 내 영혼도 버석버석하다. 그래서 그의 영혼 나의 영혼에 다다르길 바라며 지글지글 전을 부쳤다.
 

 

오징어채 무침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할 걸!  JP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프라이팬에는 전을 부치고 한 손으로는 오징어채를 무쳤다. 몰아서 반찬 만드는 줄 알았겠지만, 뜻이 담겨 있다. 오징어채는 늘 JP를 위한 나의 마음이다. 당신 훌륭해, 당신 멋져, 당신 유능해! 이런 뜻을 오징어채에 담았다. 
 

 

또다시 줌 강의를 앞둔 저녁에는 떡볶이를 했다. 약속이 있는 채윤이는 나가고, 주기적으로 맥도날드를 복용해야 하는 현승이는 현승이 대로 저녁을 해결하고. 떡볶이라면 언제라도 좋아하는 JP만을 위해서 만들었다. 사순기간 탄소금식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도 담아서 냉장고 털기 떡볶이. 한 줌 남은 배추와 한 조각 남은 곤약을 넣어 만든 국물 떡볶이로 JP는 다시 감동했다. 
 
내가 줄 수 있는 작고 확실한 격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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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ust believe in spring!을 자꾸 읊조리고 다녔더니 예상치 못한 봄 같은 선물이 찾아들었다. 그럼에도 다시 봄은 아직 먼 것 같아 답답한  마음으로 저녁 산책을 나섰는데 "이래도 못 믿겠느냐!"면서 코 앞에 봄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움트는 저 생명을 "봄" 아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탄천으로 내려가자마자 예쁜 새소리가 귀를 잡아 끄는데,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더듬고 더듬어 찾아보니 한 녀석이 앉아 노래를 해댔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떠하든, 지금 하는 그 생각 그대로 일지라도 사랑하신다!" 새는 늘 그렇게 운다. 한참 서서 듣다 다시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대편 경부고속도로 바로 옆길을 선택했다. 아까 그 녀석이 따라왔나? 그런데 조금 더 요란하다. 멈춰서 보니 동네 친구들 죄 불러 모아 합창을 부르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이제 봄이다!"
 

 
종일 하늘이 흐렸다. 돌아오는 길 하늘 저쪽에 요만큼의 노을이 보일락말락 한다. 그렇지, 흐려도 하늘이고, 흐린 하늘 너머에 해는 떠오르고 지는 것이지. 보이지 않아도 저기 해가 떠 있어... 조금 더 걷다 보니 "나, 여깄지!" 가드레일 틈새로 붉은 존재감!

 

연구소 카페의 읽는 기도는 토머스 머튼의 영적 여정에 이정표가 되었던 책과 인물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오늘은 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리는 리지외의 테레사의 저작과 이야기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 만남들, 작은 모욕 등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이라 여겼다고 하는 소화 데레사이다. 작고 확실한 절망을 절망으로 마주하고, 작고 확실한 기쁨을 기쁨으로 마주하는 것이 "살아서 사는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것 같다. 마음을 일으켜 나가 걷기 시작하면 금방 알아지는 진리이다.
 
오늘 아침 연구소 카페 "읽는 기도"에 붙인 댓글이다.

 

"리지외의 데레사가 걸어간 영성의 '작은 길'은,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빠진 영혼은 일상생활에서 신실한 행실로 그 사랑에 부응하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보여주었다."_토머스 머튼

토머스 머튼이 만난 또 하나의 이정표인 리지외의 데레사는 '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립니다. 24세로 일찍 생을 마감한 19세기의 성인입니다. 스스로를 "작은 꽃"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작은 꽃으로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모래 한 알로 살고자 했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 만남들, 작은 모욕 등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유의 끝에는 말 한 마디, 작은 사건 하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건 별 것 아니라고 하나 씩 외면해버리면  삶은 텅 비어버립니다. 리지외의 데레사는 그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를 사랑으로 응답하는 길. 내 일상의 작은 기쁨과 작은 모욕 하나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 작고 미미해서 하나님과는 상관없고 영성의 삶과는 무관하다 여길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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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반스의 "You Must Believe In Spring"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책과 음악이 위로가 되긴 하지만, 어쩐지 일으켜 세워지지 않는 마음이다. 봄을 믿을 수 있을까?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을 믿게 해 달라는 기도의 마음이다. 그래서 고른 음악이다.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고, 세상에나...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라는 책을 쓰신 신부님의 메시지이다. 선물 같은 메시지를 받고 그분의 책을 다시 꺼냈다. 서문을 읽었다. 두 번 반복해서 읽고 나서 이대귀의 <내겐 봄과 같아서>를 플레이 리스트에 걸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손짓하시는데... 봄을 믿어야 한다. 나는 봄을 믿어야 한다. 당신도 봄을 믿어야 한다. "내밀리고 밀리고 휘둘려서 마음이 황량해지는 대신에, 먼저 자유로이 광야를 품을" 결심을 늘 이 자리에서 새롭게 해야 한다.

 

봄을 믿는 사람은 희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희망은 믿고 의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희망과 믿음은 수원(水源)처럼, 소실점처럼
사랑에서 시작하고 사랑으로 향합니다.
봄을 믿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희망이
황량한 대지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사랑의 흔적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이제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라는 말은
하느님이 들려주신 것이라는 것을
 
이 말을 벗들에게,
터널과도 같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이웃들에게,
무엇보다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당신도 그 말을
내게 들려주시기를 청합니다.
당신의 이웃에게 들려주기를 청합니다.
우리가 서로 지치지 않고 이렇게 속삭이기를
하느님은 바라십니다.
"그래요,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혹독한 광야와도 같은 시간이 우리에게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봄을 믿는다면, 광야의 시간은 축복의 때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 '도시의 광야'를 마음에 품고자 합니다. 내밀리고 휘둘려서 마음이 황량해지는 대신에, 먼저 자유로이 광야를 품기로 결심한 사람의 내면은 깨끗해지고 풍성해집니다. 그는 이웃을 향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며, 기뻐하는 것을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겨울 풍경을 눈에 담습니다. 두려워하고 움츠러드는 마음을 내려놓고, 흰 눈이 뺨에 닿는 감각에 깜짝 놀라 기뻐하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씩씩하게 겨울의 숲을 걸어갑시다. 겨울의 시간이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배웅합니다. 벌써 자라난 초록빛 새싹을 맞이합니다. 봄의 기운을 몸에 담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봄과 함께 찾아온 사순절의 시간 속으로 자유로이 들어섭니다. 그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꼭꼭 씹듯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생각과 마음과 삶이 변화하기를 갈망합니다. 마른나무에서 다시 잎이 나고 꽃이 돋는 자연의 기적이 나의 삶에서도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최대환, 파람북, 들어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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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여성의 영적 발달을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사려 깊은 수다를 길잡이 삼아 달빛학교라는 이름의 여성 영성 모임을 진행했다. 30대 비혼 청년부터 60대 권사님까지, 삶의 배경과 신앙의 컬러까지 다양한 일곱 명의 여성과 함께했다. 연구소나 상담소의 프로그램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집단이다. 교회니까, 교회라서 가능한 비균질 집단인 것 같다.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애 주기에 따른 일상영성 세미나 인생의 빛 학교중 하나다.

 

6회기라는 짧은 만남으로 대단한 무엇이 손에 잡힐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다양한 분들이 교회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일상의 언어로 여성적 삶을 나누면서 순간이라도 성령의 숨결을 체험한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사려 깊은 수다를 텍스트로 내걸기는 했지만, 책 얘기는 거의 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수다, 사려 깊은 수다였다. 커리큘럼도 미리 확정하지 않고 한 주 지나며 그다음 주제를 고민해서 나누는 식으로 준비했다.

 

마지막 모임은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여성, 상징, 리추얼이 주제어였다. 세미나 기간 중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다녀오신 벗님 한 분은 미술사를 전공하신 전문가였다. 달빛학교에서 나누고 떠올린 이야기를 품고 여행을 떠나셨고, 빈 미술관에서 만난 피터 브뤼헐의 깊은 영성적 체험을 안고 돌아오셨다. 그림과 함께 그 체험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고, 기꺼이 나눠주신 나눔과 함께 여성, 영성, 연결을 주제로 한 리추얼로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매시간 먹을 것, 나눌 것이 풍성한 모임이었다. 여성들 모임에서 자발적인 나눔으로 흘러넘치는 생명력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본설정이다. 좋기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세대, 신앙의 컬러, 경험의 차이는 순간순간 긴장의 요인이 되었고,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긴장으로 인해 나는 더욱 낮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이끌게 되었다. 고민 끝에 영적 전통 안의 기도를 일상의 기도로 단순화하여 가르치고 배우면서 마쳤고, 결국 좋았다.

 

작고 실제적인 체험의 신비와 영성은 하찮게 여기는 풍조, 껍데기와 종교적 포장지만 남은 것 같은 제도교회에 대한 기대가 시들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못난 울 엄마같은 교회를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 또한 진실이다. 그 마음 사이를 오가며 기도하고 공부하는 중 영성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제도교회와 남성적 신학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면도 있다. 교회는 영성을 담아주는 제도적 그릇이 되고, 영성은 교회의 제도적 측면이 생명력으로 풍성해지도록 보완하며 함께 가야 하는 것으로.

 

달빛학교, 이 체험적이고 여성적인 교회가 내게는 일종의 교회를 향한 희망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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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다. 엄마 기일보다 내 생일에 엄마 생각이 더 나는 걸 보면 엄마는 생명이다. 내 생명의 시작이 담긴 곳, 담긴 몸, 담긴 존재가 엄마이다. 우울하고 슬프고 가라앉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마주한 식구들이 누구도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지 않아서 섭섭했다. 점심으로 나가서 미역국을 먹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사실 나와 채윤이, 연이은 졸업식에 생일 이벤트에 신경 쓸 수도 없는 남편의 상황이라 이렇게 지나가도 좋을 생일이다. 

 

 

오전에 운동 다녀 길에 선물을 받았다. 천국의 엄마가 보낸 선물 같기도 하고, 엄마를 소유하고 계신 그분이 직접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저 소리로 노래하는 새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어느 가지 사이에 숨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나, 뒷목 아프도록 고개 들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새가 목청껏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에 엄마를, 하나님을 느꼈다.

 

 

교회에서 진행한 "달빛학교"라는 여성 영성 세미나의 마지막 날이다. 늘 준비하는 리추얼의 탁자에 어느 때보다 더 마음을 담았다. 연구소에 있는 "여인들"이라는 상징물인데, 큰 사람, 큰 여인을 내가 강의하는 테이블에 세웠다. 여성의 영적발달을 달의 변화로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따와서 6주간 나눔을 해왔다. 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이어지는 여성의 발달이다. 초승달 시기의 끝에 아버지를 잃었고, 보름달의 시기에 엄마를 잃었고, 엄마 떠난 지 4년이 된 지금은 그믐달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딸이었던 내가 엄마가 되었고, 이제 더  큰 엄마가 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라고 초대하시는 그분의 메시지가 삶 구석구석에서 들리는 것 같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이 민망해서 "내년엔 지워야지" 했었는데. 어쩐지 축하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냥 두었다. 축하 메시지 하나하나가 소중하여 밤늦게 돌아와 진심의 감사를 드렸다. 독일에 있는 다슬샘이 축하 메시지를 전해오면서 세상에나! 황금 나리 사진을 보내왔다. "나리"라는 별칭을 쓰는 덕에 나리꽃 사진을 보내오는 벗이 많다. 별별 나리꽃 사진을 보다보다 황금 나리 사진을 보다니! 베를린 어느 성당에서 계단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황금 나리라고 한다. 야생의 들꽃 나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는 오늘 강하고 빛나는 황금 나리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달빛학교 세미나 하러 가는 길에 뱃속에 힘이 빡 들어왔다. 황금 같은 55세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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