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 하는 게 많지만요.

제일 잘하는 건 아이들 꼬시기거든요.

아무리 시크한 아기도 몇 번만 찝적거리면 다 넘어오곤 하는데요.

치료는 몰라도 수업에서는 첫 시간에 담판을 짓곤 하지요.

어린이집에 처음 와서 '엄마, 엄마'하며 울던 아기들도

암말 안 하고 기타 줄 한 번 튕겨주고 '반짝 반짝 작은 별' 해주면

'저건 뭔 처음 보는 시끄러운 장난감인가?' 울음 뚝 하고 쳐다보곤 하죠.

그리고 기타 좀 만지게 해주고 몇 번 웃겨주면 끄읕!

처음 보는 아기 꼬시는 게 제일 쉬었어요.

 

그른데, 그른데~에,

3월이 되어 새로 만난 아기들이 20년 넘은 음악 션샘미 핵존심을 무참히 짓밟고 있네요.

 

두번 째 수업이었던 오늘.

 

음악 션샘미가 노래를 하는데도 계속 우는 아이가 있어요. ㅜㅜ

잘 들리라고 크게 불렀더니 더 크게 울어요.

내가 무슨 노래를 해도 다 복음성가가 되는 목소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기들 귀에는 딱 꽂히는 소리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나로 말하자면 애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음악 션샘미인데 애들이 내 노래도, 내 말도 안 들어요.ㅜㅜ

지난 주 첫 시간에 빼앗았어야 하는 마음인데..... 더 어려워진 거죠.

아, 정신실 이제 이 바닥을 떠날 때가 된 건가? 패배감과 무능감이 밀려옵니다.

그 찰나 복도에서 완전 천진난폭한 녀석을 만나 확인사살 당합니다.

네 살, 다섯 살 때 내 음악수업을 들었던, 이제 일곱 살 형님이 된 녀석이 절 보자마자 그럽니다. 

어, 음악 션샘미다. 그런데 음악 션샘미 왜 할머니 됐어요?

야!!!!!!!!!!!!!!!!!!!!!!!!!!!!!!!!!!!!!!

 

음악 션샘미, 정신실.

이렇게 중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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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리버빌 또 하나의 가족 '동인이'를 보는

동인리버빌 주민 두 개의 시선.

 

빌라의 미관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나동 아줌마가

개 판자집과 그 앞에 놓인 개 음식들에  개빡치셔서 아래쪽 대자보를 먼저 붙이셨다.

 

가동 202호 아줌마는 얼굴없는 주인 중 하나로 주로 남편을 통해서 동인이를 돌보시더니

또 다른 대자보를 내걸으시며 동인이의 실소유주로 커밍아웃 하셨다.

 

그리하여 동인이 근황은 이렇다.

허술했지만 정겨웠던 주차장 옆 판자집은 철거되었다.

동인이는 농성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철거 후 건물 뒤쪽으로 이사를 했다.

 

반전.

형편이 훨씬 좋아졌다.

유령 주인이 여럿이다 보니 서로 의견 조율할 방법이 없는 탓.

집이 갑자기 두 채나 생겼다.

이 녀석 개 주제에 다주택 소유자가 되었다.

개 부럽.  

이 주인 저 주인, 이것 저것 마이 멕여서 핼쓱했던 볼도 통통해졌다.

완전 개 부럽.

 

여하튼 동인리버빌의 동인이는 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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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차지했던 겨울이 아침과 낮까지 차지해버린 지난 주 어느 날.

빌라 계단에 커다란 개가 앉아 있다며 현승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개를 키우는 집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 잘못 본 거라며 일축했다.

주차장에 강아지라 부르기엔 크고 개라고 부르기엔 아담한 놈이 하나 어슬렁거린다.

아, 저 녀석이었구나.

날이 추워서 따뜻한 곳을 찾다 어떨결에 들어왔었나보다.

얘가 빌라 건물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날은 더 추워지고 있었다.

계속 저러고 있으면 무슨 조치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승이랑 걱정을 하며 박스로 집이라도 만들어줘야 할까 의논을 했다.

다음 날 아침 먹을 걸 가지고

내려가 보니 누군가 이불을 깔아놓았다.

우리 빌라의 이름을 따서 '동인'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이 녀석 집이 내 차 바로 뒤인데 내가 돌아와 주차를 할라치면 

퍼져 앉아 있다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후진을 잘 하고 있는지 내내 지켜보고 있다.

오라이, 오라이, 핸들 풀고, 오른쪽으로, 오른쪽, 오른쪽! 할 기세. 

내려서 '동인아' 하고 부르면 꼬리 치고 따라와 맴돈다.

잠깐 놀아주다 빌라 현관 키를 누르고 자동문이 열리면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다.

따라 들어오진 않는다. 착한 녀석.

강아지 트라우마가 있는 채윤이를 제외하고 세 식구가 동인이 사랑에 푹 빠져있다.

세 식구 뿐 아니라 지금 이 골목의 여러 사람들이 동인이로 인해 대동단결이다.

박스로 만든 집이 생기고, 그 위에 담요가 덮이고, 먹을 것이 즐비하다.

주차하고 잠깐 놀고 있으면 

동인이 보러 나오 주민1이 머쓱해 하며 지나가던 사람 행세를 한다.

모른 척 하고 자리를 내준다.

현승이는 학교 마치고 소시지를 사가지고 친구들을 몰고 온다.

주민2 아저씨가 소시지는 몸에 나쁘다며 주지 말라고 했단다.

그래서 지가 먹었단다. 

 

현승이는 가게 가서 우유 사오라는 심부름은 뺀질거려도

동인이 먹을 것 갖다주라는 말을 잘도 듣는다. 

동인이 아빠, 아니 아니 현승이 아빠는 가끔 화곡시장 족발집에 동료 목사님들과 간다.

입에서 살살 녹는 족발, 정말 맛있는 족발이다.

가는 길에 포장 좀 해다주지, 나도 먹고 싶은데. 하면

바로 사무실로 가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을 안 들어준다.

그러던 동인이 아빠, 아니고 현승이 아빠가 밖에 있는데 메시지를 보내왔다.

'화곡동 족발 사다 집에 갖다 놨어. 맛있게 먹고 뼈는 동인이도 좀 갖다줘'

개 덕분에 그렇게 먹고 싶던 화곡동 족발 먹어보네. 개고맙!

뼈를 갖다주는데 살 다 뜯어먹고 뼈만 주냐며 뭐라 한다.

'내가 자세히 봤는데 그 녀석 얼굴이 말랐더라. 그동안 못 먹고 다녔나봐'

(얼굴 마른 걸로 치면 개보다 당신 와이프가 더 말랐다!)

이런 와중에 개 트라우마 채윤이는 들고 날 때마다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어오는 길 내가 동인이랑 놀며 시간을 벌어줘도 차에서 벌벌거리고 못 내리고 있다.

개가 아닌 딸한테 빡쳐서 '얘가 착한 앤데 뭐가 무섭다로 그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또 하나의 가족 개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 가족을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 회복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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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의 기대가 가장 높은 주일 저녁의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닭도리탕'아니고 '닭볶음탕'이라고 현승이가 아무나 붙들고 강조한다.)

닭을 사러 망원시장에 갈까 하다가 동네 마트에 갔다.

최근에 동네 마트 하나가 문을 닫았다.

건물이 철거되는 모양인데, 굳이 철거가 아니라도 오래가긴 힘들 거라 생각했다.

상치는 늘 시들어 있었고, 무순은 상해서 문드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 정육점은 조금 달랐다.

정육점 아저씨! 아, 진짜 재밌는 분이었다.

삼겹살을 한 근을 사려면 아저씨만의 삼겹살적 세계관에 대해 한참 들어 드려야 한다.

삼겹살로 시작하지만 결국 결론은 늘 같다.

좋은 고기를 가져오기 위한 경로가 따로 있고,

아저씨는 그 경로를 알기에 좋은 고기를 가져올 뿐 아니라 

(거의 손해 보면서) 싸게 팔고 있으며,

다른 정육점들이 얼마나 성의 없이 장사하는지가 하는 것들이다.

난 이런 데 걸려들기 딱 좋은 성격이며 연령대의 주부라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헤~ 웃으면서 조바심 나는 마음을 누르며 들어 드려야 했다.

 

헌데 그 마트가 없어졌다.

내게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다.

없어질 만한 마트가 없어졌다.

오늘 닭을 사러 또 마트에 갔는데...... 갔는데......

어, 없어진 마트 정육점 아저씨가 거기 정육 코너에 딱 계시는 것이다.

"어, 아저씨. 여기 계시네요.'

반가워서 한 마디 했는데, 아뿔싸! 뇌관을 건드렸다.

바로 네버 앤딩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이 쪽으로 온 지 두 달 됐다. 명절 때부터 이미 와 있었는데 몰랐냐.

나를 아는 아줌마들은 이미 다 알고 이리로 왔었다.

명절에는 소고기들을 많이 찾는데 내가 파는 소고기는 블라블라블라.................

또 다시 붙들려 있었다.

결재한 내 카드와 영수증을 손에 들고 건네주질 않으시니 더욱 자리를 뜰 수가 없다.

 

'하여튼, 여기서 다시 뵈니까 좋네요' 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막 좋아졌다.

아, 이 아저씨 잘못 걸리면 지겹지만 캐릭터가 살아 있어서 좋다.

그저 그렇고 그런 많은 고기 파는 아저씨 중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매력이 있다.

익명의 고상한 수백 수천의 사람들보다 캐릭터가 살아 있는 한 사람과의 만남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져서일까?

 

기분이 좋은 김에 꽤 무거운  비닐 봉투 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역시나 재건축 때문에 이사를 한 카페를 일부러 찾았다.

원두 100 그램을 사면서 전에 없이 말을 막 걸었다.

새로 옮기고 장사가 더 잘 되냐,

집 앞에 있을 때와 달리 마음은 안 그런데 자주 오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처음 집 앞에 카페를 열었을 때는 꽃미남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살지 쪄서

이젠 후덕한 아저씨 삘이 나는 카페 사장님도

'처음 제 손으로 만든 장소라 저도 많이 아쉬워요' 했다.

내 스타일을 아니지만 자꾸만 말을 주고받자니 캐릭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카페도 잘 되고,

네버엔딩스토리 정육점 아저씨도 잘 되었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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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 딸내미 수학여행을 보냈다. 딸내미는 내 딸 아니랄까봐 오로지 패션에만 올인하여 수학여행 준비를 하였다. 나는 그것이 매우 꼴비기 싫었다. 난 고딩 때 여차저차한 이유로 수학여행도 못 갔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내 패션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엄마였다. 그런데 내 딸내미는 나보고 옷을 사줘야 한다는 압력을 계속 넣었다. 나는 사주고 싶기도, 절대 안 사주고 싶기도 하였다. 결국 여행 전날에 딸내미 마음에 쏙 드는 바지와 벨트를 사 주었다. 짐을 싸는데도 나는 도와주고 봐주고 싶기도 안 봐주고 싶기도 하였다. 내 물건을 자꾸 가져가고 싶어했다. 나는 주고 싶기도 안 주고 싶기도 하였다. 그러다 애 속만 벅벅 긁어놓고 줄 것은 다 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엄마였다. 새벽에 딸내미를 공항에 태워다 주었다. 어떤 아이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 할 수학여행을 갔는데.... 딸내미 학교 수학여행이 괜시리 못마땅하고 마음이 구겨졌다. 그렇다고 딸에게 뭐라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안녕, 다녀올게. 하고 가는 딸내미의 뒷모습은 거의 걸그룹 같았다. 흐뭇했다. 내 속에서 저런 기럭지가 나오다니..... 
 

 

나는 오늘 남편을 노회에 보냈다. 노회는 일 년에 두 번 가는 곳인데, 말만 들어도 따분한 곳이다. 어렸을 적에 우리 아버지가 엄청 다니시던 곳이 노회였는데 그때부터도 뭔가 따분한 것 같았다. 남편은 지금 소속도 애매해서 노회에 가는 것이 꽤나 불편한 것 같다. 정말 가기 싫어하는 것이 역력했다. 나는 막 수영에 다녀온 길이었다. 노회에 가더라도 월요일 점심은 언제나처럼 외식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게다가 원하는 메뉴는 면류였고 집에는 면류를 만들어 낼 재료라곤 없었다. 나는 수영선생님이 바뀌는 바람에 완전 빡센 수영을 하고 와서 완전 기진녹진(기진맥진에 플러스 녹초) 상태였지만 하나도 빡치지 않았다.(몸이 귀찮다고 사랑하는 이의 부탁이 빡친다는 사람들, 이해할 수가 없다!!!)  다만 싫다고 몇 번 뻐팅기다 문득 냉동실에 있는 빠넨지 뭔지 하는 빵이 생각났다. 라볶이를 해서 거기 집어넣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 벌떡 일어나 라볶이를 만들었다. 남편은 '이거 일인분이냐? 이인분이야?' 하면서 혼자 이인분을 거의 폭풍흡입 했다. 그리고 남편이 나가려고 넥타이를 매고 있는데 나는 책을 들고 소파에 누었다. '잘 거지? 아, 진짜 부럽게' 했다. 나는 아니라고 책 볼 거라고 했다. 분명 남편이 양복 다 입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은 없고 시간은 한 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이 '정신실과 떡실신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난 정말 책을 보려 했었다.
 


나는 오늘 오랜만에 커피를 볶았다. 다음 날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갑자기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가 너무 여유로와서 '좋아하는 모임이지만 내가 준비하는데 부담을 많이 갖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도 머리도 안 쓰고 몸만 움직여 커피를 볶으니 거참 재미 있었다. 연거푸 두 번을 볶았다. 여름에 커피 볶는 일은 불가마 속에서 설렁탕 먹는 기분이다. 로스팅 한 번 하고나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게다가 냉각기 없이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 열을 식히노라면 이게 식는 건지 더 뜨거워지는 건지 헷갈릴 정도이다. 커피를 볶아 채반에 들고 창가에 섰는데 와우! 솔솔 부는 가을바람이 이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다. 후후 불어 폴폴 날아가는 체프를 바라보는데 내 몸이 다 날아갈 것 같았다. 딸내미 수학여행 보낸다고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공항에 다녀왔지, 빡세게 수영했지, 예상에 없던 점심 만들었지..... 정말 피곤한 하루였는데 말이다. 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순전히 다 한 시간 반의 떡실신 덕분이다. 참 보람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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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입구에 미용실이 하나 있다. 작년, 막 날씨가 추워지던 때 오픈한 곳이다. 미용실 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1년에 두 번 정도 파마를 한다. 내 머리는 그렇다치고 한 달만 지나면 덥수룩해지는  현승이 머리가 너무 자주 찾아오는 귀찮은 숙제이다. 들고나는 길의 미용실이라 괜히 좋았다. 매섭지 않은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저녁 처음으로 현승일 데리고 갔다. 어쩌면 현승이가  첫 손님이었을지도 모른다. 머리를 자르고 카드로 계산을 하려하니 아직 카드 결제할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현승일 볼모 잡혀놓고 집으로 가 현금을 가져다 지불했다. 아줌마가 마음에 들었다. 미용사로서는 초보인 것 같은데 말이 없고 착해 보였다.


지나다닐 때마다 마음이 쓰였다. 손님이 있는 날이 많지 않았고, 아줌마 혼자서 작은 난로에 손을 대고 불을 쬐며 TV 보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저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떡하냐?' 걱정을 하니까 현승이도 덩달아 걱정. '엄마, 오늘 학교 갔다 올 때 보니까 미용실에 손님 있어' 온 가족이 단골이 되었다.  남편은 일단 가까워서 편하게 다녔다. 사실 머리를 잘 자르는 편은 아니라서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나 아줌마 성품이 좋아 다니는 것 같았다. 미용실 가면 앉아서 신상 캐기 질문공세 당하는 게 나도 그게 싫은데 남편은 얼마나 싫을꼬. 그런데 이 분은 나한테도 많은 말을 안 하니 남자에겐 더더욱 그러하겠지. 차츰 익숙해져서 현승이가 혼자 머리 자르러 가기도 해서 나는 더 편해졌다.


아줌마도 우리 식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현승이가 참 예뻐요. 이 앞을 지날 때마다 꼭 쳐다보고 눈 맞추고 지나가요. 현승이네 식구들이 다 착하신 것 같아요. 이 정도 얘길 주고받았는데 어쨌든 마음이 늘 쓰이고 잘 됐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그 바로 옆은 훈남 총각이 하는 카페이다. 여기 역시 장사가 잘 되나 신경을 많이 썼는데 갈수록 손님이 많아지고 잘 되는 것 같아 마음을 좀 놓았다. (오지랖도) 미용실도 최근에는 손님이 꽤 많아졌다. 헌데, 얼마 전에 머리를 자르고 온 남편이 미용실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 건물주가 새로 건축을 하겠노라고 다 비우라고 했단다. 지난 주에 일부러 파마를 하러 가서 물었더니 이제 좀 단골이 생겼는데 나가야 한단다. 이 근처로 옮기려고 알아보는데 세가 비싸서 등촌동으로 가기로 했다고. 그러면서 현승이 못 보게 되어 섭섭하다고 했다.


마음이 많이 짠하고 슬프다. 얘기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나는 딱 두 번 머리를 했다. 헤어지고 다시 못 보는 것도 슬프고, 겨우 안정되고 무엇보다 이 동네에 마음을 붙였을텐데 원치 않게 떠나셔야 하는 것이 남일 같지가 않다. 현승이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에 대해서도 크게 내색하진 않지만 아쉬워 하는 마음 느껴졌다. 여기서도 그랬지만 다른 곳에 가서도 인테리어를 거의 하지 않고 시작할 것이다. 밖에서 보면 그다지 들어가고 싶지 않은 번듯하지 않은 미용실이 될 것이고. 그러면 또 한참을 혼자 앉아 난로를 쬐며 TV를 보며 손님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수입이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까?


그제 저녁 현승이가 '엄마, 나 너무 슬퍼'했다. 학교 갔다 오는데 미용실 아줌마가 불러서 '현승이 아줌마 이사가. 이제 현승이 못 봐. 잘 지내. 안녕' 했단다. 아, 게다가 이 아줌마가 동네 고양이들 밥을 살뜰하게 챙긴다. 자신처럼 고양이 밥을 챙기는 동네 다른 아줌마에게 앞으로 앞으로 더 넉넉히 챙기셔야 할 거라고 부탁했단 얘기도 들었다. 아, 진짜! 늘 약한 사람들이 약자를 챙기고,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챙길 줄 아는 이런 사람들은 꼭 강하고 많이 가진 사람들로 인해서 고통을 받더라. 얘기를 듣자하니 건물주가 다른 입주자들보다 여자 혼자 하는 이 아줌마에게 가장 가혹하게 대했다. 가진 것 없는 우리와 우리 이웃들의 여전한, 더 가벼워질 것 같지 않은 일상의 짐이 참 아프다. 학교 다녀 오는 길, 따스한 마음으로 기웃거려주는 현승이를 보지 못하는 아줌마의 허전한 마음에 내가 지레 슬프다. 아 그냥, 헤어지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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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가 사랑한' 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분들이 계시던데요.
저도 약간 느낌은 있습니다.
코스타가 저를 맘에 두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정식으로 고백을 못 받아가지구 공식적으로 말하기는 그러네요.
오늘 아침 11시 비행기로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열리는 코스타에 갑니다.


근사한 인사를 남기려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으나.....

마치고 가야할 일,
미리 당겨서 해야할 일,
가서 해야할 일,
일,일,일,일,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 폐인으로 살았답니다.


그리하여 간단히 인사드립니다.


코스타가 사랑 '하는 심증은 있으나 딱히 고백을 받지는 못한' 연애강사는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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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에 있는 날 비가 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빨래를 한다. 하루는 이불, 하루는 긴팔 옷들을 빨아서 옥상에 넌다. 저녁에 빨래를 걷으러 올라가 햇볕 냄새를 머금은
 빠닥빠닥해진 수건을 접을 때는 '여자라서 행복해요' CF를 찍고싶을 지경이다. 빌라에 사는 기쁨이다. 물론 이 기쁨도 한 철이다. 겨울에는 베란다도 없는 집안에서 빨래를 말려야 하고, 장마철에 빨래 말리기는 더더욱 듁음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지금은 좋을 때다. 저기 멀리 보이는 우뚝 솟은 건물은 합정역 메세나 폴리스인데,  연예인들이 많이 산단다. 영화관도 있고 식당도, 쇼핑할 곳도 있어서 살살 걸어가서 누리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면 아스라하다. 사실 마음으로도 뭔가 가닿을 수 없는 아스라한 곳이다.


 


남편이 먼저 와서 계약을 하고 집을 보러 왔을 때, 참 심난했었다. 겨울 초입이라 거리는 물론 동네도 건물도 다 을씨년스러웠다. 나무 한 그루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았다. (가로수도 있었건만 겨울이라 나무로 보이질 않았었다) 이 동네 온지 벌써 3년 차.  이 동네는 유난히 폐지 모으러 다니시는 할머니들이 많다. 동네 구석구석 고물상도 여럿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으면 웬만한 건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만다. 우는 사자와 같이 박스를 찾아다니시는 할머니들이 한두 분이 아니다.  사진의 전봇대 아래 쪽은 쓰레기 모으는 곳이기도 하고 할머님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

현승이는 할머니들이 모여 계신 걸 보면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여러 생각이 든다며. 어느 날 그랬다. "엄마, 내가 여기 처음 이사오던 날은 좀 놀랬어. 몰랐지? 내가 이런 동네에 살아야 하다니. 아파트 아닌 곳에 산다는 것도 그렇고. 동네를 보고는 조금 놀랬어. 그런데 여기 이사와서 난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애. 특히 할머니들을 보면서 왜 저 할머니들은 늙어서 몸이 불편한데도 저렇게 폐지를 모으러 다니셔야 하나. 집에서 편안히 쉬셔야 할 때인데.... 이런 생각도 했고. 그런데 저 할머니들은 막상 모여서 디게 재밌게 지내시는 거야. 별로 속상해하지도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쓰레기 옆에 모여서 밝게 지내셔. 그래서 내가 많은 걸 배웠어"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많은 현승이가 이 할머니들께 마음이 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루는 학교갔다 오는 길에 바람에 날리는 스티로폼을 막 달려가서 주워다 드렸단다.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고 했다. 마침 쓰레기를 모으고 계신 할머니가 편마비로 몸이 불편하신 분이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와 안면을 트고 지날 때마다 인사드린다고 한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손에 고구마, 뻥튀기, 과자 등을 쥐고 들어오는데 할머니가 주셨다고 한다. 어슬렁거리는 동네 고양이들도 사랑한다. 주차장 아래 있는 고양이들에 티고, 에스엠, 갤로퍼 등으로 이름을 지어주고 가끔 먹이도 갖다준다. 

현승이만 동네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엄마도 좋아하고 심지어! 차도녀 채윤이도 며칠 전에는 이런다. "엄마, YG 앞에 길 있잖아. 내가 그 길 좋아하는 거 알아? 이상하게 요즘은 그 길을 걷는 게 좋아. YG 때문이 아니라 쫌 조용하잖아. 뭔가 좋아. 그래서 합정역에서 일부러 마을버스 안 타고 걸어오고 교회갈 때도 걸어 가. 걷다보면 이상하게 생각이 정리가 돼. 아, 그냥 이런 저런 생각말야. 그래서 심지어 CU가 보이며 아쉬워. 걷는 게 끝나는 거니까. 이 동네가 처음엔 싫었는데 나름 괜찮은 것 같애"

 

 

옥상에서 빨래를 걷고나면 한참을 이쪽 저쪽 바라보며, 길을 내려다보며 서 있게 된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강이다. 한강이 살짝 보인다. 일련의 일들로 개신교 목회자들의 충격적인 민낯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요즘. 무기력의 나락으로 자꾸만 떨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의미없는 자조섞인 넋두리로 자주 내뱉는다. 하나님 나라가 너무 아스라하다. 긍휼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내 주의 은혜의 강물은 어느 곳에 흐리기는 하는 걸까?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어제는 그 무기력이 더 심했는데 그나마 빨래해서 널고 걷으며 나와 아이들이 이 동네를 좋아하고 있구나 싶어 실낱같은 의미 같은 게 느껴졌다. 장을 봐서 4층 까지 들고 올라올 때는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데, 한 층만 올라가면 햇볕과 바람 가득한 옥상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4층 사는 위안이기도 하다. 손에 닿는 것들에서 그나마의 살아가는 희망과 의미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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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 고구마로 아침을 하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ost에 온가족이 푹 빠져있습니다. 얼마 전 25주년 기념 공연 촬영한 것을 극장에서 봤었거든요. 특히 현승이
가 이 음악에 딱 꽂혀 있습니다. 고구마 우걱거리며 출연 배우며 음악에 대한 수다가 끝이 없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나는 천국에서는 뮤지컬 배우로 살 거야. 누가 이대로 한대? 키가 크고 늘씬해서 볼품 있는 몸매가 될 거야. 목소리도 뭘 불러도 복음성가 되는 목소리 말고 완전 매력있는 목소리로...."


분위기 쎄~해지더니 애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뜨네요. 흥!
나중에 공연 티켓 주나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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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음악치료 글을 쓰느라 머리에서 쩐내 나는 시간을 보냈다. 글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서두에 언급한 한병철 교수는 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는 성과사회이며 자기 착취의 사회이기에 결국 피로 사회라고 하였다. 피로사회에서 점점 신경증적이 되어가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정신건강을 유지해갈 수 있을까? 온통 SNS의 메시지 알림에만 귀가 열려있고,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우리, 타인과 나의 경계가 흐릿하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를 사진으로 보고 댓글을 달고 또 보고, 이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피로사회>에서도 말하듯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멈추고, 혼자 있는 심심한 속에서 견디는’ 이다. 정신질환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어느 항목엔가는 잘 들어맞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힘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오디오의 전원을 켜 바흐나 브람스를 불러낼 일이다.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허상과도 같은 스마트폰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과 그저 가만히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피로사회를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정신적인 힘, 영적인 힘은 나 자신이 되는 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저런 글을 쓰면서 나는 페이스북 창을 열어놓고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사진도 올리고, 댓글이 달리면 낼름 들어가서 또 댓글을 달고.
혼자 있는 능력이 어찌나 부족한지....
글을 쓰는 일은 고독한 작업이다. 고독해서 의미있는 일이다. 그 고독이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유독 원고 쓰는 시기에는 페이스북에 에너지를 많이 내어준다. 그런 나를 보면서 '홀로 있음'에 대한 얘기를 당당하게도 쓴다.  


 

여하튼 거실 가득 펼쳐져 있던 참고문헌을 제자리에 꽂고 배달된 책을 매만진다.
글을 쓴다는 것의 무게감을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 느끼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어렵지만
(징징거리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단 얘기 ㅡ.,ㅡ)
'송고'하는 그 시간은 참 행복한다. ('내 송고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아장 귀하다~')
그리고 이런 사이클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말하자면 감.사.하.다.




오늘 두물머리에 언니님들과 함께 다녀왔다.

그늘 없이 밝게 웃는 것이 억지로 되는 게 아닌데 웃다 웃다보니 웃음이 자연스러웠다.
이 사진이 마음에 드는 건 나이가 느껴진다는 것,
느껴지는 나이와 세월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일할 때가 있고, 쉴 때가 있고

고독할 때가 있으며, 함께 할 때가 있다.
일상의 사이클을 착하게 수용하며 사는 것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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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기차를 타고 놀러는 아니고 일하러도 아니고 강의 가요.

어릴 적 탔던 장항선은 객양각색의 추억이 실려 있지요.
한 번씩 부모님과 서울을 오가던 기차 안의 연양갱.
노래하면 연양갱 사줄게.
기차 한 칸을 무대 삼아 노래를 부르면 부모님이 아니라
다른 아저씨 아줌마들이 연양갱을 사주셨죠.
(그 때로부터 나는 딴따라로 살기로 결심했노라. 흑흑)


아버지 돌아가시고 동생이랑 엄마랑 서울로 이사한 후,
전학을 기다리며 시골 집사님 댁에 혼자 남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서울에 있는 엄마랑 동생 그리 울던 밤.
그런 밤의 희망은 토요일에 탈 장항선. 그야말로 희망열차였죠.
혼자 서울에 올라가며 연양갱을 사먹진 못했고
노래하며 연양갱 앵벌이 하던 어린 딴따라 시절을 그리기도.
엄마랑 하룻밤 자고 매 끼니 맛있는 거 먹고 다시 혼자 장항선 기차를 타러 서부역에
가면 다시 못 볼 것처럼 울고불고 했지요.


(아, 추억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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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 날에 현승이가
"엄마, 뭐 입고 갈 거야? 미리 정해놓는 게 좋지 않아?"
하더니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쪽지 입니다
(bye 아니고 dye 라서 더 인상적인....)

잘 도착해서 빡빡하고 행복한 일정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강의 잘 마쳤고,
두번째 강의 앞두고 잠깐 끄적입니다.
작별인사에 달아주신 댓글에 위로와 격려 많이 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시카고 날씨가 약간 이상기온처럼 쌀쌀해져서 가져온 유일한 긴팔 하나를 계속 입고 있는 것,
약간의 감기 기운으로 목이 안 좋은 점 외에는 별 어려움이 없고요.


의외의 좋은 친구를 비행기에서부터 만나 틈틈이 힐링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간간이 날아오는 아내의 빗자리를 경험하는 남편의 참회의 메시지에 살짝 고소해하고 있으며, 아이들 걱정에 마음 한 구석 편치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실은 공식 비공식 상담과 일정들에 잉여감정이란 게 들어설 자리가 없고요. 피곤한 몸을 마주하면 어서 일정이 끝났으면 싶고, 젊은이들이 솔직하게 내놓는 아픔과 고민에 귀기울이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이 보석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 나무로 정해놓고 짬짬이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주변을 걸으며 기도도 합니다.






얼마 전 태어난 둘째 <와우>는 너무 어려서 못 데려왔고,
작년에 낳은 <오우>는 저렇게 따라와 떡하니 누워있습니다.


네 달 동안 안달복달 하던 징징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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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거지를 하고 그릇 정리를 하다가 종지 하나를 떨어뜨렸다.
하필 그것이 닦아놓은 커피잔 위에 떨어졌고,
쨍하고 깨졌는데 하필 다섯 개 2900원 짜리 2001 아울렛 종지가 아니라
최근에 선물받아 가장 애정하고 있는 커피잔의 받침이었다.


아, 종지가 깨질 수는 없었을까?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 일어나야 마땅한 '일상'의 속을 뒤집어 보면 이건 배신이다.
뭔 일상 속에 예측불허의 일이 이렇게 많냐?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이라면 접시 대신 종지가 깨지는 묘미 정도는 있어줘야 할 것 아닌감.
속이 쓰려서 갤포스가 필요하다.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다 급 좋은 생각이 났다.
화분 올려져 있는 테이블을 갑자기 막 치우고 화분을 이 쪽 저 쪽으로 끌고 밀고 했더니
창 바로 앞에 원고작업 할 공간이 만들어졌다.
생각지 못했던 배치다. 맘에 든다.
바깥이 보이는 자리, 바깥에 가까운 자리는 늘 좋다.


종지 대신 커피잔 받침이 깨진 충격에 뇌세포가 순간  자리 이동 해나?
이제 폭풍 원고만 쓰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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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되신 우리 엄마의 주부 리즈시절, 죽어가는 벤자민 화분을 기도로 살리셨다.(라고 엄마가 자꾸 간증해서 그런 줄 알고 알고 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손수 화분에 고추를 키우곤 하셨는데 이젠 건강상 그것도 못하신다. 엄마를 모시고 있는 동생 부부가 기가 막힌 맞춤형 효도를 잘 한다. 줄줄이 세 아들을 키우면서 3+1으로 엄마까지 묶어서 잘 양육하는 느낌. 흐뭇하고 고맙다.

* 동생의 카스에서 일부분 발췌

집으로 돌아와 고추 다 심고 네 개의 화분에 각각 주인을 정해줬다. 크기 순으로 장남, 차남, 막내, 그리고 제일 작은 건 어머니 것. 그러곤 누구 고추가 제일 잘 자라서 열매를 많이 맺는지 보자며 시합을 제안했다. 물은 엄마 · 아빠가 줄 거니까, 주인이 할 일은 자기 고추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기도도 하는 것이라고. 아빠의 제안에 3+1(세아들과 노모)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수현이가 고추에 아름다울 미, 바를 정, ‘미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곤 고추 앞에서 한참을 중얼거리다 들어온다. 그러곤 자랑한다. 자기 고추 축복해 주고 우현이 고추에 ‘바보야, 히히’하고 왔다고. 얼마 후. 89세 이옥금 권사님, 한참 화분 앞에 서 있다가 나오더니 투덜투덜대신다. "내 꼬추가 제일 시들시들허잖여~ 화분도 작은디 말이여~"

베란다에서 전쟁의 기운이 느껴진다. 3+1, 네 사람의 고추 배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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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 :
성악가를 꿈꾸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꿈을 현실로 바꾸지 못하고 ‘음악’에 대한 '아련한 선망‘ 같은 것을 마음에 품었다. 교회에서 어린이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를 끌어내고 만져가며 꿈과 선망에 다가가기도 했다. 1997년 가을, 숙명여대 음악치료 대학원 2기로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 후 남부장애인 복지관에서 풀타임 음악치료사로 일했다. 프리랜서 음악치료사로 전환하여 영유아 발달장애아, 특수학급의 장애아동을 음악치료로 만나고 있다. 음악과 사랑으로 변화가능한 사람과 세상을 믿으며 음악치료사로, 작가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라고 또 다른 소개글을 썼습니다.


'남편에게 어떠냐고 보냈더니 '목회자의 아내'를 넣으라고
(농담을 빙자한 진심을 담아) 한 마디 합니다.
'싫어. 내가 김종필의 아내지 목회자씨 아내야?'
라고 해놓고 보니'아이들 엄마'라는 정체성보다
자신의 아내라는 정체성을 우선순위에 두곤 했었는데
그 말이 아예 없어서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담당 기자분께 다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음악치료사로, 작가로, 사랑의 노래를 함께 불러주는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양육하며 살고 있다.'
그대로 실릴지 어떨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했음을 남편께 알려드리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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