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십수 년 만에 만난 옛 직장동료가 말했다.
"정선생님 여전히 커피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좋아하더니..."
그 말에 아, 내가 예전부터 커피를 좋아했구나. 그렇게 좋아했구나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예전에 좋아한달 때는 커피 마시는 걸 좋아했던 게 분명한데.
지금은 커피 마시는 것보단 커피 하.는.걸. 좋아한다는 게 맞겠다 싶다.






없이 살던 사람이라서 그런지....ㅋㅋㅋ 뭘 누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 늘 있다.
뭔가를 누리고 누리는 것을 드러낼 때 '사랑은 자랑치 아니하며'가 목에 걸려서 내 자랑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할 때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지난 번 가족피정 갔을 때 이런 얘길 페북에 끄적이기도 했다.


자주 커피 한 잔을 권하면서 사실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이 없지 않다.
맥심 모카골드를 최고의 커피로 마시는 분들에게 원두커피, 것두 볶은 지 얼마 안 되는 신선한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마신다는것은 뭣일까 하면서 말이다.
사실 이건 일종의 된장질이고 이것이 동기부터 자랑성 된장질이라면 부끄러움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커피 얘기를 할 때마다 신선한 원두는 커녕 맥심모카골드보다 프렌치커피가 더 맛있는 줄 알면서도 가격면에서 재다가 결국 열 봉지 덤으로 붙은 모터골드를 선택하는 분들께 죄송하다. 아니 갓볶은 커피의 고급스러운 맛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입맛이 더 높은데 길들여지길 거부하려는 분들께는 부끄럽다. 내가 경험해 봐~아서, 아는거다. ㅋㅋㅋ
(그래서 어쨌다고가 아니라 이 얘긴 여기까지 끝이고! 그냥 한 번 쯤 고백하고 싶었다)

여행을 하면서 맛있는 한 끼와 가난한 두 끼의 식사를 하고 있는데 참 적절하다. 양이 적은 네 식구는 점심에 맛집 찾아 먹었으면 저녁에 컵라면 하나, 또는 짜장범벅 하나와 주전부리 과자면 충분하다.

사실 그럴 땐 솔까 살짝 우리 신세가 구리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 이럴 때! 우리에겐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드립세트가 있다. 이젯밤 흙집 바닥에서 김밥 먹고 내려 마신 커피는 유랑하는 우리를 왕족되게 하는 커피였다. 진정 그랬다 :D

                                                                                2011/11/25  정신실의 Facebook

 




커피를 하면서 드립의 매력에 빠지기도 하고, 로스팅의 매력에 빠지기도 하지만....
내가 아주 잘 하고 싶은 건 로스팅이다.
그 만큼 날이 갈수록 로스팅에 목숨을 걸고 있다.
로스팅의 매력은 여러 미사려구(단지 미사려구가 아니라 진심 아름다운 이유의 말들)이 있지만 내게는 일단 경제성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원두와 생두의 가격이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아이커피로 시작한 로스팅은 불로스팅에 대한 목마름으로 안내했고, 그 안내에 따라 작년 여름 손바닥 만한 도자기 로스터로 땀 좀 흘리면서 손목을 흔들어 댔었다.







벼르고 벼르다 절대 풀지 않았던 원고료 모은 통장을 헐어서 유니온 샘플 로스터를 들였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이건 말하자면 카페 창업으로 가는 첫 발자국을 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젠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으하하하하...(노...농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만고의 법칙 때문인지...
합정동 교회 근처 카페는 유난히 저 통돌이 하나에 의지하여 커피를 볶는 작은 카페들이 많이 눈에 띈다. 주일날 일부러 아이들과 시간을 비켜서 예배드리고는 통돌이 카페에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자리잡을 기세다.






로스팅, 특히 불로스팅은 그리 고상한 작업이 못 되는 것 같다.
첫 날 저 놈으로 로스팅을 하면서는 제대로 화상을 입기도 했으니까.


젊은 날이도 지금도 여전히 커피를 좋아한다.
요즘은 그냥 커피를 좋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책이나 이런 저런 계기로 커피를 배우기도 하지만, 또 열심히 배워야겠지만 그냥 꾸준히 좋아해 볼 생각이다. 커피에 대해서 알수록  힘이 들어가서야 힘이 빡 들어간 긴장된 혀로 어찌 그 좋은 맛과 향을 즐길 수 있겠나 싶고 말이다.
취미 한 번 고상하단 식의 부러움 반 칭찬 반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 '내가 커피 하는 게 취미로 보이냐?'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ㅎ
된장질, 잉여짓, 뻘짓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커피는 내게 취미 그 이상이다.
늘 그래왔었지만 요즘 유난히 커피에 대한 뜨겁지 않은 열정이 스물거리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커피는 나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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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빡쎄게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다녔지요.
거금을 투자하고 한 달 일상이 마구 흔들릴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벼르고 벼르던 한 과정을 끝냈습니다.
중간에 아버님 일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처음에 충천했던 에너지가 사그러들기도 했지만.
암튼, 마치고 뽀대나는 수료장 받아 들었습니다.






올 1월부터 우연히 커피와 에니어그램을 함께 엮어서 기고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커피를 배우다 보니 에니어그램과 커피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더랬습니다.
알면 알수록 그 세계가 무궁무진 하다는 거요.
커피, 나름대로 책을 통해서 원산지, 역사, 성분.... 기타 등등 이론적인 것도 많이 안다고 자부했으며,
핸드드립도 좀 한다고 교만, 자만, 자뻑 드립이었지요.






이 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카페의 꿈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며 큰 댓가를 지불했는데....
했는데...
했는데...
했는데...
야, 카페 못하겠구나.
난 아직 커피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구나.
커피의 맛과 향이 얼마나 다양한지,
같은 커피라도 내리는 사람에 따라, 찰나와 같은 시간에 의해서 어떻게 다른 커피가 되는지,
로스팅은 어떻고, 생두 자체의 품질은 또 어떤지요.
에스프레소는 1초의 시간, 영쩜 몇 그램의 원두 차이가 좌우하는 맛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과정을 마치고 나니 카페의 꿈과는 수십 걸음 멀어진 느낌이네요.
분명하게 배운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나는 커피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ㅠㅠㅠㅠㅠ
라며 좌절스럽지만요.


내가 모른다는 걸 배운 것 만큼 큰 배움이 있을까 생각하면 귀한 일이지요.
커피,
아.... 그 끝 없이 빠져드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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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음악이 사람보다 나아'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과 단 둘이 있으면 여느 사람과 있을 때보다 위로가 되고 안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릴 때의 독백이다.
이젠 어떤 경우에도 그런 식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그건 음악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사람에게 넌덜머리 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은 '음악이 아니라 사람이 누군가 내곁에 좀 있어줘봐바'라는 절절한 외침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음악은 사람의 대용물로 내게 이용당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정신줄만 제대로 챙기고 있다면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고, 음악보다 편안하고, 커피보다 향기롭다.




헌데 오늘은 '커피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 사람보다 나은 커피를 달달달 볶아봤다.

불현듯 커피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낫다라고 생각하게 된 건,
낮잠으로 심하게 피로를 푼 탓에 잠이 썩 오지 않는 밤에 '커피를 볶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덤덤하던
거실과 주방이 살짝 밝아지면 내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런 시간 누가 나랑 이렇게 액티비티하게 놀아줄 것인가? 이런 시간 커피를 볶는 일이 활력이 된다니 말이다. 이런 날 커피는 사람보다 낫네.




아이커피 로스터를 득템한 이후로 가장 많은 양의 커피 로스팅을 했다.
커피를 볶을 때마다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저것이었다.
그린빈이라고 불리는 생두가 우리가 아는 커피색이 되어가는 과정. 불과 20여 분 동안의 변화다.
내게는 너무도 경이로운 색의 향연이다.

취미 : 음악감상, 독서
내게 음악과 독서는 취미가 아닌데.... 거의 삶인데....
도대체 취미란게 뭐지?  내게는 딱히 취미라고 말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문득 '커피랑 놀기'가
내 취미다. 커피 볶고, 커피 내리고, 커피 마시고.... 요게 내 요즘 취미다! 이거다. 이런 게 취미군하~

안 한다고 죽을 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렇지만 할 때마다 살짝 스트레스 해소랄지, 미세한 아드레날린의 분비와 일정 정도의 부정적 감정을 날려주는
작용까지.... 아하, 요게 요게 이게 취미구나.
내 취미 : 커피 볶기, 핸드드립 하기, 커피 마시기.





커피 볶는 일이 스트레스를 날려준다면 그 정점은 바로 위의 과정이다.
커피가 거의 다 볶아졌을 때 '크랙(정확히 2차 크랙)'의 순간인데 뻥, 뻥 하는 저 소리가 들리시는가?
뻥!뻥! 하면서 커피를 감싸고 있던 채프(껍질)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 들리는 뻥뻥 소리가 내게 가장 기쁨이 되는 순간임을 알았다.




암튼 색깔의 변화를 거쳐 뻥뻥 소리가 나는 2차 크랙이 진행된다면 이제 달달 볶아대는 일은 마쳐도
되는 시점인 것이다. 볶기를 마쳤다면 아주 빨리 원두를 꺼내서 식혀주는 것이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게으름을 피우면 남은 열 때문에 적당히 잘 볶아진 순간적으로 지나친 볶음정도가 되더라는
것을 실패를 통해서 배웠다. (위 사진은 커피 볶는 내솥을 꺼낸 후의 로스터, 그리고 급속냉각ㅎㅎㅎ 과정이다)






원두커피를 것두 신선한 원두커피 마시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그라인더, 즉 커피 갈기에 쓰는 저 놈을
꼭 장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원두를 사면서 '갈아주세요' 해서 200g 정도를 한꺼번에 갈아오는 건
비싼 원두를 싼맛으로 마시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원두는 마시기 직전에 분쇄하는
것이 필수다. 원두의 향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그라인더에 넣고 드르륵 드르륵 가는 그 순간이다. 
저걸 장만하기가 거시기 하다면 마늘을 갈던 커터기를 사용하더라도 마시기 직전에 갈아주는 것이 신선한
원두에 대한 예의라고 이 연사 소리를 높여 주장한다.











베란에 밖에 내어 놓은 원두가 충분히 냉각이 되었을 것이다.
원두는 볶은 후에 3일 정도 숙성시킨 후에 마시는 것이 좋다.
볶아서 첫날,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맛을 비교하며 마셔봤더니
왜 '숙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볶은 지 3일 후부터 마시면 오케이고 가장 맛있을 때는 7일 후라는데....
아직 7일 까지 숙성시켜 마셔보질 못했다. 오늘 볶은 놈들은 기필고 생후
7일이 되었을 때 마셔줘봐야겠다.


이 나이에, 잠 안오는 날 함께 놀아줄 친구를 만난 게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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