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사진도 평소 하던 걸 설정하고 찍어야 설정스럽지 않은 것 같다. 설정 사진의 영업 전략은 설정인 게 최대한 티 나지 않아야 하는 건데. 몸에 익숙하지 않은 걸 설정하다 보면 어색할 수 밖에 없다. 설정한 ‘독서’ 영상이다. 그런데 일단 독서가 먼저였다. 주일 오후,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책을 보다 시원한 바람에 베란다로 나갔다. 홍순관의 노래처럼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 바람이다. 베란다에 부는 바람이 춤이 되어 흩날리는 것이 예뻐서 보던 책 들고 그대로 나갔다. 아, 이거 그림 된다! 싶었다. 소파에 뒹굴며 '독서' 중이던 채윤에게 사진을 찍어 달랬다. "아, 나도 독서 중이라고요~! 조금 옆으로 가서 앉아 봐. 아니, 아니 창 쪽으로..." 그렇게 설정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설정 티 많이 안 나게 잘 찍은 것 같다.
그리 잘 다듬어지지 않은 탄천이 있고, 꽤나 잘 조성된 아파트 산책길도 있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너가면 시골길 느낌을 걸을 수도 있고, 조금 더 가면 얕은 산을 탈 수도 있다. 중요한 것! 몇 번 다니며 익숙해지자 새들의 아고라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숲 사이, 시골길 덤불 아래에 상시로 열리는 새들의 토론장이 있다. 그곳엔 늘 그 친구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휴대폰 들고 영상 촬영 해봐야 새 한 마리 제대로 담을 수 없지만. 아, 실은 이게 얘네들의 매력이다. 찰나의 만남만 허락하는 친구.
봄의 간지럽힘을 견딜 수 없어서 저녁엔 쑥국을 끓였다. 엄마가 없는 두번 째 봄, 몸의 감각이 다 살아났다.
마음이 열리면 눈이 열리고, 눈이 열리면 귀가 열린다. 일상의 모든 일엔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있고,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한결 가벼워진다. 이미 잘 알고 있고, 늘 생각하고 있지만 열두 번째 이사로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삿짐 정리로 몸이 피곤한 것은 기본, 숨겨놓은 짐들이 죄 끌려 나오고 펼쳐지고 헤집어지는 것의 두려움도 마땅히 감당할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가벼워졌다. 마땅히 감당할 것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것을 멈추니 어차피 감당하지 못할 내 한계가 보이고, 쭈글한 내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고 자기 비하의 나락으로 떨어질 생각은 없다. 자기 연민에 빠진 불평이 줄고 '탓' 할 대상을 찾는 일도 심드렁해졌다. 탓할 대상은 결국 늘 하나님인데, 그분이 내 마음 가까이 느껴져 탓을 하기보단 "짐 정리하는 동안 옆에서 바라봐 주시는 것"도 고마운 정도가 된다. 마음이 열려 여백이 조금 생기니 눈도 귀도 더 소중한 것에 열리는 것 같다.
결혼 선물로 받은 액자가 있다. 당시 남편이 근무하던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하시던 장로님께서 손수 써주신 글이 담긴 액자이다. 이걸 선사해주신 장로님은 이미 천국으로 가셨고, 액자는 빛이 바래 그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정색하고 앉아 이 말씀을 묵상해 본 적이 없는데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그야말로 벽에 걸린 액자로 늘 거기 걸려 있는 말씀이 일상의 눈 맞춤으로 스며든 것일까. 아니, 가끔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 말씀을 읽어주곤 했다. 한자를 읽어주며 말씀의 뜻을 설명하기도 했다. 식탁에 앉아 아이들이 싸울 때, 맛있는 것이 없어서 투덜거리는 마음이 들 때 한 번씩 쳐다보면 마음에 새기는 말씀이었다. 이삿짐 정리하며 "식탁 위에 걸까?" 하는데 남편이 "굳이 걸어야 하나? 그냥 세워둬도 되잖아." 하며 커피장 빈 공간에 일단 세웠다.
이사 다음 날,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정리하며 늦은 오후가 되었다. 주방 정리를 하는데 세워둔 액자 위로 또, 또 그림자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늘은 넘어가는 해가, 서쪽으로 스러지는 해가 주방 창틀을 가지고 하는 작품 활동.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고 말 작품이기에 멈추어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분이 보내시는 메시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멈추어 듣는다. "말씀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액자에 담긴 글이 말하는 것 너머, '창조의 책' 자연으로 말씀하시는 드넓고 신비한 그분의 존재를 느낀다. 당신, 여기 계시군요! 이 집에도 계시는군요! 아, 액자에 담긴 글도 다시 읽는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7:1) 한 번도 제대로 묵상해 본 적 없지만, 결혼 22년에 열두 번 이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오늘이 이 말씀에서 얻은 힘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얄팍한 정서적 위안이 아니라 존재 깊은 곳에서 끄덕여지는 긍정이다.
잠시 머물렀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분주하게 손이 가는대로 정리하다 저녁 준비를 하러 주방에 섰다. 아, 주방 창문으로 들이닥친 일몰의 풍경이라니! 이건 뭐 환영의 인사다. 만나서 반갑다고, 같이 살게 되어 좋다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하는 진정성 담긴 인사 아니고 무엇이랴. 인사를 건네는 주체는... 모르겠다. 몰라도 괜찮다. 우주가 나서서 새 집에서의 일상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것을 충분히 느꼈으니!
이사에 관한 한 충분히 준비된 몸이다. 누군가 붙여준 별명처럼 '이사의 달인'이다. 남편은 부동산 관련 모든 업무를 꿰고 있고, 나는 미리미리 정리해야 할 짐, 바로 전날에 해야 할 일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이사는 특히 집이 안 구해져 마음 졸이던 시간이 길어서 받아야 할 스트레스도 차고 넘치도록 받았다. 정서적으론 분노도 설움도 다 지나갔으니 그저 이사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벌써 열두 번째 이사이니 덤덤할 수 있다, 덤덤해야 한다, 마음먹고 덤덤히 지냈다. 이사가 사흘 정도 남은 날, 채윤이가 "엄마, 요즘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다. "왜애? 무슨 일 없는데..." "아니, 그냥 표정이 계속 안 좋아서..." 그리고 그다음 날, 이사 이틀 전.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맘에 들지 않았다. 뭐든 딴지를 걸고 싶어 눈동자를 굴리고, 예민 지수가 쭉쭉 올라가는 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그런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나를 느낄 수 있었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남편과 산책을 하다 "나 이사 앞두고 예민한가봐. 집이 구해져서 다행이고, 여러 모로 다 잘 됐는데, 이사 준비도 당신이 알아서 착착 잘하고 걱정할 게 없는데 자꾸 예민해져." 고해성사하듯 꺼내놓아 보았다. "나도 그래. 예민해지고 불안하고 그래. "당신도 그렇다고? 아, 내일 아침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오는 시간, 그 시간을 상상하면 벌써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 이삿날 아침 그 시간,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힘들어." "나도 그래. 갑자기 군대 있을 때 훈련받던 생각이 나네.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 야외 훈련을 하거든. 아침에 신호 울리면 부대 안의 짐을 싹 다 싸는 거야... 이삿날 아침하고 비슷하지."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삿 날 아침의 스트레스는 군대 훈련 스트레스를 방불케 하는구나, 싶으니 뭔가 위로가 되었다.
사람 마음이 참.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를 확인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불안하여 예민해지는 나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왜 그런지도 알아졌다. 이삿짐 센터 분들이 들이닥치는 순간부터 집안의 모든 것은 '이삿짐'이 된다. 그 말은 헤집어지고 풀어헤쳐진다는 뜻이다. 이삿짐을 쌓고 푸는 과정이 내 물건들이 다 까발려지는 느낌이다. 그게 그렇게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일이었다. 일하시는 분들에겐 그저 일일 뿐이지만, 내 일상의 물건들이니까. 늘 보이는 물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까지 죄 끄집어내야 하는 일이 이사니까. 내게 속한 물건이니 나의 일부, 심지어 나 자신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사의 달인, 이사 전문가가 되었어도 이사 당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이 불편함. 그저 이 불편한 하루가 어서 지나길 바라며 추운 날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성이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괜히 불안하고 괜히 예민해진 게 아니었어. 이렇듯 마음 먼저 정리되고 맞은 이삿날 아침은 괜찮았다. 일찍 일어나 영적독서, 기도 시간을 갖고 더욱 여유 있게 내려 커피도 한 잔 했다. 커피잔을 들고 베란다 앞에 서니 동쪽 산 끝자락에서 붉은 해가 머리를 내밀기 시작. 어설픈 각도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그러고도 여유가 있어서 집안 여기저기 눈을 맞추는데, 오메! 아까 머리를 내민 해가 베란다 이쪽으로 한참 가까워져서는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선인장과 다육이를 가지고 신박한 그림자 그림을 그려냈다. 멋진 작별인사다. 아침마다 바로 이 자리에 서서 행복했다. 충분히 행복하여 아쉬울 것 없는데, 마지막 날까지 그냥 보내지 않고 이렇듯 선물을 준비해 쐈다. 아이구, 뭐 이런 걸 다!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을 주겠다고, 지난번에 줬는데 또 주겠다고, 가급적 추석 전에 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태어나서 일도 안 했는데 돈을 받긴 처음이다. 아니다. 두 번째구나. 아니, 세 번짼가. 전에 살아보지 않았던 세상, 코로나 세상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첫 번째는 지난 3월이었다. 이런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올해 초, 몇 개월 앞의 강의들이 약속되어 있었다. 코로나 세상이 오고, 대면 예배가 불가능해지면서 모든 강의 약속은 잠정적으로 취소되었다. 강의 취소 또는 무기한 연기를 논의하던 교회로부터 갑자기 강사비 입금 문자가 왔다. 이미 시간을 빼놓으셨고 강의 준비도 하셨을 테니 강사비를 드리는 게 맞다, 는 취지였다. 아이구, 아닙니다! 강의도 안 했는데요! 이런 문자를 보내고 다시 답신이 오가다 선지급된 것으로 정리되었다. 자유로운 대면 예배가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할, 하고 싶은 곳이다. 모든 강의가 취소되고, 수입원이 끊어진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서 돈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크게 위로를 받았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자본주의를 거스르며 이렇게 살아야지, 결심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는 재난지원금을 네 식구 몫으로 받았는데,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는 용도로 썼다. 이런 걸 두고 돈이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돈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어느새 잔고가 없다는 말에 여러 장으로 나눠 받은 카드를 바꾸고, 금세 또 바꾸고. 그렇게 스쳐갔지만 고마운 지원금이었다. 특고·프리랜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신청을 뒤늦게 알고, 설마 또 주겠나 싶어 관심 없다가 마지막 날 부랴부랴 신청을 했었다. 서류는 역시 공기관 발행 서류. 어린이집 여러 곳보다 학교에서 했던 치료가 도움이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부랴부랴 필요한 서류를 보내준 제자 뮨진의 도움이었다. 재난지원금과 달리 현금 입금이 되어 '지원' 받은 느낌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추석 얼마 전 2차 긴급 고용안전 지원금을 준다는 문자가 오더니, 추석 전에 따악! 입금이 된 것이다. 코로나 세상 아닐 때도 명절 보너스 받는 삶은 아닌데. 명절 앞두고 입금된 지원금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 불러 자유 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재난지원금을 받고 얼마 안 되어 친구들을 만났다. 지원금 얘기가 나왔다. 나는 입도 떼기 전에 대화의 흐름이 정해져서, 끝내 나는 입을 떼지 못한 대화지만.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친구 얘기에 입이 딱 달라붙었다. "야야, 나라가 돈을 주니까 받기는 하는데. 나는 걱정이야. 이렇게 세금 다 퍼 쓰다가 우리 애들 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 이렇게 선심 쓰다가 나중은 어쩌려고 그러지?" 했다. 이쯤에서 한 마디 하고 싶었는데 끼어들질 못했다. "그래도 좋긴 좋더라. 공돈 들어와서 뭘 할까 하다가, 이번에 그걸로 선글라스 바꿨어. 애들도 같이" 여기서도 한 번 틈을 봤는데 바로 이어지는 "핫핫핫핫...." 하는 웃음소리에 포기하고 말았다. 상당히 구차하게 느껴지는 내 얘기를 먼저 해야 내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는 게 어떠냐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 생각도 나고. 핫핫핫핫, 초긍정 웃음소리에 묻혀 같이 웃고 말았다.
집주인에게 정색하고 다시 물어 확인했다. 정말 주인의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게 맞냐. 그게 아니라 임대차3법 피해서 전세금 올리려는 거라면, 원하는 만큼 올려주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담판 지을 생각이었는데. 주인이 들어오겠단다. 집을 알아보는데 이 동네, 저 동네 전세라곤 없다. 이유는 거의 한 가지! 주인이 들어온다. 핫핫핫핫.... 이럴 때 웃어야지. 있지도 않은 전셋집인데 전세가 상승은 말로 할 수가 없다. 1억이 웬 말이냐! 1억 5천이 웬 말이냐! 이런 우리 형편을 듣는 주변 분들이(주변 분들이 전세 사는 분이 없다ㅠㅠ) 우리보다 더 화를 낸다. 전셋값 잡는다더니 탁상공론으로 전세 사는 사람들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정부를 향해 욕을 욕을 해대는데. 듣고 있자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법망을 피해 "주인이 들어간다"며 뻔한 거짓말을 하고, 세를 올리는 사람들은 집주인인데. 보아하니 향후 몇 달 전세도 놓지 않고, 주인이 들어오지도 않아 빈집이 허다할 텐데. 그 집에서 나온 사람들은 몇 천씩 대출을 받고도 들어갈 집을 못 구해 전전긍긍일 텐데 말이다. 2년 만에 전셋값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 4년 후 올릴 때도 상한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법이 탁상공론이 된 것은 집으로 돈 버는 사람들 '욕망'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그 정도로 법 만들면 세입자들 보호가 된다고 여긴 것은 집주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탁상공론 아닌가. '법 사이로 막 가는' 부동산 놀이에 하루 이틀 단련된 분들이 아닌데 말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 가족이 어디 아프면, 아픈 몸이 걱정이 아니라 병원비 걱정으로 마음이 내려앉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사는 세상도 있다. 잘은 모르겠다. 2년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집이 1억 씩 벌어주는 세상? 핫핫핫핫...... 언젠가 우리 모두 돌아갈 나라가 있다. 몸의 한계를 벗어나 그분과 함께, 그분처럼 살아갈 세상이 있다. 그 세상을 여기서 미리 사는 것이 내 꿈이다. 강의도 안 했는데 들어온 강사비, 일도 안 했는데 들어온 생계 지원비와 명절 전 입금된 현금 50만 원. 이런 일들은 언젠가 돌아갈 그 나라가 있음을 믿으라는 표식처럼 내게로 온다.
마당에 텃밭을 일구신 장로님께서 수확한 쌈야채를 듬뿍 주셨다. 갖가지 야채 사이에 오이 한 개가 파묻혀 있었는데, '유일하게 열린 오이'라고 남편이 전해주었다. 직접 혼자 지어본 농사는 없지만, 경험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지켜보는 설렘을 안다. 제 모양을 갖춘 열매가 매달린 것을 보고, 수확하는 기쁨도. 그놈을 어찌 먹을까? 저 오이 하나가 실 한가닥이 되어 어린 날의 기억을 줄줄 끌고 나온다. 짧게 한 교회에 몸 담았던 장로님이신데, 야채와 함께 무엇보다 유일한 오이를 넣어주신 게 특별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어렸을 적, 아마 이 즈음일 것 같다. 봄 지나고 채소든 과일이든 따먹을 것이 생기는 때. 저녁 무렵이면 "사모님"하고 대문을 들어서는 언니나 오빠나, 집사님들이 있었다. 손에 든 바구니에 금방 딴 복숭아가 들어있기도 하고, 고추나 가지 같은 채소도 있다. 첫 열매. 그 해 처음 난 수확물을 목사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다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나도 그리 알았다.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어떤 특권의식 같은 것은 분명히 있었다.
지난주에 어렸을 적 친구를 만났다. 옛 친구 만나면 지금 얘기보다 그때 얘기를 하게 되는데. 결국 시간여행이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동네 친구이며 교회 친구이기도 해서 같이 많이 놀았는데, 같은 놀이도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있는 친구였다. 풀 뜯어서 가짜 김치 담그는 소꿉놀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배추를 구하고, 집에서 고춧가루를 훔쳐다 진짜 김치를 담가 땅에 묻어 놓기도 했다. 난리 부르스를 추며 놀았다. 어른이 안 계실 때는 그 집에 몰려가 부엌에 모여 되지도 않는 뭔가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 친구 집 부엌이 난리 부르스의 무대가 된 날이었다. 누군가 찬장을 뒤지다 가장 안쪽에서 커피병을 발견해서 꺼내 들었다. 뚜껑에 커다란 별이 하나 있는 맥스웰 커피병이었지 싶다. 그러자 집주인인 친구가 "야아, 그거 손대지 마. 그거 목사님 심방 오시면 드리는 거야!" 했다.
목사님은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는 커피를 좋아하셨다. 그 친구네는 동네에서도 꽤 어려운 편에 들었었다. 그런 친구 집에 당시엔 흔하지도 않은 커피가 찬장 안쪽에 들어 있고, 오직 목사님을 위한 것이라니. 그 역시 당연히 그래야 했던 어떤 의식, 목사를 특별해 대접해야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깨가 으쓱했던 것 같고, 다시 특권의식을 당연히 하는 마음이었다.
어릴 적 이런 기억, 목사 딸로서의 특권의식, 터무니 없는 특권의식은 나를 형성하는 중요한 힘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한때, 이런 내가 몸서리치게 싫었던 적이 있었다. 남편이 늦게 목회자가 되어 다시 들어간 목회자의 세계는 당연한 특권의식의 세상이었다. 어릴 적 내가 태어나 보니 목사 딸이라서 누렸던 첫 열매를 먹는 특권 같은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그 세계 안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평신도 성인으로 살다 들어간 목회자의 세계의 당연함이 낯설다 못해 역겨웠다. 그때부터는 어릴 적의 나, 어릴 적 우리 가족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교인들이 땀 흘려 가꾼 열매, 첫 열매를 가만히 앉아 받아 당연한 것으로 받아먹었다니! 가난한 과부의 찬장 숨긴 커피를 독식하다니! 엄마 아버지가 조금 파렴치 하게 느껴졌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참회의 마음으로 썼던 글 <레위인 콤플렉스>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질풍노도의 신앙 사춘기를 통과하던 시절이다. 어릴 적의 나도, 그 글을 쓴 나도 다 나다. 무엇보다 지금의 내가 나다. 오늘 저 오이 하나가 뭉클하게 좋았다. 어떤 마음으로 보내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릴 적 "사모님, 엄마가 이거 갖다 드리래유" 하며 들고 온 바구니 속의 복숭아가 떠올랐다. 친구 집 찬장 속에서 발견한 커피병이 떠올랐다. 특권의식이니 그에 대한 부끄러움이니, 꿈같은 얘기 같고 그저 마음이 따뜻하다. 누군가를 위해 좋은 것을 아껴둘 수 있는 마음, 그 대상이 신적 권위를 대신하는 사람이라면 거룩하기까지 한 내어줌이겠지.
엄마 아버지가 교인을 갈취하는 목회자 부부도 아니었다. 그 커피병 친구가 그랬다. 아직 시골의 그 교회 다니고 계신 친정 엄마에게 "신실이 엄마, 사모님 돌아가셨대" 했더니 너무 안타까워 하셨다고. "그 사모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가장 사모님 같은 분이고, 그런 사모님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어." 하셨단다. 울컥 뜨거운 것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 말 듣는 순간 엄마 얼굴과 함께 무화과나무 생각이 났다. 꽃밭 한 구석에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열매를 잘 맺는 무화과였다. (잎이 무성했음에도! ㅎㅎ) 나는 무화과의 달착지근한 맛이 싫어서 입에 대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 무화과나무는 우리 집을 예수님과 연결시키는 것 같아 좋았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집에 돌아갔는데 무슨 풀냄새가 진동했다. 잎이 무성했던 화단의 무화과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교인 중 한 분이 어디가 아픈데, 무화과 잎을 끓여 먹으면 좋다는 얘기를 들은 엄마의 거침없는 선택이었다. 무화과 잎 국물을 마시고 교인이 나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우리 집 무화과나무는 다시 열매 맺지 못했다. 시들시들 죽고 말았다. 나는 그 무화과나무가 아깝고 아까웠다.
교인들 집의 첫 열매를 당연함으로 받아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엄마도 아버지도 나름대로 내어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거침없이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었던 시절...... 사람들의 상상 속에 목사가 독재자이거나 사기꾼일 수 없었던 시절...... 거룩한 분노와 불신이 아니라 맹목적 신뢰와 존경이 교회의 기반이었던 무지몽매하여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되돌릴 수 없는, 잃어버린 시절이다. 말라서 죽어버린 무화과나무처럼. 그 복숭아와 무화과나무가 오버랩되어 자꾸 어른거린다. 말라죽은 무화과나무가 살아나 주렁주렁 복숭아 열매를 맺는 그림을 상상했다.
'상실과 고립'이란 주제로 영상 강의를 하나 했는데, 그 여파인지 상실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강의 중에 질문을 던졌다. "잃어버린 것들, 잃어버려 아쉬운 것들을 떠올려 보자"라고. 그 질문이 부메랑이 되어 이번 주 내내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구나, 오이와 함께 그 질문이 나를 그 시절로 이끌었구나.
6시, 클래식FM에서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간이다. 전기현님 목소리와 음악이 구분이 안 된다.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가 노래 같고, 노래가 말 같다. 조화롭다.
라디오를 켜고 앉으려는데 염좌 잎 끝에 묻은 저녁 해 한 조각이 윙크를 한다. 큰 염좌, 중간 염좌, 작은 염좌. 세 개의 화분이 있는데 그 중 중간과 작은 애, 두 아이였다. 넘어가는 저녁해가 손톱 끝 봉숭아물처럼 주황빛을 발라놓았다.
아, 붙들고 싶은 찰나, 잡아서 늘리고 싶은 시간이다. 전기현의 ‘세음’의 시간, 이 시간 소심하게 발사하는 빛의 매력, 빛의 윙크. 너무 좋아!
하는 순간 갑자기 9시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씹어대고 싶은 충동. 6시 세음과 달리, 아니 세음보다 더 오래 내겐 더 소중한 FM의 시간인데 빼앗긴 것만 같다. 음악이 안 들리고 말, 아니 수다, 아니 사연 소개를 빙자한 어설픈 조언으로 귀가 시끄럽다. 이게 클래식 FM인지, 여성시대(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거다. 가령, 사춘기 아이 때문에 속상한 사연이 있다. “커피 한 잔 하시고 마음 가라앉히세요. 아이 마음을 읽어주세요. @&)j”:;$@@&!?:.... 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도 자라게 되어 있어요....@&(₩%¥+${#%....” 제발 사연 읽어주고, 곡 소개하는데 그쳤으면. 인생 조언은 묻는 사람에게만 눈맞추고 하셨으면. 결국 아침부터 라디오를 끄는 사태가 몇 번. 요즘엔 아예 켜질 않는다. 켜지 못하는 그 시간, 상실감이 크다.
세음이 좋으면 좋은 거지, 엄한 프로그램, 엄한 진행자를 씹어대?냐고, 당신이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게 구박을 주었다. 취향이 확실해서 그렇고, 치우치거나 한 쪽 편 들어 싸움 부추기는 걸 좋아해서 그렇다.
원고를 하나 쓰면서 뼛 속까지 이원론, 생활형 이원론을 생각하고 있다.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내 편 네 편... 영성의 여정은 통합을 향하는 길이다. 리처드 로어 신부님 말씀대로라면 '제3의 눈'을 얻는 것이다. 옳고 그름, 잘잘못을 따지는 관점을 초월하는 통합의 눈. 내적 여정을 걷고 동반하면서 성숙과 미성숙의 관점, 좋고 나쁨의 관점을 넘어선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절감한다. "좋은 꿈 나쁜 꿈이 없다. 모든 꿈은 개인의 성장을 도우러 온다." 책에서 수백 번을 읽어도 내 꿈을 보는 눈은 좋은 꿈, 나쁜 꿈이다.
손쉬운 초월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1의 눈, 2의 눈의 발달이 먼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구분하고, 판단하는지 모르고는 제3의 눈을 뜰 수 없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뼈에 새겨진 나만의 이원론을 인식하지 못해서는 알아들어지지도 않는다. 즉 내가 얼마나 삿된 눈을 가졌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로 거룩한 눈을 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취향'에 자꾸 꽂히는 것 같다. 취향, 가장 손쉽게 드러나는 개인의 고유한 욕구. 말하자면 세음을 좋아하는 취향, 거기에 더해 가정음악이 싫어 죽겠는 취향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다는 얘기다. 뜻을 품고 소중하게 여겨보려고. 그러니까 김미숙의 가정음악이 싫다는 말이지, 싫으니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세음과 세음의 시간, 해가 넘어가는 이 시간이 참 좋다는 얘기다.
싱크대는 설거지로 머무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내 자리가 아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1/4만의 내 자리이다. <82년 생 김지영>, 청소년 백수 '꽃친'의 시간, 등의 나비효과이다. 현실적으론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으로 팔을 잘 쓸 수 없게 되면서 지분 분할이 더욱 명확해졌다.
고구마에 싹이 나고 잎이 나면 가위바위로, 가 아니고 무조건 쑹덩 잘라서 싱크대 앞에 놓는다. 새생명으로 받들어 키우는데 참 사랑스럽다. 보랏빛 싹이 나고 자고 일어나면 쑥 커져 있다. 아침마다 내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치는 고마운 선생님, 귀여운 아기이다.
싱크대 앞에 서는 시간은 3/4으로 줄었지만 정서적으로 여긴 내 구역이다. 내 구역 안에 생명의 기운을 배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개운죽 한 뿌리, 꽂아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 자라고. 자그만 다육이 염좌도 알아서 잘 생존하고 있다. 작은 생명들은 내 영혼을 흔든다. 작고 무력한 녀석들은 생존만으로 기쁨이다.
내적 여정 세미나를 금, 토 연달아 진행했다. 연구소 일이 많아지기도 하고, 같은 내용을 연달아 다른 그룹과 나눌 때 역동의 차이를 몸으로 경험하는 배움이 크기에 그리 배치했다. 예상했지만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실은 보기보다 강한, 강의에 최적화된 성대와 체력으로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스물한 살 채윤이가 자아에 대한 고민으로 무거운 표정이기에 막판 취소로 자리가 난 내적여정 세미나에 초대했다. 마치고 여러 얘기를 했지만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엄마, 엄마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줄 몰랐어. 전에 봤던 강의처럼 중간중간 웃기면서 막막 그냥 엄마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줄 알았어. 나는 엄마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상상도 못하겠어."
딸이 그리 말해주니 나를 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다. 위로도 되고.
주일 예배 마치고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에 원고도 뭣도! 모든 '일'에 대한 강박을 뒤로 하고 카페에 가 시간을 보냈다. 이래도 돼. 아무 것 하지 않고, 의무감 없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힘이 생겼다. 생산적인 어떤 일도 하지 않을 자유와 힘. 일정 마치고 집에 들어간 남편이 전화를 해왔다. "어디야?" "스벅" "누구랑 있어?" "나랑"
나랑 함께 있어 주었다.
연구소 내적여정이 잘 되고 있다. 사람이 잘 모이고 있다. 이틀 간 20여 명의 새로운, 익숙한 얼굴을 대한다. 강의가 아닌 영적 안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시간이다. 존재의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연구원 네 사람과 함께 마음을 담아 준비하고 진행한다. 채윤이 말처럼 돈을 버는 일도 아닌데.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다. 매 세미나마다 그때 그때 다른, 매너리즘 따윈 상상할 수 없는 존재와 존재로 만나는 창의적 시간이다.
신기한 것은 '자라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바로 에너지 충전이 된다.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이다. 싱크대 앞의 고구마 싹이 좋은 이유를 알겠다. 성장이 눈에 보이는 것만큼 나를 흥분시키는 것이 없다. 인상이 어떻든, 미성숙한 모습에 없어 보여도 오가는 대화 속에 성장의 기운이 보이면 사랑, 소망, 믿음이 한꺼번에 용솟음 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공들여 키우는데 자라지는 커녕 시들어버리는 않는 식물,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더는 배울 것 없다는 태도를 견디는 것이 내겐 참 어려운 일이다.
강사, 작가, 특히 내적여정 안내자.
참 좋아하는 일인데, 오늘의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일인데, 거침없이 열정을 쏟아 붓는 일인데도 내 영혼의 갈망을 온전히 채우지 않는다. 실은 매우 만족스럽지만 그 만큼의 공허감도 피할 수 없다. 세미나를 마치면 몸이 아니라 영혼의 피로가 공허감의 얼굴로 몰려온다. 좋아하는 일인 만큼, 소중한 일인 만큼 더 잘하고 싶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힘을 많이 쓰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정장 벗고 화장 지운다고 진정한 내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싱크대 앞 일상의 나처럼 거품 없는 나도 없다. 여유 없는 며칠 지내고 선 싱크대 앞의 고구마 싹이 쑥 자라 있는 것이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주인 엄마 봐주지 않아도 제 몫의 성장을 일궈가는 녀석. 나의 일상이 너를 닮아야겠구나.
12월 첫 주일. 거실 한 켠에 성탄 트리와 대림초를 준비해놓고 피정에 들어갔다. 첫 번째 대림초를 세 식구에게 부탁했다. "하루 지나고 당신 오면 같이 켜." 하더니 셋이서 불을 밝히고 사진을 보내왔었다. 그렇게 2019년 대림초가 밝혀지고 한 주 한 주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엄마 오늘 뭐해?'를 심심하면 던져보는 채윤이랑 성탄절 이브에 데이트 했다. 대학생활 1년을 열심히 달려온 채윤이는 기말고사 끝날 날만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엄마랑 같이 맛있는 것 먹고 놀아볼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더니. 뭘 먹어도 뭘 사도 좋은 것이다. 언제 크냐, 언제 크냐 했었는데. 엄마보다 더 커져서.
성탄절 아침이 밝았어도 기다린 보람은 딱히 없다. 산타할아버지 오셨다 가지도 않고, 마라나타! 주님이 성탄절 아침에 짜잔 나타나 레미제라블의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시는 것도 아니다. 가난한 내 마음에도 그분의 풍성함이나 평화 같은 것은, 사실 먼먼 일이다. 그런데 베란다 앞의 풍경에서 산타의 흔적, 아니 주님 마음이 힐끗 보이는 것 같다. 박효신의 '눈의 꽃'이 생각나는 풍경.
'크쓰맛쓰에는 추뽀글 크쓰맛쓰에는 사당을 당신가 만나는 그나룰 기오칼께요' 교회 성탄행사에서 행복한 뒤통수를 맞았다. 기쁨도 기대도 없는 덤덤한 성탄절을 은준이, 은하 아기 천사 둘의 노래로 기쁨의 폭탄이 터졌다. 그렇게 시작작된 아기 엄마 아빠들의 노래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주님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힘들어 지칠 때나 가슴 아플 때도 나에겐 주님 밖에 없어요' 일을 하고, 일을 찾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기다리며 지난한 1년 보냈을 젊은 부부의 노래가, 그들 품에 안은 아기들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빠져서 듣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
주일학교(초, 중, 고) 아이들의 성극은 자기극복의 신화였다. 비포 사춘기, 한창 사춘기, 에프터 사춘기로 구성된 주일학교 아이들이 성극을 한다니. 가능할까 싶었는데... 와, 연기력이 또 터졌다. 압권은 목자 셋이었는데 우리집 에프터 사춘기er 현승이도 끼어있다. 얼마 전 목자 배역 맡은 세 명의 이름을 듣고 미리 빵 터졌다. 한창 사춘기 한 명과 주일학교 통틀틀어 가장 내향적인 아이 둘. 아, 진짜 목자 멤버 죽이는 걸! 분장하고 나와 서있는 것 자체로 감동이고 웃음이었다. 난 현승가 수염 붙이고 나와 섰는 그 순간부터 웃음이 터져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현승이 안식년 1년 동안 꾸준히 베이스기타를 배웠다. 기타 잡은 지는 몇 년인데 제 방 침대 위에서만 띵띵거리는 기타인데. 드디어 침대 밖 연주를 들어보았다. 침대에서 나오고, 집안에서 나오고, 제 안에서 나와 드러내고 발휘해주길 오래오래 기다렸다. 사춘기에서 나오면서 현승이 안에서 어른이 나오기 시작하여 새로운 기쁨이다. 아, 현승이 태명이 '기쁨이'였는데.
왼팔 오십견 지나가 살만 하더니 오른팔 테니스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다시 약간 무능의 삶이다. 요리칼 제대로 잡아본 지가 언제던가. 세팅 해놓으면 근사하지만 막상 크게 팔 쓸 일 없는 라끌렛으로 성탄절 저녁식사다. 넷이 달려들어 다듬고 씻고 차리면 뚝딱이다. 저녁 언제 먹냐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기다리느니 달려들어 함께 준비한다. '언제 클래, 언제 클래' 하며 기다렸던 그 '언제'가 왔다. 다 커서 제 몫의 인생을 책임있게 살아가는(살아갈) 아이들과 마주 앉은 성탄절 식탁은 성인 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