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했다. 또 이사를 했다. 제목에 '결혼 후 열네 번째 집'이라고 썼다가 사진을 고르며 바꿨다. 집을 고르는 기준, 내게 이 집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창'이다. 창으로 보이는 바깥세상이다. 생각해 보니, 내 마음에 남은 열세 집은 모두 창이다. 창이 있으나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집. 바람이 불면 덜컹덜컹 유리가 깨져 날아갈 것 같았던 집, 가장 춥고 서러운 집이었는데 말도 안 되게 좁은 주방 한켠의 창과 거기서 보이는 나무 한 그루로 위로받았던 집.
"이제 이사의 달인이 되셨겠네요." 또 이사했다고 말하면 이런 말을 듣지만. 그렇지 않다. 이사는 달인이 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사와 관련된 모든 겪어내야 할 것들은 웬만해서는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집을 구하는 일, 집을 구하며 향후 몇 년 가족의 진로를 생각하는 일, 대출을 받는 일, 그리고 이사 당일의 추운 마음.(이사 시점이 늘 겨울이다.) 외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남편이 다 감당하고 있어서 이런 말 하기도 그렇지만. 내게 가장 힘든 것은 이사 당일 하루를 견디는 것이다. "신발 신으세요!"로 시작하는 이삿짐 센터 직원들의 시간은 아무리 겪어도 어렵다. 스팀청소기로 걸레질하던 내 거실과 안방을 신발 신고 누비는 그 하루가 내겐 정말 어렵다. 숨겨두었던 짐들과 먼지가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에는 수치심이, "책이 왜 이렇게 많아요. 짐이 참 많네요." 이 말에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여타 많은 감정들이 밀려오고 밀려가지만 짐 싸는 진도 맞춰 묵묵히 서성거린다. 마음은 한없이 서성거린다.
앞 베란다에서는 해가 뜨고 주방 쪽으로는 노을이 물드는 집을 두고 오는 것이 참 아쉬웠다.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으면 오른편 하늘이 붉게 물들며 해가 뜨고, 저녁 준비를 하려고 서면 저 앞에서 다시 불게 물들며 노을이 진다. 새로 이사한 집에선 해가 지는 것을 거실 책상에 앉아 볼 수 있다. 창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모든 집에 창이 있어서, 그래도 이제는 뻥 뚫린 풍경을 볼 수 있는 창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사 시즌에는 늘 조금씩 우울하지만 창이 있으니 다시 생기가 돌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낡고 어둡고 추운 집도 그대로 두지 못하는 나이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뜻한 곳으로 만들고 마는,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마는, 에로스 에너지를 장착한 나이니까. 감사할 것을 무한으로 찾는 나이니까.
이사하고 난 다음날 아침, 말씀 묵상에서 조금 엉뚱한 포인트가 위로의 메시지로 왔다. 대림기간 묵상이었으나, "하나님과 집, 예수님과 집"이라는 키워드로 내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삼하 7:5-6)
우리 하나님께서는 집 없이 옮겨 다니시는 분이구나. 당신의 백성을 위해, 당신의 백성이 있는 곳에,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옮겨 다니시는 분이지! 몸으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도 그러하셨지. 탄생부터 그러하시고, 평생 그러셨지. 대림의 은총은 '하늘 집'을 버리고 '땅의 집'을 선택하신 예수님이다. 얼마나 집이 없으셨는지... 태어날 출산 공간조차 찾을 수 없었고, 곡절 끝에 태어나 누이신 첫 집이 말의 밥통이었으니. 집이 없다고 꼭 이렇게 이사를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것이 내 고유한 부르심이구나! 깨닫는다. 좋은 집, 나쁜 집, 새 아파트, 낡은 빌라...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옮겨 다니는 동안 그분과 함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론 현존으로, 더 많은 시간 부재로 우리 집 거실, 창문 앞에 함께 계셨다. 여기는 다시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열네 번째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 글을 보내고 책을 받고 하는 출판사 등에 주소가 또 바뀌었다고 알리기가 민망해서 쓰는 글입니다. 여하튼 또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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