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고 싸매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연재했던 글이 묶여 단행본 『신앙 사춘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왜곡된 신앙을 잘 찌르면서 상처 또한 잘 싸맸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출간 이후 있었던 소소한 강연과 만남에서 ‘신앙 사춘기’의 이면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글이 아닌 얼굴을 대하는 만남에서 그 높고 높던 자부심에 금이 많이 갔습니다.  

소도시의 목사님들과 ‘저자와의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독서 모임을 지속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리더 격인 목사님께서 자신 있게 저의 책 『신앙 사춘기』를 소개하고 나눔을 진행하는 동안 적잖이 당황하셨다고 합니다. 대부분 목사님들이 불편해하셨다고요. 그런 사전 정보를 가지고 ‘저자와의 만남’에 응했습니다. 제 책을 읽고 불편하셨다는 분들과의 만남이라니...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자리이지였만, 주선하신 목사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그 자리를 찾았습니다.

모임 장소에서 주차를 하며 진귀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똑같은 은색 스타렉스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비슷한 위치에 교회 이름만 다른 ‘교회 차’들. ‘저자와의 만남’ 수강자와 엇비슷한 수의 차량이었습니다.

강연 아닌 강연, 저자로서 뭔가 말해야 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책이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흔들리는 동공으로 답해주셨습니다. ‘불편하셨겠죠.’ 저도 마음으로 답했습니다. 강의 내내 어색할 수도 있었겠는데, 마침 저의 아버지가 속하셨던 교단의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연세 58세에 저를 낳으셨죠. (더 놀라운 건, 제게 두 살 아래 동생이 있다는 것.) 평안북도 철산 출신 아버지는 총신의 전신인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신학생이었고, 1.4 후퇴 때 월남하여 부산으로 이전한 ‘평양신학교’를 다니셨습니다. 합동과 통합이 갈리기 전 총신 1회 졸업생이었습니다. 신학교 대선배님 이야기로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었습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서 교회의 딸로 자랐고, 고등학교 때 주일 끼어서 가는 수학여행에 당연히 불참했고, 청년 시절엔 토요일 주일은 밥도 못 먹으며 봉사했다는 이야기. 청년부 주보 편집, 성가대 지휘로 토요일 주일을 교회에 갈아 넣었던 경험. 직장 생활하는데 주일 출근하란 말에 사표 내고 나왔다는 얘기들을 나누며 우리의 신앙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청년부에서 만난 남편이 결혼 6년 만에 신학교에 가고 모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봉사하면서 신앙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느낌이 맞다면, 이 지점에서 ‘신앙 사춘기’에 대한 불편함은 제로가 된 것 같습니다.

이후 책을 쓴 경위, 글의 행간에 담고 싶었던 마음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분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목회하며 겪는 어려움을 나누었습니다. 목회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목사님과 사모님. 하지만 그것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고충들... 오고 가는 대화의 주제가 자녀와의 갈등으로 모아졌습니다. 아버지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십니다. 목사가 아닌 아버지, 아니 목사인 아버지로서의 아이들의 삶, 특히 교회와 신앙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걱정하십니다.

주차장에서 본 스타렉스 행렬이 떠올랐습니다. 목사의 아들들이 가장 싫어하는 차종이 스타렉스입니다. 회색 스타렉스. 아빠 차인 듯 아빠 차 아닌 아빠 차 같은 교회 차. 당시 상담하고 있던 어느 목회자 가정, 무엇보다 저의 아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목사님들과 저는 너 나 없이 사춘기 목사의 아들로 하나 되었습니다. 신앙 사춘기나, 아들 사춘기나. 사춘기는 적나라한 감정을 날것으로 만나거나 때이죠. 아빠 차로 등교하는 것을 그렇게 마다한다는 사춘기 아들은 스타렉스가 부끄러워 싫었던 거라는, ‘아들 사춘기’의 이면을 조금 이해하면서요.

모임을 마치면서 ‘은색 스타렉스 목사님’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앙 사춘기 이후’의 글을 꼭 써달라고요. <신앙 사춘기>가 싸매기보다 찌르기에 치우쳤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 꼭지 한 꼭지 눈물로 쓴 글이라 제 나름 싸매기에 기울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제 와 돌아보면 그 누구도 아닌 저를 위한 눈물, 자기 연민의 눈물이었다 싶습니다. 사춘기는 어른으로 가는 길목의 모퉁이입니다. 사춘기 이후에도 삶이 있습니다.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나날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개정판을 내신 <뉴스앤조이>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말이 개정판이지 달라진 내용은 크게 없습니다. 환갑둥이로 태어나 아버지의 대를 이어 목사가 되었던 동생이 목사를 하다 그만두며 쓴 글 하나가 추가된 정도입니다. 다시 한 번 책에 관심 가져주시실 부탁드립니다. 후속 글을 쓰는 것은 일단 미뤄두고, ‘신앙 사춘기 너머’라는 제목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신앙 사춘기든, 팬데믹이든, 끝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야 할 신앙과 일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3960&page=2&total=53252

 

'신앙 사춘기' 너머로 함께 발 내디딜 분들을 찾습니다

<신앙 사춘기> 개정판 출간 기념 저자 특강, 2월 25일(금) 저녁 7시 30분 카페바인 필동(온라인 참가 가능)

www.newsnjo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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