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7
사라 모님. 이거….
모님 오, 안개꽃 진짜 예쁘다. 고마워. 그런데 사라 미모에 가려 안개꽃이 죽는데….
사라 에이~ 모님….
모님 사라가 커피 안 마시던가? 허브티 줄까? 모카 마타리라고 좋은 커피가 있긴 한데.
사라 커피 괜찮아요. 연하게 주시면 돼요. 마타리라는 이름이 왠지 끌리네요.
모님 커피의 귀부인이라고 불린단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이기도 하고. 고흐가 좋아하는 커피였대.
사라 고흐요? 아… 고흐. 저 지금은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싶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그림 공부하면서 고흐 그림 좋아했었어요.
모님 그래? 오늘의 커피 제대로 선택했네. 커피에서 느껴지는 고상함이 사라에게서 느껴지는 느낌하고 비슷하단 생각을 했거든. 고매하신 사라 양. 호호호.
사라 모니~임. 놀리지 마세요.
모님 아니 지난번에 칠규가 그렇게 부르기에. 호호. 자 커피 마시자. 이렇게 안개꽃만 모아서 꽃다발을 만든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잔잔한 느낌이 전혀 새롭다.
사라 이해인 수녀님의 <안개꽃>이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에 '장미나 카네이션을 조용히 받쳐주는 별무더기'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언젠가 한 번쯤 안개꽃만 한 다발 사봐야겠다 싶었거든요.
모님 4유형의 자아이미지가 나는 특별하다, 독창적이다 이거지. 뭔가 나는 남과 다르다,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생각해?
사라 (뜸들이다가) 음…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모님 암요. 다 특별하죠? 큭큭큭. 웃어서 미안. 어쩌면 그렇게 너다운 답이냐.
사라 …….
모님 4유형들은 뭐랄까 비밀처럼 슬픔을 간직한 인상이지. 언제든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눈, 말소리도 구슬프다고 해야 하나? 때론 이런 인상이 지나쳐서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도 해.
사라 모든 4유형이 다 그런 표정일까요?
모님 아, 물론 이런 표정을 짓는다고 다 4유형이란 것은 아니야. 대체로 이런 비슷한 인상이라는 거지. 표현이나 생각이 색다르기 때문에 뭔가 개성적이고 독창적이고 예외적으로 느껴져.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에 민감해서 대체로 독특한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딱 사라가 그러네.
사라 네… 네? 뭐가 딱이에요?
모님 예술적인 재능 말이야. 물론 이것도 모든 예술가들이 4번이라는 게 아니라 4유형들은 남다른 심미안이 있다는 얘기야. 자연에 대한 친화력도 커서 풀이나 동물들이 말을 걸어온다며?^^
사라 아, 저번에 육미가 독립해서 이사했잖아요. 그때 제가 화분을 사갔는데 육미가 물을 얼마 만에 줘야 하냐는 거예요. 제가 '쟤네들이 다 알아서 목마르다고 해.' 그랬더니 애들이 다 쓰러지더라고요. 이런 건가요?
모님 호호호. 그래. 또 정서적인 강도가 높은 사람들이지. 특히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을 발견하는 눈이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자신들이 소외감을 많이 느껴봤다는 뜻 아닐까?
사라 네에….
모님 이런 4유형들이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 특별함이야. 나는 남과 달라야 한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다르다는 것 때문에 이해 받지 못 한다는 소외감에 시달리는 거야.
사라 뭔가… 그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제 안에 항상 공존하죠.
모님 옷을 사러 갔는데 '이거 요즘 유행하는 옷이에요.' 하면 살 맘이 생기니?
사라 아니요. 오히려 '하나밖에 없는 옷이에요.' 하면 끌려요. (소리 없이 웃으며)
모님 특별함에 집착하기 때문에 때론 너무 튀거나 비정상적으로 비치기도 하고 심지어 위험하고 강렬한 모험에 뛰어들기도 하지.
사라 모험이라… 모험이 제게 어울리는 말일까요?
모님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또는 이루어질 수 없어 보이는 상대만 골라서 연애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비극적 낭만주의에 빠져드는 것…. 이런 것 말이야.
사라 아….
모님 강렬하고 극단적인 정서생활을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가슴형의 에너지를 안으로 쓰는 4유형은 온통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지. 그래서 타인에게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보이고 감정기복이 심하게 느껴져. 4유형의 감정기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으로 많이 힘들어 한다는 거 알고 있니?
사라 누가 누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까요?
모님 4유형들이 대체로 그러더라. '니 맘을 알겠다'고 하면 '니가 내 속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뒤집어지고, '그래 모르겠다' 하면 자기 맘 몰라준다고 더 상처 받고 말이야. 깊이 이해 받고 싶으면서 동시에 거부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거지.
사라 그래서 제가 늘 슬프다고 느끼는 걸까요?
모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슬프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도 않지.
사라 아…. 맞아요. 딱 그런 느낌이에요.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하세요?
모님 보통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에 가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 넌 어떤 것 같니? 경치가 정말 아름다운 곳에 갔다, 어떤 생각이 들어?
사라 음…. 저는 작년 겨울에 설악산에서 설경을 마주했어요. 그때 숨이 멎도록 너무 아름다워서 이런 곳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아름다움의 최상급은 왠지 그렇게 통할 것만 같….
모님 죽음을 상상하지 않는 4유형이 없다고 해. 죽음도 늙어서 죽는 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고 사랑의 절정의 순간에 죽어야 하지. 흰 백합꽃에 둘러싸이는 건 기본 옵션? 호호호.
사라 이런…. 아, 모니~임.
모님 완전 공감? 큭큭큭. 자, 특별함에 집착하는 4유형은 모든 평범한 것을 회피해. '혹시 내가 평범한 것 아냐?'를 두려워한다는 거지. 그러다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것, 정상적인 것까지 회피하게 된다고 해.
사라 다른 건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대체로 친구들이 하는 대화에 끼기가 힘들어요. 그네들이 흔히 하는 얘기들이… 뭐랄까… 제게는 무의미하게 다가온다고나 할까요? 그냥 제가 섬 같은 느낌이에요.
모님 한마디로 천박하다고 느껴지는 거 아니고?
사라 그… 글쎄요. 암튼 남들과 같아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똑같은 교복, 유니폼…. 이런 거 입어야 하는 거 정말 좀 그래요.
모님 아하하… 그거 생각나? 너 지난번에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목에 스카프 두르고 있었던 거.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다르고 싶었던 건가?
사라 그런가요? 후후후.
모님 근원적인 죄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질투 또는 선망이 4유형의 근원적인 죄야. 모든 것을 비교하고 질투한다고 하지. 선망하지 않는 대상이 없고. 누가 나보다 더 멋있고 품위가 있는지, 더 안목이 있는지, 더 천재적인지….
사라 더 사랑받는지, 더 건강한 정신을 가졌는지, 더 정상적인지… 요?
모님 그렇지! 남들과 달라야 하면서도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질투의 눈길을 보내는?
사라 아, 현실의 사랑이나 행복이 매혹적이면서도 혐오스러운 혼란스러움, 이런 거군요.
모님 이런 표현을 확실히 잘 알아듣는구나. 소유하게 되면 싫증을 느끼고, 멀어지면 그리워하는 것을 반복한다지. 그래서 연애도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사라 어머….
모님 이렇듯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4유형이 쓰는 방어기제는 인위적인 승화야. 느낌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상징, 의식, 멋 부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거지.
사라 인위적이라는 말씀이 뭔지….
모님 예를 들면, 로맨틱한 음악, 붉은 장미 한 송이, 물에 띄운 양초와 와인이 있는 테이블… 이런 설정과 분위기로 상징적 표현을 한다는 거야. '사랑해'라고 말로 해도 마음을 알아줄까 말까인데 말이다.
사라 '사랑해' 한마디로요?
모님 너무 간단하니? 그 엄청난 감정을 '사랑해' 한마디로 딱 자른다니…. 후훗. 어쩌면 특별하고 특별한 나를 유형 하나에 집어넣어 설명하는 것도 어불성설같이 느껴지진 않아?
사라 어, 빙고요! 지금 내내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고, 속할 수도 없는 것 같다고요. 복잡하고 설명이 안되는 게 인간 아닌가요?
모님 예, 많은 4유형들이 모여 앉아 '우린 서로 다르다'며 그렇게 말씀들 하시더구먼요.^^ 사라야, 그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덩어리는 '너'가 아니야. 감정과 너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눈이 있으면 좋겠구나.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는 들풀 하나도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사라를 바라보고 계셔.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은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사람들에게 오해나 상처를 받았다며 붙드는 소외감, 슬픔의 늪 같은 것들이 사라에겐 '치장'일지도 몰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지금 여기, 우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그분의 눈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일진대, 또한 가장 성스러운 지점 아니겠니?
사라 장미도 카네이션도… 심지어 그것들을 조용히 받쳐주는 안개꽃도 아닌 들풀 한 포기를요? 음…. (끄덕끄덕) 들풀 하나도 그분이 가꿔주시죠. 하찮은 들풀이라도요….
이 땅에 귀양 오신 선녀님_4유형
2012. 5. 1. 2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