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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지만 MBTI로 치자면 정반대 유형인 남편과 나.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지만 MBTI로 치자면 거의 정반대 유형으로 추측되는 현승이와 채윤이.
뭐 성격유형을 갖다대지 않아도 채윤이와 현승이의 세상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참 많이 다르다.
많이 다른 두 아이의 동시적(응?) 엄마인 나는 그 사이에서 나를 다시 보게된다.
어제 저녁 우연히 '욕구'라는 한 주제로 전혀 다른(그러나 결론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두 아이와 나누어야 했다.
현승이와 채윤이와 엄마의 이야기. 그 첫 번째.
잠이 들 때는 아직도 엄마의 부드러운 팔에 비비적대야 하고,
그래도 잠이 안 오면 세상 그 누구의 손도 아닌 엄마의 부드러운 손이 살살 등을 긁어줘야,
그제서야 잠이 드는 현승이다.
그래서 현승이는 늘 잠자리에 드는 시간엔 본의 아니게, 진심 본의 아니게 구타유발 아아니..
갈등유발자가 된다.
'엄마, 나 일단 누워있을께. 꼭 와줘. 잠들기 전에 한 번, 잠든 다음에 한 번 와 줘' 라고 말하는 건 방송용.
비방용 본심은 '엄마가 옆에 누워서 잠들 때까지 등을 긁어주고 얼굴을 만져줬으며'이다.
하지만 이제 아홉 살인 것을... 현승이도 안다. 아홉 살이 하기에는 쪽팔린 행동이라는 걸.
그리고 엄마는 가끔 원고도 써야하고 강의준비도 해야하며, 국도 끓여야하고,
트위터에 빠져서 정줄을 놓을 때도 있으며 어떤 때는 피곤해서 먼저 누워야하는 그런 존재인 것을.
어젯밤 또 '엄마, 나 누워있을께. 와 줘' 하는데....
진짜 엄마는 쫌 모유수유하는 엄마도 아니고 편하게 잠 좀 들어보자는게 소원일 뿐이었다.ㅠㅠㅠㅠ
억지로 가서 현승이의 주문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마이 침대로
왔다. 그러나 1분쯤 지나서 다시 엄마 부르는 소리 '엄마, 엄마. 한 번 다시 와주면 안돼?'
엄마 완전 버럭!!! '엄마도 잠좀 자자고!!!! 엄마 침대에서 책보다 자고 싶다고!!!!'
이 말에 우리 티슈남.
'아.....알았어. 울먹 울먹먹먹먹....'
마음 약한 엄마 다시 티슈남의 침대로 감.
티슈남은 눈물 그렁그렁하며 '엄마. 가서 자. 혼자 잘 수 있어....울먹울먹....'
'그래. 그래야지. 이제 아홉 살인데.... 잘 자. 사랑해' 하고 다시 지 침대로 컴백.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한참 책을 봤는데 뭔가 섬뜩해서 방문 쪽을 보니....
방 문 앞 벽에 붙어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바라보는 티슈남님.
'허허....허걱. 왜? 잠이 안 와? 엄마가 다시 가?'
어둠 속의 티슈남님. 말은 못하고 고개만 흔들흔들.
이 가엾고 속터지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 벌떡 일어나서.
'현승아, 엄마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니가 원하는 거 엄마한테 말해줘.
니가 정말 원하면 엄마한테 미안해도 그냥 말하는거야. 말해봐'
글자크기 3포인트 정도의 목소리로 '엄마. 와 줘'
'알았어. 엄마가 피곤하지만 니가 정말 원한다고 말하면 다시 가서 재워줄께'라고 말하면서 나란히 누워
등을 긁어주면 눈물 그렁그렁해가지고
'엄마, 피곤하지? 편하게 자고싶지? 미안해. 내가 안 그러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엄마 방에 가게 돼.
훌쩍 훌쩍 훌쩍쩍 훌쩍...'
현승이는 자신이 원하는 걸 쉽게 접는다.
그것이 엄마나 아빠나 누나 등 가까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판단되면,
특히 가장 좋아하는 엄마를 불편하게 한다고 판단되면 더 그렇다.
그러나 사실 욕구는 접는다고 접히는 게 아니다.
무작정 욕구를 접고 났을 때는 대부분 우울해지거나 분노가 일기 십상이다.
그래서 현승이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누나에게 양보해버리고, 원하는 것을 접고, 뜻을 굽힐 때
'착하다'고 칭찬하지 않으려 한다.
더 어려운 것은 현승이는 감정이 조금만 상해도 말을 하지 못한다.
충분히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안해' 이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빨리 욕구를 접어버리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홉 살 짜리 아이는 아직 이해받아야 할 나이다. 사회성이 발달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도 배워야겠지만
철이 다 든 어른처럼 배려하고 참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일상의 많은 문제들에서 마흔이 넘은 엄마를 이해하고 이해했기에 참고 배려하는 건 현승이의 성품일망정
그대로 고착되도록 해서는 안될 것 같다.
현승이에게 욕구를 가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모든 욕구가 다 충족될 수도 없고, 설령 다 충족되어도 그렇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만, 더 많은 경우에
내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게 맞지만. 어찌 됐든 욕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욕구를 돌봐야 하는 일차적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가르치려 한다.
무엇보다 욕구를 참는 것은 능사가 아님을 가르치려 한다.
원하는 게 있을 때는 말.로. 표현하고 감정에만 휩싸여 눈물만 흘리지 말고 때로 설득도 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싶다.
현승이 성품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도 욕구도 결국 그 자체로 인정할 때만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에 가르칠 수도 없고 말로 다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 40이 넘은 엄마도 여전히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엄마가 가 본 길 만큼만 안내해 줄 수 있음을 알기에 말로 가르치기보다 먼저 살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를 자라게 하는 기가막힌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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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딱 1년 전, 입학식날의 채윤이 모습
채윤이가 1학년 종업식을 하는 날입니다.
채윤이도 힘든 1년이었지만 엄마가 느끼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던 공교육 1년차였습니다.
신학기가 되면 많은 엄마들이 '좋은 선생님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제목을 내놓습니다.
저는 그런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일단 학교에 좋은 선생님이 많지 않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오히려 그런 학교 안에서 자존감을 많이 손상시키지 않고 밝게 잘 지내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많이 아픕니다.
김동원선생님께서 딸의 담임선생님께 쓰셨다는 편지를 블로그에서 보고 감동을 받아 업어왔습니다.
선생님께,
며칠간의 고민 끝에 선생님께 글월을 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얘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저를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 듯 싶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반에 있는 김문지의 애비되는 사람입니다. 아이의 이름을 앞세우니 선생님께 제 소개를 단 한 줄로 전해드릴 수 있는 이점과 편리함이 있군요. 저는 아이를 통해 선생님 얘기를 듣고 있어 선생님의 저에 대한 정보보다는 훨씬 더 풍성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달리 소개안하셔도 제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나 할까요. 어디, 정보통이 아이 뿐인가요. 아이 엄마도 선생님 소식을 제게 갖고 오기도 합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 엄마는 선생님을 만나뵙고 아이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며 입이 귀에 걸려서 돌아왔더군요. 그러니까 이 글이 처음이긴 하지만 암암리에 일면식도 없은 선생님에 대해서 저는 이미 몇 번의 면식을 튼 것처럼 친숙함이 있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제가 아이나 집사람을 선생님의 뒷조사를 위하여 학교에 잠입시킨 것은 아니니 절대로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글월로 처음 얼굴을 맞대는 어색함은 이 정도의 얘기로 얼버무리기로 하고, 이제 제가 고민해왔던 얘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며칠 전 아이가 침울한 얼굴로 돌아왔더군요. 사연을 알아보니 아침에 늦어서 선생님이 갖고 있다는 그 특유의 주걱으로 매를 맞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습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집안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러했습니다. 지각한 벌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각은 그러했는데 다음 날의 상황은 저를 고민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6시 30분에 일어났거든요. 평상시의 딸아이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밝은 얼굴로 학교갈 준비를 하고 저히 엄마의 칭찬을 받고는 학교로 갔습니다. 매일 아침 벌어지는, 잠자리를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아이의 꼼지락거림과, 반복되는 똑같은 말로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다 금방 지치고 마는 아이 엄마의 짜증이, 우리 집의 평상시 아침 풍경입니다. 거의 일년 내내 계속되던 그 지겨운 풍경이 그날 아침 깨끗이 해소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섬뜩해진 것은 바로 그 날의 달라진 딸아이 모습이었습니다. 그 한번의 매가 가져다준 놀라운 효과가 저를 기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뜩하게 만들었습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날 아이가 의외의 말을 전한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는 매를 대지 않았으면 한다는 부모의 뜻을 갖고 온다면 1년 내내 때리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을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빌미로 삼아 편지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편지가 선생님의 교육권에 대한 간섭이 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매가 아이의 버릇을 일거에 고친 그날 아침, 저는 거의 생각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역시 매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효과적이라는 것이 매에 대한 저의 가장 큰 우려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 땅에선 거의 항상 그런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어왔습니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주목을 하는 분위기였죠. 과정에 주목하면 전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 그의 덕택에 경제가 개발되었다는 결과론에 기대어 끈덕지게 살아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짓밟혔던 그 숱한 유린된 인권에는 아직도 빛이 들지 못합니다. 개발 독재의 그 놀라운 효과가 가져다준 결과 앞에서 사람들 모두가 그것이 갖고 있는 비인간적 측면을 간과합니다.
지나친 논리의 비약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선생님의 매에서, 저는 그런 우려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아이가 다음 날 아침도 여전히 잠자리에서 꼼지락대었다면 저는 선생님께 이런 글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매는 너무 효과적이어서, 제게 매우 위험해 보였습니다.
매보다는 차라리 다른 벌이 어떨까 싶습니다. 5학년 때 선생님은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고 하더군요. 개나 소는 때리면 말을 듣지만 개나 소에게 엎드려 뻗쳐를 시킬 수는 없으니 오히려 그 벌이 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봉사를 시키는 것, 아니 학급 봉사를 시키는 것은 더더욱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벌이 되겠지요.
아이를 한 대의 매 때문에 잘되는 아이가 아니라, 그렇게 하여 나중에 거봐라, 그때 한 대 맞고 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좋은 버릇 가진 덕분에 크게 성공했지 하면서, 훗날의 결과로 아이가 엄마품에서 흘렸던 어느 오후의 눈물과 슬픔을 무마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아내가 아이의 늦잠과 씨름한다고 해도, 아이에게 그런 방만한 삶을 인간의 이름으로 허용하고 싶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 또한 집안에서 매의 유혹에 시달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유혹과 부단히 싸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그 유혹에 대한 저의 저항을 이해해 주시고 그와 뜻을 같이하여 아이에게 매를 대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이 큰 무리임을 알고 있습니다. 4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하루의 삶이란, 단 하나의 딸아이만을, 그것도 피붙이이기 때문에 더더욱 깊은 사랑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저와는 양적으로 크게 다른 피곤함과 힘겨움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은 것에 신경이 예민한 저는 선생님이 아이편에 전한 얘기, 그러니까 매에 반대하는 부모의 뜻을 갖고 오는 아이는 고려하겠다고 한 그 말씀을, 옳타구나, 선생님이 스스로의 입으로 말씀하셨으니 어찌하시겠어 하는, 건수 하나 잡은 듯한 다소 고약한 심정으로 선생님께 제 견해를, 저는 문지가 매를 맞는 것에 반대합니다라는, 쪽으로 밝히고자 합니다.
제 편지가 하찮은 일 하나를 트집잡아 선생님이 의당 가져야할 교육권을 간섭하는 일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의 생각에 관계없이 선생님의 교육관에 따라 매를 사용해도 이후에는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의 생각이 이러함을 밝혀드리오니 선생님께서 아이 편에 전해 주었던 그 말씀을 기억하시어 저의 생각을 참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아이와 아내의 선생님에 대한 얘기로부터 얘기가 통하겠다는 깊은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밝혀드립니다. 아이 엄마는 선생님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조회하여 수상 경력까지 보여주며 열심히 사는 분 같다는 저의 신뢰감에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아마 그 신뢰감이 없었다면, 4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의 닳고 닳은 현실적 계산으로, 더큰 화근을 부르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편지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이의 교육에 기울여주시는 깊은 후의에 감사드리며 이만 맺습니다.
2002년 3월 22일
김동원 드림
**덧붙이는 글: 문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 보낸 편지이다. 컴퓨터를 정리하다 보니 눈에 띄었다. 그 선생님은 한해 내내 좋은 추억을 남겨준 선생님이었다. 학교로 편지를 보낸 것은 중학교 때도 한번 있었다. 반응은 달랐다. 중학교 때는 패거리를 지어 아이를 아파트 지하실로 끌고 가려고 한 같은 반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그때의 담임 선생은 이런 애들은 그런 편지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었다. 아이보다 선생이 더 실망스러웠던 기억이다. 그저 일이 생기면 덮고 무마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어른들 모습이었다. 선생과 달리 아이들 중에는 내 편지를 받고 우리 아이에게 사과한 아이가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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