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문턱에 들어서 에니어그램을 만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내적여정 2단계 연수를 마치고 된통 마음을 한 번 앓고나서 흐릿했던 것들이 많이 명료해졌습니다. 1단계 연수에서 얻은 새로운 통찰들이 마냥 좋았고 뭔가 멋진 도구를 손에 쥐게 될 것 같아 부풀기만 했었습니다. 2단계 연수 내내 나와 같다고 규정되는 7번 유형 사람에 대한 거부감에 힘들었습니다.
7번 유형의 자아이미지는 '나는 행복하고 멋지다' 입니다. 긍정적인 특성이라고 한다면 쾌활하고 명랑하며 낙천적이고,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천진난만. 기발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에다가 이상주의자로 사심없고 자발적이고 활동적이라죠. 다양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특징은 결국 7번의 집착이 되기도 하죠.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이 '쾌락'과 '재미'니까요. 지루한 것은 견디지를 못하죠. 한 가지 일이나 한 사람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어렵고요. 부풀린 긍정주의 낙천주의로 피상적인 삶을 산다는데 맞아요. 고통에 직면하는 것 너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게 오토메틱이예요. 그러면서 저는 한 때 이걸 믿음이라고 생각했다죠. 자신에 대한 과장된 견해를 가지고 자기도취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거 이거 '자아팽창' 이라는 거죠. 다 내가 한 일 같고, 다 나 때문에 좋아진 것 같고, 내가 빠지면 모임이고 찬양이고 뭐고 다 안될 것 같다는 이 자아도취 말예요.
고통, 인생의 슬픔 이런 것들은 악덕으로 여겨서 멀리하고, 회피하고 십자가를 피해서 곧장 부활로 달려가고 싶어한답니다. 고통, 아주 조금만 와도 직면하기기 어려워서 죽을 것 같다고 과장해 버립니다. 마구 극단적으로 과장해 버려서 고통의 실체를 보지 않는 거예요. 분위기는 다 띄워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치고 빠지는 야비함이란....제가 이런 사람이라니까요.
7번의 어린시절은 유복하과 행복한 환경이 갑자기 깨졌거나 큰 정신적인 충격을 겼을 사람들이 많다네요. 아마도 사춘기가 막 시작하던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경험이 제게는 큰 치명적인 충격이었겠죠.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삶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아버지 한 사람 돌아가셨는데 우리를 대하는 교인들, 친척들의 태도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변했다는 건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건강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험이었어요.
7번유형이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는 '건전한 기쁨'이라죠. 저같은 7번들은 '나는 참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날이 많고,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하는 찬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정작 '진정한 기쁨'은 모른다는 거예요. 요즘은 '의식성찰 일기'라는 것을 쓰면서 '진정한 기쁨' 에 대해서 구하고 찾고 있으며 찾아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키(key)가 하나 더 있습니다.
6번의 날개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7번의 설명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7번이라 하기에는 제게는 '완벽주의자 스러운' 구석이 있었거든요. 제 동생이 언젠가 하는 말이 '그래도 누나는 한 번 맘 먹은 거 끝까지 해내는 그런 게 있잖아' 하길래 코웃음을 쳤습니다. '내~애가 그런게 어딨어?' 자꾸 생각해보니 뒷심 없는 7번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6번 날개였습니다. 6번의 자아 이미지는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한다' 라는데요.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이후 저는 더 이상 7번의 페르조나(가면)만을 가지고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엄마와 동생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돌아보니 중고등 시절에 공부도 '책임감'으로 한 것 같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해. 우리 엄마가 젤로 치는 직업이 초등학교 교사니깐 서울교대를 가서 선생님이 되가지구 엄마를 기쁘게 해야하고, 무엇보다 가정에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어야해' 이거 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지금껏 돈을 벌지 않아본 적이 없다는 것도 최근 생각났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물론이고 대학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도 밤에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깐요. '돈 벌지 않는 나'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상상도 안되고 허용도 되지 않았지요. 결혼 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상황이 그렇고, 내가 하는 일에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 구석 '경제적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내내 내려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나친 책임감으로 어떤 분야에서는 융통성을 잃기도 한다는 그 6번. 6번의 날개를 펼쳤던 거예요. 항상 어떤 일이 일어나면 최악의 경우까지 상상하고 대비하는 안전제일주의자가 되어 있었지요.
2,3주 전 병원에서 말하지 말라는 진단을 받고는 최고로 심란한 상태에 있었던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엄마 아프다고 걱정을 심하게 하더니 애들은 애들이라고 금새 잊고는 침대 발치에서 까불고 놀고합니다. 두 아이를 지켜보며 '너무 무거워요. 몸이 아프고 이제 일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하나님, 너무 무거워요. 저 아이들 어떻게 키워요.' 하고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어요.' 그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마음에서 울렸죠. '책임감 내려놔. 내가 책임져줄께. 내려놓으란 말이다. 애들에 대한 책임감 일에 대한 책임감, 사람에 대한 책임감 다 내려놔.' 고분고분 이 말을 들을리 없는 자아의 목소리가 '어떻게 내려놔요. 내년이면 또 모르겠어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제가 내년에는 좀 내려놓으려고 했었죠' 하네요.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그 주 수요예배 가서 기도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는 말씀이 생각나서 뜨거운 눈물이 났어요.
최근에 읽던 몇 권의 책 <융, 중년을 말하다> <하나님을 갈망하다>들은 지성과 영성을 일깨워 스스로 정리가 되도록 도와주었어요. 어제까지 위에 적은 내용들이 하나 씩 정리가 되면서 턱과 목이 아프던 것들도 거의 통증을 못 느낄 정도로 좋아졌어요. 그 책임감의 짐을 내려놓고 '쉽고 가볍다'고 하는 그 분의 멍에로 바꿔서 메는 중에 있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의 멍에'인듯 해요. 이제부터는 사랑에 항복하고 참 쉼을 얻을 일만 남았네요.
이렇게 6번 날개를 가진 7번은 그렇게도 무겁던 책임감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기로 했답니다.
다 내려놓고 왔는데 다시 그걸 만지작거리러 돌아가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요.
흐린 날이 지나고 맞는 파란 하늘과 햇살은 유난히 밝고 유난히 따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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