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8


 
받는사람
   육미                                                             
  참조사람   일경, 이석, 삼진, 사라, 오필, 칠규, 팔수, 구민


내 안의 유형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육미로 시작한 유형 이야기가 사라까지 해서 다 끝났구나. 궁금하던 것들이 조금 풀렸니? 유형 설명을 들을수록 더 헛갈린다는 뒷담화들이 내 귀에까지 들리던데. 이런 명강의를 듣고도 헛갈린단 말이냐!^^ 이런 혼란이니? '분명 난 7유형인데 가만히 듣다 보니 성공지향적 3유형도 내 얘기 같고, 남을 돕는 것으로 인정받으려는 2유형의 모습도 내 안에 있고, 매사에 근심걱정인 6유형도 딱 내 얘기네!' '어, 내가 5유형이라는데 9유형처럼 갈등을 피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기도 하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려고도 하는데… 나 정말 5유형이 맞는 거야? 역시 사람을 아홉 개 틀에 맞춰 넣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기타 등등….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1, 2, 3…9유형이 다 있지? 어, 그럼 내가 바로 그 다중이?
각 유형의 생존방식은 무의식 차원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성격유형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진 않아. 그러니 이건지 저건지 헛갈려서 당장에 유형이 찾아지지 않는다고 조급할 필요는 없어. 에니어그램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 방식에 숨겨둔 의도를 혹시 알겠니? 모두 한자리에 모아서 일사천리로 설명하고 질문지를 통해서 번호를 찾아 찍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일 거야. 물론 나도 가끔 '이 녀석들 빨리 잘 알아듣고 자신의 유형을 인정하면 좋겠다' 싶어서 조바심이 나기도 해. 그러나 내가 조바심을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이 여정의 진짜 보물은 골인지점이 아니라 거기까지 찾아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이야.

 


'날개'는 무엇인가
자, 이제 자신의 유형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인 '날개'에 대해서 알아보자. 날개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성격을 좀 더 명확하게 보게 해줘. 또 같은 유형이라도 많이 달라 보이는 이유 역시 날개의 선택에 있어. 날개는 자신의 유형 양쪽 옆에 있는 성격유형을 말해. 6번의 날개는 5번과 7번이고, 1번의 날개는 9번과 2번이 되겠지. 두 날개는 우리의 '느낌'과 '행동'에 영향을 미쳐. (자신의 본래 유형은 '동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기억하지?) 날개는 대체로 20대 후반에 하나가 펼쳐져 굳어진다고 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주된 날개를 갖게 되는데 주로 쓰는 날개에 따라 같은 유형이라도 크게 달라 보이는 거야. 예컨대, 6번 날개를 가진 5번은 의심이 많고 분석적인 반면, 4번 날개를 가진 5번은 좀 더 정서적이고 화려해 보이지. 또 날개를 펼쳐 쓰더라도 그 날개에서 가져다 쓰는 면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번호 백 사람 안에 100개의 유형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리고 세상을 대할 때 자신의 실제 유형보다 날개의 성격을 내보이기도 해. 이것도 번호가 헛갈리는 이유 중 하나겠지.

'날개'는 무슨 역할을 하는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성격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알게 돼. 관계의 문제가 갑자기 크게 불거진다든지 할 때일 거야. 이웃해 있는 성격을 보면 내가 고착돼 있는 유형과 반대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갈등이 찾아온 갈림길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웃유형의 성격을 자신도 모르게 발달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날개야. 각 유형별로 보자.
이하 유형별 설명은 한국에니어그램 연구소 <내적여정 Ⅱ>에서 참고

1유형이 자신의 성격에 고착되면 작은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까다로워지면서 남을 비난해 갈등 유발의 갈림길에 서게 되지. 그때 있는 그대로를 관대하게 받아주면서 느긋한 9번 날개를 발달시키든가, 사랑과 동정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2번 날개를 취하게 될 거야.

2유형
은 자기를 희생자라고 여기면서 주기만 하고 받는 건 극구 사양해서 타인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부담스런 존재가 되는 갈림길에 서. 여기서 철저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분명한 1번 날개나, 자신감이 넘치고 일처리가 효율적인 3번 날개 중 하나를 취하게 되지.

3유형
은 끊임없이 성공을 추구하고, 어떻게든 남을 이기기 위해 모든 감정을 차단하고, 이리저리 둘러대며 자기 자랑을 해. 이런 성향으로 어려움에 처하면 남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배려하고 도와주는 2번, 자신의 감정을 돌보고 진실을 추구하는 4번 중 하나의 날개를 취하게 되겠지.

4유형
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또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 등으로 어려움이 생기지. 그럴 때 활동적이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3유형, 매사에 객관적이며 분석적이고 수용적인 5유형 중에 하나의 날개를 선택하게 돼.

5유형
은 자신의 생각만을 의지하며, 현실적인 혼란에 개입하지 않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 우월감을 느껴. 이런 5유형들로 인해 힘들어 하는 주변 사람과 갈등이 일어나면 정서적이고 동정심이 많은 4유형의 성향을 가져다 쓰거나, 공동체에 협조적이고 조화를 추구하는 6번 쪽 날개를 펼치게 될 거야.

6유형
은 모든 것을 두려워 해. 때문에 너무 고분고분하거나 공포에 대한 최선의 방어로 지나치게 공격적이 되기도 해. 이런 성향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게 되면 스스로 답을 찾으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5번 쪽 날개를 펼치거나, 낙천적이고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7유형의 긍정성을 가져다 쓰게 되겠지.

7유형
은 익살을 떨며 환상적인 것을 찾아다녀. 한 가지에 투신하지 못해서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지. 그러다 보면 역시 갈등을 일으키게 될 거야. 옆 번호인 6유형의 충실하고 미리미리 대비하며 일을 처리하는 성향을 발달시키거나, 추진력 있고 결단력 있게 힘으로 끌어가는 8유형의 성향을 쓰면서 날개를 펼치게 되겠지.

8유형
역시 호전적이고 공격적이며 정서에 둔감하고 모든 걸 주도하는 성향으로, 타인을 위협하게 되면 갈등에 맞닥뜨리겠지. 그러면 쾌활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7유형의 성향을 발달시키든지, 느긋하고 화를 잘 내지 않는 부드러운 9번의 날개를 취하게 돼.

9유형
은 집중력이 부족하며 우유부단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듯 보이는데, 그것이 오히려 수동적으로 공격하게 되어 갈등을 피해갈 수 없을 거야. 그 갈림길에서 8번의 정열적이고 활기 넘치며 단호한 성향을 취해 날개를 펼치거나, 공과 사가 분명하고 꼼꼼하고 철저한 1유형을 차용해 1번 날개를 쓸 수도 있겠지.

날개, 또 다른 나의 공로
내 얘기를 해 볼게. 내가 아는 나는 딱 7번이야. 긍정의 힘으로 칠렐레 팔렐레 재미있는 것만 찾아다니고 지루하고 구질구질한 것은 기가 막히게 피해 다니지. 헌데 주변에서 '너는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하잖아'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가 있어. 살짝 당황스럽지. 또 내 마음에선 늘 책임을 피해 도망하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 같은데 많은 경우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이 낯선 모습은 뭘까?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이 들어 생활력 없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아야 했어. 좋은 게 좋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욕구 충만한 7유형의 모습 그대로 살기가 어려웠지. 그래서 일찍이 6번 날개를 발달시킨 거야.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스스로 지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돈을 벌지 않은 적이 없었어. 대학 다닐 때는 물론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밤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까. '돈 벌지 않는 나'는 상상할 수도, 허용할 수도 없었던 것 같아. 결혼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어. 형편상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하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마음 밑바닥에선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내내 내려놓지 못했던 거야. 지나친 책임감으로 어떤 분야에서는 융통성을 잃기도 한다는 6번. 그 6번의 날개를 펼쳐서 여느 6번보다 더 6번스럽게 살고 있었던 거지.
몇 년 전 음악치료사로 일하는 내겐 치명적이랄 수 있는 '성대결절과 파열'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어. 거기다 턱관절염까지 겹쳐서 노래는커녕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그 진단을 받고 돌아와 한없이 심란했던 저녁, 침대에 누워서 발치에서 까불고 노는 두 아이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주르르 흐르며 이런 푸념이 저절로 나왔어. '하나님, 짐이 너무 무거워요. 이제 일은 할 수 없는 건가요? 아직 공부 중인 남편, 어린 아이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죠?'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마음에서 울리는 거야. '책임감 내려놔. 내가 책임져줄게. 내려놓으란 말이다. 아이들도, 일도, 경제적인 것도 다 내게 맡겨.' 고분고분 이 말을 들을 리 없는 자아의 목소리가 '어떻게 내려놔요. 남편 공부가 끝나는 내년이면 또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주 수요예배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는 마태복음 11:28-30말씀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
7유형인 내가 6유형의 날개를 펼치면서 세상에 좀 더 적응이 되었을 거야. 겉으로 보기엔 6유형으로 7유형의 약점을 보완하여 꽤 그럴듯한 성숙한 모양새로 보였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날개 역시 스스로 나를 지키겠다고 애쓰는 나의 노력이며 공로였다는 거야. 날개를 펼친 것이 잘못이 아니고, 자기 유형의 힘으로 사는 것도 잘못이 아니야. 내 유형이든 날개든 우리가 벗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은혜를 받으면 잠시 내려놓았다가 어느새 또 쓰곤 할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쓰는 날개를 가지고 내가 실제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 결국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여정이 '내가 이렇게 애쓰고 있구나'를 바라보고, 거저 주시는 그분의 사랑 앞에서 꽉 쥔 마음의 주먹을 풀고 무장해제해 나가는 과정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앞으로 유형별 하나님상과 기도, 유형과 어린시절 등 각 유형을 더 다양한 각도로 살펴 볼 거야. 끝까지 파이팅이다∼!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7


사라 
  모님. 이거….

모님
 
  오, 안개꽃 진짜 예쁘다. 고마워. 그런데 사라 미모에 가려 안개꽃이 죽는데….

사라 
  에이~ 모님….

모님
 
  사라가 커피 안 마시던가? 허브티 줄까? 모카 마타리라고 좋은 커피가 있긴 한데.

사라 
  커피 괜찮아요. 연하게 주시면 돼요. 마타리라는 이름이 왠지 끌리네요.

모님
 
  커피의 귀부인이라고 불린단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이기도 하고. 고흐가 좋아하는 커피였대.

사라 
  고흐요? 아… 고흐. 저 지금은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싶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그림 공부하면서 고흐 그림 좋아했었어요.

모님
 
  그래? 오늘의 커피 제대로 선택했네. 커피에서 느껴지는 고상함이 사라에게서 느껴지는 느낌하고 비슷하단 생각을 했거든. 고매하신 사라 양. 호호호.

사라 
  모니~임. 놀리지 마세요.

모님
 
  아니 지난번에 칠규가 그렇게 부르기에. 호호. 자 커피 마시자. 이렇게 안개꽃만 모아서 꽃다발을 만든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잔잔한 느낌이 전혀 새롭다.

사라 
  이해인 수녀님의 <안개꽃>이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에 '장미나 카네이션을 조용히 받쳐주는 별무더기'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언젠가 한 번쯤 안개꽃만 한 다발 사봐야겠다 싶었거든요.

모님
 
  4유형의 자아이미지가 나는 특별하다, 독창적이다 이거지. 뭔가 나는 남과 다르다,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생각해?

사라 
  (뜸들이다가) 음…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모님
 
  암요. 다 특별하죠? 큭큭큭. 웃어서 미안. 어쩌면 그렇게 너다운 답이냐.

사라 
  …….

모님
 
  4유형들은 뭐랄까 비밀처럼 슬픔을 간직한 인상이지. 언제든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눈, 말소리도 구슬프다고 해야 하나? 때론 이런 인상이 지나쳐서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도 해.

사라 
  모든 4유형이 다 그런 표정일까요?

모님
 
  아, 물론 이런 표정을 짓는다고 다 4유형이란 것은 아니야. 대체로 이런 비슷한 인상이라는 거지. 표현이나 생각이 색다르기 때문에 뭔가 개성적이고 독창적이고 예외적으로 느껴져.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에 민감해서 대체로 독특한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딱 사라가 그러네.

사라 
  네… 네? 뭐가 딱이에요?

모님
 
  예술적인 재능 말이야. 물론 이것도 모든 예술가들이 4번이라는 게 아니라 4유형들은 남다른 심미안이 있다는 얘기야. 자연에 대한 친화력도 커서 풀이나 동물들이 말을 걸어온다며?^^

사라 
  아, 저번에 육미가 독립해서 이사했잖아요. 그때 제가 화분을 사갔는데 육미가 물을 얼마 만에 줘야 하냐는 거예요. 제가 '쟤네들이 다 알아서 목마르다고 해.' 그랬더니 애들이 다 쓰러지더라고요. 이런 건가요?

모님
 
  호호호. 그래. 또 정서적인 강도가 높은 사람들이지. 특히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을 발견하는 눈이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신들이 소외감을 많이 느껴봤다는 뜻 아닐까?

사라 
  네에….

모님
 
  이런 4유형들이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 특별함이야. 나는 남과 달라야 한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다르다는 것 때문에 이해 받지 못 한다는 소외감에 시달리는 거야.

사라 
  뭔가… 그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제 안에 항상 공존하죠.

모님
 
  옷을 사러 갔는데 '이거 요즘 유행하는 옷이에요.' 하면 살 맘이 생기니?

사라 
  아니요. 오히려 '하나밖에 없는 옷이에요.' 하면 끌려요. (소리 없이 웃으며)

모님
 
  특별함에 집착하기 때문에 때론 너무 튀거나 비정상적으로 비치기도 하고 심지어 위험하고 강렬한 모험에 뛰어들기도 하지.

사라 
  모험이라… 모험이 제게 어울리는 말일까요?

모님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또는 이루어질 수 없어 보이는 상대만 골라서 연애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비극적 낭만주의에 빠져드는 것…. 이런 것 말이야.

사라 
  아….

모님
 
  강렬하고 극단적인 정서생활을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가슴형의 에너지를 안으로 쓰는 4유형은 온통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지. 그래서 타인에게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보이고 감정기복이 심하게 느껴져. 4유형의 감정기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으로 많이 힘들어 한다는 거 알고 있니?

사라 
  누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까요?

모님
 
  4유형들이 대체로 그러더라. '니 맘을 알겠다'고 하면 '니가 내 속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뒤집어지고, '그래 모르겠다' 하면 자기 맘 몰라준다고 더 상처 받고 말이야. 깊이 이해 받고 싶으면서 동시에 거부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거지.

사라 
  그래서 제가 늘 슬프다고 느끼는 걸까요?

모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슬프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도 않지.

사라 
  아…. 맞아요. 딱 그런 느낌이에요.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하세요?

모님
 
  보통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에 가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 넌 어떤 것 같니? 경치가 정말 아름다운 곳에 갔다, 어떤 생각이 들어?

사라 
  음…. 저는 작년 겨울에 설악산에서 설경을 마주했어요. 그때 숨이 멎도록 너무 아름다워서 이런 곳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아름다움의 최상급은 왠지 그렇게 통할 것만 같….

모님
 
  죽음을 상상하지 않는 4유형이 없다고 해. 죽음도 늙어서 죽는 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고 사랑의 절정의 순간에 죽어야 하지. 흰 백합꽃에 둘러싸이는 건 기본 옵션? 호호호.

사라 
  이런…. 아, 모니~임.

모님
 
  완전 공감? 큭큭큭. 자, 특별함에 집착하는 4유형은 모든 평범한 것을 회피해. '혹시 내가 평범한 것 아냐?'를 두려워한다는 거지. 그러다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것, 정상적인 것까지 회피하게 된다고 해.

사라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대체로 친구들이 하는 대화에 끼기가 힘들어요. 그네들이 흔히 하는 얘기들이… 뭐랄까… 제게는 무의미하게 다가온다고나 할까요? 그냥 제가 섬 같은 느낌이에요.

모님
 
  한마디로 천박하다고 느껴지는 거 아니고?

사라 
  그… 글쎄요. 암튼 남들과 같아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똑같은 교복, 유니폼…. 이런 거 입어야 하는 거 정말 좀 그래요.

모님
 
  아하하… 그거 생각나? 너 지난번에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목에 스카프 두르고 있었던 거.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다르고 싶었던 건가?

사라 
  그런가요? 후후후.

모님
 
  근원적인 죄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질투 또는 선망이 4유형의 근원적인 죄야. 모든 것을 비교하고 질투한다고 하지. 선망하지 않는 대상이 없고. 누가 나보다 더 멋있고 품위가 있는지, 더 안목이 있는지, 더 천재적인지….

사라 
  더 사랑받는지, 더 건강한 정신을 가졌는지, 더 정상적인지… 요?

모님
 
  그렇지! 남들과 달라야 하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질투의 눈길을 보내는?

사라 
  아, 현실의 사랑이나 행복이 매혹적이면서도 혐오스러운 혼란스러움, 이런 거군요.

모님
 
  이런 표현을 확실히 잘 알아듣는구나. 소유하게 되면 싫증을 느끼고, 멀어지면 그리워하는 것을 반복한다지. 그래서 연애도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사라 
  어머….

모님
 
  이렇듯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4유형이 쓰는 방어기제는 인위적인 승화야. 느낌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상징, 의식, 멋 부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거지.

사라 
  인위적이라는 말씀이 뭔지….

모님
 
  예를 들면, 로맨틱한 음악, 붉은 장미 한 송이, 물에 띄운 양초와 와인이 있는 테이블… 이런 설정과 분위기로 상징적 표현을 한다는 거야. '사랑해'라고 말로 해도 마음을 알아줄까 말까인데 말이다.

사라 
  '사랑해' 한마디로요?

모님
 
  너무 간단하니? 그 엄청난 감정을 '사랑해' 한마디로 딱 자른다니…. 후훗. 어쩌면 특별하고 특별한 나를 유형 하나에 집어넣어 설명하는 것도 어불성설같이 느껴지진 않아?

사라 
  어, 빙고요! 지금 내내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고, 속할 수도 없는 것 같다고요. 복잡하고 설명이 안되는 게 인간 아닌가요?

모님
 
  예, 많은 4유형들이 모여 앉아 '우린 서로 다르다'며 그렇게 말씀들 하시더구먼요.^^ 사라야, 그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덩어리는 '너'가 아니야. 감정과 너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눈이 있으면 좋겠구나.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는 들풀 하나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사라를 바라보고 계셔.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오해나 상처를 받았다며 붙드는 소외감, 슬픔의 늪 같은 것들이 사라에겐 '치장'일지도 몰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지금 여기, 우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그분의 눈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일진대, 또한 가장 성스러운 지점 아니겠니?

사라 
  장미도 카네이션도… 심지어 그것들을 조용히 받쳐주는 안개꽃도 아닌 들풀 한 포기를요? 음…. (끄덕끄덕) 들풀 하나도 그분이 가꿔주시죠. 하찮은 들풀이라도요….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4


이석 :
모님, 안녕하셨어요? 이거요. 오다 보니 딸기가 참 싱싱해 보이더라구요.
모님 : 그렇다고 비싼 딸기를 이렇게 많이 사왔어? 고맙다. 앉아. 집 안에 연기가 심하지?
이석 : 연기요? 아, 연기. 그러네요. 뭘 구우셨나요? 웬 목장갑까지…….
모님 : 응, 좀 전에 커피 볶았거든. 나는 커피 볶는 비릿한 냄새까지도 좋은데 어떤 사람들은 싫어하더라. 괜찮니? 환기를 시킨다고 시키긴 했는데.
이석 : 괜찮은데요…. 아, 이게 커피 볶는 냄새군요. 커피 볶는 일이 우아한 일인 줄 알았더니 연기에 목장갑까지 끼시고…. 이런 일을 할 땐 절 부르세요. 우리 모님이 이렇게 험한 일을 하시면 안 되죠. 하하.
모님 : 그러게. 커피 볶는 일이 생각보다 센 육체노동이다. 그래도 내게 가장 흥미로운 일이 이 로스팅하는 과정이야.
이석 : 밖에서 뵐 걸 그랬어요. 그러잖아도 정말 근사한 커피로 한번 대접하고 싶었는데요. 다음번엔 제가 맛있는 커피 집 찾아서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모님 : 그래, 그러자. 커피 마실까? 이번에 코스타리카가 좀 잘 볶였어. 커피 괜찮지?
이석 : 네네, 물론이죠. 코스타리카라…. 좋아요. 주세요.


모님 : 피곤하겠다. 어제 장례식에 장지까지 갔다 왔다며? 멀어서 힘들었을 텐데…. 
이석 : 아, 뭘요. 그 정도는 뭐…. 그래도 그 녀석 꿋꿋하게 잘 버티더라구요. 멀다고 오지 말라고 하더니 그래도 가니까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모님 : 이석이는 따뜻한 양털 같은 남자지. 이석이가 함께 가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을 거야.
이석 :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요. 응급실 가던 날 어머님도 계시고 친척 분들도 계셨는데 저한테 새벽에 전화를 했더라구요. 그래서 새벽에 응급실에 같이 갔거든요. 아, 이 녀석 가엾어 죽겠어요.
모님 : 언제나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향해 출동 대기 자세로 있는 이석이지? 그러니까 어려운 상황이 됐을 때 제일 먼저 이석이 형이 생각났겠네.
이석 : 아, 뭐… 제가….
모님 : 2유형들이 가진 장점, 여태껏 우리가 말한 방식으로 자아 이미지가 나는 돕는다. 나는 필요한 사람이다 이거잖아. 실제로 세심하고 친절하게 신경 써주고 남을 위해서라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지.
이석 : 제가 뭐 딱히 돕는다기보다는…. 우리가 서로 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모님 : 어쨌든 이석인 지난 며칠처럼 후배 아버님의 장례를 돕고, 마음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을 도울 때 의미 있고 살아 있다고 느끼지?
이석 : 그, 그렇죠. 그렇지만 뭐 그걸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님 : 그래. 이석이가 스스로 가장 의미 있다고 느끼고, 또 가장 빛이 나는 그 지점 말이야, 누군가를 돕고 있고 필요한 것을 나누고 있다는 그 지점은 바로 집착이라는 어두움의 이면을 가지고 있지.
이석 : 제가 돕는 것에 집착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모님 : 이제껏 살펴본 모든 유형들이 그렇듯이 자아 이미지 내지는 유형이 가진 장점이 나쁜 것은 아니야. 남을 돕는 것은 매우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잖아. 사실 우리 공동체에 이석이처럼 자신을 아끼지 않고 돕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
이석 : 아…. 뭐 그런 건 아니구요. 제가 뭐 하는 게 있다구요.
모님 : 다른 유형에서 그랬던 것처럼 2유형들은 자신이 도와야만 사랑 받고, 살아남는다고 여긴다는 거야. '저 사람이 뭘 원하나?' 하고 필요를 감지하는 안테나를 세우면서.
이석 : 사실 저는 그게 눈에 잘 보이고요.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닌…. 음, 말하자면 주님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런 삶이 아닌가요?
모님 : 반복해서 말하지만 남의 필요를 캐치하고 돕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야. 쉽게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헌신적으로 남을 돕는 이유가 사실은 대.가.를 바란다는 거지.
이석 : 대, 대가라구요? 제가 무슨 대가를 바라겠어요? 저는 뭘 바라면서 해준 적 없구요, 단지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에 충실하자는 그런 마음뿐예요.
모님 : 그래. 2유형들에게는 다소 아프고 충격적인 말이겠지만 한 번 생각해 봐. 무리해서 후배들 밥을 사주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집까지 일일이 다 태워다 주고, 어려운 일 있을 때 끝까지 함께 있어주고 했는데, 이런 도움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인정해주지 않을 때 이석이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말이야.
이석 :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겠지만 결국 주님이 알아주시면 된다고 생각해오긴 했는데. 그렇지만 그게 좀, 뭐랄까….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모님 : 이런 거야. 2유형이신 어느 여 집사님의 고백인데, 그분은 천생 크리스천이라 할 만큼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돕는 데 선수시지. 에니어그램을 배우고 자신이 무슨 대가를 바라냐며 본인은 2유형이 아니라고 하셨어. 어느 날 가까이 지내는 분 남편이 심하게 아프셨나봐. 평소대로 정성껏 죽을 쒀서 가져다 주셨대. 집에 와서 고맙다거나 맛있다거나 전화 한 통 하겠지 싶었는데 안 하더래. 문자라도 오겠지 했는데 안 오고. 이 집사님이 어떻게 했을 것 같애?
이석 : 그, 글쎄요. 뭘 어떻게 했을까요?
모님 : 저녁에 자기가 전화했다는 거야. 전화해서는 '아까 죽이 조금 짰지?' 했다고.
이석 : 풉! 아….
모님 : 그러면서 결국 '전화 못 해서 미안하다.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내심 괘씸한 마음이 드는 자신을 깨달았다고 하셨어.
이석 :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네요.
모님 : 커피 한 잔 더 마실까? 리필 안 필요합니까, 고객님? 아, 참! 위장병 때문에 요즘 약 먹는다고 하지 않았었니? 커피 마셔도 되는 거야?
이석 : 네? 네…. 아, 약 먹고 있긴 한데요… 뭐, 괜찮아요. 모님과 함께 하는 커핀데 마셔야죠. 리필 주세요. 하하하.
모님 : 어이구, 이런. 됐다! 그냥 넘어가자. 남의 필요와 그것을 돕는 데 꽂혀 있는 2유형들이 회피하는 건 자신들의 욕구야.
이석 : 욕구를 회피한다니요? 욕구가 회피한다고 회피할 수 있는 건가요?
모님 : 그래. 회피한다는 말은 이런 의미야. 2유형들은 자신의 욕구를 잘 알지 못하고 내세우지도 못한다는 거지. 내 욕구를 채우면 사랑 받을 수 없을 것 같다거나 이기적이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석 : (목소리 톤을 높여) 그렇지 않나요? 자신의 욕구만을 내세우고 채우는 건 이기적이고 나쁘죠.
모님 : 물론이지. 여러 개의 사과 중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이거 먹어라' 하면 '네~' 하고 넙죽 먹을 수 있는 2유형이 많지 않을 거야. 대체로 '저는 괜찮아요. 누구 먼저 주세요.' 하지. 왜 자신은 괜찮다고 하지? 본인도 좋은 걸 누려야 할 귀한 존재가 아닌가?
이석 : 제 얘기하시는 거예요? 저는 일부러 수박을 먹어도 맨 끝의 껍질 부분을 먼저 집어 먹는데….
모님 : 남의 욕구에 맞춰 사는 것이 훌륭한 삶(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준과 전제를 두셨어.
이석 : 아…. 실은 후배들에게 밥을 사준다거나 선물을 사줄 때는 망설임이 없는데 제가 쓸 물건을 좋은 걸로 사려면 힘들어요. 뭘 새로 샀다는 걸 사람들이 알까 봐 숨길 때도 있고요.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님 : 그래,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의 바램과 필요에 두기 때문에 2유형들이 내면 성찰하는 것을 어려워 해. 이것은 2유형의 근원적인 죄인 교만과 맞닿아 있어.
이석 : 저, 그거 이해가 정말 안 돼요. 제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교만하다는 건 좀….
모님 : 2유형들이 돕기만 하고 남의 도움 받는 것은 강하게 부정하는 경향이 있지. 2유형의 교만은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는 데서 나와.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 바라는 것에 자신의 삶을 묶어 두고 자신의 필요는 아예 묵살하지. 그러면서 '나는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교만과 허영에 빠지는 거야.
이석 : 그… 그게 교만이군요.
모님 : 그래서 2유형들은 진심으로 감사하기가 어렵다는 거야. 하나님께 조차도 내가 봉사하고 열심히 섬겼을 뿐 받은 게 있어야 감사하지.
이석 : ………
모님 : (이석이 등을 토닥이며) 에니어그램 워크숍을 하면서 유형별 그림을 그려. 가끔 2유형의 그림에서 뻥 뚫려 있거나 텅 빈 마음을 그린 그림이 나와. 자신 안에도 사랑 받고 싶은 욕구와 갈망이 있어서 마음이 텅 비어 있는데, 그 메마른 곳에서 뭘 퍼내서 주려고 애쓰는 2유형들이(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엾게 느껴져. 내가 커피를 하면서 로스팅을 하게 된 계기 중에 하나도 이와 비슷해. 신선한 원두는 값이 비싸거든. 넉넉히 사 둘 수 없으니까 집에 찾아오는 이들과 커피를 나누는 게 힘들어지더라. 겉으로 헤헤거리긴 하지만 속으로는 한 잔 두 잔 계산하고 헤아리는 거야. 그러다 분노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하고 그래.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생두를 사다가 어설픈 자가 로스팅을 하기 시작했지. 원두가 넉넉해지면서 나누는 내 마음이 편안해졌어.
2유형들이 돕고 나누는 것 정말 귀하고 아름다워. 다만 먼저 텅 빈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좋겠어. 비어 있는 걸 외면하고 퍼주는 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아. 내가 왜 다른 사람들에게 그토록 잘 해주려고 애쓰는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많이 자유로워질 거야. 도움의 여왕 테레사 수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지. '나누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은 타인의 인정에서 오는 게 아니라 기도로 만나는 그분에게서만 오는 것!^^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내적여정 12



일경에게



묵직하게 낮아진 겨울 하늘이구나. 베란다에 서서 무거워 내려앉은 듯한 구름을 한참 바라봤다. 일기예보가 맞는다면 오후쯤 드디어 첫눈이 올 것이고, 그렇다면 저 어두운 구름 속에서는 한 송이 두 송이 눈송이를 만들어 떨어뜨리려는 준비가 한창이겠지. 어젯밤 잠을 설치기도 했고 흐릿해진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우고 싶어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려 마신다. 이 한 잔에 담긴 수백 가지 향을 느껴보고자 온몸의 감각이 일제히 입안을 향하는 느낌이야. 덕분에 내 생각과 감정들을 잠깐 멈추고 '지금 &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어. 이런 커피를 난 영성적이라 부르고 싶다.^^

음…. 지난번 만남 이후로 일경이랑 마주하기가 전 같지 않아 마음이 쓰인다. 가까이 얼굴을 대하고 인사 나눈 지도 오래됐어. 먼발치에서 봐도 전처럼 따스한 눈인사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은데, 내게 서운한 마음이 있나 싶구나. 아, 이건 그냥 순전히 내 직감이고, 이렇게 느끼게 하는 내 안에 있는 목소리에 대한 얘길 들려주고 싶어서 몇 자 적어 본다.


유형의 화살


1유형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날, 내가 꽤 다그쳤던 것 같아. '일경이 너는 지금 화가 나 있다'면서…. 그 순간 너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어. 너와의 대화를 다시 읽어 보니 확실히 내가 지나치게 몰아세웠더라. 물론 1유형의 회피가 '분노'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겠다는 동기도 있었어. 하지만 일경이에게 고백해야 할 또 다른 동기도 있더구나.

에니어그램의 아홉 유형은 '날개'와 '화살'로 더 깊이 이해할 수가 있어. 나중에 자세한 설명을 할 기회가 있겠지만 '화살'에 대해서 잠깐 얘기 해볼게. 아홉 개 유형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화살로 연결되어 있어. 이것은 각 유형의 성장 지점과 스트레스 지점을 보여줘. 예를 들어, 1유형은 4유형으로 화살을 날리고, 7유형 쪽에서 화살을 받아. 화살의 역방향은 유형의 성장 방향, 정방향은 스트레스 방향이라고 이해하면 돼. 무슨 의미냐면, 1유형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잘 받아들여지고 안정이 될 때(흔히 성숙한 모습일 때) 밝고 쾌활하며, 낙천적인 7유형의 장점들을 보이게 된다는 거야. 반대로 어떤 식으로든 스트레스 상황이 오래갈 때(아니면 미성숙한 1유형의 경우) 4유형이 가진 부정적 모습을 띠게 돼.


가르치는 자의 하나님 놀이

난 네가 알다시피 7유형이란다. 그리고 나의 화살은 1유형이지. 다시 말하면 내 안에 1유형의 부정적인 모습이 많이 숨어 있다는 거야. 일경이와의 지난번 대화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인식하게 됐지. 기도하지 않는 날이 오래될 때 내 상태가 메∼롱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상이 있어. 그건 '모든 사람들의 모든 단점을 들춰내 묵상하기'야. 누구는 뭐가 잘못됐고, 또 누구는 뭐가 잘못됐고…. 세상 모든 사람의 잘못을 다 파일링해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니까. 그러다가 이 묵상이 깊어지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줄줄줄 말로 나오지. 당신은 이렇게 나를 속상하게 했고, 당신이 이러니 내가 정말 불행한 여자고, 네가 이렇게 하니 엄마가 너를 키우는 게 너무 어렵고…. 이런 식이야. 이렇게 보면 나는 1유형 못지않은 7유형인 것 같애. 그래서일 거야. 부끄럽게도 나는 1유형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어떤 유형의 약점보다 더 나쁜 것으로 말하려는 경향이 있어. 분명한 투사(投射)지. 내 안의 어두움을 보기 싫어서 외부에 있는 1유형들의 약점에 반사시키는 거지. 때문에 강의 때마다 1유형을 설명할 때는 더 조심하려 애쓰는데도 잘 감추지를 못해.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교만한 일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때문에 일경이가 비난받는다고 느끼고 많이 아팠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미안하다.

이런 게 에니어그램을 비롯한 모든 성격유형을 설명하고 가르칠 때 피해가기 어려운 실수인 것 같아. 성격유형을 설명하는 강사도 분명 어느 유형 중 하나고, 필연적으로 자기 유형의 한계를 가지고 있거든. 게다가 어쩔 수 없이 경험을 통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유형이 있어. 그러다 보면 어떤 유형에 관한 설명들은 더 힘을 실어서 하게 되고, 반대로 어떤 건 은근슬쩍 패쑤! 하게 돼. 그러면서도 어느새 자신이 가장 객관적인 설명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람의 내적 동기를 모두 다 아는 것처럼 자만하는, 슬프게도 하나님 놀이에 취해버리게 되지.


배우는 자의 자기방어


에니어그램 강의를 듣고 자신의 유형을 못 찾는 사람에게 농반진반으로 '이것만은 절대 내 유형이 아니다' 하는 그 번호를 의심해 보라고 해.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봤어. '이것만큼은 절대 내 번호가 아녜요. 왜 아니냐면요…' 하면서 그 유형이 아닌 이유를 백만 가지 늘어놓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도 아니라던 그 유형을 자기 유형으로 받아들이고 그 백만 가지 이유가 백만 가지 '자기방어'였다는 걸 인정해. 마음이 건강하고 영적으로 겸손한 사람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애쓰지 않아. 자기 자신에 대해 '그러함'을 설명하기보다 '그렇지 않음'을 항변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쓴다면, 난 십중팔구 자기방어의 중무장 태세라고 생각해. 우리의 성장점은 칭찬받는 지점에 있지 않고 부딪혀 아픈 연약함에 있지. 누군가 내게 듣기 싫은말로 비난하고, 못난 점을 마구 까발린다면 바로 그때가 기회라는 거야. 자신을 변호하고 다시 설명하고픈 '자기방어'를 마음으로부터 멈출 때가 진정한 성숙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간 나를 이중인격자라 부르면서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사람으로 대하던 사람이 있었어. 받아들일 수 없었고, 억울해서 죽을 것 같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항변하며 많이도 애를 썼는데… 이제야 조금 알겠단다. 그 사람이 그 누구보다 나를 제대로 가르친 영적 스승이었다는 것을.

일경이를 아프게 할 일이겠으나 마음을 다잡아먹고 말해볼게. 일경이와 대화하면 유난히 네 친구나 직장상사, 주변 사람들에 대한 얘길 많이 듣게 돼. 표현은 항상 부드럽지만 그 친구들의 단점에 관한 내용이 참 많아. 그 말끝에 '그래도. 이젠 괜찮아요. 섭섭하지 않아요.'를 후렴구처럼 붙이지. 헌데 나는 일경이의 그 말들이 '저는 누구누구에게 화가 나 죽겠어요. 심지어 지금 모님에게도 너무 화가 난다구요.' 라고 들려. 일경아, 네가 그런 자신을 부여안고 얼마나 고민하며 울며 기도하는지 알고 있어. 그래 지금처럼 '더 이상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험담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도 필요해. 헌데 그 기도와 함께, 아니 먼저 앞서야 할 게 있어. 나는 일경이가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라는 말을 멈추고 '나는 화가 났어요. 화가 나 죽겠어요. 하나님께도 화가 나요.'라고 말하고 기도할 수 있음 좋겠어.


분노는 감정이다 감정은 내가 아니다


장유형의 핵심감정은 '분노'라고 했지? 외면화된 8번은 분노를 밖으로 폭발적으로 표출하고, 거부지점인 9유형은 '분노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장유형으로 보이지 않고, 1유형은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분노를 철저하게 억압한다고 했어. 그러나 분노는 장유형의 것만은 아냐. 모든 사람의 것이지.

분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분노는 당연하다'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분노는 내 안에 무엇인가 꼬여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로,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거야. 모든 감정은 다 중요하고 이유가 있어서 올라와. 그리고 실은 상반되는 감정은 한곳에서 나오게 돼. 애 - 증, 호 - 오, 교만 - 겸손, 희망-절망…. 이렇게 짝을 이루고 있지 않니? 사랑하다 헤어지면 미워하는데 그 미움은 어디서 왔니? 전에 있었던 사랑이 만들어 낸 감정이야.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면 그 만큼 많이 신뢰했었다는 것이고, 지나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 안에는 숨은 열등감이 있어서 자신은 못났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때문에 짝을 이루는 두 감정을 모두 표현하며 살아야 해. 부정적인 감정은 억압하고 당장 이미지 구길 일 없는 긍정적 감정만 표현하는 것이 반복되면 결국 나머지 억압되어 얼어버린 감정이 나머지 반쪽 감정까지 막히게 만들어. 억눌린 화는 주변에 있는 약자에게 가장 쉽게 삐져나오게 되어 있어. 그러니 분노를 비롯한 모든 감정들을 일종의 에너지로 이해하면 좋겠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알지? 형태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 감정은 억압해 봐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 변화의 과정을 거쳐 그 힘을 유지한다는 거다. 특히 신앙의 이름으로 억압된 분노는 '자기 의'라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단다. 신앙인들을 곤란케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화를 너무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게 내는 것인지도 몰라.

그러면 분노를 억압하지 말라 했으니 화를 돋우는 친구의 얼굴을 벽에 붙여 놓고 다트를 던지라고? 병을 깨서 휘두르고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독설을 내뿜으라고? 분노를 억압하는 것이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것이나 자신과 '분노'라는 감정을 분리시키지 못하고 동일시하는 것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봐. 두 경우 모두 분노에 이끌려 다니는 결과야.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자연스럽게 화내시고(막 3:5, 요 2:13-15, 마 23장), 화를 도구로 사용해 선한 것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기억해 보자. 그분이 보여주신 분노는 억압되어 부적절하게 삐져나오는 방식도 아니고, 정제되지 않아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것도 아님이 분명해. 오직 사랑의 마음에서 기인한 분노,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서 나온 화야. 네 안에 분노가 있음을 인정하고 나서 어쩔 줄 몰라 두렵다면 이분께 의뢰하면 돼. 화내고 욕하는 것에도 온전한 전문가이신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잖니. 그분께 우리의 분노를 그대로 내어드리고 순종할 때 그 분노는 내 존엄을 지키고, 연약한 이웃의 버팀목이 되며, 공동체에 참된 정의를 세우는 작은 기초석이 될 거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노냐! 우리, 두려움 없이 인정하고 맞서 보자구. 분노는 나의 것!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8

 

 

 

모님 : 어서 와라. 오필이. 오랜만이네. 주일 날 먼발치에서는 보는데 얼굴 보고 얘기한 지가 꽤 됐구나. 잘 지냈어?

오필 : 네. 아, 뭐... 저는 지난 번 육미 얘기나 칠규 얘기를 비롯해서 모님께서 들려주시는 에니어그램 이야기 계속 보고 있었어요. 뭐... 그래서 오랜만에 뵙는 느낌은 아닌데요.

모님 : 그렇구나. 너 지난 번에 보니까 <내 안에 접힌 날개> 보는 것 같던데 다 읽었어?

오필 : 예. 다 읽긴했는데요. 잘 모르겠더라구요.

모님 : 뭘 잘 모르겠다고? 에니어그램을? 아니면 너의 유형?

오필 : 둘 다요. 모님께서는 제가 확실히 5유형이라고 생각하세요?

모님 : 왜 아닌 거 같애?

오필 : 아뇨. 책을 읽는데 5유형에 가장 가깝기는 하더라구요. 그런데 사람을 아홉이라는 유형 중 하나로 규격화해서 넣는다는 것이 좀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 안에는 사실 3유형처럼 성공하고 싶은 욕구도, 9유형처럼 평화롭고 싶은 욕구도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저를 완벽주의자 (완벽주의자는 1유형이죠?) 라고도 해요.

모님 : 에, 지당하신말씀입니다. 호호호호. 오늘 나눌 얘기가 흥미진진하겠구나. 일단 커피 한 잔 하면서 얘기 계속하자. 잘 볶아져서 맛이 꽉 찬 느낌의 탄자니아AA가 있단다. 커피 괜찮지?

오필 : 그럼요.

 

 

오필 : 좋은데요. 탄자니아가 헤르만 헤세가 좋아해서 유명해졌다는 커피 아닌가요?

모님 : 오, 맞어. 깔끔한 산미에 단맛과 적당한 쓴맛까지 조화로운 가장 아프리카적인 커피지. 개성이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야, 오필이 같은 커피다. 개성이 강하면서 부드러운... 호호. 오필이 커피를 좀 아나보네.

오필 : 아니예요. 잘 몰라요. 커필 좋아해서 자주 마시다보니 아주 조금 신선한 커피의 맛이 뭔지는 알겠더라고요. 그 정도예요.

모님 : 겸손하기는.... 우리 청년부 공동체의 ‘지성’인 오필이를 모님이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겸손한 오필이가 널름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지적이고, 아는 것이 많고 현명한 오필이.

오필 : 저의 자아 이미지 말씀하시는 거죠? ‘나는 현명하다’ 대신 ‘나는 현명하고 싶다. 많이 알고 싶다’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모님 : 그러니까 말야. 자아이미지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여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오필이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 어떻게 표현해도 맞을거야.

오필 : 저는 제가 한 없이 복잡하게 느껴져서 저 자신을 쉽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모님 : 내가 설명해줘?^^ 객관적으로 오필이의 인상이랄까, 긍정적인 특성이라면 지적이면서 사려깊다?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잖아. 현실을 객관적으로 예리하게 관찰하고...

오필 : 그.... 그런가요?

모님 : 관찰한 것들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속에 착착 쌓아두지. 그러니 말없이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들어주잖아. 얘기를 했다하면 진중하고 통찰력 있는 얘기들을 하고...

오필 :(피식_소리 안내고 웃기) 진중하고 통찰력 있는 얘기요? 저는 청년부 아이들과 함RP 있을 때 잡담이나 의미 없는 얘기가 무성할 때 로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어요. 대화에 낄 수도 없고요. 그럴 때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님 : 낄 수 없다기 보단 끼기 싫지? 큭큭큭... 시간이 아깝다거나 시간이 허투루 보냈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그러면 오필이는 그 시간에 뭘 하는 게 좋아? 뭘 하면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들까?

오필 : 글쎄요. 혼.자.서. 생각을 정리한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뭐 그런거요?

모님 : 5유형들이 집착하는 것이 ‘지식(아는 것)’이라고 하지. 모든 것을 자세히 분명하고 올바르게 알게 되면 삶이 보장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더 알고, 완벽하게 알면...

오필 : 그...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모님 : 그거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더 알아야 한다는 느낌에 매여 있다는 거지. 때문에 현실에 뛰어들 수 없고. 그래서 평생을 준비모드로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오필 : 준비모드라구요? 평생을요...... 맞지만 비참하게 들리네요.

모님 : 언젠가 그런 얘기 했었지? 웬만하면 버럭 화내는 일이라고 없는 오필이가 노크 없이 방문을 벌컥 여는 행동에 불같이 화를 내놓고 난감했던 적이 있다고.... 아직 더 관찰하고,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는 것이 5유형에게는 필수잖아. 헌데 이것을 침해하는 것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봐. 결국 이게 5유형의 집착. 알아야 한다. 더 알아야한다는 ‘지식’에의 집착에 맞닿아 있다는 거지.

오필 : 제 시간과 공간을 예고 없이 치고 들어오는 것 참기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저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님 : 그 공간 오필이의 내면에 있는 거 아니야? 5유형들은 자기만의 내적 공허감느끼고 그 공허감을 메우기 위해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으고, 관찰한다고 하지. 그게 5유형의 회피라고 설명해.

오필 : 공허감이라고요? 공허감이라.... 공허감을 느끼죠. 그런데 공허감이 뭐죠? 외로움 같은 것이요? 그건 아닐텐데. 딱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공허의 심연 같은 것이 제 안에 있죠. 그건 뭐랄까?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표현하신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집에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모님 : 그래. 그 공허감을 채우려는 희망을 안고 5유형들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을 모으고 가지고, 축척하려 한다고 해. 생각, 지식, 관념 등을 축척할 뿐 아니라 책, 우표, 낡은 신문, 빛바랜 편지 등등... 하이튼 수집에 대한 갈망이 강하다지.

오필 : 아, 그게 저만 그런 게 아니었나요? 어릴 적에 우표를 열심히 모았고, 최근까지도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가지고 있긴 하죠. 유형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모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모님 : 아, 물론! 수집광들은 다 5번이라는 게 아니라 5유형들이 집착과 회피에 맞닿아 있는 행동이 그럴 수 있다는 거지. 5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탐욕(인색)이야...... 라고 말하면 펄쩍 뛰겠지? 하하. 어, 표정 하나 안 바뀌네?

오필 : 펄쩍 뛸 것 까지는 없지만 책을 보면서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지나치게 검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탐욕이라는 건 좀....

모님 : 자신을 내놓기에 인색하다는 거야. 돈, 시간, 일, 심지어 말까지도 절제하며 나누지 않는다는 거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많이 가지고 있는데 ‘난 아직 몰라’라며 나누지 않는 게 탐욕이라는 거야. 오필이 지금 박사과정 하면서 공부 잘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세미나 수업 같은 거 할 때 발표 잘 해?

오필 : 발표요? 아, 대체로 제가 발표하고 나서서 얘기할 만큼 공부가 돼있질 않아요. 실은 제가 보기에 아직 충분히 공부가 안 된 아이들이 토론할 때 나서고 그러면 좀 같잖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모님 : 오필인 다 아는 뻔한 얘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나대는 인간들이 많지? 큭큭큭..

오필 : 나누지 않는 것이 탐욕이고 인색이라구요? 저는 왜 그럴까요? 나누면 저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걸까요? 나누면 아까 말씀하신 그 공허의 심연을 겪게 될까봐요?

모님 : 그러게. 잘 통찰했네. 그 두려움에 5유형들이 쓰는 방어기제가 후퇴(거리두기)야.

오필 : 인정합니다. 거리두기, 제가 하는 거죠. 음... 말하자면 제가 생각해 봤는데 저는 감정적으로 얽히는 것이 두려워요. 아니, 감정 자체가 두려운 것 같아요. 이건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모님 : 그래서 어느 5유형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감정으로 다가오면 물미역이 자신을 감싸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구나.

오필 : (픽! 소리 없는 웃음) 젖은 창호지가 몸에 감기는 느낌이랄 수도 있고요.

모님 : 하하... 젖은 창호지라! 그 정도란 말이지. 그런데 반대로 들이대는 물미역의 입장은 어떨까? 5유형들의 거리두기나 물러남이 상대에게는 지나치게 냉정함으로 비쳐진다는 거 아나? 5유형들은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거리두기에 많은 상처를 받아.

오필 : 여자 친구에게 많이 들었던 얘기예요. 옆에 같이 있을수록 외롭게 느껴진다고요. 정말 제 문제인 건 알겠는데 글쎄요.... 풀기가 어려운 숙제예요.

모님 : 그래. 당장 오필이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야. 오필이로서는 그닥 나쁜 의도가 없는, 즉 유형에 충실한 행동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다 해도 큰 걸음이지.

오필 : 대화를 나눌수록 제 자신에 대해서 더 답답하게 느껴지네요. 도대체 5유형은 재미없고 매력이 없는 번호 같아요.

모님 : 이 시점에 웬 자기비하냐! 오필이가 존경하는 본회퍼가 성숙한 5유형이라는 거 알아? 어릴 때부터 책벌레였으며 젊은 나이에 최고의 신학자였던 그 분이 히틀러 암살을 모의하는 단체에 가입했어.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 감옥에서 쓴 글의 한 대목이야. ‘가능성을 탐색하지 말고 용감하게 현실을 붙잡을 것. 자유는 사유의 비상이 아니라 오직 행동 속에 있다’

오필 : 아.......

모님 : 오필이가 그렇게 추구하는 의미는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적인 것에 있을 수도 있어. 아니, 적어도 오필이에겐 그럴거야. 아직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고,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느껴도 삶에 뛰어는 것 말이야. 진리이며 신비이신 그 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지. 그리고 당신의 손을 더럽히면서 병든 인간에게 손을 대고 만지시면서 치유하셨어. 오필이는 실제로 행동하고 관계맺음으로 진정한 객관성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쉽지 않겠지. 내가 마음과 힘을 다해서 기도해주고 언제든 도와줄게. 시간이 지나면서 반드시 더 명확해지고 더 가벼워 질거야. 힘내.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7

 

 

칠규 : 우리 모니이~임. 안녕하세요. 우하하하하.

모님 : 그래, 우리 칠규 어서 와라. 너 아까 전화했을 때 진짜 사거리였어? 아니었지? 너!

칠규 : 빙고! 하하하하. 어떻게 아셨어요? 실은 올림픽도로 빠져 나오던 중. 하하하. 그게요 모님, 약속은 원래 깨지고 미뤄지라고 있는 거거든요.

모님 : 어련하실라구요. 어이구, 저 자동화된 합리화! 덥지? 커피 아이스로 줄까?

칠규 : 네, 모님. 그거 있잖아요. 캬라멜향 나는 달착지근한 아이스커피요. 예전에 해주셨던 그 커피 주시면 안돼요?

모님 : 안되긴. 근데 너 요즘 몸 만든다며. 설탕 든 커피도 마셔?

칠규 : 아뇨, 평소엔 안 마시는데요 오늘 하루쯤 다이어트는 넣어두려고요. 하하하하.

 



칠규
: 와, 대~애박! 진짜 맛있어요. 모님, 저 이거 다 마시고 한 잔 더 마셔도 되죠?

모님 : 그래. 맛있는 건 참을 수가 없지?^^ 너 어제 친구 결혼식 사회는 잘 봤어? 결혼식 사회는 처음이라고 했지?

칠규 : 완전 다 쓰러졌어요. 진짜 재밌었어요. 하객들, 주례선생님도 엄청 근엄하신 분인데 쓰러지셨다니깐요. 진짜 진행 잘 했어요.

모님 : 푸하하하. 자기 입으로 대놓고 잘했대. 너 오늘 나랑 얘기하면서 ‘진짜, 대박, 완전’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나 세 봐야겠다.

칠규 : 제가 그 말을 그렇게 많이 쓰나요? 암튼 결혼식 진짜 대박이었다니까요. 빵빵 터졌어요. 왜 웃으세요? 진짜예요.

모님 : 알았어. 진짜야. 우리 칠규가 마이크 잡았으면 분위기 바로 떠주는 거지 뭐. 썰렁하게 식어가는 분위기 확 불지펴주는 사람이 칠규잖아. 7유형 칠규의 달란트지.

칠규 : 바로 강의모드로 가시는군요. 계속해 주세요.

모님 : 계속 칭찬을 하라는 거지? 7유형의 자아 이미지, 즉 7유형들이 외부세계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는 이거지. 나는 재밌는 사람이다. 행복하다. 멋지다.

칠규 : 아니, 그렇게 드러내고 싶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니까요.

모님 : 으이구, 알았어. 알았어. 7유형들,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주변에 에너제틱한 힘을 부여하는 다재다능한 사람들이야.

칠규 : 저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재롱둥이란 말 많이 들었어요. ‘기쁨 주고 사랑받는~’ 이거 제 로고송 이예요.

모님 : 그래. 모든 유형이 그렇듯이 이렇게 밝은 면 뒤에는 그림자 같은 집착이 있기 마련인데 7유형은 쾌락과 재미에 집착을 하지.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 쾌락과 재미야. 동의하니?

칠규 : 뭐든 재밌는 게 좋은 거 아녜요. 강의도 재밌어야 쏙쏙 들어오고, 설교도 웃기는 걸 빵빵 한 번씩 날려줘야 졸립지 않잖아요. 저는 뭐든 재밌고 웃기게 해주는 건 기본적인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모님 : 그러니까 지루한 건 최악이지?

칠규 : 그, 그렇죠. 그리고 저는 슬픔과 좌절에 싸여 있는 건 믿음이 없는 것 같이 느껴져요.

모님 : 강의든 설교든 심지어 사람이든 지루해지면 바로 끊고 싶지?

칠규 : 사람이요? 아, 모님 인간관계에서 말이죠. 저는 제가 사람들과 진심으로 관계 맺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친구 놈들이 그런 얘길 해요. 제가 어떨 때 너무 차갑대요. 사람 좋은 것 같지만 영 속 깊이 가까워지질 않는다면서요. 제가 그렇게 보이세요? 저는 따뜻한 사람인데…….

모님 : 대체로 7유형들의 인간관계가 피상적으로 느껴져. 관계 자체보다는 관계 안에서 얻어지는 재미(그 재미가 각각의 7유형마다 다르게 해석되겠지만)가 중요하니까. 사실 그렇지 않니? 사람 좋아하지만 같은 사람을 아주 오래 만나진 않지 않아? 왜? 같은 사람을 오래 만나면 결국 그 사람의 슬픈 얘기도 들어야 하니까.

칠규 : 어...어... 그런가? 영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말에 팍 찔리긴 했어요. 그런데 그게 슬픈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동기라는 말씀이죠?

모님 : 재미에 집착하는 7유형들이 회피하고 싶은 건 고통이야. 인생의 슬픔, 어려움, 갈등, 불쾌함 등을 악덕으로 여기면서 멀리하려 하지. 그래서 7유형들이 그렇게도 ‘긍정의 힘’에 열광을 하는 것일 거야. 아까 말한 친구관계 역시 ‘고통스럽지 않은 지점까지만 관계 맺자’는 거 아니겠어?

칠규 : 대박! 모님, 레알 귀신이신데요. 그랬던 것 같아요. 진짜. 저는 저 붙들고 힘든 얘기하면서 찔찔거리면 그게 참 싫어요. 그래서 바로 노래방 끌고 가서 신나는 노래 불러주고 그랬거든요.

모님 : 현실 즉, 지금 여기에 산다는 건 사실 고통이잖아. 7유형들이 ‘나는 행복하다. 즐겁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엔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과장된 공포가 있을 거야.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를 상상하는 것에 열광하기도 하지. 또 다양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현실로부터 도망가기도 하고.

칠규 : 하하하……. 계획 세우기요? 아놔, 진짜. 저 기말고사 끝났잖아요. 저는 시험이 가까워 오면 시험공부 계획을 쫙 짜는 게 참 재밌어요. 재미? 괜히 재미란 말 쓰기도 이젠 좀 껄끄럽네요. 하하하……. 암튼요. 그렇게 계획을 세우면 마치 제가 1등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계획을 지키느냐? 물론 못 지키죠. 큭큭큭. 그러면 며칠 있다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되는 거구요. 그러다보면 시험 전 날. 저는 당일치기 체질 이예요. 하하하. 아, 진짜. 여행을 가더라도 계획을 세울 때가 정말 미치도록 좋지 막상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는 귀찮게 느껴질 정도예요. 이게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거라고요?

모님 : 이상주의나 계획세우기 등 머릿속으로만 도망가는 게 아니라 실제 일상생활에서도 7유형들은 장례식이나 병원 같은 곳을 가는 것도 힘들어 하지.

칠규 : 그, 그래요? 싫어한다기 보다는 가급적 안 갈 수 있으면 안가고 싶었다는.... 헐~

모님 : 예, 됐고요. 그게 그거고요.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어. 십자가의 고통은 스킵하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은 없다는 걸 7유형이 알아듣기 시작하면 한 걸음 크게 내딛는 게 될 거야.

칠규 : 모님, 저 정말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실은 모님께 약속했던 거 못 지켰어요. 그 술자리 가지 않겠다고 했었잖아요. 저 거기 갔어요. 게다가 어느 순간 제가 2차, 3차를 주도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순간이 되면 브레이크가 걸리질 않아요. 에라, 모르겠다. 오늘까지는 끝까지 가보자 하게 돼요.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모님 : 으이구, 솔직한데다 선수까지 쳐버려서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두칠규!

칠규 : 죄송해요. 이게 진짜 마지막이었어요. 정말 이젠 안 갈 거예요.

모님 : 7유형의 근원적인 죄가 뭐라고 했지?

칠규 : 무절제, 폭식, 방종이라고 하셨었죠. 무절제는 좀 알겠는데요. 저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안잖아요. 폭식이 근원적인 죄라는 게 좀 그렇지 않아요?

모님 : 내 눈을 똑바로 봐(찌릿!). 정말 많이 안 먹어? 니가 정말 맛있고 근사한 것도 절제하면서 먹을 수 있다고? 놀래지마. 농담이야. 무절제라는 키워드로 폭식과 방종을 이해하면 돼. 7유형들은 ‘좋은 것은 언제나 많.을.수.록. 좋다’라 하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사고……. 좋은 것에 대해서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싶어 하질 않아.

칠규 : 아, 맞아요. 저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 고문 이예요. 그렇게 각각 좋은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완전 갈등 쩔어요. 남기더라도 한 그릇 씩 두 개 다 시켜서 먹고 싶다니깐요. 그래서 한 그릇에 반반씩 주는 짬짜면이 나왔을 때 완전 열광했잖아요.

모님 : 누구보다 지혜롭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찬란하게 누린 솔로몬 왕을 생각해보자. 솔로몬의 궁에는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이, 많이, 많이 있었는지 찬찬히 성경을 읽어봐라. 무엇보다 솔로몬이 좋아했던 여자! 바로의 딸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모압 여자, 암몬 여자, 에돔 여자, 시돈 여자, 헷 여자도 좋아했대(왕상11:1). 천 명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고, 그 아내들은 결국 그 지혜로운 솔로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 우상의 산당을 짓게 만들었고, 망하게 했어. 천 명의 아내를 소유하기 까지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지겠다는 솔로몬의 무절제가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거야.

칠규 : 휴우……. (한숨) 다다익선이라는 게 독이 될 수 있는 거군요. 7유형에게는, 아니 적어도 저에게는요.

모님 : 칠규야. 네가 고민하고 결심하는 것들 말이다. ‘오늘은 우울하니까 딱 한 편만 보고 다시는 안 봐야지. 딱 오늘만 가고 안 가는 거야. 이거만 사고 다시는 안 사야지’ 그러면서 또 다시 무너지곤 하는 지점 말이다. 무절제한 삶을 끊어버리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하는 것도 필요해. 하지만 그 보다 먼저 네 영혼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텅 빈 공간이 있음을 알고 인정해야 한단다. 그 공간은 온갖 좋은 물질적인 것, 멋진 것, 즐겁고 행복한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어. 6유형이 안전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규칙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여 그 공허함을 메우려하는 노력과 같지. 채우려 할수록 목마름만 더할 뿐이야. 그 공간을 맞닥뜨리는 것이 두려워 지레 재미와 신나는 것으로 내달리지 않고 고통스런 공허감을 네 것으로 받아들일 때 넘치도록 채우시는 그 분의 은혜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말로 하기 쉽다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만.....

칠규 : 휴우, 우리 모님 또 나를 헷갈리게 하시며 고통 가운데 밀어 넣으신다. 일단 알겠어요. 모님, 너무 복잡해져서 뇌에서 과부하 걸리는 소리가 나요. 이 맛있는 커피나 한 잔 더 주시면 마시고 가서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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