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22

 

 

(가평 깊은 산 속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한 동안 침묵이 흐릅니다. 각자 새롭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그 위에 채색하여 만든 예쁜 동화를 이제야 알아차리기 시작한 탓일까요? 몸은 여기 있지만 각자 자신의 어린 시절로 떠났나 봅니다. ‘타닥타닥’ 잦아드는 모닥불이 타는 소리, ‘쓰르쓰르’ 가녀린 풀벌레가 내는 소리만이 ‘지금&여기’를 확인시켜 저는 것 같습니다. 침묵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리들이 그러합니다. 이대로 밤을 지새우는 침묵이어도 좋겠습니다.

모님은 조용히 일어나 새로운 커피를 준비합니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이라는 원두를 선택해서 핸드밀 뚜껑을 열고 싸르르르 한 스푼 씩 넣습니다. 사라락사라락 원두 가는 소리가 흡사 초등학교 입학 전 날 설레는 맘으로 돌리던 은빛 연필 깎기 소리 같습니다. 커피향이 퍼집니다. 쪼로로 물을 따르는 소리도 오늘따라 크게 들립니다. 안과 밖이 고요해지니 새삼스럽게 들리는 소리들이 많습니다.)


모님
: 오래 앉아 있으니 좀 쌀쌀하네. 따뜻한 커피 더 필요한 사람?

(저요, 저요.)

삼진 : 딱 커피가 고파지는 순간, 그 순간을 포착하시는 바리수타 모님의 센스!

칠규 : 이건 무슨 커피예요?

모님 : 인도네시아 만델링이야. 아라비카 커피 중 가장 강렬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 진하고도 부드러운 맛이 묵직하게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인데..... 느껴지니?

칠규 : 아.....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커피란 얘기죠. 하하하하.

일경 : 쓰지만 싫지 않은 쓴맛이에요.

육미 : 그래그래. 고소한 쓴맛이라고 할까?

모님 : 맞아. 로스팅이 잘 된 만델링이야. 이게 개성이 강한 커피라서 말이야. 자칫 하면 쓴맛만 강조돼서 만델링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함의 조화로운 풍미가 없어진다고 하거든. 차가운 밤공기 때문인지 커피의 향이 하나하나 그대로 입 안에서 살아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만, 기억을 떠올리고 나누고 그 안에서 치유를 경험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가 이 마음의 작업을 통해서 지금 마시는 만델링 커피 같아졌으면 좋겠구나. 초록색 생두가 로스터기에 들어가 불 조절, 수분 조절, 연기 조절의 연단을 잘 받으면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내는 맛있는 원두가 돼.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생두라도 의미 없는 쓴맛만이 느껴질 수도, 고소한 맛과 달콤한 초콜릿 향까지 곁들여진 좋은 커피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사라 : 아.... 너무 좋아요. 모닥불, 커피, 마음, 사람, 어린 시절의 그네...... 음......

팔수 : 그네는 또 뭥미? 하하하. 아무튼 모님은 절묘하게 갖다 붙이기 진짜 잘하시는 것 같아요. 하하하.

이석 : 야, 그게 모님의 내공 아니겠냐. 커피와 에니어그램, 마음의 여정과 커피, 이걸 조화시키시는 게 아무나 못하는 거야. 이제 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들려주시는 거죠?

모님 : 그래. 일찍 한 부모님을 여읜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학창시절 내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편부, 편모가정' 또는 '결손가정' 이었어.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학기 초만 되면 가정환경 조사랍시고 '편부 편모가정 손들어라' 하는 그 무식한 조사가 정말 싫었지. 피한다고 내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어. 음악치료를 전공하면서 숱하게 들은 말이 '성인아이', '역기능 가정'이란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우리 가정은 외형적으로 결손가정일 뿐 역기능 가정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우리한테 얼마다 따뜻하고 희생적인 분인데.... 밤낮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기도 밖에 없고, 엄마랑 동생이랑 나랑 셋이 모이면 얼마나 즐겁고 속에 있는 얘기 다 하면서 행복했냐고?’ 하면서 말야. 실제로 우리 가정이 그랬어.

칠규 : 아, 죄송한데요. 역기능 가정이 구체적으로 뭐예요?

모님 : 일단 기능적 가정의 반대 의미지. 가정이 어린아이에게 제대로 기능을 한다는 건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잘 충족시켜 준다는 의미지. 신체적, 정서적, 영적인 욕구가 충족되며 자랐다면 독립된 성인으로 자라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겠지. 역기능 가정에서 아이는 반대로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충족이 돼. 그러면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되고 건전하지 못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는 거야.

오필 : 역기능 가정은 알코올 중독 부모님이 계시거나 그런 가정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모님 : 그렇지. 역기능 가정은 중독자가 있는 가정이야.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보통의 가정들이 이 정도인 경우는 드물지. 하지만 일중독, 돈 중독, 사랑 중독……. 이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래서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치유>를 쓴 존 브레드쇼는 현존하는 가정의 95%가 역기능 가정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이 분은 아직까지 나머지 5%에 해당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거야. 결국 우리는 모두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다는 거지.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로는 살짝 동의가 됐지만 ‘표현이 과하네. 누굴 모두 환자로 보나?’ 했었어.

육미 : 풉, 제가 지금 딱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모님 : 어린 시절 작업이라면 나도 할 만큼 했잖아 하면서 교만한 마음도 있었어. 어린 시절이 다 그렇지 뭐. 너무 인위적으로 어린 시절의 경험을 끌어내고 짜 맞추는 거 아냐? 하면서 방어하기도 했던 것 같애. 그러면서 여러 내적 여정 훈련을 받았지. 내게 어린 시절 그러면 아직도 엄마가 해주시는 레퍼토리가 있어. ‘너처럼 사랑받고 큰 애는 없다. 너를 늦게 낳아 가지고, 느이 아버지가 자다가도 일어나서 불 켜고 앉아 너를 들여다보고 그랬단다. 내가 너를 안아볼 새가 없었다. 하도 너를 이뻐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 말이 내 의식에 새겨져 있어. 그래서 '나는 엄청 사랑받고 자란 아이야' 라고 머리로 믿고 있었던 거야. 의심의 여지없이 말이다. 헌데, 내 마음과 몸은? 이런 질문과 함께 이제껏 눌러놨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봇물처럼 생각나는 시점이 있더라. 더 중요한 건 기억과 함께 떠오른 당시의 느낌이야.

동네 친구 집에 갔던 기억이 나. 남자 애였는데 친구가 무슨 말을 하면서 막 까불었어. 그랬더니 친구의 엄마가 ‘저런 미친놈. 내가 못살어.’ 하면서 고개를 젖히고 웃으시는 거야. 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장면이 먼저 선명하게 떠올라. 우리 부모님을 비롯해서 동네 사람 모두 업신여기는 집이었지만 어린 나는 그런 엄마와 아들 사이가 부러웠던 거야. 기억해보면 목사님이었던 아버지는 교인들 앞에서, 아니 교인들 없는 곳에서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가족을 대하지 않으셨어. 엄마? 내 기억 속 엄마는 ‘사모님’일 뿐이었던 것 같애. 엄마는 언제나 곁에 없었다고 느껴져. 교인들 중에 아픈 사람, 힘든 사람을 찾아 심방을 가 계셨지. 그리고 집에 오시면 남편이기 이전에 ‘주의 사자’이신 목사님을 위해 열심히 밥을 하셨고. 밤이 되면 철야기도를 위해 교회당으로 가셨어. 나는 알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만 상황을 통합적으로 볼 수 없는 어린 나는 그저 ‘차가운 아버지’와 ‘부재중인 엄마’로 밖에는 인식할 수 없었다는 거야. 아주 가끔 나와 동생이 아버지가 쓰던 이북 사투리를 흉내 내고 온 몸을 던져 익살을 떨면 아버지가 아주 살짝 웃으셨어. 나는 아주 살짝 웃을락 말락 하는 그 웃음만 보아도 ‘나를 사랑한다는 뜻’인줄 알고 좋아했지.

(모님은 커피 한 모금을 길에 마신다. 한참 동안 말이 없다. 모두 말이 없다.)




모님
: 휴우, 내 얘기를 하는 게 생각보다 더 힘들구나. 나는 너희에게 보여주는 우아한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에서는 엄청나게 손발을 놀리며 애를 쓰고 있어. 죽으나 사나 사람들의 재롱둥이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지. 별달리 흑심도 없어. 그저 내가 하는 말에 사람들이 웃고, 너 재밌다 말해주고, 어쩜 그리 귀엽고 재치 있냐고 말해주면 좋아서 환장을 하는 거야. 왜? 사람들의 그런 반응에 ‘아,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착각을 하거든.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내가 재롱을 떨어드려야 하는 분이더구나. 어떻게든 하나님께 이쁜 짓을 해서 그 얼굴에 미소 짓게 해 드리려고 마흔이 넘도록 교회봉사를 쉬어본 적이 없어. 청년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몇 년 전까지 기저귀도 못 뗀 아이들을 끌고 주일 아침 일곱 시부터 찬양대 지휘를 하러 가곤 했단다. 하나님 앞에서도 어떻게든 재롱을 떨어서 그저 내 턱을 한 번 긁어주시면 좋아서 혓바닥을 빼고 헥헥거리는 강아지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 표현하면 될 것 같애.

사라 : 흑흑……. (그리고 몇몇이 따라 눈물을 찍어내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모님 : 그래, 눈물이 나지? 어린 시절 작업과 함께 여전히 어린 시절에 매여 그렇게도 애쓰며 사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수시로 눈물이 났어. 한 동안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다녔지. 이제 나는 결손가정이며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나 자신을 인정한다. ‘너처럼 사랑받고 큰 애도 없다.’라는 엄마의 말로 채색된 어린 시절도 완전히 가짜는 아닐 거야. 하지만 지금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것처럼, 최선을 다하지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었던 부모님으로 인해 내 많은 욕구들은 좌절됐을 거야.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면서 나름대로 사랑받기 위해 애 쓴 것이 ‘웃기고 재롱떨며 귀염둥이가 되자.’였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 여기고 ‘뭐라도 해야 사랑받는다.’는 왜곡된 메커니즘을 견고히 해왔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이 감동적인 가사를 그렇게도 무미건조하게 부르던 이유가 아니겠니. 에니어그램을 통한 내적여정이 어린 시절의 여행으로 인도했고, 지금 여기까지 데려왔구나.

이석 : 저……. 늘 모님께서 저희를 안아주셨는데 우리가 모님을 좀 안아드리면 안 돼요?

(누구랄 것 없이 모님을 허깅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깊이 허깅하며 긴 시간을 보낸다.)

모님 : 이 그림처럼 어린 시절의 미해결 욕구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해. 내 유형의 왜곡된 동기가 닿은 뿌리를 찾는 일이거든. 스캇 펙의 책 제목처럼 이 여정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고 우리 생의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는 여행>이 될 거야.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생두가 스스로 볶아지는 것이 아니라 로스터의 숙련된 손과 정성의 소산인 것처럼 우리의 인생길에 함께 하시는 분, 누구? 그래. 그 분 손잡고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여정으로 한 걸음 더 가는 거야. 어, 하늘 좀 봐봐. 별이 쏟아질 것만 같다. 후후후. 참 좋은 밤이구나.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18


 
받는사람
   육미                                                             
  참조사람   일경, 이석, 삼진, 사라, 오필, 칠규, 팔수, 구민


내 안의 유형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육미로 시작한 유형 이야기가 사라까지 해서 다 끝났구나. 궁금하던 것들이 조금 풀렸니? 유형 설명을 들을수록 더 헛갈린다는 뒷담화들이 내 귀에까지 들리던데. 이런 명강의를 듣고도 헛갈린단 말이냐!^^ 이런 혼란이니? '분명 난 7유형인데 가만히 듣다 보니 성공지향적 3유형도 내 얘기 같고, 남을 돕는 것으로 인정받으려는 2유형의 모습도 내 안에 있고, 매사에 근심걱정인 6유형도 딱 내 얘기네!' '어, 내가 5유형이라는데 9유형처럼 갈등을 피해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기도 하고,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려고도 하는데… 나 정말 5유형이 맞는 거야? 역시 사람을 아홉 개 틀에 맞춰 넣는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기타 등등….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1, 2, 3…9유형이 다 있지? 어, 그럼 내가 바로 그 다중이?
각 유형의 생존방식은 무의식 차원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에 성격유형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진 않아. 그러니 이건지 저건지 헛갈려서 당장에 유형이 찾아지지 않는다고 조급할 필요는 없어. 에니어그램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 방식에 숨겨둔 의도를 혹시 알겠니? 모두 한자리에 모아서 일사천리로 설명하고 질문지를 통해서 번호를 찾아 찍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일 거야. 물론 나도 가끔 '이 녀석들 빨리 잘 알아듣고 자신의 유형을 인정하면 좋겠다' 싶어서 조바심이 나기도 해. 그러나 내가 조바심을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이 여정의 진짜 보물은 골인지점이 아니라 거기까지 찾아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이야.

 


'날개'는 무엇인가
자, 이제 자신의 유형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인 '날개'에 대해서 알아보자. 날개에 대한 이해는 자신의 성격을 좀 더 명확하게 보게 해줘. 또 같은 유형이라도 많이 달라 보이는 이유 역시 날개의 선택에 있어. 날개는 자신의 유형 양쪽 옆에 있는 성격유형을 말해. 6번의 날개는 5번과 7번이고, 1번의 날개는 9번과 2번이 되겠지. 두 날개는 우리의 '느낌'과 '행동'에 영향을 미쳐. (자신의 본래 유형은 '동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기억하지?) 날개는 대체로 20대 후반에 하나가 펼쳐져 굳어진다고 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주된 날개를 갖게 되는데 주로 쓰는 날개에 따라 같은 유형이라도 크게 달라 보이는 거야. 예컨대, 6번 날개를 가진 5번은 의심이 많고 분석적인 반면, 4번 날개를 가진 5번은 좀 더 정서적이고 화려해 보이지. 또 날개를 펼쳐 쓰더라도 그 날개에서 가져다 쓰는 면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번호 백 사람 안에 100개의 유형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리고 세상을 대할 때 자신의 실제 유형보다 날개의 성격을 내보이기도 해. 이것도 번호가 헛갈리는 이유 중 하나겠지.

'날개'는 무슨 역할을 하는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성격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알게 돼. 관계의 문제가 갑자기 크게 불거진다든지 할 때일 거야. 이웃해 있는 성격을 보면 내가 고착돼 있는 유형과 반대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갈등이 찾아온 갈림길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웃유형의 성격을 자신도 모르게 발달시키게 되는데 이것이 날개야. 각 유형별로 보자.
이하 유형별 설명은 한국에니어그램 연구소 <내적여정 Ⅱ>에서 참고

1유형이 자신의 성격에 고착되면 작은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까다로워지면서 남을 비난해 갈등 유발의 갈림길에 서게 되지. 그때 있는 그대로를 관대하게 받아주면서 느긋한 9번 날개를 발달시키든가, 사랑과 동정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2번 날개를 취하게 될 거야.

2유형
은 자기를 희생자라고 여기면서 주기만 하고 받는 건 극구 사양해서 타인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부담스런 존재가 되는 갈림길에 서. 여기서 철저하고 정직하며 매사에 분명한 1번 날개나, 자신감이 넘치고 일처리가 효율적인 3번 날개 중 하나를 취하게 되지.

3유형
은 끊임없이 성공을 추구하고, 어떻게든 남을 이기기 위해 모든 감정을 차단하고, 이리저리 둘러대며 자기 자랑을 해. 이런 성향으로 어려움에 처하면 남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배려하고 도와주는 2번, 자신의 감정을 돌보고 진실을 추구하는 4번 중 하나의 날개를 취하게 되겠지.

4유형
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해. 또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 등으로 어려움이 생기지. 그럴 때 활동적이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3유형, 매사에 객관적이며 분석적이고 수용적인 5유형 중에 하나의 날개를 선택하게 돼.

5유형
은 자신의 생각만을 의지하며, 현실적인 혼란에 개입하지 않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 우월감을 느껴. 이런 5유형들로 인해 힘들어 하는 주변 사람과 갈등이 일어나면 정서적이고 동정심이 많은 4유형의 성향을 가져다 쓰거나, 공동체에 협조적이고 조화를 추구하는 6번 쪽 날개를 펼치게 될 거야.

6유형
은 모든 것을 두려워 해. 때문에 너무 고분고분하거나 공포에 대한 최선의 방어로 지나치게 공격적이 되기도 해. 이런 성향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게 되면 스스로 답을 찾으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5번 쪽 날개를 펼치거나, 낙천적이고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7유형의 긍정성을 가져다 쓰게 되겠지.

7유형
은 익살을 떨며 환상적인 것을 찾아다녀. 한 가지에 투신하지 못해서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지. 그러다 보면 역시 갈등을 일으키게 될 거야. 옆 번호인 6유형의 충실하고 미리미리 대비하며 일을 처리하는 성향을 발달시키거나, 추진력 있고 결단력 있게 힘으로 끌어가는 8유형의 성향을 쓰면서 날개를 펼치게 되겠지.

8유형
역시 호전적이고 공격적이며 정서에 둔감하고 모든 걸 주도하는 성향으로, 타인을 위협하게 되면 갈등에 맞닥뜨리겠지. 그러면 쾌활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7유형의 성향을 발달시키든지, 느긋하고 화를 잘 내지 않는 부드러운 9번의 날개를 취하게 돼.

9유형
은 집중력이 부족하며 우유부단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듯 보이는데, 그것이 오히려 수동적으로 공격하게 되어 갈등을 피해갈 수 없을 거야. 그 갈림길에서 8번의 정열적이고 활기 넘치며 단호한 성향을 취해 날개를 펼치거나, 공과 사가 분명하고 꼼꼼하고 철저한 1유형을 차용해 1번 날개를 쓸 수도 있겠지.

날개, 또 다른 나의 공로
내 얘기를 해 볼게. 내가 아는 나는 딱 7번이야. 긍정의 힘으로 칠렐레 팔렐레 재미있는 것만 찾아다니고 지루하고 구질구질한 것은 기가 막히게 피해 다니지. 헌데 주변에서 '너는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하잖아'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가 있어. 살짝 당황스럽지. 또 내 마음에선 늘 책임을 피해 도망하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 같은데 많은 경우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이 낯선 모습은 뭘까?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이 들어 생활력 없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아야 했어. 좋은 게 좋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욕구 충만한 7유형의 모습 그대로 살기가 어려웠지. 그래서 일찍이 6번 날개를 발달시킨 거야.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스스로 지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돈을 벌지 않은 적이 없었어. 대학 다닐 때는 물론이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밤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까. '돈 벌지 않는 나'는 상상할 수도, 허용할 수도 없었던 것 같아. 결혼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어. 형편상 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하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마음 밑바닥에선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내내 내려놓지 못했던 거야. 지나친 책임감으로 어떤 분야에서는 융통성을 잃기도 한다는 6번. 그 6번의 날개를 펼쳐서 여느 6번보다 더 6번스럽게 살고 있었던 거지.
몇 년 전 음악치료사로 일하는 내겐 치명적이랄 수 있는 '성대결절과 파열'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어. 거기다 턱관절염까지 겹쳐서 노래는커녕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그 진단을 받고 돌아와 한없이 심란했던 저녁, 침대에 누워서 발치에서 까불고 노는 두 아이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주르르 흐르며 이런 푸념이 저절로 나왔어. '하나님, 짐이 너무 무거워요. 이제 일은 할 수 없는 건가요? 아직 공부 중인 남편, 어린 아이들….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죠?'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마음에서 울리는 거야. '책임감 내려놔. 내가 책임져줄게. 내려놓으란 말이다. 아이들도, 일도, 경제적인 것도 다 내게 맡겨.' 고분고분 이 말을 들을 리 없는 자아의 목소리가 '어떻게 내려놔요. 남편 공부가 끝나는 내년이면 또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주 수요예배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는 마태복음 11:28-30말씀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
7유형인 내가 6유형의 날개를 펼치면서 세상에 좀 더 적응이 되었을 거야. 겉으로 보기엔 6유형으로 7유형의 약점을 보완하여 꽤 그럴듯한 성숙한 모양새로 보였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날개 역시 스스로 나를 지키겠다고 애쓰는 나의 노력이며 공로였다는 거야. 날개를 펼친 것이 잘못이 아니고, 자기 유형의 힘으로 사는 것도 잘못이 아니야. 내 유형이든 날개든 우리가 벗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님 만나는 그 날까지 은혜를 받으면 잠시 내려놓았다가 어느새 또 쓰곤 할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 쓰는 날개를 가지고 내가 실제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 결국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여정이 '내가 이렇게 애쓰고 있구나'를 바라보고, 거저 주시는 그분의 사랑 앞에서 꽉 쥔 마음의 주먹을 풀고 무장해제해 나가는 과정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앞으로 유형별 하나님상과 기도, 유형과 어린시절 등 각 유형을 더 다양한 각도로 살펴 볼 거야. 끝까지 파이팅이다∼!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내적여정 11

일경 :   모님! 안녕하셨어요?

모님
:   일경이 오랜만이다. 어우, 이게 얼마만이야? 출장은 잘 갔다 왔어?

일경
:   네, 모님. 갔다 오자마자 진작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었어요. 이거…. 제가 생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곳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구해봤어요. (모님 옷에 붙은 머리카락 떼어주며) 다행히 그쪽에도 공정무역 커피가 있더라구요.

모님
:   생두? 어떻게 이런 생두를 살 생각을 했어? 출장 일정도 빡빡했다며. 고맙다.

일경
:   젤 손쉽게 살 수 있는 게 스타벅스 원두지만 그거 아시죠? 모님. 스타벅스가 이스라엘 기업이고 그 수익금이 팔레스타인 전쟁의 탄알이 된다는 거요.

모님
:   응, 그래 들었어.

일경
:   그 얘기 들은 이후로 워낙 커피값도 비쌀뿐더러 스타벅스에는 안 가게 되더라구요. 의외로 이걸 알고도 스타벅스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크리스천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이해가 안 돼요.

모님
:   우리 일경이 커피 하나도 바르게 마시는구나. 후후후… 그럼 일경이 격에 맞게 네팔 공정무역 커피 한 잔 내려줘야겠네. 좀 기다려 봐.


모님 :   그래, 출장 갔던 일은 잘 된 거야? 

일경
:   저 혼자 일했으면 더 완벽하게 했을 텐데 저희 부장님이 완전 헐랭이시거든요. 흘리시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정작 제 일보다 부장님 흘리시는 일 마무리 짓는 게 더 힘들었어요. 소화불량 생겼잖아요.

모님
:   우리 일경이가 워낙 일을 꼼꼼하게 잘 하니까~ 아, 지난번 리더 수련회 일경이가 맡았었다며?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된 수련회는 첨 봤다. 하하.

일경
:   원성도 좀 들었어요. 사람들이 교회 일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모님
:   하여튼 정직하고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공정한 일경이한테 일을 맡기면 안심이지. 나는 완벽하고, 옳고 착하다가 1유형의 자아 이미지잖아.

일경
:   아니에요. 완벽하다니요. 저는 완벽 근처에도 못 갔어요. 제가 부족한 게 얼마나 많은데요.

모님
:   그렇지! 만족스러운 게 하나도 없지? 하하하… 그렇게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개혁가가 바로 1유형이야. 일경이 자신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이끌 수 있는 사람이지.

일경
:   아무튼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지 완벽한 사람은 아니에요.

모님
:   아~ 네! 어찌됐든 결국 '완벽'이라는 것에 붙들려 있는 거고, 그래서 1유형의 집착은 완벽이라고 해.

일경
:   모님, 진짜 제가 완벽하질 않다니까요. 실수투성이인 제 자신이 불만스러워 죽겠는데 왜 자꾸 완벽, 완벽 하세요.

모님
:   그래. 그렇게 '완벽'에 매여 있다구. 하하하…. 어휴, 표정 봐라. 미안 미안~ 암튼, 완벽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어떤 일을 봐도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는 거지.

일경
:   그죠. 제대로 되어 있는 게 없죠. 다들 하나를 해도 좀 제대로 하면 좋겠어요. 제 눈에는 그렇게 잘 보이는 오타가 왜 부장님 눈에는 안 보이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그 바쁜 와중에 부장님 브리핑 자료 오타 수정이나 하고 있어야 하냐고요. 식당에 가도 지문이나 고춧가루 묻은 컵은 꼭 제 눈에만 띄어요.

모님
:   사람에 관해서는 어때? 사람들의 결점 같은 것들….

일경
:   솔직히 저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이 너무 잘 보여서 눈을 감고 싶어요. 헌데 문제는 눈을 감아도 보인다는 거죠. 이것 때문에 정말 힘들어요.

모님
:   에니어그램 아홉 유형 중 6유형과 1유형은 부정적인 것에 많이 기울어져 있지. 6유형에겐 앞으로의 일 중 제대로 될 일이 하나도 없고, 1유형 눈엔 해놓은 일 중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지. 인정해?

일경
:   부정적이란 말은 좀 그렇지만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모님
:   일을 할 때도 완전한 일처리만이 옳다고 여겨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도 있어. 또 늘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에 꽂혀 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을 강조하면서 까다롭게 굴기도 하고….

일경
:   저는 그저 옳은 일을 할 뿐이에요. 혹시 제가 까다롭게 군다면 그건 실수를 적게 하려는 것뿐인데요. 실수해서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조금 까다롭게 느껴져도 미리미리 바로잡는 게 낫지 않나요?

모님
:   에니어그램이 주는 유익 중 하나가 나를 내 입장과 더불어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하는 거잖아. 특히 미성숙한 1유형들은 모든 사람에게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끊임없이 비판하는 까다로운 도덕가가 되기 쉬워. 그런 1유형의 대표 주자님들이 바리새인님들이지. 왜 그럴까? 자.신.이. 옳기 때문이고, 자.신.만.이. 옳기 때문이야. 그런 1유형들 옆에 있으면 왠지 뭔가 지적 받을 것 같고 비판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야.

일경
:   제… 제 옆에 있으면요? 아…. 미성숙한 1유형들이 그렇다는 거지요?

모님
:   왜? 좀 불편해? 조금 화난 거 같은데.

일경
:   아뇨. 화나긴요. 좋은 말씀 해주시는데요. 저한테 약이 되는 말씀 잘 들어야죠.

모님
:   자, 그러면 1유형이 회피하는 것은 뭘까? 다른 유형이 그랬던 것처럼 집착의 반대? 그렇담 불완전? 아니야. 1유형이 회피하는 것은 분노고, 또 근원적인 죄도 억압된 분노야.

일경
:   분노라고요? 화내는 것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님
:   응. 그거!ㅎㅎㅎ 이 부분은 조금만 차분히 들어 봐. 완벽에 사로잡힌 1유형들에게 세상은 도통 공정치가 않아. 기만과 어리석음, 불완전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끊임없이 노력해도 보상이 없어. 때문에 화가 나 있지.

일경
:   그렇죠. 불공평하고,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그러느라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억압하는 부조리한 세상이잖아요.

모님
:   그래. 맞아.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세상임이 분명해. 그래서 화가 나는 것도 이해할 만하지. 문제는 1유형들은 그 분노를 느끼지도, 표출하지도 못하고 억압한다는 거야. 왜? 올바른 사람은, 착한 사람은 화를 내지 않기 때문에! 분노로 인한 공격적 성향을 엄청나게 억압한다고.

일경
:   글쎄요. 그건 아닌 거 같은데요. 저는 그다지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에요.

모님
:   정답!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지. 화가 나긴 나는데도 말야. 실은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대화를 시작하면서 내게는 일경이가 느껴지는 시점이 여러 번 있었거든. 어때?

일경
:   아…. 아닌데. 저 화 안 났어요. 모님.

모님
:   그래…. 회피와 근원적인 죄는 모든 유형에게 가장 맞닥뜨리기 어려운 부분이야. 내가 일경이에게 화가 났다고 다그치는 것도 아니고, 비난하는 것도 아니야. 어쨌거나 1유형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 안에 깊이 자리 잡은 분노로 인한 공격성을 눈으로 보고 인정하는 거야. 또 각 유형의 회피나 근원적인 죄가 그렇듯이 이것들은 타인이 훨씬 쉽게 알아보게 돼. 자신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1유형들의 못마땅한 표정과 불만스런 목소리를 통해 부정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걸 느끼지. 이를 악물고 속으로 '느 즌쯔 흐 은   그든' 하고 생각하지만 이미 악문 이와 긴장된 얼굴 표정이 말해줘. 1유형의 방어기제는 반응 형성인데, 이건 즉시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눈 깜짝할 사이 내부 검열 과정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 결정한다는 거야. 1유형들이 누르고 누르던 화를 결국 분출하고 말았을 때 그 이유를 '내가 화가 난 게 아니라 니가 자꾸 이렇게 불성실하게 일을 처리해서 그러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일경
:   (붉어진 얼굴, 부채질하며) 아휴, 덥다. 저 지금 화 안 났어요. 괜찮다니까요. 모님.

모님
:   그래. 알았어. 음…. 오늘 우리 대화 중에 나왔던 헐랭이 부장님, 스타벅스 가는 크리스천들, 수련회 일정을 잘 안 지키는 청년들에 대한 일경이의 마음을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 봐. 1유형들이 분노를 억압하고 다른 사람들을 강하게 밀어 부친다고 하는데 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냉혹할지 몰라.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더 열심히, 더 잘, 더 올바르게'를 자신에게 요구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게 되는 거야.

일경
:   ……. 제가 저를 못살게 굴고 힘들게 한다는 거 알아요. 가끔 저는 제 안에 제 잘못을 지켜보는 심판관이 있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잠잘 때조차도 제가 옳은지 그른지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저는 어릴 때 '잘했다'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가 늘 뭔가를 지적하셨고…(울먹) 마음 깊은 곳에서 저는 늘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모님
:   (토닥토닥) 그래. 뭐든 잘하려고 애쓰면서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니. 일경아! 성장한다는 것은 자라간다는 것이지 완벽해진다는 게 아니야.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인간이고 피조물인 거야. 이런 우리의 존재론적 위치를 인정하는 것이 완전으로 가는 성숙의 첫걸음이야.

일경
:   불완전해서 인간이라구요?

모님
:   그럼.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에게 골고루 햇빛을 비추시고 골고루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야(마 5:43-48). 아홉 시에 들어온 일꾼이나 다섯 시에 들어온 일꾼에게 똑같이 품삯을 주시는 분(마 20:1-16).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해 보면 좋겠다. 착하고 올바르기에 상을 주고 은혜 주시는 분이 아니야.

일경
:   아….

모님
:   무엇보다 분노는 소중하고 필요한 감정이야. 내 안에 뭔가 얽혀 있다는 신호지. 화낼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그러나 분노를 어떻게 표현할지는 나의 선택이지. 파괴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표출한다면 1유형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데 제대로 기여할 거다. 쾌활한 고요와 참된 인내(성숙의 열매)의 선물이 거기 숨겨져 있어.

일경
:   네. 모님!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10



구민 : 모님!

모님
: 구민이 어서와. 얼굴이 왜 이리 부숭부숭해? 어디 몸이 안 좋니?

구민
: 아… 그게요. 늦잠을 자서요.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온 거예요. 흐흐흐….

모님
: 아하! 구민이가 잠자는 숲 속의 왕자님이지. 호호호. 그럼, 아무것도 안 먹었겠네. 커피랑 토스트 하나 해줄까? 아니면 반찬은 별로 없지만 밥 먹을래?

구민
: 괘… 괜찮아요. 저는 아무래도 괜찮은데 괜히 모님 귀찮게 해드리네요. 뭐 그냥 더 편하신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모님
: 에이그, 됐네요. 뭐 이런 게 귀찮어. 빨리 선택해주는 게 안 귀찮게 하는 거야.

구민
: 아, 네. 그럼 뭐… 토스트….

모님
: 그래 그래. 후다닥 해줄게. 잠깐 앉아 있어. 어디 보자. 커피는… 음… 우리 구민이 브라질 커피 한 잔 맛있게 내려줘야지. 잠시만….






구민 : 커피랑 이렇게 먹으니까 맛있네요. 브라질 커피라고 하셨어요?

모님
: 응, 언젠가 내가 얘기했던 것 같은데, 브라질 커피는 중성적인 맛을 갖고 있어서 블렌딩을 할 때 베이스로 많이 써. 희한하게 브라질 커피만으로는 딱히 개성이 없는데 블렌딩을 하면 다른 커피의 개성을 한층 더 살려준다고 하더라. 자체로는 살짝 맛이 밋밋하지. 

구민
: 마음에 드는데요. 브라질 커피!

모님
: 누구하고도 원만하게 잘 지내고, 겸손하고 관대한 구민이랑 비슷하네. 맘에 들게 생겼다. 호호호….

구민
: 제가 그… 그런가요?

모님
: 그럼~ 평화의 사람(자아 이미지) 구민이잖아! 남의 얘기 잘 들어주고 불화도 잘 조정하고 편견 없이 사람들을 대해서인지 내가 구민이 싫다는 애를 못 봤어.

구민
: 에이, 모님. 무슨요….

모님
: 니가 평화의 사람이란 거 인정 안 한다구? 싫다구?

구민
: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좋죠. 평화의 사람이 되고 싶어요. 늘 평화롭고 싶구요.

모님
: 네 미니홈피 제목이 뭐였더라? '어제와 같은 오늘' 맞지?

구민
: 어, 알고 계시네요. 그냥 써 본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저는 오늘 뭔가 어제와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어요. 그… 그냥 별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으면 싶달까, 그래요.
모님 : 구민이가 말하는 평화가 그런 의미니?

구민
: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아닌가요? 평화가 뭐죠?

모님
: 9유형의 자아 이미지가 '나는 평화롭다'인 것은 결국 9유형이 집착하는 것이 안정과 평화라는 거야. 때문에 안락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있는 상황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하지.

구민
: 안락하고 편안한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모님
: 물론,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어? 평화, 안락함, 안정감…. 다 좋은데 여기에 집.착.한다는 거야. 각 유형이 집착하는 것들이 그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거기에 매여 있다는 게 문제지. 대체로 9유형들이 침착하고 느긋해 보이는데 어때? 구민이 내면도 그러니?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런가?

구민
: 복잡하죠. 딱히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솔직히 복잡해요. 아닌가? 모… 모르겠네요.

모님
: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거야. 어느 9유형이 그렇게 말하더라. 꼭 전화해야 할 데가 있는데 하루 종일 '전화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결국 안 하고, 전화 한 통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고.

구민
: 와, 완전 제 얘긴데요. 실은 아까 여기 오면서 버스를 탔는데요. 커브 돌자마자 햇빛이 쫙 들어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계속 직진이었는데 속으로 '자리 옮겨야지. 옮겨야지.' 하다가 내릴 때까지 그냥 있었어요. 이런 건가요?

모님
: 그래, 그래서 9유형들은 비폭력적인 힘을 쓰는 사람들이야. 중재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꾸물대고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고집을 부려 수동적인 공격을 한다는 거지.

구민
: 가만히 있는데 그게 어떻게 공격이 되나요? 저 자신이 별로 행동하는 게 없는데 공격이라구요?

모님
: 그래서 수동적인 공격이라는 거야. '나는 한 게 없다'고 하지만 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 딱히 표현은 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하지 않을 수 있잖아. 9유형들의 수동적 태도가 오래갈 때 다른 사람을 화나게 만들고,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주로 공격적인 유형들이겠지) 폭발하게 만든다고 해. 결국 9유형들이 그렇게도 지키고 싶은 평화는 가만히 문제만 안 일으키는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반증이지.

구민
: 조금 어려운데요. 약간 알 듯도 하고…. 음… 그런데 좀 쉽게 설명해 주시면…. 제가 아까 제 속이 복잡하다곤 했지만 그건 그냥 뭐랄까? 가끔 저를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없을 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구요. 실은 제가 단순한 사람이에요. 모님.

모님
: 구민이 마음이 좀 상했나? 유형의 어두운 부분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구민이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는 걸 계속 생각하면서 들어줘. 알았지? 늘 언제나 무균질의 평화를 일구고 싶은 9유형이 회피하는 건 갈등과 대결이야. 9유형들이 저항이 가장 적은 방향을 선호하고, 누군가 나서서 선택한 일에 묻어가곤 하는 게 아마 갈등과 대결을 회피하려는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예일 거야. 갈등이 저절로 해결되거나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며 끝까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구민
: 아, 모님! 진짜 저는 싸움이나 그런 복잡한 일이 닥치면요 그냥 스위치가 나가는 것 같아요. 저번에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싸움을 하더라구요. 신기한 건, 싸움이 일어나니까 거의 자동적으로 제 귀가 막히는 느낌인 거예요. 제 몸에는 갈등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나 봐요. 감지되는 순간 모든 스위치가 나가요.

모님
: 와, 그 표현 기가 막히다. 하하하. 그래서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일이 벌어지면 9유형들이 잠으로 많이 도피한다고 해. 회의하다 의견이 안 맞아서 언성이 높아지면 바로 팔짱 끼고 눈 감는 사람들? 눈 감으면 바로 코 고는 사람들? 흐흐흐….

구민
: 으아, 진짜요? 부끄럽다. 제가 잠의 왕자잖아요. 복잡할 땐 자는 게 딱인데….

모님
: 복잡할 때는 잠으로 도피하는 게 딱이고, 더 근원적인 내면의 갈등을 보고 싶지 않아서 쓰는 9유형의 방어기제는 잠보다 깊은 혼수상태, 최면상태라고 하지.

구민
: 풉! 혼수상태요? 이거 원래 9유형 설명에 있는 건가요, 절 놀리시는 건가요? 제가 대체로 정신줄을 놓고 있긴 하지만 혼수상태는 너무 심한 표현이신데요…. 그러잖아도 실은 어젯밤에 아버지께 또 한마디 들었어요.

모님
: 저런…. 취업 문제 때문에?

구민
: 네.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는 아버지는 제가 너무 답답하신가 봐요.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일단 아버지 원하시는 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열심히 안 한다고 속상해 하세요.

모님
: 구민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뭐야?

구민
: 글쎄요…. 그걸 잘 모르겠어요. 사실 웹디자인 쪽이 좀 끌리긴 해요.

모님
: 아, 그래서 작년인가 언제 학원 다니겠다고 하지 않았니?

구민
: 그러려고 했는데요. 제가 그걸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하구요. 그래서 아직….

모님
: 9유형의 근원적인 죄가 뭔지 아니?

구민
: 아까 읽어봤는데 게으름이 더라구요. 그런데 모님, 저 그렇게 게으르진 않아요. 정리도 잘 하고…. 제 방에 한번 와 보세요. 남자방치고 깨끗하다고 하는데….

모님
: 하하하. 그런 의미의 게으름이 아니야. 뭐랄까? 삶 전반에 대한 게으름이지. 누울 수 있는데 왜 앉아? 앉을 수 있는데 왜 서 있지? 하면서 쉽게 살려고만 하는 것? 말하자면 자기 계발에 태만한 자세 같은 것들. '그걸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라고 너 스스로 말하잖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남이 이끌어주길 바라고, 밖으로부터 자극이 주어지길 바라지 않니?

구민
: 아버지가 제게 답답해 하시는 그런 얘기들이네요. 저도 이런 제가 싫어요. 모님.

모님
: 결국 9유형들의 게으름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시시한 존재로 여기는 '자기 비하'라는 함정에서 오는 걸 거야.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지.

구민
: 그런데 모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아까 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자기 비하'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로 낮게 생각하는데, 누구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저희 아버지처럼 답답해 하시는 거요?

모님
: 에니어그램 여정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자신의 유형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은 물론 결국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해. 나는 구민이가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화합하는 게 참 부러워.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난다. 헌데, 그 빛에만 만족하고 있으면 그 빛이 어느 새 어두움이 되기도 해. 평화에 매인 동기가 '갈등'을 회피하는 것임을 알고 인정하고 순간순간 멈출 때 구민이의 빛이 진실로 아름답게 빛나는 거지. 갈등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온몸으로 받아내고, 때로 나를 깨뜨리고 변화시켜서 얻는 게 진정한 평화일 거야.

구민
: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저를 깨뜨리고 변화시키는 걸요. 제겐 너무 어려운 일이죠.

모님
: 못하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9유형이 맛보는 성숙의 열매는 행동인데, 네가 단지 '이제부터 행동하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9유형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지. 말하자면 네 평화유지 자동시스템이 지나치게 작동된다고 느낄 때마다 멈추고, 멈추는 그 순간 너를 지으시고, 네 이름을 아시는 그 분의 손을 잡는 거야. 그거면 되는 거야. 참 쉽죠잉?^^ 쉽고도 어려운 길, 그 길을 우리 함께 걸어가자.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 여정9



(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 도움을 구합니다.


모님, 안녕하셨어요.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입니다. 온 우주에 저 혼자 깨어있는 듯 지금은 저의 불안한 호흡과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이 이 공간을 채웁니다. 여름 끝자락의 타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저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이유들로 불면의 밤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님을 뵙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굳이 사람을 왜 유형으로 구분 지어야 하는지? 고유한 인격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 봐야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인간이란 복잡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인데 아홉 유형 중 하나로 명확하게 구획을 지어버리는 것이 위험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모님께서 자주 말씀하신 ‘머리’로 듣고 머리로 말하는 방식인지 모르겠네요. 한 달여 무더위와 싸우면서 또한 제 자신과 직면하며 싸워야 했던 것은 저의 ‘거리두기’와 ‘감정의 차단’이라는 문제였어요. 아직도 실은 썩 인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제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혼란스럽더군요. 어쩌면 이것이 제 마음의 소리입니다. 이런 것들이 올라올수록 에니어그램 자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모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이런 제게 추천하실 책이 있으신가 해서입니다.


이런 도움을 구하는 것이 망설여졌던 것은 결국 제가 또 다시 ‘지식’에 집착하는 제 유형의 한계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것 아닐까 싶었던 거지요.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모님께 그렇게 판단 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저는 모님 표현대로라면 (아니 본회퍼의 표현이라고 하셨나요?) 결국 사유의 비상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존재인 것을요. 여기까지입니다. - 오필 드림 -



☆ RE : 도움을 구합니다.


오필에게.


먼저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구나. 오필이의 솔직한 이야기들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 지난 번 오필이와 함께 마셨던 탄자니아AA를 마시면서 오필이의 메일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아프리카의 야성을 담고 있지만 그 뒷맛은 부드러운 탄자니아 커피는 외유내강의 오필이를 많이 닮았네. 특유의 깔끔한 산미와 함께 부드러운 쓴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데 마지막에 남는 믿겨지지 않는 단맛이 오늘따라 참 신비롭게 느껴지는군.


먼저! 내가 뉘관데 정중하고 정직하게 도움을 구하는 오필이를 판단할 수 있겠나이까! 오필이의 ‘판단 받지는 않을까’ 두렵다는 표현을 읽으며 심장이 쿵했어. 여타 성격유형 도구가 그렇지만 에니어그램은 유난히 우리 안의 ‘하나님 놀이’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것 같아. 즉 유형으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면 어느 정도 사람들의 행동과 동기가 정리되어 눈에 들어오거든. 그러다보면 늘 우리 맘 한 구석에서 기회를 엿보는 교만이 고개를 쳐들지. ‘내가 너의 동기와 속마음을 안다. 몇 번 유형인 너는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어’ 하면서 말이야. 그런 전제로 강의를 하거나 사람을 대하면 필연적으로 상대방에게 ‘넌 몇 유형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라며 표딱지를 붙이게 되어있어. 단지 유형의 하나로만 이해되는 상대방이 어떻게 자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겠어. 당연히 판단 받는다고 느끼겠지.ㅠㅠ 처음 에니어그램을 배우고 가르칠 때는 더 심했고, 지금도 애써 경계하지만 여전히 그런 우월의식이 나를 지배하는 것 같애. 오필이가 오필이의 유형으로 ‘판단받을까’ 염려하게 되었다는 게 그 반증이지. 혹여 나와의 대화가 ‘너의 모든 걸 알고 있다. 넌 네 틀에서 벗어나질 못해’ 라는 판단으로 느껴졌다면 그건 순전히 나의 불찰이니 용서하길 바래.


그래서 나 자신 뿐 아니라 나를 통해 에니어그램을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은 건 오직 ‘자신을 성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이것이 타인을 판단하는 도구가 될 때는 여지없이 독이 되어버려. 물론 그런 유혹이 늘 있어. 에니어그램을 배우고 나면 어느 순간 사람들의 얼굴이 다 번호로 보여. 또 그런 시각이 전적으로 무익하기만 한 것도 아니야. ‘같은 행동이라도 나와 저 사람의 동기는 이렇게나 다르구나.’를 진심으로 아는 것만으로도 성숙한 관계 맺기가 훨씬 수월해지니까. 다만, 타인을 향해서 쓸 때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라 이해의 수단으로만 들이대야 한다는 것! 허나, 우리가 아니 내가 그리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절감해. 내게 불편한 사람을 빼도 박도 못하게 비판하는 데만 이걸 쓰고 싶어지는 거야. 그래서 에니어그램을 통해 내적여정을 하겠다는 사람은 에니어그램에만 붙들려 있으면 안 돼. 반드시 정직한 마음의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필요해.


오필이가 말한 ‘감정의 차단과 거리두기’가 생각보다 더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을 거란 통찰, 아프지만 귀한 깨달음인 것 같아. 유형을 이해해서 얻는 또 하나의 유익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내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음을 아는 거야. 예를 들어, 누군가 오필이에게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개그프로의 유행어를 가지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면 참아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화의 방식이 각각 다르다는 걸 알기에 처음 한 두 번은 받아줄 수 있을거야. 그에게 있어선 나름대로 친밀함의 표현이라는 좋은 뜻임을 안다면 조금 더 빈번해져도 참아낼 수 있겠지. 그런데 문제는 이게 매일 봐야하는 사람이고 시도 때도 없이 (오필이 쪽에서 보기엔) 의미없어 공허한 말들로 개인적 시간과 공간을 침해하며 들어오면... 생각만 해도 죽음이겠지?^^ 그 정도 되면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나쁘지 않은 동기를 안다해도 별 도움이 되질 않기 십상이야. 그냥 그 사람이 힘든거지. 너의 거리두기 역시 다른 사람에게 같은 맥락일거야.


'나’라는 고유하고 고귀한 인격을 유형의 틀에 집어넣어 이해하는 것, 참 위험하고 편협한 일처럼 보여. 오필이처럼 삶의 다양한 차원을 다면적으로 보려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럴 거야.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비정한 바로 그 잣대로 나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해. 브레넌 매닝은 『아바의 자녀』에서 ‘죄의 본질은 우리의 무시무시한 자기중심성에 있다’고 했어. 유형이라는 틀에 나를 넣어서 이해하는 겸손함이 때로 무시무시한 자기중심성을 발견하고 인정하게 해줘. 그러니까 나를 그 딴 유형 따위에 넣을 수도, 유형보다 말할 수 없이 큰 나의 존재도 볼 수 있어야지.


얘기가 여기까지 가면 오필이가 던진 질문보다 답이 더 복잡해진 듯하네. 에니어그램은 내적여정에 도움이 되는 안내자이고, 내적인 여정이란 영적인 여정과 맞닿아 있어. 영적여정의 지향인 ‘하나님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의 궁극은 신비일 수밖에 없지. 하나님 그 분이 신비이시니까. 마음의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 딱 떨어지는 모범답안이란 있을 수 없어. 진리는 신비야.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테레사 수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대. 많은 문제로 고민하시던 때라 충고를 들을 요량으로 만나자마자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하셨나봐. 장황하게 늘어놓고 입을 다물자 테레사수녀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대. “글쎄요. 하루 한 시간씩 주님을 사모하며 보내고, 잘못인 줄 아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없을 것입니다.” 하셨다는군. 난 내적여정을 가면서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에 이 말씀을 떠올려. 우리 마음의 여정은 단지 우리 마음에서 시작해서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 아래로 신비처럼 나아가는 것임이 분명해. 때문에 마음의 여정을 가면서 부대끼는 일이 생길 때, 뜻하지 않은 아픔을 느끼거나, 누군가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줄 때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돼. 예를 들면, 지난 번 오필이를 만났을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화했음에도 돌아보니 나는 어느 새 ‘내가 널 안다. 인간을 안다’며 교만하게 하나님 놀이를 했었더라구. 그럴 때 기도를 통해서 해독하지 않으면 내가 에니어그램 선생이 된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냐는 거지.


오필이가 물어온 것들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질문들인 것 같아. 에니어그램을 통한 내적여정은 반드시 기도와 함께 해야 하는 것이고, 기도를 통해서 가야하는 길이야. 또 앞서 간 분들의 가르침을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 에니어그램 내적여정을 하면서 좋은 동반자가 될 책 몇 권을 소개할께.


<내 안에 접힌 날개>   리챠드 로,  바오로 딸
<나 주님의 사랑에 안기다>   데이비드 베너,  생명의 말씀사
<영적 가면을 벗어라>   래리 크랩,  복 있는 사람
<마음의 혁명>   클리포드  윌리암스,  그루터기 하우스
<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 펙,  열음사
<마음의 혁신>   달라스 윌라드,  복 있는 사람
<영적 발돋움>   헨리 나우웬,  두란노


책을 자세히 설명하진 않을게. 난이도가 다르고, 저자의 스타일도 다르니까 서점에 직접 나가서 서문이나 목차 등을 보면서 잘 읽혀질 것 같은 책을 먼저 골라 읽어. 모든 책이 다 땡긴다면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고.


커피의 맛과 향을 구분하는 용어들이 있어. 바디감, 신맛, 와인맛, 과일향, 넛트향, 쵸콜릿향, 매운향... 사실 처음 커피를 배울 때는 도통 모르겠더라고. 한 모금의 커피에서 이런 것들을 느끼고 감별해내는 게 장난 같았어. 그저 쌉쌀한 커피향이면 됐지 너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커피를 알아갈수록 막연하기만 했던 그 맛과 향의 미세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알아가는 것들이 더 맛있게 마시는 데 도움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 신비한 존재야. 그런 우리를 유형의 언어로 이해한다는 것은 다분히 작위적이게도 느껴져. 유형이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도 못하지. 신맛, 쓴맛으로 불리는 언어의 수식이 커피가 아닌 것처럼 유형의 언어로 설명된 우리가 다가 아니야. 그러나 유형의 언어로 설명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신묘막측하게 창조된 신비로운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 되지. 자, 여기까지!^^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7

 

 

칠규 : 우리 모니이~임. 안녕하세요. 우하하하하.

모님 : 그래, 우리 칠규 어서 와라. 너 아까 전화했을 때 진짜 사거리였어? 아니었지? 너!

칠규 : 빙고! 하하하하. 어떻게 아셨어요? 실은 올림픽도로 빠져 나오던 중. 하하하. 그게요 모님, 약속은 원래 깨지고 미뤄지라고 있는 거거든요.

모님 : 어련하실라구요. 어이구, 저 자동화된 합리화! 덥지? 커피 아이스로 줄까?

칠규 : 네, 모님. 그거 있잖아요. 캬라멜향 나는 달착지근한 아이스커피요. 예전에 해주셨던 그 커피 주시면 안돼요?

모님 : 안되긴. 근데 너 요즘 몸 만든다며. 설탕 든 커피도 마셔?

칠규 : 아뇨, 평소엔 안 마시는데요 오늘 하루쯤 다이어트는 넣어두려고요. 하하하하.

 



칠규
: 와, 대~애박! 진짜 맛있어요. 모님, 저 이거 다 마시고 한 잔 더 마셔도 되죠?

모님 : 그래. 맛있는 건 참을 수가 없지?^^ 너 어제 친구 결혼식 사회는 잘 봤어? 결혼식 사회는 처음이라고 했지?

칠규 : 완전 다 쓰러졌어요. 진짜 재밌었어요. 하객들, 주례선생님도 엄청 근엄하신 분인데 쓰러지셨다니깐요. 진짜 진행 잘 했어요.

모님 : 푸하하하. 자기 입으로 대놓고 잘했대. 너 오늘 나랑 얘기하면서 ‘진짜, 대박, 완전’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나 세 봐야겠다.

칠규 : 제가 그 말을 그렇게 많이 쓰나요? 암튼 결혼식 진짜 대박이었다니까요. 빵빵 터졌어요. 왜 웃으세요? 진짜예요.

모님 : 알았어. 진짜야. 우리 칠규가 마이크 잡았으면 분위기 바로 떠주는 거지 뭐. 썰렁하게 식어가는 분위기 확 불지펴주는 사람이 칠규잖아. 7유형 칠규의 달란트지.

칠규 : 바로 강의모드로 가시는군요. 계속해 주세요.

모님 : 계속 칭찬을 하라는 거지? 7유형의 자아 이미지, 즉 7유형들이 외부세계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는 이거지. 나는 재밌는 사람이다. 행복하다. 멋지다.

칠규 : 아니, 그렇게 드러내고 싶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니까요.

모님 : 으이구, 알았어. 알았어. 7유형들,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주변에 에너제틱한 힘을 부여하는 다재다능한 사람들이야.

칠규 : 저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재롱둥이란 말 많이 들었어요. ‘기쁨 주고 사랑받는~’ 이거 제 로고송 이예요.

모님 : 그래. 모든 유형이 그렇듯이 이렇게 밝은 면 뒤에는 그림자 같은 집착이 있기 마련인데 7유형은 쾌락과 재미에 집착을 하지.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 쾌락과 재미야. 동의하니?

칠규 : 뭐든 재밌는 게 좋은 거 아녜요. 강의도 재밌어야 쏙쏙 들어오고, 설교도 웃기는 걸 빵빵 한 번씩 날려줘야 졸립지 않잖아요. 저는 뭐든 재밌고 웃기게 해주는 건 기본적인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모님 : 그러니까 지루한 건 최악이지?

칠규 : 그, 그렇죠. 그리고 저는 슬픔과 좌절에 싸여 있는 건 믿음이 없는 것 같이 느껴져요.

모님 : 강의든 설교든 심지어 사람이든 지루해지면 바로 끊고 싶지?

칠규 : 사람이요? 아, 모님 인간관계에서 말이죠. 저는 제가 사람들과 진심으로 관계 맺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친구 놈들이 그런 얘길 해요. 제가 어떨 때 너무 차갑대요. 사람 좋은 것 같지만 영 속 깊이 가까워지질 않는다면서요. 제가 그렇게 보이세요? 저는 따뜻한 사람인데…….

모님 : 대체로 7유형들의 인간관계가 피상적으로 느껴져. 관계 자체보다는 관계 안에서 얻어지는 재미(그 재미가 각각의 7유형마다 다르게 해석되겠지만)가 중요하니까. 사실 그렇지 않니? 사람 좋아하지만 같은 사람을 아주 오래 만나진 않지 않아? 왜? 같은 사람을 오래 만나면 결국 그 사람의 슬픈 얘기도 들어야 하니까.

칠규 : 어...어... 그런가? 영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말에 팍 찔리긴 했어요. 그런데 그게 슬픈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동기라는 말씀이죠?

모님 : 재미에 집착하는 7유형들이 회피하고 싶은 건 고통이야. 인생의 슬픔, 어려움, 갈등, 불쾌함 등을 악덕으로 여기면서 멀리하려 하지. 그래서 7유형들이 그렇게도 ‘긍정의 힘’에 열광을 하는 것일 거야. 아까 말한 친구관계 역시 ‘고통스럽지 않은 지점까지만 관계 맺자’는 거 아니겠어?

칠규 : 대박! 모님, 레알 귀신이신데요. 그랬던 것 같아요. 진짜. 저는 저 붙들고 힘든 얘기하면서 찔찔거리면 그게 참 싫어요. 그래서 바로 노래방 끌고 가서 신나는 노래 불러주고 그랬거든요.

모님 : 현실 즉, 지금 여기에 산다는 건 사실 고통이잖아. 7유형들이 ‘나는 행복하다. 즐겁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엔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과장된 공포가 있을 거야.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를 상상하는 것에 열광하기도 하지. 또 다양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현실로부터 도망가기도 하고.

칠규 : 하하하……. 계획 세우기요? 아놔, 진짜. 저 기말고사 끝났잖아요. 저는 시험이 가까워 오면 시험공부 계획을 쫙 짜는 게 참 재밌어요. 재미? 괜히 재미란 말 쓰기도 이젠 좀 껄끄럽네요. 하하하……. 암튼요. 그렇게 계획을 세우면 마치 제가 1등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계획을 지키느냐? 물론 못 지키죠. 큭큭큭. 그러면 며칠 있다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 되는 거구요. 그러다보면 시험 전 날. 저는 당일치기 체질 이예요. 하하하. 아, 진짜. 여행을 가더라도 계획을 세울 때가 정말 미치도록 좋지 막상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는 귀찮게 느껴질 정도예요. 이게 현실로부터 도망가는 거라고요?

모님 : 이상주의나 계획세우기 등 머릿속으로만 도망가는 게 아니라 실제 일상생활에서도 7유형들은 장례식이나 병원 같은 곳을 가는 것도 힘들어 하지.

칠규 : 그, 그래요? 싫어한다기 보다는 가급적 안 갈 수 있으면 안가고 싶었다는.... 헐~

모님 : 예, 됐고요. 그게 그거고요.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어. 십자가의 고통은 스킵하고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은 없다는 걸 7유형이 알아듣기 시작하면 한 걸음 크게 내딛는 게 될 거야.

칠규 : 모님, 저 정말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실은 모님께 약속했던 거 못 지켰어요. 그 술자리 가지 않겠다고 했었잖아요. 저 거기 갔어요. 게다가 어느 순간 제가 2차, 3차를 주도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순간이 되면 브레이크가 걸리질 않아요. 에라, 모르겠다. 오늘까지는 끝까지 가보자 하게 돼요.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모님 : 으이구, 솔직한데다 선수까지 쳐버려서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두칠규!

칠규 : 죄송해요. 이게 진짜 마지막이었어요. 정말 이젠 안 갈 거예요.

모님 : 7유형의 근원적인 죄가 뭐라고 했지?

칠규 : 무절제, 폭식, 방종이라고 하셨었죠. 무절제는 좀 알겠는데요. 저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안잖아요. 폭식이 근원적인 죄라는 게 좀 그렇지 않아요?

모님 : 내 눈을 똑바로 봐(찌릿!). 정말 많이 안 먹어? 니가 정말 맛있고 근사한 것도 절제하면서 먹을 수 있다고? 놀래지마. 농담이야. 무절제라는 키워드로 폭식과 방종을 이해하면 돼. 7유형들은 ‘좋은 것은 언제나 많.을.수.록. 좋다’라 하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사고……. 좋은 것에 대해서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싶어 하질 않아.

칠규 : 아, 맞아요. 저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 고문 이예요. 그렇게 각각 좋은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완전 갈등 쩔어요. 남기더라도 한 그릇 씩 두 개 다 시켜서 먹고 싶다니깐요. 그래서 한 그릇에 반반씩 주는 짬짜면이 나왔을 때 완전 열광했잖아요.

모님 : 누구보다 지혜롭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찬란하게 누린 솔로몬 왕을 생각해보자. 솔로몬의 궁에는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이, 많이, 많이 있었는지 찬찬히 성경을 읽어봐라. 무엇보다 솔로몬이 좋아했던 여자! 바로의 딸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모압 여자, 암몬 여자, 에돔 여자, 시돈 여자, 헷 여자도 좋아했대(왕상11:1). 천 명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고, 그 아내들은 결국 그 지혜로운 솔로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 우상의 산당을 짓게 만들었고, 망하게 했어. 천 명의 아내를 소유하기 까지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지겠다는 솔로몬의 무절제가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거야.

칠규 : 휴우……. (한숨) 다다익선이라는 게 독이 될 수 있는 거군요. 7유형에게는, 아니 적어도 저에게는요.

모님 : 칠규야. 네가 고민하고 결심하는 것들 말이다. ‘오늘은 우울하니까 딱 한 편만 보고 다시는 안 봐야지. 딱 오늘만 가고 안 가는 거야. 이거만 사고 다시는 안 사야지’ 그러면서 또 다시 무너지곤 하는 지점 말이다. 무절제한 삶을 끊어버리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하는 것도 필요해. 하지만 그 보다 먼저 네 영혼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텅 빈 공간이 있음을 알고 인정해야 한단다. 그 공간은 온갖 좋은 물질적인 것, 멋진 것, 즐겁고 행복한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어. 6유형이 안전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규칙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여 그 공허함을 메우려하는 노력과 같지. 채우려 할수록 목마름만 더할 뿐이야. 그 공간을 맞닥뜨리는 것이 두려워 지레 재미와 신나는 것으로 내달리지 않고 고통스런 공허감을 네 것으로 받아들일 때 넘치도록 채우시는 그 분의 은혜를 느낄 수 있을 거야. 말로 하기 쉽다고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만.....

칠규 : 휴우, 우리 모님 또 나를 헷갈리게 하시며 고통 가운데 밀어 넣으신다. 일단 알겠어요. 모님, 너무 복잡해져서 뇌에서 과부하 걸리는 소리가 나요. 이 맛있는 커피나 한 잔 더 주시면 마시고 가서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볼게요.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 -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6 

 

 
☆ 모님, 너무 힘들어요

모님, 안녕하셨어요. 뵌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문자도 아니고 카톡도 아니고 뜬금없 메일을 드려요. 주일에 뵈었을 때 힘든 일 있냐고 물으셨죠? 괜찮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제가 괜찮지가 않나봐요.ㅠㅠ 솔직히 씀드리면 요즘 매사에 의욕도 없고 힘이 들어요. 딱히 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지난번 모님을 뵙고 난 이후 서서히 마음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맞아요. 늘 근심 걱정에 휘둘리며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면서 마음에 바람 잘 날 없이 살고 있는 게 저예요. 그리고 그걸 명확하게 짚어주시니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나를 어쩌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모님 MBTI 검사해주시고 유형을 설명해 주실 때는 정말 속이 후련했거든요. 남과 다른 모습들에 대해 열등감에 시달리던 제가 그야말로 부족한 점을 ‘다른 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게 없는 자질들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내향형이고, 세심하고 꼼꼼하며 책임감 강한 나를 좋아해야겠구나’하고 말이요. 헌데 이제 와서 저 자신의 장점들이 나쁜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려요.ㅜㅜ(죄송해요.) 심지어 ‘죄’라고 말씀하시는데… 뭐 그리 죄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맞아요. 제 안에서 저를 움직이는 큰 힘은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 될까 두려워 늘 대비하고, 그러고도 하는 걱정 근심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을 수가 어야죠.ㅜㅜ 그러지 않을 방법을 모르겠는데 ‘죄’라고까지 하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것도 제가 6유형인 탓일까요? 모님께 실망을 드리는 말씀이 아닐까 싶어서 망설여졌지만 늘 그렇듯이 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실 줄 믿고 잠 안 오는 밤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봤어요. 제 맘 아시죠? 모님. 답신 기다려도 되겠죠?^^ 그럼, 안녕히 계세요.

림.

 

☆ RE : 모님, 너무 힘들어요

육미에게.

하루 종일 비가 오는구나. 이렇게 비오는 날에는 커피 한 잔할 수 없지. 구수하고 달달한 커피가 땡겨서 오랜만에 봉지 커피를 하나 뜯었다. 가끔 내가 인스턴트 커피, 것두 프림 설탕까지 넣은 커피 마시는 걸 보면 ‘자칭 바리스타께서 이런 커피도 마시냐’며 놀라더라만.^^ 내게 황홀한 커피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일명 ‘삼박자’ 커피가 난 여전히 싫지 않아. 달달한 커피 한 잔 하면서 육미의 메일을 다시 읽으며 내적인 여정을 되돌아본다. 육미가 겪는 내면의 전쟁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더더구나 6유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해주고 싶구나. 나도 지나온 길이라는 얘기고, 오늘은 그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

 

MBTI를 만났을 때

MBTI를 접한 지가 10년이 훨씬 넘었구나. 웃기는 얘기 하나 해줄까? 처음 MBTI 검사를 했을 때 ‘내향형’으로 나왔단다. 맞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니가 무슨 내향형이냐
외향형이 확실하다는 거야. 내가 그 친구와 얼마나 싸웠는지 아니? 것두 진심으로 화를 내면서 ‘나는 내향이다’ 주장하면서 말이야. 지금 네가 나를 알다시피 내가 도대체 어디를 봐서 내향형이냐?^^ 생각해 보 당시 나는 ‘외향형’을 ‘나대는 사람, 남을 통제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애. 그게 비난으로 들렸나봐. 나의 외향적 에너지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중에 내가 외향형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더라고. 내향형이라고 눈물겹게 우겨대던 자기방어에서 놓을 뿐 아니라,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의 간극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으니까. 말하자면 크게 성숙의 한 걸음을 내디딘 때였지. 심리유형 도구가 주는 일차적 유익은 나 밖으로 나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인 것 같아. 그야말로 남과 다를 뿐인 일부분 때문에 열등감에 빠, 내가 잘못 이름 붙인 용어들에 민감해져 불필요하게 나를 방어할 때 좋은 처방이 될 수 있. 무엇보다 내게 있는 성격적 특성이 나만의 달란트라는 것을 인정할 때 한껏 자유로워지는 것 .

암튼, MBTI를 친구삼아 짧지 않은 시간 내면 여행을 하며 자타가 함께 인정하는 내 유형(true type)을 찾았어. 마음과 행동은 훨씬 자유로워졌어. ‘내가 원래 익살녀구나~’ 하면서 열심히 재미를 쫓아다니고, 분위기 썰렁해지면 얼른 빵 터지는 농담 하나 던져 분위기 업 시키고, 누구보다 밝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말이야. 나를 찾았다는 자유를 만끽하며 내 성격의 밝은 면에 충실하며 살았지. 헌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 어떤 은 것이 느껴졌어. 내가 특별한 재능과 사랑으로 공동체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재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었다는 거야. ‘분위기를 띄우지 마라, 친절하지 마라, 칭찬하지 마라’고 하면 죽음인 거야. 그러고 보니, 내 장점 안에 내 공로는 없더라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록 친절, 웃음, 재미, 긍정적인 것과 멋진 것에 지나치게 매여 있는 나를 보게 되었지. ‘아니요’라는 부정적인 말 한마디를 못해서 하루 종일 시어머니 사 노릇을 하고 돌아와 마음 복닥거리던 밤이 기억 나. 맘은 부글거리는데 내색도 못하고 헤헤거리며 ‘괜찮아요’하며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서는 억울하고 화가 나고 견딜 수가 없었지. 그러나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내 행동과 동기의 분열이었어. 내 행동은 사랑 비슷한 것일지 몰라도 내면의 동기는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는 거야.

장점이 있는 그 지점에 바로 내 연약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좌절스러웠어.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 ‘저 사람과 내가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겨 먹었다는데 어쩔 것인가? 정반대 유형인 ESFP와 INTJ는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만나 대화와 삶의 일치점을 찾을 것인가?’ 이러면서 다시 길을 잃었지.

 

나를 만나는 또 다른 길

길을 잃은 그 지점에서 나는 영적으로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가고 싶은 갈망이 커졌어. 그 즈음 에니어그램을 만났는데, ‘너의 빛! 너의 장점! 멋지다! 박수 짝짝짝!’ 이렇게 접근하질 않더라고. 오히려 내가 ‘재미와 긍정’에 매여 있는 것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동기라고 말해
주더라. 조금만 고통스럽고 무거워져도 견디지 못해서 웃기고 웃어버리면서 그게 진짜 기쁨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던 거야. 그동안은 내 유형의 빛을 붙들고 살았다면 에니어그램을 만난 시점부터 내 그림자 또한 서서히 끌어안 갈 수 있게 된 것 같애. 물론 고통스런 작업이었지. 어쩌면 지금의 육미처럼 말이야. ‘내 동기가 고통을 무작정 회피하려는 거라면, 지금까지 내 기쁨이 반쪽짜리라면 나는 이제 어쩌라는 말이냐! 동기가 나쁘니까 기쁘지도 말고 행복하지도 말라는 말이냐!’ 바로 ‘죄’라는 거대한 벽 앞에 맞닥뜨렸어.

‘근원적인 죄’라는 말이 불편하다고 했지? 이 찬송 아니?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나는 오랫동안 이런 류의 찬양은 회심하기 전에 부르는 찬양일 거라 생각했어. 여기서 말하는 ‘죄 있는 자’는 ‘믿지 않는 사람’이겠거니 했으니까. 그러니까 모태신앙인 나는 해당사항 없는 거지. 그 ‘죄’를 도덕적인 죄라고 규정한다 해도 그닥 나에게 유죄판결 내릴 것이 없는 거야. 딱히 눈에 띄는 도덕적인 죄를 지은 건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명령은 좀 많이 어겼지. 그런데 이건 누구나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거니까…. 이런 식으로 보면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할 때 내 자리는 결코 ‘죄 있는 자’의 자리가 아니야.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님 옆에 안타까움과 약간의 자부심으로 힘이 들어간 어깨를 하고 그들을 향해 함께 손짓하고 있었던 거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향하는 길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죄야. 사랑하는 육미야, 죄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은총의 자리란다. 유형의 ‘근원적인 죄’를 통해서 아니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육미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거다. 네가 아무리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도 스스로는 결코 안전해질 수 없어. 책임감 있는 행동이나 미래를 대비하는 걱정과 염려를 당장 그만두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영혼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텅 빈 공간이 있는데 네 유형의 집착으로 그것까지 다 채워보겠다고 애쓰는 걸 멈추라는 거야. ‘혼자서도 잘해요’라며 하나님 손 뿌리친 자리가 유형의 근원적인 죄라면 그저 거기서 뿌리쳤던 사랑의 손을 다시 잡는 거라고. 어렵게 들리니?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내 마음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며 자기방어라는 것을 조금씩 더 깨달아가던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이었어. 기도하면서 돌이켜보니 아주 점수를 후하게 줘도 내가 5% 정도의 선한 동기와 95% 이상의 자기방어적 동기로 살아가고 있더라. 절망적인 그 순간에 내 마음에 울리는 말씀이 있었어. ‘얘야, 너무 놀라지 마라. 네가 깨달은 그것을 나는 이미 보고 있었단다. 너는 너 자신을 속인 5%가 하나님인 나까지 속일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내가 어찌 모르겠니. 얘야, 설령 99.999%가 순전하지 않은 동기였다 할라도 괜찮아.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널 사랑했고, 네 안에 있는 5%의 나를 향한 갈망과 사랑을 보고 그저 기뻤단다. 95톤의 무거운 짐을 내게로 와 내려놓고 쉬어. 깃털처럼 가볍고 쉬운 사랑이라는 멍에와 짐으로 바꿔줄게. 너는 이 깃털 같은 짐 하나만 갖고 행복하게 살아라. 그게 내가 너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MBTI가 열어준 내면의 여행은 내겐 달고 구수한 삼박자 인스턴트커피 같았어. 지금은 신선하 맛있고 유해 첨가물도 없는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지. 그 쓴 걸 왜 마시냐 하지만 신선한 원두로 잘 뽑은 에스프레소의 크레마에 800여 가지 향이 난다는 거 아니? 영성적으로 접근하는 에니어그램은 내겐 당장은 입에 쓰지만 그 깊은 풍미를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에스프레소 같아.^^ 그러나 육미야, 인스턴트든 신선한 원두든 커피는 기호식품일 뿐이야. MBTI든 에니어그램이든, 성격유형적 접근이든 영성적 접근이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 우리의 목적은 ‘사랑이신 그 분’이다. 우리 육미 의문이 좀 풀리고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같이 있으면 예가프 한 잔 내려서 나눠 마시면 좋겠구나. 더 궁금한 얘기들 또 나누자. 평안을 빈다.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5






육미 : 모님, 드디어 오늘이 왔네요. 어젯밤에 살짝 잠 설쳤어요.

모님 : 왜? 모님 독대할 생각에 설레여서? 호호.

육미 : 네? 네, 물론 그렇기도 하구요. 좀 떨리기도 하구요. 6유형에 대해서 설명도 해주실 거지만 저도 말을 잘 해야 할 텐데. 혹시 제가 6유형이 아닌데 6유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고.

모님 : 6유형일까 봐 걱정, 6유형이 아닐까봐 걱정? 걱정근심 주식회사 사장님! 걱정 잠시 접어 두시고 커피 한 잔 드십시다. 아침에 커피 마셨니?

육미 : 네. 그런데 또 마실래요. 잠도 깨야겠구요.

모님 : 너 두 잔 마시면 심장 뛴다고 안했니? 부드럽게 까페라떼 해줄까?

육미 : 좋은데……. 번거롭지 않으시겠어요? 그냥 아무거나 주셔도……. 카페라떼 주세요. 흐흐흐.


6유형

자아이미지 :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충실하다

집 착 : 안전

회 피 : 일탈

근원적인 죄 : 두려움(공포)

방어기제 : 투사

성숙의 열매 : 용기

 

육미 : 감사합니다. 아, 부드럽고 커피향도 너무 좋은데요.

모님 : 직장에선 무슨 일로 그렇게 마음이 복닥거렸어?

육미 : 실은 해외지사에 자리가 하나 났어요. 제가 전부터 해외근무 하고 싶어 했던 것 아시죠? 저랑 친한 팀장님이 그 자리에 제가 갈 수도 있다고 귀띔을 해주시더라고요.

모님 : 그래? 잘됐네. 충직하고 성실한 육미를 알아봐 주는구먼. 육미로 말하자면 책임감 있고,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 공동체에 충성을 다하는 변함없는 사람 아니니. 비오는 수요일에도 수요예배 빠지지 않는 사람, 육미! 하하하. 잘됐다. 좋겠네.

육미 : 그런데 좋지가 않아요. 과연 가서 잘할 수 있을까 싶고, 특혜라고 동료들이 뒤에서 뭐라 하지 않을까, 이제 막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중간에 가야하면 책임감 없는 행동이잖아요. 이래저래 불안해 죽겠어요.

모님 : 게다가 정말 가게 되기는 할까도 걱정되고? 가서 잘못되면 여기서 근무하는 것보다 못하게 될까 싶고, 또…….

육미 : 어? 어떻게 아셨어요?

모님 :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잘못되고 실패할 모든 경우를 나열하면 육미 마음!^^

육미 : 그.그렇죠. 아……. 저는 왜 이럴까요? 모님!

모님 : 에니어그램의 각 유형마다 끝끝내 놓지 못하고 붙드는 집착이 있어. 6유형에겐 그게 ‘안전’이야. 어떤 의미에서든 6유형은 어린 시절에 ‘신뢰감’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키워나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고 해. 부모가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분이었거나, 아이에게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거나, 냉정했거나 했거나……. 각각 경험은 다 다르겠지만 6유형에게는 ‘안전하지 못함’에 대한 뼈아픈 기억이 몸과 마음에 새겨져 있다고 해야겠지.

육미 : 안전이라는 말이 제 심금을 울리는 말이기는 하죠. 저는 예나 지금이나 아빠가 무섭긴 하지만 ‘신뢰감이 형성이 안됐다’ 이런 건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모님 : 같은 유형이라고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이 똑같지는 않아. 같은 경험에도 어린 시절의 내가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해서 내면화 했느냐가 문제니까. 정직하게 마음에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해.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져보자. 암튼, 6유형들은 안전하고 확실한 것만 추구하려고해. 그런데 인생살이가 어디 그렇게 안전하기만 하냐고. 세상은 너무 위협적인 곳 아니냐.

육미 : 그렇죠! 그러니까 항상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 살아야지요.

모님 : 그래 항상 대비하니깐 대비가 되시든가요?

육미 : 네? 아, 하하하……. 대비가 되도록 해야죠. 갑자기 이렇게 예상에 없는 문제를 내시면 당황이……. 그러고 보면 저는 규칙과 정해진 틀어 벗어나 갑자기 생기는 일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게 약한 것 같아요.

모님 : 그래서 안전에 붙들린 6유형이 극구 회피하고자 하는 ‘일탈’이라는 거야. 6유형들은 규범, 법, 정해진 대로, 상식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잘 지키지. 그런데 그 동기가 뭐냐? 위협적인 세상에서 이런 외적 권위라도 부여잡고 있으면 그나마 안전하지 않겠냐는 거야.

육미 : 그래서 그런지 뭔가 정해진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걸 보면 화가 나는 것 같아요.

모님 : 정도에서 벗어난 ‘일탈’이라는 것은 6유형들이 그렇게도 목숨처럼 지키고 싶은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니까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의 일탈도 봐줄 수가 없겠지.

육미 : 제가 그래서 ‘다워야 한다’라는 말을 좋아하나봐요. 학생은 학생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목사님은 목사님답고……. 제발 그렇게 각자 지킬 것은 지키는 세상이었음 좋겠다고요. 아, 나 왜 이리 흥분을 하지. 저 좀 흥분했죠? 흐흐흐…….

모님 : 그러게 말이다.

육미 : 아, 어제 운전을 하고 가는데 집 앞 도로에서 어떤 고딩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차도로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옆에 버젓이 인도를 놔두고 말예요. 순간 너무 너무 화가 났어요. 클락션을 빵 울리니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는데도 계속 화가 가라앉질 않는 거예요. 아우, 그런 인간들 때문에 속이 부글거리는 게 한 두 번이 아녜요.

모님 : 단지 인도 놔두고 차도로 걸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난거야?

육미 : 아니, 그러니까 거기가 커브였는데요 제가 못 봐서 칠 수도 있었잖아요.

모님 : 그 짧은 순간에 벌써 머릿속에선 교통사고 났고, 119 부르고, 응급실까지 갔구먼.

육미 : 헤헤헤……. 보험처리까지 끝났죠.

모님 : 그러니까 그 순간 치밀어 올랐던 감정은 차도로 걷는 고딩 때문이 아니라 육미 안에 있었고 순간적으로 건드려지고 증폭된 ‘두려움’ 때문이라는 거지. 그것이 6유형의 근원적인 죄야. 늘 걱정, 근심, 불안, 공포에 시달리는데 문제는 이것이 어디서 오느냐? 밑도 끝도 없는 온다는 거고, 이유 없는 두려움이라는 거지.

육미 : 으아, 밑도 끝도 없지는 않아요. 모님. 사고가 날까봐 그런 거잖아요.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시면 좀 억울한데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다…….라는 말씀이죠? 아, 좀 혼란스러운데……. 이런 기억이 있어요. 어렸을 적에 어느 날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서 아빠한테 무지 혼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놀다가 또 늦은 거예요. ‘오늘 집에 가면 죽었구나’하고 각오를 하고 들어갔는데 아무 일이 없었어요. 이상하게 혼날 예상을 하고 들어가면 안 혼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면 혼나는 거예요. 이 때 부터 저는 일이 잘못되는 최악의 경우를 끝도 없이 상상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요. 실은 그 상상 속 불안과 공포 속에 있는 게 차라리 편한 것 같아요. 어, 이게 지금 뭐라는 거지? 암튼, 그래서인지 제가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려 하거나 나쁜 뜻이 있는 게 잘 보여요.

모님 : 하하, 정말 그럴까? 물론 6유형들은 부조리한 것과 의심스러운 것을 감지하는 육감이 있다고 해. 그런데 이게 항상 맞겠느냐는 거지. 6유형이 쓰는 주된 방어기제는 ‘투사’야. 자신 안에 있는 부정적인 동기가 타인에게도 있다고 상상하는 거지. 그래서 타인들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배후에 감춰진 것을 찾아내려 하지. 또 자신이 읽어낸 게 진실로 맞다고 생각하는 게 투사야. 좀 과장하면 6유형들 ‘음모론자’라고 부를 수 있겠다. 늘 의심하고, 뭔가 음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하는 거 말이야.

육미 : 허거걱! 그…….그게 투사군요. 왜 이리 얼굴이 화끈거리죠?

모님 : 자신의 유형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면 에니어그램이 주는 선물의 더 깊은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은 거야.

육미 : 모님, 저의 두려움이 죄라는 말씀에 대해서 한 번 더 설명해 주세요.

모님 : 여기서 말하는 근원적인 죄란 도덕적인 죄가 관계적인 죄로 이해해야 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진짜 너 자신과 단절시키기 때문에 죄지.

육미 : 두려운 건 그냥 두려운 거잖아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모님 : 그렇지. 말 잘했다. 두려워하니까 사람이야. 애초부터 혼자 힘으로는 안전할 수 없는 존재가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잖아. 자신의 안전을 자신이 지키겠다고, 지켜야만 한다고 온 몸에 힘을 주고 사는 사람이 단적으로 6유형이라는 거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붙들고 씨름하는 거나 다름없지. 게다가 언젠가 네가 말한 것처럼 불안을 더 큰 불안으로 해결하려고 하잖아.

육미 : 그렇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죠. ㅜㅜ

모님 : 밑도 끝도 없는 정체불명의 두려움은 하나님을 믿지 않음이고, 꺼진 불 다시 보고 또 보고 단속하고 또 단속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거라는 환상 또한 하나님 노릇하겠다는 것이니 이것이 죄가 아니고 무엇이냐?

육미 : (울먹) 모님, 저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모님 : 두려움을 더 큰 두려움으로 피하지 말고 하나님께 피해야지. ‘걱정 근심 안전제일’ 시스템이 자동 테이프처럼 돌아가는 걸 알아챌 때마다 ‘어, 내가 또 이러고 있네.’ 하고 멈추는 거야. 멈추는 순간 우리 안에 이미 계시는 성령님의 안전한 품으로 피해야지. 네가 있는 그 곳, 성령님의 내미는 손을 붙잡기만 한다면 언제나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야.

육미 : 알 듯도 모를 듯도 하지만 아주 작은 빛이 마음에 비치는 것 같기도 해요. 감사해요. 모님, 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또 찾아뵐게요.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3

 

 

 

최근 리더모임을 하면서 팔수칠규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 그 이후 둘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해결을
이석이가 중간에서 애를 썼나보다. 결국 셋이서 모님의 거실을 방문했다.

 

모님 : 팔수와 칠규 어려운 걸음 해줘서 고맙다. 내키지 않는 자리일 텐데 함께 와줘서 고마워. 이석이가 중간
에서 애를 많이 썼구나. 아무튼 이렇게 같이 얼굴 보게 되어 다행이다.

칠규 : 모님, 뭐 너무 심각하게 생각 안하셔도 돼요. 저희 뭐 거의 다 풀었어요. 팔수가 또 마음이 넓잖아요.
안 그러냐? 팔수! 하하하하.


팔수
: 됐거든. 내가 모님 명령이라 왔다. 이석이 얼굴도 있고. 나 너랑 농담하고 그럴 기분은 아니다. 알겠냐.


이석
: 야야야……. 이제 그만 해라. 모님, 저희 커피 주시는 거죠?


모님
: 그래, 오늘 기가 막힌 커피가 있어. 평소에 잘 못 마셔보는 커핀데 블루 마운틴 생두를 선물 받았단다.
 너희 주려고 공들여서 볶았지. 커피의 맛은 보통 신맛, 쓴맛, 단맛의 조화로 설명하는데 블루마운틴은 세 가지
 맛이 조화롭기로 유명해. 커피 준비할게.





< 장 중심 >

8 : 외면화된 유형
9 : 핵심유형
1 : 내면화된 유형

무게중심 : 하복부와 소화계
주요관심 : 자신의 의지와 욕구, 힘과 정의
지배적 정서 : 분노

< 가슴 중심 >

2 : 외면화된 유형
3 : 핵심유형
4 : 내면화된 유형

무게중심 : 심장과 순환계
주요관심 : 타인 눈에 비친 자기 이미지
지배적 정서 : 불안

< 머리 중심 >

5 : 내면화된 유형
6 : 핵심유형
7 : 외면화된 유형

무게중심 : 대뇌와 신경계
주요관심 : 객관적 이치, 논리
지배적 정서 : 두려움





모님 : 햐아, 커피맛 좋다. 커피의 맛은 어떤 커피냐 보다는 누구와 마시느냐에 좌우되는 것 같아.
이렇게 너희 셋과 함께 마시니 진정한 의미에서 ‘조화’의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다.

 
이석
: 캬, 세 가지 맛의 조화라. 커피 맛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의미가 좋네요. 모님. 그렇지, 얘들아.

팔수, 칠규 : (힐끗 서로를 바라보면 뻘쭘)


모님
: 오늘은 에니어그램의 9유형을 설명하기 전에 3중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자신의 ‘유형’을 찾
는 것보다 먼저 ‘중심’을 찾는 것이 순서라고 볼 수 있어.

칠규
: 아까 읽어보니까 3중심이 장중심, 가슴중심, 머리중심이라는 거고, 저는 머리중심인가보네요. 이석이는
 가슴중심, 팔수는 장중심인가보죠? 장중심은... 보자... 분노라... 장팔수, 이거야. 이거. 너의 그 폭발하는 분노
에 내가 아주 죽겠다니깐. 너 진짜 거 아무데서나 버럭 하는 그 성질 좀 죽여. 너는 진짜…….


팔수
: 야 임마! 너 진짜 꼬치꼬치 따지고 들고 말 많은 거 질색이야.

이석
: 어우... 야... 너희들... 자자... 커피 마시자. 모님! 말씀해 주시죠.


모님
: 호호호. 이석아!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얘네들 하고 싶은 말은 하도록 둬라. 너희들 10년 지기 친구고 서
로 신뢰하는 사이잖아. 본론으로 가자. 장(본능), 가슴, 머리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 원래 하나님께선 조화로운 세 원천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어. 헌데 이 중 한 곳에 에너지가 고착된
 것이 3중심이란다.


팔수
: 아, 또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냥 장중심이 어떤 사람인지, 고칠 점이 뭔지 그냥 간단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어요. 머리중심 두칠규가 왜 사사건건 저를 물고 늘어지는 지도요.

칠규 : 그건 그래요. 저도 장팔수가 왜 저렇게 단무지(순, 식, *)인지가 궁금해요.


팔수
: (순간 주먹 불끈)

칠규 : (얄미운 미소 한 자락 팔수를 향해 날리면서)모님! 제가 머리형이면 머리를 잘 쓴다는 얘기고, 가슴중심
 이석이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느낀다는 뜻인가요?


모님
: 좋은 질문이다. 중심, 또는 센터라고 하나 이것은 잘 발달했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결.핍.으로 이해를
 해야 해. 결핍을 느껴서 거기에 고착이 되었다는 거고, 때문에 너무 매여 있어서 그 중심마저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는 거다.


이석 : 저... 저... 모님, 제가 가슴형 이라면서요? 그럼 제가 뭐 애정결핍이나 이런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모님 : 애정결핍 그러면 환자같이 느껴지지? 결핍이라는 말이 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을 거야. 들어봐라. 3중심
의 결핍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어. 장중심의 사람들은 생애 첫 경험이 본능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고 기억하
는 사람들이야. 아이가 배가 고파서 울었는데 누가 와서 젖을 물려주지 않더라는 거야. 용을 쓰면서 핏줄이 터
지도록 울었더니 그제야 엄마가 젖을 물려줬어. 아이는 판단하는 거지. ‘아, 세상 만만한 곳이 아니구나. 웬만큼 울어서 밥 얻어먹는 게 아니구나. 내 밥그릇을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채워주지 않아.’라며 욕구, 힘에 매인 장중심
이 되는 거지.


팔수
: 푸하하하... 내 밥그릇 내가 챙기자. 정글에서 살아남자. 이거 제 좌우명인데요.
 

모님 : 그래, 장형들에게 있어 세상은 험난한 정글이야. 가슴형 이야길 해보자. 이들은 정서적 보살핌이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 결핍을 느꼈다는 거야. 배고픈 아이가 자연
스런 표현으로 울었더니 먹을 것을 안 줘. 그런데 어쩌다 방실방실 웃었어. 그러니까 엄마가 뒤로 넘어가면서
‘아고 이쁜 내 새끼’ 하면서 젖을 주더라는 거야. ‘아, 세상은 뭔가 사람들에게 애써야 사랑받는 거구나’ 하는 거
지. 그래서 애정관계가 이들의 가장 중요한 욕구가 되고 감정중심이 발달하게 돼. 그것이 고착화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 인정, 관계를 갈구하는 무의식적 패턴을 형성하게 되는 거야.


머리중심의 인간형은 어린 시절 경험 속에서 일찍부터 사고센터를 발달시킨 사람들이야. 예를 들면, 배고파 울
었는데 어떨 때는 왜 우냐며 따귀를 맞고 어떤 땐 젖을 얻어먹은 거지. 일관성 없는 부모나 불안한 환경 또는 어
떤 이유에서든지 자라면서 ‘아, 인생 상황판단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 라면서 사고기능을 중시하고
발달시키게 되는 거야.


칠규
: 저희 부모님이 그렇게 일관성 없는 분은 아니셨던 것 같은데 제가 머리형인 건 같아요. 뭔 일이 있으면
머리부터 돌아가거든요.


모님
: 하하하. 팔수와 칠규가 지난 번 회의 때 부딪혔던 패턴을 3중심의 관점에서 얘기해 볼게. 장형들에게 회
의란 ‘내 뜻’이거든. ‘내 뜻은 이거니까 할려면 이걸로 해’ 이거야. 장형들은 대체로 말도 짧고 분명해. 헌데 머리
형들은 밑도 끝도 없이 뱃심을 들이대는 장형들을 이해할 수 없지. ‘왜? 그러니까 왜?’를 자꾸 따져 묻거든. 회
의를 통해 이치와 논리를 찾겠다는 거지. 그러다보면 말이 말아지고 회의가 길어지는 거지 그러면 장형은 바로
버럭 하는 거야.


칠규
: 아, 바로 그거였어요. 모님! 그 날... 아니다. 그 날 뿐이 아니라 저랑 팔수랑 늘 그렇게 붙어요. 크흐흐흐.


팔수
: 그니까... 너는 왜 이리 따지고 드는 게 많냐? 머리에 든 건 많아가지고. 재수 없지만 사실 쫌 부럽다. 임
마.

모님 : 그러면, 그 때 그 순간에 이석이는 어떻게 느꼈고 행동했니?


이석
: 저는 심장이 벌렁벌렁 했죠. 일단 상황을 좀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아서 쉬면서 차 한 잔 하고 다시 시작하
자고 했지요. 사실 저는 그 때 뭘 논의했었는지 기억도 안나요. 별로 관심도 없고요. 그냥 우리가 서로 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모님
: 들었니? 장형과 머리형 사이에 끼인 가슴형의 고백이야.


칠규
: 3중심이 결핍의 결과라는 건 이제 이해가 되는데요. 그러면 정말 좋은 환경에서 완벽한 부모를 만났다면
결핍을 안 느끼는 건가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모님
: 역시, 두칠규스러운 질문! 생애 첫 경험이라고 하는 그 자리에서 어린 아이가 느낀 결핍이라는 것 말이
다. 그건 부모가 안 줬다기보다는 그 때 그 어린 아이의 해석이야. 부모가 되어보니 더 절감하는 건데, 내가 아
무리 최선을 다해 사랑해도 100점짜리 엄마가 될 수 없더라. 분명히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피곤한 몸이
안 따라주고, 메마른 마음이 허락을 안 할 때가 많아. 가정의 다른 환경도 마찬가지일거야. 어쩌면 그 결핍이라
는 것은 원죄의 유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다면, 그 결핍의 자리는 힘을 쓰거나, 머리를 쓰거
나, 인간의 사랑을 받아 채워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거야. 그걸 내가 다 채워보겠다고 할 때 하나님 대신 내가
내 마음의 왕 노릇 하겠다는 거지.


팔수
: 아이구야, 점점 더 어려워지는군요.


모님
: 들어봐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결핍감의 소산으로 하나의 중심에 매여 있는 나 자신
을 보고 인정 하는 거야. ‘어라, 내가 머리를 써야하는 순간인데도 배짱을 들이대고 있네. 어라, 내가 애정본능
을 일깨워야할 순간에도 머리만 돌리고 있네. 어라 내가 힘으로 버텨내야할 순간에 애정에 호소하고 있네!’ 라
고 말이다.


이석
: 인정만하면 끝인가요?


모님
: 아니지. 진짜 왕에게 내가 애쓰던 자리를 내어드려야지. 이것이 우리가 매일, 매 순간 그 분께 정직하게
나가야할 이유이고. 여기서부터는 우리 각자가 그 분의 손을 잡고 가야하는 길인 것 같아. 내가 너희들 밖에서
안내할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일거야.


이석
: 모님, 감사합니다! 얘들아, 우리 나가서 얘기 좀 더 하고 가자. 이제 우리 셋이 얘기하면 블루마운틴의 조
화로운 향이 막 뿜어져 나올 것 같지 않니? 헤헤.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2

 

: 모님! 안녕하세요. 우아, 커피향! 완전 좋은데요.

: 저희 5분 늦었죠? 죄송해요. 같이 만나기로 했는데 애들이 정말 시간을 안 지켜요.

: 칠규는 오고 있다는데 평소 소행을 보면 아직 집인 것 같기도 하구요. 하하하. 구민이는 전화를 안 받아요.

: 모님, 뭐 도와드릴까요? 커피 다 갈으신 거예요. 이거 계속 갈까요? 컵 꺼낼까요?

: 저 <내 안에 접힌 날개> 다 읽었어요. 대박 좋아요. 저 에녀그램 완전 기대돼요.

모님 : 자 일단 앉아서 주문 먼저 하자. 커피 마실 사람! 다른 거 원하는 사람!

: 다른 차는 뭐가 있어요?

: 야야, 다른 차는 무슨 다른 차! 오늘은 통일해서 커피 마셔.

모님 : 통일은 됐다. 팔수는 그 힘으로 나라 통일에 신경 좀 써봐라. 자, 오늘의 커피는 묵직한 맛의 케냐랑 감기 걸린
          사람   많으니
목에 좋은 카모마일 중 골라 마시자. 칠규랑 구민이도 기다릴 겸 차 준비하는 동안 이 그림 좀 보고
          있을래.





 

1 : 나는 올바르다.

2 : 나는 도움이 된다.


3 :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4 : 나는 특별하다.


5 : 나는 현명하다.


6 : 나는 책임감이 강하다.


7 : 나는 행복하다.


8 : 나는 강하다.


9 : 나는 평화롭다.










에니어그램은 9개의 거짓자아다


모님
: 이제 다 모인거지? 야, 엄청 심각하게 들여다보네.

삼진 : 모님, 3유형이 맞기는 한데 사실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거든요. 뭐든 잘하고 싶기는 하지만 ‘나는
          성공한 사람
이다’ 이렇게는 생각이 안 되는데요.

일경 : 저도 뭐 딱히 제가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은 안하지만 뭐든 제대로 완벽하게는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팔수 : 야, 니가 뭐 올바른 사람이 아니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바르지. 껄껄껄. 딱 이네요. 모님, 이석이는 머리부터 발끝
          까지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요. 사라가 대박이다. 넌 진짜 특별하잖아. 특이한가? 어우 사라 표정 바뀌는 거 봐라.
          아, 미안! 미안!

모님 : 그러는 팔수 너는? 무조건 힘으로 다 밀어붙여서 통일하고? 하하. 모두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겠지
          만 천천히
 같이 얘기를 풀어가 보자.

육미 : 네, 일단 에니어그램이 뭔지 모님의 설명을 듣고 싶어요.

모님 : 에니어그램은 아홉을 뜻하는 ennea와 점을 뜻하는 gramma으로 이루어진 말이야. 아홉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아
          까 본 그림
을 말해. 어? 그러고 보니 정확하게 유형대로 둘러 앉았네! 음, 이것은 너희가 알고 있는 아홉 가지의 성격
          유형을 의미해. 
그런데 나는 이 아홉 개의 성격유형이 아홉 개의 거짓자아로 설명 하려고 한다. 처음부터 좀 거북하
          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너희가 아는 9유형은 아홉 개의 거짓자아이며, 아홉 개의 가면이다.

칠규 : 잠깐만요! 거짓자아라구 하셨어요? 가면이라구요? 그러면 저희가 지금 배우려고 하는 에니어그램 유형이 거짓자아
          라는
말씀이세요? 저는 가면을 좀 써봤으면 좋겠는데요. 도통 속에 있는 걸 숨길 수가 없어서 걱정인데요. 헤헤헤.
          안 그래, 
얘들아? 난 너무 솔직해서 탈이잖아. 으하하하…….

모님 : 호호호. 그래 아홉 개의 거짓자아. 칠규는 부정적인 단어를 들으니까 확 불편해지니? 역시나 솔직하네.

오필 : 그러면 진짜 자아는 뭐죠? 현명하려고 애쓰는 제 자아가 거짓자아라면 저의 진짜 자아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죠? 
혹시 진짜 자아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모습을 말씀하신다면 저는 거짓자아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모님 : 오오~ 역시 현명하신 오필님이십니다.

 


가면은 내가 아니다


모님
: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잰데 태어나보니 세상이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야. 
가만히 있어서는 사랑받거나 인정받기는커녕 밥도 못 얻어먹을 세상인거지. 하다못해 울어야 젖을 주고,
          방실방실 웃으면
이쁘다고 한 번 더 안아주는 게 부모님이고 세상이더라는거야. 그래서 나름대로 사랑받고 살아남
          고자 덧입게 된 것이 
성격유형, 즉 거짓자아라 할 수 있어. 있는 모습 그대로, 조건 없이 사랑받는 존재인 해처럼 빛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리고
있는 먹구름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에니어그램은 여타 심리학적 성격분
          류시스템과는 접근이 다르지. 대체로 
성격유형론들이 ‘이런 성격이 너고, 너는 이런 성격이라서 그렇게 행동한 거
          야’ 라고 성격의 장점들을 부각시켜 설명한다면 
에니어그램은 아홉 유형의 집착, 치명적인 결함, 숨겨진 동기, 근본
          적인 죄를 드러내 줘. 그러니까 너희들 자신에 대한 좋은
소리 듣겠다는 생각이라면 번지 수를 잘못 찾은거다. 하지
          만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깊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충분한 도움
이 될 거야.

육미 : 근데, 모님! 우리의 진짜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에니어그램의 9유형은 거짓자아라면서요. 저는 사실 저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알고 싶은 고민 끝에 모님을 찾은 건데요. 거짓자아라면 왜 그걸 굳이 알아야 하는 거죠? 뭔가 속
          는 기분이에요.
 죄송! 흐흐흐…….

모님 : 단적으로 말하면 무슨 가면을 썼는지를 알아야 그 가면을 벗을 것 아니니. 벗기 위해서 알려고 하는 거다. 인격,
          성격을 영어
로 personality라 하지. 이 단어의 어원은 페르조나(perzona)라고 해. 페르조나란 너희도 알다시피
         원래 극장에서 배우가 배
역을 맡기 위해 썼던 가면을 말해. 사람이 살면서 사회적으로 필요해서 만든 얼굴이라고
         할 수 있겠지. 외적으로 보여 지는
페르조나와 내적이고 심리적인 페르조나가 있어. 야, 구민이 눈 떠라. 그 새 졸립
         냐?^^

: 아... 예....잔 거 아닌데.... 그냥.... 모... 눈 감고 있었... 헤헤....

모님 : 외적인 페르조나는 뭘까? 직함, 직업, 신분, 딸, 아들, 아빠, 엄마 같은 역할 등이겠지. 내적 페르조나는 흔히 성격,
         인격, 
신념, 습관, 자아 이미지, 가치관 등이 될 거야.

일경 : 그럼, 페르조나가 나쁜 거예요? 직업이나 역할에 맞게 행동하는 건 필요한 거잖아요.

모님 : 물론이지. 페르조나가 나쁜 거니까 다 벗어버리고 맨얼굴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야. 학교 선생님인 아빠가 있다
          고 하자.
이 아빠가 퇴근 후 집에서도 사사건건 가족들을 가르치고, 가르치다 말을 안 들으면 벌을 세우고, 점수로
          평가한다고 해보자.
친구를 만나도 교회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선생님으로만 살면 되겠냐는거야. 문제는 페르조나
          를 진정한 자신과 ‘동일시’하는
게 문제지. 내적 페르조나인 성격도 마찬가지야. 성격은 내가 필요해서 만들어 쓴 나
          의 얼굴이지 나 자신은 아니거든. ‘성격은
곧 나’라는 동일시가 강해지고 고착되면 마치 가면이 피부에 달라붙어서 
          내가 가면인지 가면이 난 지 모른 채 평생 주어진 배
역대로 살게 된다고 봐. 그 거짓자아에 대한 동일시는 진짜 나의
          본성을 일깨울 필요조차 못 느끼게 만들어.

팔수 : 아휴, 왜 이리 복잡해요? 좀 단순하게 짧게 설명해주시면 안돼요?

 


9가지 유형


모님
: 쉽게? 단순명료하게? 
         자,
1유형 올바르고 완벽한 사람 이지만 그렇지 못한 세상에 대한 독선적인 분노를 품은 이면이 있지.
        
2유형 잘 돕는 사람인 반면 자신의 돕는 능력에 매인 교만함이 숨은 죄이고, 
       3유형
은 뭐든 성공적으로 잘하겠다는 빛 뒤에 성공을 위해 거짓도 불사하는 그림자가 있단다.
         특별한 존재로서의 자신에 매여 있는
4유형의 이면에는 모든 평범한 것들에 대한 질투가,
         현명하다고 하는
5유형은 자신이 아는 것은 물론 가진 모든 것들을 나누지 않는 인색함이 어두움으로 드리워져
         있어. 
         안전한 것을 위해 늘 책임 있고 충실한
6유형의 숨은 동기는 두려움 이고,
        
7유형은 자신을 행복, 즐거움, 기쁨 사람으로 규정하고 고통을 피하려 하며 무절제의 유혹에 빠져.
         힘의 사람이라고 하는
8유형모든 허약한 것들을 무시하는 파렴치이,
         평화의 사람
9유형은 사소한 갈등이나 스스로 주도하는 일은 피하며 나태함의 유혹에 빠져.
         아니, 표정들이 왜 그래?
길 가다가 ‘시간 있으면 커피 한 잔 하자’는 훈남의 말에 룰루랄라 따라갔는데 카페 앉자마
         자 ‘도를 아십니까’ 하는 말에 넋 나
간 노처녀처럼. 하하하하.

아홉 모두 : .............

모님 : 좀 혼란스럽고 두렵기도 하지? 그럴거야. 우리 안의 어두운 그림자들. 그것들을 우리 마음의 지하실에 숨기고 가둬
         둘 때는 
엄청난 무게의 짐이고 두려움일 수밖에 없어. 헌데 이것들을 빛으로 꺼내놓는다면 말이다. 꺼내서 ‘나의 콤
         플렉스’ ‘나의 
죄’로 이름 붙이고, 인정하고 나면 쉽고 가벼운 짐이 돼. 내가 애써 꾸민 거짓가면을 보시되 속지 않으
         시고, 왜곡된 동기를 꿰
뚫으시지만 내치지 않으시며 시종일관 나를 향한 사랑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시는 그 분의 빛
         앞에 정직하게 드러내기만 하면
돼. 두렵지만 결코 혼자 가는 길은 아니다.
         사랑이며 모사(謀士, wonderful counselor)이신 그 분의 손잡고 가는 길이야. 우리
같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
         어보자.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 하는 내적여정1>


저는 키가 난쟁이 똥자루입니다. 양손 엄지손가락은 뭣에 눌린 듯 뭉툭하고, 앞니가 삐뚤삐툴한 리아스식 치아를 가졌습니다. 작은 키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편하자고 신는 운동화조차도 높은 굽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게임의 여왕이었으나 엄지손가락으로 숫자 만드는 게임인 ‘제로게임’은 결코 도전해본 적이 없고요. 들쑥날쑥한 앞니는 의학의 힘을 빌어 줄을 좀 맞추게 되었지만 여전히 웃을 때마다 움찔하면서 입을 다무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저의 콤플렉스들입니다. 헌데, 이제부터 공개할 콤플렉스에 비하면 위에 있는 것들은 뭐 그리 부끄러운 것도 아닙니다. 음악치료사이며 MBTI와 에니어그램 강사이고, 목회자의 아내로 청년들을 만나 상담하는 일이 일상인 저. 강의하고 치료하고 상담하는 주제는 거의 가 다 ‘마음, 인간관계’ 이런 것들이랍니다. 그런 저를 괴롭히는, 40평생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제껏 잘도 숨겨왔던, 초강력 울트라 콤플렉스는 ‘관계’입니다. 제 마음 깊은 곳 은밀한 방에서는 너는 ‘관계의 실패자’이고 언제 누구와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이라며 정죄하고 조롱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새어나오곤 합니다.



넘기 힘든 관계의 벽, 교.회.언.니.

사춘기를 지나며 정체성과 신앙적 자의식이 새로워지던 시기부터 저를 떠나지 않는 한결같은 의문과 좌절 하나가 있습니다. 왜 학년이 올라가서 반이 바뀔 때마다 싫은 아이가 한두 명 씩 꼭 있는 걸까? 1년만 버티면 되겠지. 어차피 반이 바뀔 테니까 하는 생각은 하나마나입니다. 반이 달라져도 어김없이 또 다른 비호감은 예비 되어 있었으니까요. 학교에서 만나는 비호감은 그래도 낫습니다. 딱히 싸운 일도 없는데 사사건건 나를 걸고넘어지는 것 같고, 뭘 해도 예쁘게 보이질 않는, 그러다보니 어느 새 말 한 마디 나누기도 긴장되는 교.회.언.니.에 비하면요. 학교친구도 동네언니도 아니고 교회언니란 말이지요. 주일예배 한 번 드릴 때마다 ‘사랑’이란 단어를 최소 세 번 이상은 말하게 되는 곳이 교회잖아요. 좋게 말하면 신앙의 컬러가 다른 거고, 쉽게 말하면 그냥 이유 없는 비호감이예요. 사랑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그녀의 행동을 좋게 생각해보려는 노력도 해보고요. 대입 시험을 칠 때는 ‘언니, 기도할게요. 축복해요’라고 적은 카드와 초콜릿을 주기도 했고 애써 생일도 챙기곤 했습니다. 그러다 눌러놓은 미움과 분노가 쌓이고 쌓이면 편한 친구 하나 앉혀놓고 끝도 없이 그 언니를 씹어대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뭘 해도 마음은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일 년에 한 번 있는 수련회의 저녁집회와 기도회는 소망의 시간이었지요. 뜨거운 기도회가 정점을 찍을 무렵 무엇인가에 이끌려 우리는 평소 불편했던 사람을 찾아가 손을 맞잡고 기도했었고, 물론 저는 그 언니와 부둥켜안고 회개와 화해의 눈물 콧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다시는 미워하지 않으리라. 아~ 이젠 보혈의 공로로 다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리라..... 짜자잔. 그리고 ‘마지막회’ 라는 자막이 올라가면서 저의 이야기가 마치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련회가 끝나면 여지없이 다시 속세(?)로 돌아와야 했고 어떻게든 다음 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가고 있었지요. 안타까운 건 뜨거웠던 기도회의 감동은 어디로 가고 그 언니와는 헌신예배 때 부를 찬양 선곡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다시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은근 걸고넘어지고, 은근 비꼬고, 은근 밀어내기를 다시 반복하는 그녀와의 일상. 그 날의 회개와 화해와 불타오르던 사랑은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저는 나이도 먹고, 학벌도 높아지고, 신앙의 경륜이 쌓였으며,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곁엔 이기적인 직장동료의 모습으로, 불편한 시댁식구의 모습으로 둔갑한 그 교.회.언.니.가 늘 함께 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저의 내면의 목소리는 기로에 섭니다. ‘나는 안 돼. 내가 지금 누굴 치료한다고? 누굴 상담한다고? 나와 상담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치는 이 사람이 내가 어떤 인간인줄 알까? 내 안에 어떤 폭탄이 숨겨져 있는 지 그 실체를 알아도 날 지금처럼 신뢰해줄까? 난 애초부터 밴댕이 속 같이 좁아터진 인간이었어.’ 라면서 자기비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아무 일 없다는 식으로 가는 겁니다. 오랫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그 관계는 ‘내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야. 나는 진짜 열심히 사랑하려 노력했어. 그러나 마음을 열지 않았던 건 너야. 그러니 나는 선한 편이고, 너는 나쁜 나라지. 그런 식으로 사는 너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도 복을 받을 일 없고 조만간 큰 코 다치게 될 거야. 오케이! 노우 프라블럼!’ 라면서 책임전가하고 합리화하기.



관계에 있어 좋은 이정표를 만나다 

그.런.데. 자기비하와 책임전가회피를 오락가락 하는 내면의 전쟁 속에서도 끊임없이 양심을 터치하는 어떤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 손길에 대한 희미한 자각은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사랑과 자유함에 이르는 막연한 초청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관계라는 무거운 짐에 대한 인식은 그분의 사랑에 대한 부르심과 맞닿았고 그 지점에서 목이 말랐고 그 목마름은 ‘성령충만한 삶’에 대한 갈망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그 날 그 날 잠시 마른 목을 축이며 근근이 살아가는 삶 대신 흐르고 넘치는 생수의 강에 몸을 맡기고픈 영원에의 목마름이었지요. 그렇게 목말라 우물가에 있는 저에게 ‘엣다, 이거 하나 읽어봐라’ 하면서 예수님께서 주신 선물처럼 <내 안에 접힌 날개>라는 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펼친 그 책의 서두에 에니어그램은 마치 20여 년 전부터 널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제게 도전장 같은 질문 하나를 던졌고 도전장은 초정장이 되어 저를 깊은 내면의 여정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왜 그토록 자주 하나님께로 또는 이웃에게로 향해 나가지
못하고 계속
우리 자신과 부딪히는가?’

 
그렇습니다. 제가 콤플렉스라고 고백한 문제는 사실 지속적으로 나 자신과 부딪히는 문제였습니다. ‘관계문제’라고 이름을 붙이면 나 아닌 타인의 존재를 전제해야 하니까 마치 내 마음 바깥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꼬인 관계’는 엉켜있는 내면을 반사시켜 보여주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에니어그램이라는 거울은 이제 대놓고 제 내면을 비추어 줍니다. 20년을 끙끙거려왔던 초강력 울트라 콤플렉스는 빙산의 일각이었지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이 ‘자기부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아’라는 끝도 없는 이기심의 늪을 직면하고 부인하는 과정 없이 이웃에게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기부인’이란 그저 ‘화장실 청소와 복도청소가 있다면 나를 낮춰서 먼저 화장실 청소를 선택하는 것, 누군가와 나의 생각이 다를 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조금 더 쿨하게 내 의견을 포기하는 것, 갈등이 일어났을 때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등 주일학교 설교의 결론부분 적용처럼 몇 가지 덕목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에니어그램은 ‘부인’은 아는데 ‘자기’는 몰라서 영적 성숙을 향한 큰 걸음을 떼지 못하는 제게 좋은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 당신은?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이 누구인가요?’ 라고 빌 하이빌스 목사님은 묻습니다. 일천한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함께 찬양팀을 섬기던 친구가 내년엔 찬양팀 그만두고 주일학교 교사를 해야 하겠다는데 실은 그게 사사건건 간섭하는 당신 때문이라면, 하루는 맑고 하루는 흐린 종잡을 수 없는 당신의 기분에 모임의 모든 사람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쉽게 말해놓고 일이 닥치면 번번이 안 되는 이유를 대며 김을 빼는 당신에게 당신의 친구들이 기대를 접은 지 오래라면, 밤늦도록 긴 얘기를 나누며 헤어진 당신의 동역자가 ‘저 친구 도통 자기 속을 정직하게 얘길 하지 않아’ 하는 공허함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몸이 안 좋아 좀 쉬어야겠다며 사직서를 낸 직장 동료의 진짜 사직이유는 바로 당신의 아무렇지 않게 던져대는 모욕적인 말을 견디기 어려워서라면, 새로이 GBS조를 짜는데 모든 조장들이 내심 맡고 싶어 하지 않는 기피 조원 1순위가 당신이라면.... 이 모든 게 다름 아닌 나의 진실이라면 어떻습니까? 이보다 더 많은 나의 의도하지 않은, 생각지도 못한 약점들로 지금 누군가를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면요. 그리고 나없는 어떤 곳에서 그 모든 얘기가 진실처럼 회자된다면요. 마치 내가 지금 누군가를 향해서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무슨 소리냐고? 내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넌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고
? 저는 이제 최소한 그렇게 다짜고짜 방어하고 부정하는 건 조금 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에니어그램이 준 선물이지요. 어쩌면 나보다 타인이 나의 실체와 특히 약점에 관한한 더 잘 볼 수있다는 것도 인정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힘이 빠지다보니 ‘관계의 문제’는 오늘도 여전히 저의 아킬레스건이지만 조금 숨통이 트이고 살짝 가볍게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 같이 느껴져요. 문제는 여전하지만 그게 제 발목을 잡고 늘어지게 두지 않는 걸 배웠으니가요. 무엇보다 ‘
, 의 노력, 의 은사, 의 기도, 의 헌신...’ 으로 가득 찼던 마음에서 조금 공간이 생기니 이미 충만히 계셨던, 그렇게도 목마르게 젖어 들고 싶었던 그 분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초대장을 쓴다는 게 길어졌습니다. 여러분을 에니어그램을 통한 내적여정에 초대합니다. 에니어그램과 함께 하는 여정을 위해 다음 달부터 여러분을 저희 집 거실로 초대하겠습니다. 저희 거실은 커피가 있고, 음악이 있고, 책이 있는 북카페 같은 곳입니다. 무엇보다 저희교회 청년들이 딱딱하고 칙칙한 ‘사모님’ 대신 ‘모님’이라고 불러주는 제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볶은 신선한 원두를 정성을 담아 핸드드립 한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여러분과 마주앉겠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에니어그램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제 초대, 받아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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