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충신교회 사경회를 얼마 앞두고 목사님께 기도제목을 묻는 메시지가 왔다. 기도제목을 말하는 것이 조금 어렵다. 한두 줄 말로 정리하는 게 쉽지 않다. 뭐랄까, 하나님과 조금 사무적 관계가 되는 느낌이랄까. 남들이 모르는 은밀한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사이인데, 에헴... 친하지 않은 척 공개적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다. 하지만 기도제목을 물어주는 질문은 대개는 좋다. 특히 이번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말씀 준비를 위해 몇 번 통화하면서 언어 너머의 기도제목 알아차릴 분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경회를 준비하는 은밀한 하나님과의 속삭임을 있는 그대로 들려달라는 요청이었다. 기도제목을 정리하며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차렸고, 목사님과 교우들이 기도로 준비하고 계시다는 확신에 힘이 나고 감사했다.
<기도제목> - 제가 전할 수 있는 만큼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준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인간적인 욕심이 되어 저를 도구로 쓰시는 성령님의 일하심을 방해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메시지를 기쁨과 자유로움으로 준비하고 싶습니다. - 4월에 일정이 많아서 몸이 좀 약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남은 며칠 동안 몸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 기도하며 돌보겠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 아직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교우들이 마음과 저의 마음이 주파수가 잘 맞춰서 피차에 은혜의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 함께 기도로 준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고 있는 모든 강의가 마음과 영성에 관한 것이기에 당당할 수가 없다. 마음과 영성은 '지어져 가는,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확신 있는 답을 내놓을 수 없고, 주로 내가 겪어온 이야기를, 겪어내며 기도하고 공부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한 발 한 발 걸어가자고, 우리 모두 순례자이고 영적인 여정은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디 가나 비슷한 얘기를 하고 또 하게 된다. 강의가 내게 유익이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말하면서 확신이 든다. 말하면서 다시 결심하게 된다. 그래, 맞아! 이렇게 가는 거야. 앞선 영성의 선배들이 그러하셨어. 솔직히 내 강의에 내가 은혜받는다.
내 강의에 스스로 은혜받는 것까지는 해봤다. 그리고 마이크 내려놓고 내려와서는 부끄러움에 회개 기도도 많이 드렸다. 이번에 놀라운 경험을 했다. 신앙 사춘기와 영적 발달 얘기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떠올려야 하는 분(들)이 있다. 아이의 신앙에서 어른으로 가기 위해서 부모를 넘어서야 하듯이 한때 사랑하고 존경했던 지도자의 그림자를 마주해야 하고, 나의 여정은 거기서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여전히 그 상처에서 나오는 피고름으로 괴로워하고 있으니까. 자꾸 말하고 쓰면서 나는 사실 내 영적 여정 최대의 빌런인 그분을 용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용서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만남을 주선하셨다.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회개했다. 남편이 목사로 겪는 어려움을 보면서 내 원망과 분노의 죄를 남편이 받는 것 아닌가 싶어서. 거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분을 축복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훨씬 실망스러운 그분의 노년을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다. 진심으로 그분의 평화를 빌게 되었다. 그분의 행보로 인해 새롭게 피눈물 흘리는 양 같은 교인들이 있기에 더욱 아픈 요즘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너머 가여움에 겨운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
금, 토 저녁 집회 후 기도회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말씀을 전하고 내려와 목사님이 인도하는 기도를 따랐다. 그냥 기도하게 되었다.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감정적 선동을 하지도 않는 기도회 인도에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도가 올라왔다. 내가 했던 말을 요약하셨을 뿐인데,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고 기도하게 되었다. 첫날은 신앙 사춘기 주제였는데 내 인생의 빌런, 그 목사님을 축복하게 되었다. 둘째 날은 '여성의 하나님' 이야기를 나눴고 하나님의 모성성에 기대어 이땅의 여성들, 낮에 만나 식사했던 집사님들, 연구소의 벗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거의 2년 전, 말씀을 전하고 내려와 이어진 기도회의 충격으로 며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있다. 몇 개월 준비한 말씀이었는데, 혹여 해석 상 오류가 있을까 하여 남편에게 신학적 검증을 받고 또 받고 했었다. 청중 가운데 내로라 하는 신학자, 목회자들이 여럿 있었기에 더욱 부담이 되었었다. 이어진 기도회는 내가 전한 본문에 대한 인도자의 해석으로 진행되었다. 실은 가볍게 흔히 겪는 일이다. 여성이며 비목회자로 겪어낼 몫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날은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몸에 생긴 발진은 그해 12월이 되어서야 잦아들었다. 호된 시련의 시간이었다. 이후 내가 내 편이 되어주는 행동을 했고, 시간이 지났고, 그야말로 치유가 되었다. 그날 기도회 인도를 했던 분의 이름을 어디서 봐도 이제 심장이 쿵 떨어지거나 박동이 빨라지진 않는다.
이번 집회에서 두 번의 기도회는 정확히 그 일에 대한 치유였다. 나를 초대하고 기도회를 인도하신 목사님은 당신의 방식대로 하던 바를 하셨겠으나, 그것이 나를 치유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시는 분이니 누군가의 존재로 누군가를 치유하신다. 좋은 치유자가 되고 싶다면, 늘 하는 방식이 치유적이어야 한다. '치유하는 현존'이 되어야 한다. 사경회의 주제가 "봄처럼 피어오르게 하소서"였는데, 처음에는 나와 좀 안 맞다는 생각을 했다. 내 메시지는 좀 무겁고 추운데... 삼일 시간 동안 적어도 내게는 새로운 생명이 불러일으켜졌다. 목사님께서 손글씨로 편지를 주셨는데, 사흘 치유와 소생의 정점이다. "안심이 됐답니다"라는 한 문장이 내 영혼을 얼마나 안심시키고 위로를 주는지...
꽃새우전을 부쳐봤다. 마침 잘 손질된 꽃새우를 선사받았고, 마침 꽃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계절이고, 마침 찬란한 슬픔의 아카시아향이 온 감각을 자극하는 시절이라 꽃, 새우, 傳을 만들어 보았다.
우리 어머니는 배우기만 하셨으면 시인이거나 학자가 되셨을 텐데. 언젠가 아카시아 향이 진동하던 어느 때 교회에서 대표기를 하셨었다. "하나님, 아카시야 향기가..."로 기도를 시작하셨다고. 교회가 아카시아 나무 그득한 동산을 등지고 있었다. 그냥 기도가 그렇게 나왔다고. 기도에 은혜 받았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고...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하냐고 사람들이 다들 나 대학 나온 줄 안다고 자랑이 끝이 없으셨었다. 시인 같은 면모에 지적으로 탁월하신 분이다.
비가 오고, 그칠 기미 없이 종일 흐리고, 아카시아 향이 좋은 계절이고, 온통 어머니 생각이 떠나질 않고... 괜히 꽃새우전을 부쳐봤다.
느긋하게 걸으며 들꽃 관찰하고, 그 녀석들 이름 검색하고, 자꾸 불러주며 외우는 것 좋아한다. 티키타카 농담 따먹기로 하염없이 시간 보내는 것도 좋아하고. 옷 구경 하는 거, 언제 어디서나 넋을 앗아가는 즐거운 일이고. 강의와 글쓰기 관련 책을 읽으며 꽂힌 한 주제에 파고드는 재미는 세상 비할 데 없고. 강의나 글쓰기와 아무 상관 없는 책을 아무 걱정 없이 읽는 날이 있는데 '이게 사는 거지' 싶게 행복하고. 정말 잘 볶고 정성스럽게 내린 핸드드립 커피 한 모금에 뇌가 열리고 혀가 춤추는 느낌, 진짜 좋아하지. 혼자 있는 거실에 볼륨 높이 올리고 듣는 바흐 음악은... 거의 천국에 닿는 기쁨이고.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천천히 차근차근 해치우는 것도 좋아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일 많은데... 요리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먹을 사람 취향 분석하고 저격하여 메뉴를 정하고 만들고 함께 먹는 것, 참 좋은 일이다. '연어 파피요트'를 했고, 함께 맛있게 먹었고. "삶은 요리 안 죽었네"하는 평을 들었다. 요리하는 것 좋아하는데, '삶은 요리 정신실 선생'으로 불리는 것은 진짜 생의 의미, 존재의 이유를 확인받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일이다.
지난 3월 다녀온 뉴질랜드 여행을 위한 단톡방 이름이 "고고씽 뉴질랜드!"이다. 말하자면 어제는 뉴질랜드 남섬 원정대 해단식이었고. 5월 "고고씽 유럽!" 출정식이기도 하다. 서쉐석 목짠님 부부와 맛있게 식사하고 식사보다 더 맛있는 대화를 나눴다. 메뉴는 연어 파피요트, 고사리 명란 파스타, 샐러드였다. 삶은 요리 정신실 선생이 오랜만에 앞치마 좀 둘러봤다.
이 글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신앙 안에서 잘 늙어가고 싶은 중년 여성과 그가 따르고 싶은 한 노인의 가상 대화입니다. 중년 여성인 ‘정 선생’은 심리치료사인데 모태신앙으로 신앙의 열정이 남다르며,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롤모델로 삼은 80대 은퇴 교수 ‘최 선생님’은 60대에 예수님을 만난 자칭 ‘초보 신자’입니다. 신앙의 연수는 짧지만, 평생 마음을 연구하는 상담학 교수로 살았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허구이기에 실제 대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쓰게 된 현실적 고민이 있고, 그리하여 찾고 싶은 진실이 있었습니다. ‘중년의 위기’를 겪으며 허무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물론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은 많은 ‘정 선생’이 겪고 있는 신앙적 실존적 문제입니다. 최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인생의 후반을 잘살아보려는 노력은 그야말로 중년 구도자의 진실에 대한 갈망입니다.
<시니어 매일성경>에 연재하는 중에 ‘최 선생님’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독자의 연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직접 만나는 것이 어렵다면 그분이 쓰신 책이 있는지 알려달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렇듯 철썩같이 논픽션으로 읽어주시니다니요!) 모델이 있기는 합니다. 저의 고민을 마음 다해 들어주시고, 사려 깊은 조언을 주시는 선생님이시죠. 무엇보다 성찰적인 분이십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가 아니셨습니다. 그럼에도 평생 신앙생활 해 오신 노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랑과 믿음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분 앞에서 복음을 아는 제가 부끄러웠고, 그러기에 더욱 복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잘 늙어가고 싶은데, 닮고 싶은 노인을 찾기는 힘들고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반면교사만 눈에 띄는 안타까운 현실이 조금 슬펐습니다.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것만 같은 ‘최 선생님’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나왔지 싶습니다.
질문하는 ‘정 선생’은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찾는 구도자입니다. 중년 이후의 삶을 어디로 초대하시는지 이정표가 될 만한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중년 영성에 대한 ‘최 선생님’의 답은 이 말씀에 대한 인문학적 변주입니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인생사용설명서이지만, 노령화를 비롯한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에 명쾌한 모범답안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깊은 고민과 지혜로운 적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최 선생님’의 입을 빌려 심리학, 철학 등 다양한 책을 인용하였습니다. 인용된 책까지 찾아 읽어주시는 독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후 4시 반 경에 찍는 사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낮 동안 빛을 받은 만물이 오후 해질녘쯤 안에서부터 내는 빛으로 뚜렷한 선과 색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과 신앙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요? 노을이 물드는 저녁, ‘최 선생님’과 ‘정 선생’ 두 여인 곁에 앉아 대화에 귀 기울여주신 <시니어 매일성경>의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도록 제안하고 격려해주셔서 제 안에 있던 ‘정 선생’과 ‘최 선생님’을 꺼내어 주신 서재석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면을 허락해주시고 단행본으로 만들어주신 성서유니온 출판부에도 감사드립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 성외리 한산제일교회, 목사관. 내 고향집... 번짓수... 도 알았는데 생각이 안 나네. 군산은 한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여서 가장 먼 곳이었다.군산은 배를 타야 가는 곳이었다. 장항으로 가서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넜다. 그릇을 새로 산다고 엄마 아버지가 군산에 가야 했었고, 늘 입이 헐곤 했던 아버지가 입에 바르는 약을 사러 군산에 갔다. 그 먼 군산에 나는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 적도 있다. 초등학교 중학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한산에서 자란 내게 군산은 가깝고도 멀고, 꽤 중요한 곳이었는데... 그저 복성루 짬뽕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중요한 조각이었는데.
운전하고 내려오느라 힘드셨겠다는 목사님의 인사에 괜찮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툭 나온 말이다. '제가 자가 운전으로 내려올 수 있는 남방 한계선이 군산이에요. 적절한 운전 시간이었어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니 정말 그렇다. 첫날 집회를 앞두고 식사하면서 목사님께서 "군산이 전라도이지만 충청도 인접이라서요. 충청도 정서와 매우..."라는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알아들었다. 아! 우리 엄마 사투리는 참말로 충청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그 무엇이었지! 순간 많은 기억과 생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충청남도 아래쪽 끝의 한산, 전라북도 위쪽 끝의 군산. 군산은 한산에서 도 경계를 넘어가야 닿는 곳이었구나!
실은 작년 여름 교회 전교인 수련회를 거의 한산이라 할 수 있는 '서천'에서 했었다. 수련회에서 맡은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서 꽃을 사러 군산에 갔었다. 차로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정말 가까운 곳이었다. 배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충청도와 전라도를 갈랐던 금강에 다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군산은 그냥 복성루 짬뽕의 군산이었지 내 어릴 적 군산이 아니었다. 첫날 강단에 올라 교우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어떤 지점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어떤 표정들에서 익숙한 무엇을 느꼈다. 아, 여기 한산과 멀지 않은 곳이야! 그 순간 엄마와 아버지와 내 어린 시절과 한산의 교회와 목사관이 마음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군산에서 사경회 강사로 며칠을 보내면서 어릴 적 한산에서의 부흥회 생각이 났다. 부흥강사는 늘 우리집에 머물곤 했는데, 끼니때마다 잔치도 그런 잔치가 없었다. 부흥회는 엄마와 집사님 권사님에게는 요리실력 부흥회였다. 끼니마다 산해진미였다. 우리 집은 바로 호텔이 되었다. 말썽꾸러기 동생은 부흥회 때마다 외갓집이나 이모집으로 유배되어 갔고. 참으로 극진했었다. 부흥강사, 목사를 향한 극진함이 그리 위험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돌아보면, 목사였던 아버지를 향한 극진함이 목사가 늦게 얻은 딸인 내게로 흘러왔고, 생애 초기에 나는 큰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목사의 딸인 것이 부끄러움도 결핍감도 아니었다. 신앙 사춘기로 온갖 반항의 가슴앓이를 했지만 결국, 더욱, 오히려 더욱 교회의 딸인 나를 확인하는 자리로 돌아온 것은 어릴 적 받은 극진한 사랑 때문인지 모르겠다.
사경회 강사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극진함은 세심함이었다. 호수 뷰의 호텔 숙소며, 부러 하루 오전 시간을 텅 비워 잡아주신 일정은 세심한 극진함이었다.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느긋하게 호숫가 산책을 하고(주일 아침에도 6시 전에 일어나 느긋하진 않아도 여유는 있는 이른 아침 산책을 했다) 볕 좋은 창가에서 강의 숙지와 독서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은파호수공원 산책길은 다양하기도 했다. 호수 바로 옆으로 걷노라면, 어느새 오솔길, 오솔길을 걷노라면 늪지대를 지나는 듯한 길. 걸으면 무조건 행복해지는 내게 최적의 쉼이었다. 숙소 공간도, 텅 비워진 시간도 목사님의 세심한 배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딜 가든 목회자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내상을 입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분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전하게 된다. 한때 존경의 대상이었으나 어느 순간, 아니 서서히 빌런이 되어간 그 목사들은 원래 그런 존재였을까. 잘 위장하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더는 정체를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일까.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그런 존재가 된 것일까. 그냥 '고산병'이라고, 높은 산에 올라가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 병과 같다고 진단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권력이 생기고 자리가 높아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라고. 나는 그것을 '황금투사'라고 이름 붙이곤 하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 이야기를 해야 했다.
목회자에 대한 극진한 대접이 고산병을 낳고, 황금투사의 드라마가 된다. 위험하다.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절이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 지도자, 특히나 영적 지도자를 향한 극진함은 배우는 사람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를 추앙해요!"라고 말하는 염미정의 말에 알콜중독자 구씨는 치유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염미정을 추앙하는 일은 염미정이 아니라 구씨 자신을 위하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추앙하는 순간 자기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앤 율라노프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더 큰 권위에 연결되어 존중하며 성장하고픈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나를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로 향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닿는 가교가 된다. 기꺼이 두려움 없이 존경하고 극진하게 대할 대상이 없어 슬픈 시절이다. 그런 대상 따위 필요 없다는 상처 입은 자의식이 더욱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한산과 군산의 사랑을 생각하고, 어느 산 정상 근처에서 혼미한 정신으로 헤매고 있는 고산병 환자를 생각한다.
<뉴스앤조이>와 여기 일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늘 마음이 쓰입니다. 반 기독교 단체로 규정되어 겪는 사법적 다툼 등 물리적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몇 년 전에는 뉴조 사무실 앞에서 음향기기 동원해 시위를 이어가던 집단이 있었는데, 그 악의적 소음을 어떻게 견디며 일하나 싶었었죠.) 소수자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취재하며 겪는 정서적 부담은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이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입니다.추천하는 이 책은 <뉴스앤조이>가 교회를 사랑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정을 담아 추천사를 썼는데, 많이 읽히며 좋겠습니다.
추천사
정신실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소장, <신앙 사춘기> 저자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이 책에 기록된 다섯 교회 스물아홉 명의 울분에 찬, 슬픔에 겨운 고백은 교회 분쟁이라는 이름의 교회 사랑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라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어딘가로부터 떠나왔다면 어디에 도착했다거나, 최소한 가는 중이라고 해야 할 것을. 어디를 떠나왔는데 그것이 되었다는 게 좀 이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알아듣습니다. 떠나온 교회가 외적 장소이며 동시에 마음의 처소이기에 그렇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구역모임을 하고,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담겨 있는 마음의 처소입니다. 사람들이 담긴 마음의 보고(寶庫)입니다. 그 모든 일로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던 마음의 성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곳을 버리고 다른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사랑을 떠나 사랑이 되다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말에 담긴 진심을 가늠할 방법은 없지만, 이 책 떠나온 이야기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단이니 뭐니 하는 말로 이분들을 막고 쫓아내는 이들도 ‘교회 사랑’의 발로라고 하니 도대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영성 깊은 정신과 의사 스캇 펙(Morgan Scott Peck)은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영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해 나가는 의지’라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설레고, 맹목적으로 끌리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마음, 뭔가를 소유해야만 채워지는 욕망이 아닌 ‘의지’가 바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나와 타인의 성장을 위해 나를 확대하는 의지라고 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말이 좋아 확대지, 나를 찢는 일입니다. 그러니 김영봉 목사님의 책 제목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픕니다.
여기 이 교회 사태에 연루된 이들 중 처음부터 투사였던 이는 없습니다. 목회자의 범죄가 드러난 이후 교회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힘든 상황이 전개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의 비리를 알게 되어 받은 첫 충격은 뒤에 오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목사의 처신, 이를 덮으려는 무지막지한 집단적 저항, 그야말로 교회 사랑의 발로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전쟁이 되고 맙니다. 본의 아니게 이 싸움에 휘말린 이들은 전쟁터를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교회의 분열은 막아야겠기에, 피해자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결국 멈출 수 없는 전쟁이 됩니다. 진실에 눈을 뜬 이들은 오명을 무릅쓰고, 의지를 다하여 자기를 찢으며 길이 없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책은 눈멀었던 옛사랑을 떠나온 이야기입니다. 정직한 절망을 통과하며 교회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끌어안고 큰 사랑을 향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떠나 말씀이 되다
목사 한 사람의 범죄 또는 성찰 없는 잘못에서 이 아픈 이야기들이 시작한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놀라움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을 부추기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목사의 ‘말’이라는 사실 역시 모르던 바도 아닌데, 새로운 충격입니다.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수 년 동안 목사님의 ‘말씀’을 먹고 살았던 성도들입니다. 이제 목사의 그 ‘말씀’은 분쟁에 기름을 붓고 성도들을 사지로 몹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떠나온 곳은 교회이며 동시에 목사의 ‘말’입니다. 이 왜곡된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심리적·영성적으로 홀로서기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복(福)과 저주를 무기 삼아 성도를 옭아매는 목사에게 휘둘렸던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 이것이 분쟁에서 얻은 유익이라 한다면 대가가 크기에 더욱 값진 것입니다. 목회자의 범죄가 드러나기 전부터 ‘설교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거나 더는 설교를 들을 수 없어서 예배당을 뛰쳐나가고 싶었다는 인터뷰이가 있었습니다. 잘못된 말을 감지하는 귀가 진실을 보는 눈보다 먼저 열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떠나온 말’들은 왜곡된 신학과 가르침들이지만, 한때의 사랑과 열정을 표상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 언어를 버리는 일은 그 시절의 나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여 어렵고 아픈 일입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들이기에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 죄다 갖다 버리는 것이 능사도 아닙니다. 버릴 말을 버리고 취할 말을 취하는 것은 떠나온 교회 시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화해하는 치유 작업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과거의 사건은 그것을 회상할 때마다 개정판으로 다시 쓰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습니다. 과거의 사건은 ‘다른 환경, 다른 자리’에서 발화되는 그때마다 새롭게 쓰입니다. 혼자 회상만 하거나,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방식으로만 이야기된다면 좋은 개정판이 되기 어렵습니다. 어느 자리에서, 누구의 질문에 응하느냐에 따라 경험은 다르게 진술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이 책에 담긴 인터뷰가 하나의 치유 작업으로 보입니다.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된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회복적 정의’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기자의 질문이 참 고맙습니다.
기사를 떠나 서사가 되다
교회 문제로 고통당하는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화되는 것에 위로받는 것을 봅니다.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밝히고, 때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의 역할이 본질상 정의를 세우는 일이기에 그렇겠지요. 거기서 한 발 나아가 분쟁을 겪은 교인들의 ‘마음’에 주목한 인터뷰 기사라니. 마음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가 기사의 형식을 빌어 여기 우리 들려집니다. 인터뷰에 응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께는 또 하나의 개정판 작업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치유의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힘든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글로 정리하는 노고가 어땠을까,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저자 구권효 기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약자의 고통을 담아낸 정의로운 기사, 회복의 염원을 담아 쓴 정의로운 글이 평화의 기도로 다가옵니다. 분쟁 과정과 소송결과가 아닌, 그것을 겪어낸 개인의 서사가 누군가에게 질문이나 답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실망한 교회를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분에게, 갑자기 알게 된 목회자의 범죄를 알려야 하나 덮어야 하나 고민하는 분에게, 어떤 식으로든 교회에 관한 고민을 안고 계신 분들께 말이지요. 목회자 한 사람의 거짓말, 횡령, 성폭력, 표절같은 범죄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리는데 이보다 좋은 책이 없습니다.
25주년 결혼기념일이다. 남편 제주살이 하는 동안 잠시 들러 찍은 사진 배경이 제주도 신혼여행 사진과 겹친다. 오른쪽 사진의 제목은 "늙은 우리"이다. 마음에 든다. 늙은 우리와 젊었던 우리가 다 마음에 든다. 오늘 묵상 본문 말씀이 시편 1편이다. 25주년 잘 살았고, 잘 견뎠고, 잘 늙었고, 앞으로 이렇게 늙어가라고 주시는 그분의 선물같다. 남편과 함께 나누는 아침 묵상에 이런 글을 적었다.
그대,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수밖에! 죄악 소굴에 들락거리길 하나, 망할 길에 얼씬거리길 하나, 배웠다고 입만 살았기 하나. 오직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밤낮 성경말씀을 곱씹는 그대! 에덴에 다시 심긴 나무, 달마다 신선한 과실 맺고 잎사귀 하나 지는 일 없이, 늘 꽃 만발한 나무라네. (시1:1-3 메시지성경)
결혼 25주년 기념일입니다. 25년의 기쁨과 슬픔이 마음을 다시 훑고 지나갑니다. 장신대 도서관에서 책을 싸들고 나오며 "신학교 가지 않겠다, 목회자 되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시작된 결혼인데, 지난 25년의 부부생활, 가정생활은 목사가 된 남편의 여정으로 굴곡진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빠가 목사가 되지 않았으면 겪지 않았을 수많은 일들을 겪어내며 우리 가정은 고유한 무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처는 존재의 무늬입니다.
주님, 결혼 25주년 기념일 아침에 함께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부부로 성장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이 성경을 사랑하고, 목사의 책임감으로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어서 저의 오늘이 있습니다. 남편이 목사였기에, 피눈물 흘리며 지켜야 할 제도적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제가 오랜 시간 영성의 길을 돌아돌아 여기 다시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 있습니다. 주님, "말씀에서 솟아나는 기도"의 맛을 알게 된 지난 25년의 시간이 감사합니다.
남편의 길을, 저의 길을 이끄셔서 인생 남은 날 더욱 저희들 자신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옵소서. 생의 전환점을 맞은 남편이 이 5월의 시간을 지나며 자기다운 목회, 자기다운 삶을 사는 소명의 길을 잘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아침마다 말씀으로 말씀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안녕, Jung 쌤이야. 너는 네 MBTI 유형이 어때? 마음에 들어? 혹시 되고 싶은 유형이 있어? Jung 쌤은 되고 싶은 유형이 있었어. 내 유형 ESFP가 대략 마음에 드는데, 마지막 P만 J였음 좋겠더라고. 그래서 ESFJ를 선망했어. 시작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무리를 하고, 처음 세운 계획을 바꾸지 않고 하나에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J들이 그래 보였거든. “내 이 재능과 성격에 J이기만 했으면 인생 성공인데!” 싶었던. 재미 추구, 긍정적인 것에만 꽂히는 ESFP의 환상 같은 자아팽창이었어. 암튼 부러운 유형이 있지 않아? 부러운 유형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우월한 것으로 보이는 유형도 있어. 그런가 하면 나쁜 유형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거 없다는 말은 지난 번에 했지? 다시 말하지만 MBTI 유형에는 좋고 나쁜 성격이 따로 없다는 거!
우리가 MBTI에 이렇게나 꽂히는 이유가 뭘까? 주변에 MBTI 과몰입 친구 하나는 꼭 있잖아. “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내 생긴 그대로 이해받고 싶은 마음 때문일 거야. 한마디로 하면 “나는 누구지?” 하는 질문에 답을 찾고 싶은 거겠지. “나는 누구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야.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고. 이걸 묻기 시작했다면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기차에 탔다고 봐도 좋아. MBTI는 이 어려운 질문에 어느 정도의 답을 주거든. 나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면이 있지.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의 모양을 알려준달까? 그렇다고 MBTI 유형으로 내가 다 설명되는 것도 아니야. 나는 누구이고, 인간이란 무엇이지?
얘기가 너무 멀리 왔나? 그런데 필요해. 질문하는 것이 필요해. 성경이 인간에 대해 분명하게 알려주는 게 하나 있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졌다는 거야(창 1:26-27).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 모양을 보여주는 MBTI 성격유형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볼 수 있을까? 어떨 것 같아? 나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니까, 나를 속속들이 아는 분이시니까 나의 외향성 또는 내향성은 그분의 선물이야. 내 성격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썩 와닿지는 않지?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품에서 외향성과 내향적인 면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물론 영이신 하나님을 인간적 성격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 안에 그분의 흔적이 있으니까!
외향형은 밖을 향해 에너지를 쓰면서 동시에 충전하고, 함께 교류하면서 더욱 힘을 얻어.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외향 에너지가 보이는 것 같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주어가 “우리, 우리, 우리”야. 벌써 세 분이 함께 계시며, 창조의 계획을 함께 세우시네. 그리고 바로 행동에 옮기셔. 사랑과 창조적 에너지를 외부로 퍼부어 우주를 만들고 지속시키고 계셔. 그 창조물이 우리 눈앞에 이렇게 있잖아! 봄이 되면 움트는 새싹, 시원하게 내리는 여름 소낙비, 맑고 예쁜 가을 하늘, 솜처럼 내리는 눈. 자연은 물론 내 몸 자체가 창조물이니까 말이야. 이렇게 만들어놓으시고는 “아, 참 좋다! 내가 만들었지만 참 좋아!(창 1:4)” 막막 표현하시네. 영락없는 외향형의 모습이야. 너의 외향적 능력은 하나님 닮음의 표시야.
반면 엿새 동안 창조의 날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어. 활동만 하신 게 아니라, 물러나 쉬기도 하셨구나. 자기 안으로 물러나는 내향형의 향기가 느껴지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일하면 피곤하고 스트레스 쌓이는 한계를 가지셨다는 뜻은 아니야. 하나님은 홀로 충분하신 분이야.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한 분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으로 족하시지. 시끌벅적한 만남, 박수갈채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 혼자 있어도 충분히 좋고 행복한 거야. 그게 내향형의 에너지야. “숨어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하곤 하지. 티 내지 않고 사랑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계시는 분,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 말이야. 외향형들이 내향형에게 “표현을 안 하니 도통 그 속을 모르겠다”고 하는데. 가만히 존재로 함께해 주는 친구가 주는 위로 알지?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거든. 어쩌면 표현되지 않는 사랑이 더 깊고 클 수도 있어. 너의 내향형 능력 역시 하나님 닮음이야.
말 나온 김에 두 번째 지표인 감각형(Sensing) 하나님, 직관형(iNtuition) 하나님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계속 창조 이야기를 해보자고. 이 놀라운 세상이 누구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거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는 분, 흑암과 혼돈 속에서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아무것 없는 데서 기발한 상상력을 내는 직관형의 선물은 이런 하나님을 닮았네. 창조세계는 또 얼마나 디테일해? 작은 벌레 한 마리부터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그 생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잖아. 오감을 통해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봄으로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알아내는 감각형의 디테일도 어디에 닿는지 알겠지? 이렇게 보면 MBTI라는 안경으로 내 안에, 그리고 친구 안의 하나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러면 이제 진도를 빼보자고. S-N 설명으로 가봐야지, 라고 정신을 차리니 벌써 끝날 시간이네. 다음 시간에 감각형 직관형 얘길 할게. 두 번째 지표는 학습이나, 전공 선택에 꽤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 다음 시간도 기대해줘. 안녕!
현승이 생일상 메뉴로 바비큐 폭립이 주문 들어왔다. 제주 한 달 살이 마친 아빠까지 오랜만에 네 식구 식사라 통 크게 접수했다. 생각해 보니, 논문 붙들고 있던 작년 3월부터 집안일을 많이 놓았던 것 같다.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요리를 해 본 때가 아득하다. 핏물 빼고, 삶고, 소스 만들어 재우고, 초벌로 굽고, 다시 굽고... 공들여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다.
집을 비우면서 소고기뭇국을 끓여 놓고 갔는데... 따로 국물과 양념 고기 비율이 안 맞았는지 고기만 잔뜩 남아 있다. 소고기 청경채 볶음으로 리뉴얼 했더니, 중국요리 같다며 고객님들께서 좋은 반응 보여주셨다.
동치미 냉면 한 젓가락 씩으로 마무리다. 이렇게 현승이 생일 파티 겸, 아빠의 귀환 환영 파티는 마무리되었는데... 이렇게 현승 생일, 엄빠 결혼기념일(무려 25주년), 어버이날, 아빠 생일이 줄줄이 이어지는 20여 일의 가족 잔치 시즌이 시작되었다. 엄빠 결혼기념일과 어버이날은 앞으로 평생 하나로 퉁치자고 했다. 대신 어버이날 꽃은 달라고 했다. "결국 다 챙기라는 거네..."라는 말에 삐지는 마음이 되는 걸 보니... 나 늙는 건가?
제주에서 한 달을 지내는 남편이 드디어 일몰을 제대로 봤다고 했다. 바다 뒤로 넘어가는 해를 제대로 본 날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던 터이다. 바다보다 구름이 먼저 삼켜버린 해를 보면서 아쉬웠지만, "나름 멋있다"는 식으로 위안을 하고 있었다. 한라산 등반으로 이틀을 보낸 좋은 친구들과 공항에서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단다. 뚜벅이로 지내다 마지막 짐을 빼서 나가야 하는 일정에 맞춰 렌트를 하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선물을 받았다면서 사진을 보내왔다. 선물이라고 했다. 종훈, 동조 두 형제가 내려왔던 이틀 전에는 일몰을 기대했으나 마주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돌고래 출몰. 돌고래를 보았다고 한다. 셋 중에 자기만 봤다고... 맞다, 선물이다.
일몰을 보고 쓴 남편의 글을 보고 잠이 들었다. 나는 군산에서 사경회 강사로 삼 일을 지내는 중이었다. 둘째 날 집회를 마치고, 잠들기 직전 남편이 올린 일몰 영접 글을 읽었다. 그 감동이 내게로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그렇게 잠이 들고 새벽 5시쯤인가 잠에서 깨었다. 하늘을 보며 잠들고 싶어서 커튼을 열어둔 채로 잠에 들었다. 해 뜨는 방향이 어딘지, 내가 있는 곳은 동서남북 어딘지, 그런 감각이 없다. 새벽하늘이 붉게 물든 것을 보고, "어, 저기서 해가 뜨나? 예쁘네..." 하고 사진 한 장 찍어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이 다 깨버린 상태라 침대에 누워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어라? 저거 혹시 일출이야? 싶은데... 어머나 세상에, 올라오는 것이다! 해가!!! 무방비 상태로 일출을 영접했다. 선물이다. 어마어마한 선물이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협재에서 진 해가 오늘 군산 은파호수공원 쪽으로 올라왔어!"
칼 라너의 말처럼 일상이 신비이다. 일상이 신비로 가득찼다. 자연이 신비이지만, 자연을 신비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 선물이다. 남편에게 종훈, 동조 두 사람이 선물이 되었다. 내게는 지극한, 세심한 환대의 군산하나충신교회 고승표 목사님이다. 숙소 하나를 정하는데도 선물로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신비가 널렸다. 사랑이 널렸다. 꿈모임에서 아주 작은 들꽃 꽃마리를 비유 삼아 "꽃마리를 구별하는 눈만 있으면 볼 수 있다. 꽃마리가 지천에 널렸다. 하나님의 선함도 그렇다. 하나님의 선함과 신비가 지천에 널렸다."는 얘기를 했었다. 지천에 널린 그분의 사랑을 몰라보고 눈이 어두워져 있을 때, 가끔 이렇게 하늘과 바다와 호수를 동원해 서프라이즈 해주시니 그 하나님 참 섬세하고 좋으신 분!
4기 동반자 과정 시작하고 한 달. 기도가 무르익어 간다. 한 달의 목표는 마음을 여는 것이었는데.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내 마음 중심에 계신 그분께 마음을 열어야 하는(열었으면 하는) 시간이었는데.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다. 기도를 마쳤다는 '강제 없는 보고'가 무심하게 단톡에 올라오면 순간 내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 감사합니다, 기도하는 당신 감사합니다... 어제 아우팅으로 먹고, 웃고, 걸으며 기도하면서 푸르른 하루를 보냈다. 모임을 마칠 때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라는 리추얼을 하는데, 리추얼은 상징 행위이다. 상징에는 체험과 진실이 담겨야 한다. 체험과 진실 없는 리추얼만큼 공허한 것이 있을까. 예배는 가장 고귀한 리추얼 중 하나이다. 성도 간의 하나 됨, 하늘 아버지와의 하나 됨의 체험 없는 예배의 공허함은 넋 놓고 유튜브 영상에 빠졌다 나온 공허감과 비할 수 없다. 어제는 그저 먹고 수다 떨고 잠깐 걸으며 기도하는 대단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의 실체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살아있는 교회였다. 푸르른 교회였다. 어제 하루의 캠핑장 교회로 인해 감사하고 감사하다. 연구소 카페 동반자방에 나눈 (모임 후 마음에 심겨진 것을 나누는) "씨앗 심기"글이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백 번, 수천 번 되뇌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한 진리입니다. 사랑을 위한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다는군요.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아니 그렇게 우리 마음을 지으신 예수님께서는) 문 밖에서 서서 두드리십니다. 강제로 문을 열지 않으십니다. 강제하지 못하는 사랑입니다. 나를 좋아해 달라고, 나를 사랑해 달라고 피를 토하며 매달려도 얻을 수 없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은 안에서 열려야 합니다.
마주한 두 사람이 각각 안에서 열고 나오면, 그때 사랑이 시작됩니다. 연구소가 강의도 할 수 있고, 숙제도 낼 수 있고, 기도하도록 격려할 수도 있는데... 마음을 여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각자의 몫입니다. 모두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와야 연결이 됩니다. 마음의 왼손 바닥을 위로 하고, 마음의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오게 하여 포기야... 마음을 포개야 비로소 연결됩니다.
연초록 나뭇잎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 친구들이 우리를 내려다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받아들여 연결되는 존재가 되시오, 그게 참 행복이오. 맛있게 먹고, 많이 웃고, 몸이 기뻐하는 연결의 하루를 누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주살이 하는 남편이 제 손으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어마어마한 요리를 한다. 세상에나 양파를 기름이 구워 먹는단다. 기름 두르고 소금 간 해서 굽는 양파 요리라니 말이다. 이건 김종필 남편이 백종원 된 사건이다. 이제 곧 파스타도 하겠다!
양파 수확철인가 보다. '이삭 줍기'라고, 밭에 남은 못난이 양파를 얻어서는 어떻게 먹나 검색하다 이 어마어마한 일을 하게 되었단다. 구워서 먹어보니 이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다고. 양파가 달다고,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한다. 펜션 매니저님 통해서 양파를 보내왔다. 남편 식으로 그냥 올리브유에 구웠다. 과장이 아니었다. 같이 먹던 현승이가, 와! 달아! 양파가 달아! 했다. 흰 즙이 나오는 싱싱한 양파를 처음 먹어본다. 어느 놈 하나 똑같이 생긴 놈이 없이 개성 넘친 비주얼이라 더 멋지고, 더 맛있다.
광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SRT 수서역 대합실이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나왔는데 버스와 지하철이 딱딱 맞아서 많이 여유로운 시간이 되었다. 이틀 간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늘 주일, 한참 전에 약속된 강의가 있는데 못 가게 되면 어떡하나… 누워서 기도하고 걱정하며 뒹굴었다. 온갖 최악의 상상을 하다 병원에 다녀왔다. 그렇다. 진즉 병원에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러다 말겠지, 푹 자면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져야만 해. 이러면서 일주일, 열흘, 보름을 지내는 거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는 정말 아닌 것이다! 몸은 영혼이 보내는 최초 또는 최후의 신호다!”라고 마이크 들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다. 실은 무시가 아니라 두려워서 못 본 척 하는 것이다. 아프면 무섭다. 머릿속으로 최악을 상상하기에 더 무섭다. 그래서 무서워서 병원에 못 간다. 이틀 침대에 누워 회개했다. 병원에 다녀와 검사받고 일단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바로 조금씩 나아지는 몸을 느끼며 진심으로 내 몸에 미안했다. 병원을 가라고 답답해 하며 한숨 쉬는 현승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오늘 아침 꽤나 좋아진 몸으로 집을 나섰다. 담당 목사님과 주고받은 문자를 확인하니 기차 도착시간을 잘못 알려드린 것이다. 픽업 나오시는 권사님께 문자를 했더니 답신이 이렇게 왔다. “계단 올라오시면 제가 신앙사춘기 들고 서 있겠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들어왔다. 이런 마중은 처음이다.
지하철에 앉아 문자를 주고받고 고개를 들었는데 건너편에 우리 현승이 초딩때 만큼이나 귀여운 남자 아이가 날 쳐다보며 자꾸 웃는다. 오?! 아니다. 내 옆에 앉은 제 엄마다. 자리 바꿔줄까? 하고 일어서니 기다렸다는 듯 폴짝 날아 제 엄마 옆에 앉아 뭐라 조잘거리며 좋아한다. 생기 더욱 충전이다. 눈을 뗄 수 없어서 자꾸 보게 되었는데, 그 옆에 앉은 연배 있으신 남성분의 백팩, 거기 달린 세월호 뱃지다! 감사, 연결감, 사랑… 이런 감정들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연결은 치유이고 치유는 연결이다. 내 몸, 내 마음, 내 영혼, 나와의 연결은 이웃과 연결이다. 나와 이웃과의 연결은 그분의 현존에 머무는 일이다. 내 몸 잘 돌보겠다고, 회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시 기도드린다.
거의 한 20여 년 전, 전에 하던 기도로는 신앙을 부지할 수 없어서 방황하던 때 <영혼의 성>을 만나 읽었습니다. 어려운 말은 아닌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가슴 깊은 곳을 울리며 “뭔가 있는 느낌”이고… 가톨릭 책이라 생각하니 금서 읽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그 책을 혼자 읽고 또 읽고 필사하며 긴 외로운 시간 보냈습니다. 어느새 함께 나눌 벗들이 하나둘 곁으로 모이더니, 연결된 자매들의 힘을 받아서 논문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높은뜻정의교회 중보기도 세미나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시작 전 기도생활의 어려움을 나눴는데, 제가 겪었던 부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 청원기도로 어제와 다르지 않은 기도 제목을 반복하며 오는 공허감, 무엇보다 더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은 강의 들으시는 눈빛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타락한 권력으로 교회가 무너져가던 시기, 남자 사제 루터가 말씀을 들고 그 교회를 나오는 개혁을 했다면, 비슷한 시기를 살던 데레사는 자신의 자리에서 기도를 통해 자신을 개혁하고 공동체를 개혁했습니다. 그 기도의 기록이 <영혼의 성>입니다. 진입장벽이 높긴 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의 독서법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며, 마치 보석을 채굴하는 것처럼-사실이 그렇다-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저는 어제 강의에서 체험적으로 알아듣는 집사님, 권사님, 형제님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정재상 목사님의 목회가 참 고맙습니다. 몰랐던 이 오랜 영성의 샘물들을 오늘에 잇대는 목회를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영성, 영성 목회를 거창하게 표방하지 않고도, 가만히 필요한 일을 하시는 목사님의 행보가 부럽고 감사합니다. 응원 드립니다.
거긴 날씨가 어때요? 여긴 엄마가 아는 그 날씨예요. 자주 흐려요. 가득한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흐린 날인 건지 하늘이 늘 뿌예요. 봄이 오는 길목이 험난한 것 같네요. 엄마가 보낸 이 땅의 마지막 시간, 그때처럼 막막한 날씨의 연속이에요. 거긴 날씨가 좋죠?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 어렸을 적에 많이 부른 노래 탓인가, 밝고 찬란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으려니 싶어요. 날씨만 상상해도 좋아요. 엄마가 얼마나 싱싱하고 생생하고 행복할까 싶어요. 요며칠 내 마음은 비가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에요. 누구든 툭 건드리기만 해라, 울어버릴 테니, 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장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전 엄마, 라고 부르는 순간 깨달았어요. 아, 엄마와 보낸 마지막 시간, 그 애달팠던 계절이 도래했구나!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때였죠. 기약 없는 시간, 예측 불가, 면회 불가의 시간이었어요. 엄마가 입원한 요양병원 건물 앞에 서서 올려다보던 창문, 그 너머 하늘이 마냥 흐렸던 기억이 또렷해요. 한 번, 두 번, 세 번. 엄마 없는 이 계절이 벌써 네 번째네요.
엄마 떠나고 바로 코로나를 서너 달 앓았던 느낌이에요. 자발적 자가 격리에, 칩거하며 글을 썼어요. 오직 쓰면서 슬픔을 견뎌냈던 것 같아요. 그 몇 달, 엄마 영혼도 미처 여길 떠나지 못하고 내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그리고 나는 죽은 엄마를 팔아서 또 책을 냈죠. 《슬픔을 쓰는 일》이라고 제목을 붙였어요. 슬픔을 쓰다니, 글로 쓸 수 있는 슬픔이 슬픔일까 싶었어요. 쓰면서도 수치스러웠는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신형철의 책도 있으니 슬픔은 그냥 그렇게 되는대로, 각자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쓰거나 공부하거나 그렇게 마주하는 것인가 봐요. 엄마 없는 하늘,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와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쓰기’로 숨을 쉬었어요. 그리고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슬픔을 드러내면 누군가는 같이 울어준다는 것을요. 물론 위험한 일이었어요. 그만 잊어라, 장수하시고 좋은 곳 가셨는데 뭘 그리 유별나게 구느냐, 믿음의 사람이 천국을 소망해야지... 그런 소리가 이미 들리는 듯했고요. 슬픔 앞에서, 아니 모든 감정 앞에서 다들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허둥지둥 내놓는 위로의 말이 많이들 어설퍼요. 어설픈 말은 ‘아무 말’이 되어 티슈같이 얇아진 슬픈 마음을 찢어내곤 하고요. 엄마, 그래도 내놓기 잘했어요. 상처투성이 알몸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는데, 말없이 함께 벗어주는 이들이 있더라고요. 어설픈 말 대신 조용히 자기 흉터를 내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드문 공감과 연결에 힘을 얻었어요. 슬픔을 쓰고, 슬픔을 내놓고, 몰래 눈물 훔치던 손들을 맞잡고 보니 내놓길 잘했구나 싶어요. 그래서 엄마, 나는 엄마를 잃고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의 딸로서는 달라졌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새롭게 엄마를 만나고 있잖아요. 엄마도 이미 알고 있죠?
‘슬픔으로 슬픔을 공부했던’ 신형철 교수는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 낸 사람만 바꾼다.’라고 하더라고요. 사건 속에서 감당하고 겪어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감정, 감정‘들’이었어요. 슬픔인 줄 알았는데 무기력이었고, 감정이 없는 것 같은 감정이기도, 때로는 분노, 어떤 때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이기도 했지요. 감정의 강이 흐르고 흘러 어떤 대사작용을 일으킨 것이 분명해요. 그해 부활주일 예배가 생각나요. 사상초유, 맞아요! 사상초유의 온라인 부활주일 예배였어요. 엄마 떠난 지 한 달여 지난 때였을 거예요. 노트북 앞에서 멍하니 앉아 예배를 시청하다 설교 후 부르는 찬송에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되었어요. ‘사셨네, 사셨네...’ 이 가사에 왜 그리 화가 치밀던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예수님의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몸의 부활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부활인가. 격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어서 베란다로 주방으로 서성거렸던 거, 엄마 혹시 봤어요? 엄마의 몸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웠었어요. 엄마 목소리,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손등, 그리고 매끄러운 손바닥, 맨질맨질한 이마. 설령 천국에 가서 엄말 다시 만난다 해도 그 그리운 몸이 아닐 것이라는 상상 때문이었는지 ‘부활’은 고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즈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천국 소망’이었던 거 알아요? 누구든 내 앞에서 천국, 소망... 이런 어설픈 위로를 들이밀기만 해봐라. 완전 무장을 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달라졌어요. 순순한 마음이 되었어요. 천국 소망까지는 아니어도 엄마가 있는 천국을 간절히 그리는 마음이 되었어요.
엄마가 떠난 때가 하필 사순시기였어요. 2주기 즈음이에요. 역시 사순기간이었어요. 산책길에 바흐의 칸타타 <Actus Tragicus>를 듣고 있었어요. 귀에는 장송 음악이 울리는데, 내 몸이 담겨 걷고 있는 길은 연한 새순이 돋아난 나무며 풀로 연둣빛의 새봄이 한창이었어요. 죽음의 노래와 폭발하는 봄의 생명력이라니, 부조화로구나 싶었는데, 어쩐지 그 부조화가 나쁘지 않은 거예요. 엄마 돌아가시던 그해 사순시기의 칩거를 생각하면 2년 만의 이 봄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죠. 다시는 생명의 기쁨 따위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았었거든요. 사무치도록 그리운 엄마이지만, 상실감의 텅 빈 자리에 2년 전의 그 슬픔의 타나토스(tanatos)와는 다른 에로스(eros), 즉 생명의 기운이 일렁거렸어요. 귀에 울리는 칸타타의 합창 가사는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이니라(Gottes Zeit ist die allerbeste Zeit)”였죠. 엄마의 때가 얼마나 좋은 때였는지 생각했어요. 낯선 침상에 누워 외롭게 보낸 생의 마지막 시간, 혼자 내쉬었을 마지막 숨을 생각하면 어떻게도 떨쳐낼 수 없는 몸서리쳐지는 안타까움이에요. 사상초유의 팬데믹, 우리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격리상황이었기에 엄마를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어요. 버려진 느낌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거든요. 그 봄, 그 길에서, 엄마의 때는 가장 좋은 때였겠구나, 싶은 거예요.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장 좋을 때였다는 확신이 드는 거예요.
바흐의 생은 그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웠대요. 열두 살에 내가 아버지를 여의였던 것처럼. 바흐도 십 대 초반에 부모님을 잃었고, 사랑하는 첫 부인을 일찍 잃었고, 열두 명의 아이를 서너 살이 되기 전에 죽음으로 잃었다고 해요. 부모를, 아내를, 어린 자녀들을 죽음으로 잃고 잃었던 고통이 바흐 음악 곳곳에 흐르고 있어요.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은 여러 죽음과 상실의 얼굴이라니, 그 봄날처럼 찬란한 슬픔이에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 그러나 슬픔과 분노에 매몰되지 않았던 바흐, 그의 음악이 나를 위로하고 만져요. 엄마 떠나고 바흐 음악의 더욱 가깝게 들려요.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이니라.” 만나고, 사랑하고,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 하나님의 때인 것처럼, 헤어지고 슬프고 절망하고 실패하는 때도 하나님의 때예요. 이렇게 받아들이고자 하니 다시 눈물이 나요. 바흐는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함께 곡을 만들었을까요. “평화롭고 기쁘게 나는 떠나네,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내 마음과 정신은 위로를 받았네, 부드럽고 고요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죽음은 나의 잠이 되었네.” <Actus Tragicus>의 마지막 아리아 가사예요.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9).”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니 이 무슨 아름다운 우연인가요? 시므온과 안나. 아기 예수님을 만난 두 늙은 예언자를 읽을 때마다 나는 엄마를 떠올려요. 과부가 되어 팔십사 세가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던 안나,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았던 안나는 꼭 엄마 같다고 생각했죠. “평화롭고 기쁘게 나는 떠나네, … 죽음은 나의 잠이 되었네” 이것은 엄마의 노래예요.
엄마와의 이별 ‘사건’을 감당해낸 나는 이렇듯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가끔 그 시절 일기장을 펼쳐보면 ‘이 감정이 어디 갔지?’ 싶어요. 저항할 수 없는 감정의 강물에 휩쓸려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기억이 또렷한데, 여기저기 뒤져봐도 그때 그 감정은 없어요. 여전히 엄마 몸이 그립고, 그 손 다시 잡고 싶고, 당장이라도 전화 걸면 “딸이여?”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눈물이 차오르지만. 그때와는 달라요. 슬픔의 강물은 부활주일 찬송부르던 때처럼 어느 순간 분노의 물결이 되었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죄책감과 우울로 얼굴을 바꾸며 찾아왔고요. 지금은 그리움이에요. 또렷한 그리움이에요. 신기한 것은 그리움이 차오르는 순간, 엄마를 가장 가까이 느껴요. 엄마,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 듯해요. 아주 잠깐 인간의 몸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가신 이유를요.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예수님의 몸이 되었어요. 그 보이지 않는 몸이 일하기 시작해요. 두려움과 호기로움 사이 좌충우돌했던 베드로의 인격이 변형되는 것을 봐요. 삼 년을 함께 먹고 자고 했던 선생님의 몸이 사라진 자리, 거기서 베드로는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못다 한 삶을 살아요. 이제 선생님의 부재는 현존의 다른 이름이에요.
상실의 텅 빈 공간에 슬픔, 분노, 죄책감, 수치심, 허무감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해요. 엄마, 나 는 이제 알아요. 슬픔도 분노도 죄책감도 사랑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요. 베드로에게도 그랬을 거예요. 선생님을 지키겠노라 칼을 휘두르던 호기로움도,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제자임을 부인했던 그 비겁함도, 닭 우는 소리에 나가 통곡하던 배신에의 죄책감도, 밤을 새워 텅 빈 그물을 끌어 올리던 그 무기력과 수치심조차도 선생님을 향한 사랑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엄마, 이제 묻고 싶어요. 물을 수 있어요. 실은 엄마의 안부는 그리 궁금하지 않아요. 4년의 세월을 지내며, 상실의 시간을 겪어내며 엄마의 영혼을 느껴요. 빛나는 영혼을 느껴요. 해처럼 빛나는 그곳에서 엄마 영혼이 그렇게 빛나고 있을 거예요. 엄마, 예원이, 예원이 말이에요. 예원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엄마 돌아가시고 “사모님,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라고 메시지 보내왔던 예원이가 한 달 남짓 지나고 천국으로 떠났어요. 떠난 엄마를 새롭게 만난 시간이 애도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예원이 애도 작업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어요. 엄마를 끌어안고 슬픔의 강을, 분노의 강을, 죄책감의 강을 건너는 동안 예원이의 존재는 그저 잊고자 했어요. 죽은 예원이를 잊고자 하니 살았던 예원이도 생각할 수 없었어요. 그러자니 예원이 이후의 모든 젊은 죽음에 눈을 맞출 수 없었어요. 슬퍼할 자격, 분노할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아 차마 뉴스를 볼 수도 없었어요. 예원이의 안부를 묻고 싶어요. 엄마, 예원이 만났죠? 호기심 가득한 그 큰 눈을 봤죠?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고 기억하는, 그리고 훅 내미는 그 따스한 마음도요. 예원이가 검은 봉지에 홍옥을 사서 건넨 일이 있어요. 사모님이 홍옥 좋아하신다고. 홍옥은 엄마가 더 좋아하잖아요. 홍옥은 엄마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과가 된 거 거든요. 그런 아이예요. 이미 알죠? 천국에도 벌써 소문이 났을 거예요. 엄마, 예원이에게 내 안부도 전해줘요. 그리고,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도요. 지켜주지 못해서, 그렇게 절절한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내왔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줄 수 있어요?
엄마 떠나보내고 다른 내가 되었으니 저도 이제 용기를 내볼게요. 나를 그렇게 좋아하던 예원이였는데 내가 잘하지 못해서 그 생명을 놓친 것만 같아서, 누군가 “네 책임이야!”라고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피하고만 싶었어요. 하지만 이조차도 떠난 예원이를 향한 내 부족한 사랑이었어요. 죄책감도 수치심도 내 부족한 사랑이에요. 올 4월 기일에는 예원이를 기억하는 청년들과 함께 작은 추도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몇몇 청년들이 예원이 상실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알았지만, 그조차도 외면하고 싶었어요. 엄마, 이제라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 볼게요. 죽음을 막을 수는 없어요. 피조물의 한계, 인간의 한계, 저의 한계를 받아들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있어요. 죄책감, 미안함, 분노, 허무감으로 예원 언니 예원 누나를 만나고 있는 청년들과 얘기 나누고 싶어요. 그 모든 감정이 사랑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함께 일깨워야겠어요. 드러낸 슬픔, 겪어낸 감정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이제 용기를 내볼게요. 죄책감을, 부끄러움을 드러내 볼게요.
엄마와 함께 예원이가 그립고, 예원이와 함께 오래전 천국으로 간 아름다운 청년 한솔이도 그리워요. 한솔이도 잘 지내죠? 엄마,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천국을 그릴 때가 있어요. 그리움은 내 존재에 딱 달라붙어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리운 얼굴들을 가까이 느끼는 방법은 그리운 얼굴을 그리워하는 길밖에 없어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한 구절이 자주 생각나요.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엄마를 그리고, 엄마보다 한참 먼저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그리고, 예원이를 그리고, 한솔이를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던 마음이 이제 모든 것을 그리는 마음이 되고 말아요. 그리움이 이끄는 길을 끝까지 가보면 거기엔 늘 나의 하나님이 계셔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천국에 볼모로 잡고 계시는 하나님이었어요. 그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이 나의 신앙이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리운 모든 영혼들을 가장 빛난 모습으로 품고 계시는 것을 알겠어요. 떠난 모든 이를 향한 그리움은 그분을 향한 그리움에 닿아요. 엄마, 나는 하나님이 그리워요. 엄마의 얼굴을 그리며 천국을 그려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은 천국이고,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은 지옥’이라고 엄마를 닮은 중세 신비가 시에나의 카타리나(Santa Caterina da Siena 1347-1380)가 말씀하셨어요. 그리운 얼굴을 다시 만날 때까지 오늘 이 순간을 천국으로, 사랑으로 살도록 할게요. 곧 만나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