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괜한 결심을 하게 된다. 어버이주일 예배시간  "어머니의 넓은 사랑"을 부르거나, SNS 어디서 어버이날 어머니와 식사한 사진 같을 것을 보면 울지 말아야지, 괜한 허튼 결심을 하게 된다. 울만큼 슬프지 않을 것인데, 울만큼 부럽지도 않을 것인데 눈물이 먼저 설레발치는 짓은 그만이야... 하고 결심을 한다.
 
다행히 5월 주일들은 다른 교회 강의가 있어서 온라인 예배로 드리고 하느라 잘 넘어갔다. 6월 어느 수요일. 어느 교회 수요예배에 강의가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어버이 노래' 폭격을 당하고 말았다. 어쩌자고 수요예배 찬양 두 곡이 "어머니의 넓은 사랑"과 "예수 사랑하심은"이었다. 강의 시작 전 한 곡, 강의 마치고 한 곡. 강의 시작 전에 한 번, 강의 마치고 한 번.. 눈물 없이 보낸 5월의 기록을 6월이 깨버렸다.
 
엄마가 살아있다. 엄마 영혼이 나와 가까이 있다. 강의에서 기도나 신앙 얘기를 할 때면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 번을 말하고 글로 썼던 엄마 이야기가 할 때마다 내게 다르게 다가온다. 엄마가 살아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엔 찬송 부르십니다." 엄마의 기도와 엄마의 찬송이 그렇게 싫었는데... 참 맥락 없다 생각했는데... 그 맥락은 다 '나의 기쁨과 나의 눈물"에 있었다. 이제야 알겠다. 나의 가장 큰 기쁨 나의 가장 큰 좌절이 채윤이 현승이의 웃음과 눈물에서 오는 걸 보니 이제야 알겠다. 
 
엄마를 느낀다. 아주 가까이 느낀다. 아프고, 약하고, 부끄러운 엄마가 아니라 젊고 건강하고 당당하고 현명하고 멋진 엄마를 더욱 가까이 느낀다. 살아 계실 적에 만나보지 못했던 엄마다. 분명 엄마의 영혼이다. 
 

큰 통창을 열고 툇마루 같은 곳에 어떤 여자와 나란히 앉아 햇볕을 받는다.

 
얼마 전 <꿈 집단>에서 어느 벗님의 꿈에 나온 이미지이다. '어떤 여자'는 어떤 여자든 될 수 있겠으나, 꿈꾸신 분에게는 엄마였고, 내게도 엄마로 왔다. 평생 내 발목을 잡는다 여겼던 엄마.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엄마. 내게 사랑도 주고 상처도 주었던 엄마.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데 어느새 엄마처럼 살고 있는 내가 싫어서 더욱 싫은 엄마. 엄마 인생의 결핍을 내가 다 보상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나를 만들어 왔는데, 그러느라 정작 나를 잃은 것이 원통하여 보기도 싫은 엄마, 내게 하나님을 소개해놓고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만 가르쳤던 엄마.
 
그런 엄마가 보고 싶다. 그런 엄마를 미워하다 다시 만난 하나님이 너무나 따뜻해서... 허점투성이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은데... 그 엄마를 천국에서 만나게 되면 큰 통창을 열고 툇마루 같은 곳에 나란히 앉아서, 존재와 존재로 만나겠지. 찬란하고 찬란한 햇볕을 받으면서. (아이들과 남편이 걸핏하면 내 얼굴이 엄마 같다고 하는데... 갈수록 내가 봐도 정말 그래서... 엄마 보고 싶으면 내 사진 들여다보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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