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서 하는 포스팅이다. 논문을 썼다. 다 썼다. 다 쓴 지가 한참이다. 쓴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논문심사를 필두로 여전히 논문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연은 구구절절이다. 탓을 하려면 나를 탓해야 한다. 영성 공부를 위해 굳이 가톨릭학교로 가야 하는 나, 내 탓을 해야지. 책임전가를 할 곳은 언제나 있다. 굳이 거기까지 보내시는 그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끼워둔 그분을 탓하면 딱 좋은데...  "니가 갔잖아??!!" 하시면 딱히 할 말도 없고.

 

지금은 제출, 반송, 재제출, 반송, 재제출... 논문 온라인 제출 단순노동 놀이를 하고 있는데. 할수록 우울해지는 놀이이다.

 

논문 탓이 아닐 수도 있다. 해마다 이때면 아무 일 없어도 우울해지고, 억울해지고, 슬퍼지고, 텅 비고... 좀 그런 때니까. 12월 16일은 아버지 추도식 날이다. 인생 "치명적 잃어버림의 날". 42년 전 놓친 아버지의 손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그 잃어버림이 이제 낯설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다. 오늘의 나를 만들고 만 '상실'이니까. 아버지 손을 찾다, 기도의 길을 찾다 여기 이 끼인 자리까지 왔으니까. 

 

논문 초록 붙여본다. 우울해서. 이거 읽고 누가 "논문 기대된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사진은 논문을 가지고 했던 연구소 5주년 특강 장면이다. 진행 상시간이 부족해서 하려던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그것도 우울한 이유 중 하나. 아빌라의 데레사와 내가 닮았다고, 남편이 논문 쓰는 내내 말했다. 이 사진은 뭔가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초록

 

‘탈종교’라는 시대적 물결과 함께 교회 ‘안 나가’기로 작정한 그리스도인, 일명 ‘가나안’ 교인이라는 언표가 통용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영적이긴 하지만 종교적이진 않다’는 뜻의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은 2023년의 한국 기독교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주요 용어 중 하나이다. 가나안 교인 현상의 내적인 면을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외적으로는 부패한 교회와 타락한 목회자에 대한 실망으로 교회를 떠나지만, 내적으로는 제도 교회 너머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으로 ‘영적인 감각’에 민감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대적 영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영성의 전통 안에서 기도의 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빌라의 데레사가 쓴 『영혼의 성』을 영적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의 기도체험 기록’으로 바라보고, 기도 안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변화, 그로 인한 영성생활의 변화를 탐구하였다. 『영혼의 성』에서의 기도는 내면 중심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며 동시에 내적 자아를 만나가는 과정이다. 『영혼의 성』의 일곱 개의 궁방에서 기도하는 자아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다. 이 고통과 어려움은 극적 신비체험으로 일거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7 궁방에 이르기까지, 기도하는 사람 데레사는 자아 인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즉, 기도 안에서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마주하고 기록한다. 그 여정에서 자아 인식은 변화되고 새로워지는데, 궁극적으로 삶의 정향이 달라지는 회개(metanoia)의 체험이다. 『영혼의 성』의 기도가 오늘에 주는 교훈은 첫째, 기도의 내면성과 자기인식의 중요성이다. 통성기도, 즉 밖으로 크게 소리 내어 드리는 기도는 개신교의 자랑이며 동시에 한계이다. 시대의 영적 요청을 받는 개신교회의 기도는 『영혼의 성』을 통해서 밖을 향해 부르짖는 기도에서 침묵을 통한 내면성의 기도로 안내받을 수 있다. 또 기도를 통한 영적 성장은 투명한 자기인식의 길과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지금 여기서 마주하는 고통과 인간적 욕망이 영혼을 어디로 이끌어가는지 명확하게 바라보고 성찰하는 것 또한 오늘에 필요한 기도라 할 수 있다. 둘째, 내면을 향하여 깊어진 기도는 도덕적 영적 삶의 열매로 드러나고, 기도 안에서 내내 놓치지 않은 자기인식은 자기함몰이 아니라 이타적 사랑이 되어 이웃을 향한 자기 개방이 된다. 셋째, 기도하는 사람들의 교회 일치에 대한 소명에의 확인이다. 데레사가 살았던 16세기 스페인의 시대적·영적 상황은 오늘의 시대, 특히 개신교의 영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와 종교권력자들은 타락했고, 그럴수록 대중의 영적 갈망은 깊어져 간다. 30여 년 차이로 동시대를 살았던 마틴 루터와 아빌라의 데레사, 이 두 사람의 외적 행보는 달랐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교회와 혼탁한 영성의 시대에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영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선조들의 기도로부터 배울 때, 오늘 여기의 기도는 교회 일치라는 자연스러운 열매로 맺히게 될 것이다.

 

논문 제목 : 기도 안에서의 자기인식과 영적 변화에 대한 연구:『영혼의 성』을 중심으로

 

그리고 데레사 성녀의 자작 기도문, Sólo Dios basta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Nada te turbe)
그 무엇에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nada te espante)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todo se pasa)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Dios no se muda)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la paciencia todo lo alcanza)
님을 모시는 이(Quien a Dios tiene)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nada le falta)
님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Sólo Dios basta)

 

 

엄마 이옥금 여사는 사골국을 끓이면 한약 달이듯 정성을 쏟았다. 한 번 끓이고, 두 번째 끓여서 다시 섞고, 세 번 끓여서 냉동실에 넣으며 묵처럼 되었다. 겨울 아침, 학교 가기 싫은 날에 파 듬뿍 넣은 사골국은 맛있었는데 싫었었다. 파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해 파 듬뿍 넣어서 향만 내고 죄 건져서 엄마가 먹어주는 배려도 있었다. 그렇게 뽕을 뺀 뼈는 냉동실로 보내 얼린다. 사골국 다 먹고 어느 헛헛한 날에는 냉동실에 있던 걸 다시 꺼내 끓인다. 투명해진 뽀얀 국물이 나온다. 국물이 또 나온다. 거기에 된장을 풀어 시래깃국, 배춧국을 끓인다. 그게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다.... 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도대체 뭘 넣었길래 엄마 된장국이 맛있는 겨? 결혼하고 물었더니 그 비법을 알려주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꼭 사골국을 끓이게 된다. 작정하지 않아도 그렇다. 엄마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 밤새 끓이고 섞고, 파를 썰어서 보관용기에 한가득 담아 놓는다. 밤새 사골국 끓이는 냄새에 현승이는 "나는 내일 아침에는 사골국을 먹을 수 있네" 산울림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개사해 부르며 행복하게 잠에 든다. 뼈를 냉동실에 얼린다. 한참 지나 장을 보다 배추가 눈에 띄는 어느 날, 엄마한테 배운 배춧국을 끓인다. 뼈를 꺼내 다시 끓이면 투명해짐 뽀얀 국물이 또 나오니까. 된장을 풀고 배추를 듬뿍 넣어 끓인다. "어머니는 된장국을 끓여주려 하셨나 보다... 나는 내일 아침에는 사골 된장국을 먹을 수 있는... 어머니 코 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느 점심. "현승아, 점심 뭐 먹고 싶어?  된장국 너무 많이 먹었지?" "그래도 맛있는데! 그럼 엄마 된장국에 칼국수 끓여주면 안 돼. 저번에 감자탕 국물에 칼국수 끓였던 것처럼..." 오, 천잰데? 냉장고에 있던 부추까지 넣어서 끓였더니 '세젤맛'이다. 현승이가 "캬아, 캬아... 이건 보통이 아니야..." 하면서 먹었다. 
 
끓여도 끓여도 또 국물이 나오는 사골은 우리 엄마 같다. 우리 엄마는 마흔다섯, 마흔일곱 그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키웠다. 안 그래도 칼슘 손실이 막대한 갱년기 즈음에 아이 둘을 연달아 낳았으니 뼈에 있던 칼슘은 다 빠져나갔을 것이다. '골다공증'은 노년 엄마 몸의 다른 이름이다. 엄마의 사랑, 엄마의 창의력을 내가 다 뺏어왔다. 내 창의력을 업그레이드시킨 버전이 현승이인데... (된장 칼국수를 생각해 낸 것을 보라!) 삼대의 창의력과 요리 사랑이 만든 메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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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둘째 주일이 되어서야 초에 불을 붙였다. 유리병에 담긴 대림초를 12월이 되기 전 벌써 사뒀는데 이제야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몄다. 논문심사와 연구소 특강, 그 사이 독감을 끼어들어 체력 정신력 영력을 끌어올려 지낸 한 주를 마치고. 내적 여정 마지막 강의까지 마친 토요일 밤에 결국 대림초를 켰다.

  

 

올해는 틀렸구나. 이 예쁜 대림초는 내년에 써야겠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필 또 크리스마스 선인장이 꽃을 피웠지 뭔가! 대림시기에 꽃을 피워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딱 맞춰 활짝 꽃을 피웠다. "어, 꽃 피려고 하네!"  JP가 내 노트북 옆에 이 화분을 떡 갖다 놓고 나간 것이다. 

 

 

어느 대림절의 기다림이 슬프지 않았냐만은, 어느 기다림이 간절하지 않았냐 만은. 다시 가난해진 마음으로 대림의 불을 밝히고 기다린다. 이미 오셨고, 지금도 오고 계시며, 반드시 다시 오실 내 님을 기다린다. 올해 대림 나의 예수님은 지켜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무력하고 무력한 아기이다. 진정한 어른, 커다란 품의 어른이 되어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을 따스하게 품어드리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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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크로노스(Chronos)는 관성대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입니다. 카이로스(Kairos)는 의미의 시간입니다. 멈춰 성찰하여 의미를 건져 올리는 시간, 그분의 시간일 것입니다.

송년회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송년 파티, 선물교환, 맛있는 음식과 와인파티 같은 걸 그려보게 되네요. 해마다 나음터가 여는 송년회는, 글로 하는 송년회입니다.

바쁘거나 귀찮아서 돌아보지 않았던 ‘나’에 고요히 머무르면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누려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분과 함께요. 우주를 운행하는데 바빠서 도통 나 같은 사람에겐 신경을 못 쓰시는 하나님, 송구영신 예배 말씀 뽑기 시간에 잠깐 오셔서 ‘내년의 말씀’ 하나를 점지하고 떠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날 모든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나와 떨어진 적 없으신 분을 글로 더듬어 찾아봅시다.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그러나 홀로,
글로 나를 돌아보는 송년회에 초대합니다.
글 잘 쓰는 사람 못 쓰는 사람 모두 환영입니다.
일 년 동안 일기 한 줄 안 쓰시는 분, 특별히 환영합니다.

✔ 일시 : 12월 26일(화) / 27일(수) / 29일(금) 오후 8시~10
✔ 인원 : 각 10명(선착순)   ✔ 장소 : 온라인(zoom)
✔ 수강료 : 2만 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2TAwI0C 

 

* 2021년에는 한 번, 2022년에는 두 번에 나눠서 했는데, 올해는 세 번을 계획했습니다. 편한 날짜에 신청하시면 됩니다. 말 그대로  "함께, 그리고 혼자" 하는 시간이라, 나눔은 많지 않고 홀로 돌아보면 쓰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누구라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2023 홀로 글로 송구영신

2023년 나음터 '글로 하는 송년회' 신청 양식입니다.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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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산책은 미루고 있는데, 고맙게도 직박구리가 찾아와 주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오질 않으니, 이 열정 넘치는 애인은 집까지 찾아온 것이다.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옮겨 앉으며 마음을 전하다 후루룩 또 날아가 버린다. 이 애인은 항상 더 소중한 애인의 메시지를 끌고 온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베란다 화분 걸이에 먹을 것도 없는데 자주 새가 날아든다. 여름에는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조심조심 맞아야 하고. 이즈음엔 좀 요란을 떨며 사진을 찍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 날아든 새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JP가 새와 나를 함께 찍는다. 바보! 날 보지 말고 새를 봐야지. 정신실 밖에 모르는 바보... ㅎㅎ
 

 

하루 종일 집에 있는다고 그분의 메시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서쪽으로 난 창 앞에 서서 저녁 준비를 하다 보면 붉은 노을이 하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러면 그 앞에서 멈추고 바라보며 편지를 읽어야 하고. JP는 또 그런 나를 찍는다. 전방 후방이 사랑이다. 시편 104편이 우리 집 앞뒤에 펼쳐져 있다.
 
윌리엄 배리 신부의 말이 백 번 옳다. 느껴서 인정하는 옳음이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렇게 하늘이 내게로 온다.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으나 거의 모든 사람이 가을 단풍잎에 내리쬐는 햇살에 황홀해하고 석양이나 일출에 깊은 경이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예술가가 만든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그 예술가와 관계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관상함으로써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예술가들은 사람들이 그들이 만든 작품에 관심 가지기를 바라며, 그들이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고, 그 작품 앞에서 웃거나 한숨짓거나 기쁨을 표현하면서 흥미를 보이는 것을 즐긴다. 예술가가 하느님이실 때 그 의사전달은 찬미의 기도라 불리어지며 찬미의 기도는 "기도 용어"로 가다듬어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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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하루가 다르게 텅 비어 가는 나무 사이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텅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것이 경이롭다. 잎이 없는 나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그러고 있는 나를 알게 되었고 이유도 알았다. 그리고... 슬픔도 두려움도 없이 텅 비어 뻗은 가지를 바라볼 수 있다. 심지어 경이롭게. 눈을 떼지 않고, 뒷목이 뻣뻣해질 만큼 오래오래.
 

이젠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자꾸 이 가사가 입에 맴돌아 찾아보았다. 이문세의 <시를 위한 시>일 거라 생각했는데  <옛사랑>이었다. 그리운 것을 그리운 대로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그리운 것이 새롭게 생겨나서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그대로 둬"지지가 않는다. 그리운 것 그 너머, 그리운 모든 것들 너머, 영혼의 바닥부터 그리운 그분인가. 
 
이제 나목의 아름다움에 눈 맞추고 볼 수 있지만, 다시 새롭게 그리운 것들은 어쩔 수가 없네.

 

 

 
 

Sabbath diary8_쓸쓸한 산

그 : 여보, 저기 봐. 멋지지? 수묵화 같은 모노톤의 산이 좋다. 나는 약간 쓸쓸함이 있는 느낌이 좋아. 나 : 나는 쓸쓸한 산 안 좋아해. 특히 막 시작되는 쓸쓸함은 더더욱...... (몇 년의 내적작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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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대구 어느 교회의 수련회에 초대받아 다녀왔었다. 처음 만남이 아니다.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로 시작한 교회이고 오래전에 내적 여정 세미나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래전 그날이 참으로 의미 있는 날(영성 일기와 시국선언문)이어서 말이다. 이래저래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교회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 만난 목사님과 날수를 헤아렸다. "벌써 7년이네요! 아, 그래요? 7년이나 지났군요..." 하고 나는 당연히 촛불집회를 떠올렸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첫날, 졸이는 심장으로 내려갔던 그 길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뜨거웠던 겨울이 벌썬 7년 전의 겨울이구나!  헌데 목사님은 다른 기억을 말했다. "부임하신 지가 벌써 7년이나 되셨으니... 어떠신가요? 그때 남편 목사님께서 새로운 교회로 청빙 받으셨다고..." 
 
아, 교회 7년! 꽉 채운 7년이구나... 7년이라... 도통 현실감 없는 세월의 헤아림이다. 최근 뉴스앤조이의 기획 기사로 몸 담고 있는 교회 이야기가 쓰였다. 나는 주야장천 나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무슨 생각을 했네, 어느 새를 만났네, 뭘 해 먹었네... 그냥 한 생각을, 스쳐 지나듯 만난 새 한 마리를, 만들어 먹은 음식을 글로 쓰면 다른 것이 보인다. 그것과 나 사이 거리가 생기면서 말이다. 뉴스앤조이 기사로 누군가 '써 준' 나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 이 느낌이 생경하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나의 이야기라 할 수는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나의 체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기사는 현실감 없는 나의 7년을 살아있는 나의 역사로 느끼게 한다. 객관적인 기사에 나는 왜 위로를 받는 거지? 
 
이 교회로 오는 일, 누구 하나 찬성하는 사람 없는 선택이었다. 현실감을 장착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고, 견디지 못할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모두들 힘들 거라고 했지만, 무엇이 힘들지 얼마나 힘든지 알 수는 없다. 힘들 거라고 말했던 이들이 알 수 없는 그 힘듦, 말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면서 아마도 이것은 '벌'일 것이다, 생각했다. 한국교회와 불특정 목회자를 싸잡아 혐오하고 냉소했던 신앙 사춘기 비행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은 죄를 착한 남편이 받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많이 회개했다. 
 
연구소 카페에서 헨리 나우웬의 『두려움에서 사랑으로』로 영적 독서를 하고 있다. 이 즈음 주제가 "원망에서 감사로"이고, 엊그제 내용은 이것이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돌덩이를 깎아 원망의 돌조각들을 파내시도록 가만히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영성 계발이다. 돌조각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크고 작은 아픔이 있다.
익숙한 감정,
아까운 개념,
값진 아이디어,
결정적인 인생 계획,
정당화될 만한 태도,
습관적 행동,
특히 소중한 우정이나 공동체
를 내려놓아야 할 때마다우리 마음에 항변이 생긴다. 그러나 작업 중인 하나님의 애틋한 손길을 볼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알게 된다. 그렇게 많이 깎아 내야만 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을. 거기서 비로소 우리가 채워지고 치유되어 마침내 하나님이 의도하신 우아한 춤추는 자로 변화될 수 있음을 말이다. 

 
지난 주일, 추수감사주일에 현실감 없는 7년을 헤아리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자아의 돌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견디도록 도와준 눈빛과 표정과 손길들을 떠올리며 일일이 복을 비는 기도를 드렸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감사는 쉬운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다. 감사와 짝을 이루는 원망과 닿아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감사에는 원망과 상실감의 흔적이 어른거릴 테니 순도 100%의 감사란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원망의 흔적이 깊은 감사일수록 찐 감사일 거라고... 겨우겨우 부지하는 부족한 믿음을 가진 나를 스스로 격려한다. 
 
7년 전, 더함교회에 강의 갔을 때 사모님께서는 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저보다 어린 아기들을 돌보는 일곱 살 언니가 되어 있었다. 교회 동생들 돌보는 목사의 딸, 내겐 너무나 익숙한 나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 로은이가 손수 꽃을 한 송이 만들어 주었다. 팔공산 맑은 공기를 배경으로 사진 한컷으로 찍어 마음에 담았다. 7년은 그런 세월이다. 세상에 없던 생명이 나와 제 손으로 꽃 한 송이를 만들도록 여무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남은 여생, 뭘 하든 7년은 견뎌보기로 마음먹었다. 혹 내가 죄를 지었다면 7년 정도의 벌은 달게 받겠노라 결심했다.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복무했고, 느부갓네살이 교만의 죄로 7년 짐승 같은 생활을 한 것이 여사로운 일이 아니다.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③ 이우교회(상)

담임목사 스캔들과 재정 문제로 분쟁 겪은 대형 교회…"교인들 갈라 놓은 게 가장 큰 죄"

www.newsnjoy.or.kr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③ 이우교회(중)

담임목사 반대한다고 '신천지'와 '종북'으로 몰린 교인들…새로 만든 교회에서도 목사 때문에 편 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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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③ 이우교회(하)

두 번 빼앗기고 얻은 '이삭의 우물' 같은 교회…민주적인 운영으로 8년여간 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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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착실하게 점심밥 하는 편.
김치 콩나물 굴 감자수제비는 남은 재료 모아 모아서 나온 맛있는 점심.
 

 

주문 제작 오리떡볶이.
수시 입시로 논술시험 한창인 현승에게서 주문 들어옴.
 

 

허를 찌르는 메뉴 선정을 즐기는 편인데.
자연드림의 즉석식품인 카레우동.
소시지 하나 토핑으로 얹어 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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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전날, 교육지원청에 수험표 받으러 가는 차 안이었다. 수능 며칠 전부터 예민함인지 긴장감인지 수능을 향한 어떤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분명 흐름이 있는데 감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나름 감지하지만 농담이라고 했다가, 배려라고 한 마디 했다가 된통 당하는 그런 사람 둘이 있고... (그게 나야, 둠빠둠빠 두비두바, 불쌍하다, 둠빠둠빠 두비두바, 하난 너야, 둠빠둠빠 두비두바...) 수능 전날이니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이었다. 입시생 심기 살피며 조심조심 수다 떨며 가고 있는데 옆 차선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쌩 지나갔다. 입시생 모자, 동시에 짜증 버튼이 눌렸다. 아, 진짜....
 
음... 현승아, 수능 시즌에 그런 법 있으면 좋겠다. 저렇게 수험생 스트레스 주는 사람들 다 신고할 수 있게 하는 거야. 그리고 감옥에 넣는 거야. 
그러면 엄마 아빠가 제일 먼저 신고당할 거야.
아....!
그 다음 스카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 다 신고해야 하고... 아마 걔네도 나를 신고할걸. 서로 막 신고할 거야...
아....! 죄다 감옥에 있겠구나... 안 되겠네.... 법안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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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설거지하다 멀쩡한 고무장갑을 가위로 잘랐다.
그게 나야...
심지어 마음에 드는 고무장갑이라 요즘 설거지 담당 자처했는데.
그걸 왜 때문에 어떻게 자를 수가 있지?
그게 나야...
 
맥락없이 이 노래가 자꾸 생각나고.
난 이 노래 참 좋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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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음터 5주년 영성 특강에 초대합니다.

탈종교 시대,

제도교회로는 목마른 영적인 사람들이 영성의 길을 묻습니다.

영성의 길은 기도의 길이기에, 영성의 전통 안에서 기도의 길을 찾습니다.

연구소 5년의 소중한 결실이라 할 수 있는, 내적 여정의 고민과 성찰을 담은 두 개의 논문을 기반한 강의입니다.

탈기독교 시대와 관련하여 부각되는 용어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는 뜻의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입니다. SBNR을 키워드로 탈기독교 시대 중년을 위한 교회 교육에 관해 논문을 쓰신 김동준 목사님(동반자과정 2기)의 강의와, 아빌라의 데레사 『영혼의 성』의 기도로 논문을 쓴 정신실 소장의 강의입니다.


1강, 시대가 영성을 묻다
    : 탈종교 시대 SBNR의 신앙 여정(김동준 목사)
2강, 기도의 길, 오래된 새 길
    : 『영혼의 성』에서 배우는 기도(정신실 소장)

 


+ 강사 : 김동준 목사, 정신실 소장
+ 일시 : 2023년 12월 8일(금) 오후 2:00~4:00
+ 인원 : 30명(선착순)
+ 장소 : 처치 브릿지, 서울숲역 5분
        (성동구 서울숲2길 32-14 갤러리아포레 지하 3층 B328-2)
+ 참가비 : 이만 원(후원자, 내적 여정 참가자 만 원)
+ 문의 : 010-7242-8624
+ 신청 링크 : https://bit.ly/3kDbLfR

 

기도, 시대가 묻고 전통이 답하다

나음터 영성 특강 강의 신청 양식입니다. + 강사 : 김동준 목사, 정신실 소장 + 일시 : 2023년 12월 8일(금) 오후 2:00 ~ 4:00 + 인원 : 30명 + 장소 : 리프레임 처치(성동구 서울숲2길 32-14 (갤러리아포레)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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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라고 늘 맑고 푸르러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어두운 하늘, 
무거운 하늘,
먹구름 하늘에도 많이 순순한 마음이 되었는데...
 
그래도 모름지기 하늘이면 맑고 푸르고 그래야 하늘 아닌가 싶어
부아가 치밀거나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그러면 가끔 하늘이 창조성 끌어올려 작품 활동을 해주기도 한다. 신비롭다.
 
어느 새벽의 하늘,
어제 저녁의 하늘 사진이다.
어느 새벽에는 밤새 마음이 천국이었는지, 기분 좋게 눈을 떠 베란다 앞에서 저런 장난스러운 하늘을 만났고.
며칠 타나토스 에너지 상승하여 황폐해진 마음이었던 어제 저녁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오렌지빛 황홀경을 만났다.
 
이런 하늘, 저런 하늘, 하늘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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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떡 대신 김치찜이라며...
맛있는 묵은지를 줘서
수험생에게 찹쌀떡 대신 김치찜을 해주었다.
명선 이모표 찹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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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일차 완성한 후에 베란다 화초 정리부터 했다.
시든 잎들 잘라내고, 말라 죽은 애들은 장례 치르고, 분갈이도 했다. 
베란다가 훤하다! 
아침마다 들여다 보며 잘 자라라, 잘 자라라, 식물 키우는 맛!
 

 
이차 완성이 된 후에는 책상을 정리했다.
쌓이고, 쌓이고, 쌓인 책들을 책꽂이에 꽂았다.
테이블이 훤해졌다.
 

 
식물을 키우고, 논문을 낳고, 논문을 쓰고, 식물을 키우고...
키우는 일, 배우는 일, 성장하는 일... 참 좋아해. 
 
아무튼, 내일 논문 제출한다!
 
 
 
 

 
하정과 함께 단양강 어디쯤으로 가서 명선이를 만났다.  강 목사님이 키운 파를 한 아름 받아왔다. 파 본 김에 사골국을 끓였.... 아니고. 마침 꼬리곰탕 끓여놨는데 제대로 짝을 만났다. 살아있는 파 향이 좋아서 멈추지 못했다. 우리 현승이, 아침으로 꼬리곰탕 먹이고 점심 도시락으로 파 한뿌리 다 때려 넣어서 파볶음밥을 싸줬다.(사진 못 남김)
 
파 본 김에 계속 파 보기로...
 

 
저녁 산책 나가서 명선에게 전화했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저녁 장 볼겸 나왔다고 했다. 그러다 득템 한 레시피이다. 닭갈빗살 파 구이! 에어프라이에 굽다 답답해서 프라이팬으로 옮겼다. 별 양념도 안 했는데 너무 맛있고. 꼬치에 끼우면 꼬치구이인데... 꼬치가 없었다. 
 
파 본 김에 계속 파 보기로...

 
 
토요일 오전 줌으로 하는 내적 여정 세미나 끝나고, 설교 준비로 머리에서 쩐내 나는 남편과 국물 떡볶이 해먹었다. 국물 파 떡볶이. 아끼지 않고 파 때려 넣어서! 어묵탕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파 본 김에 계속 파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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