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에서 오른쪽의 얼굴 크고 훤한 분이 내 동생이다.
지난 3년간 교회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했는데 사실 엄마한테 말을 못했지만 늘 불안했다.

동생이 하는 일은 싸우는 일이었고 싸움의 대상이 주로

돈, 권력, 명예, 힘 가질 것 다 가진 큰 교회 목사님들이기 때문이다.   

강아지 같은 어린 애가 졸졸이 셋 있는 아빤데 저러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뭔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다행히 몸 성히 3년의 사역을 정리하게 되었다.

동생을 생각하면 항상 엄마랑 분리되지 않는다.

엄마가 바라는 좀 더 안정적인 길로 왜 가지 않을까?
안전하고 안정된 기회와 길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왜 항상 저렇게 가난하고 위태위태한 길을 골라 다닐까? 

그러기로 따지면 나도 엄마한테 할 말이 없다. 
평생 남매를위해서 기도해온 엄마는

'두 남매 새벽별 같이 빛나길' 기도하셨고, 

사실 그 기도는 두 남매가 이 세상에서 높은 길, 성공의 길로 가길 바라는

엄마 나름의 축복기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는 성공한 엄마라는 생각을 늘 한다.

엄마 바램대로, 엄마의 기도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평생 해오던 돈걱정을 아직도 하며 살고 계시지만 말이다.
<뉴스앤조이>에 난 동생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엄마의'새벽별 같이 빛나라'는 기도는

궁극적으로 하늘의 길을 선택하여 걸을 때만 다다른 수 있는 빛이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에서 퍼온 기사이다. 


==================


 

   
 
  ▲ 남오성 목사(좌)와 정운형 목사는 인상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교회 개혁을 하기에 너무 순해 보인다고 하지만 삶에서 개혁을 해온 경험에서 개혁의 힘이 나온다. ⓒ 뉴스앤조이 김세진  
 
말한 대로 살고 사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다. "말과 삶이 나란히 간다면 그것은 철학의 완성이다"는 베네딕트 수도회 조안 치티스터의 말을 교회 개혁 현장에 적용한다면, 개혁을 외치는 말과 삶이 나란히 가야 그것이 개혁의 완성일 것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전 사무국장 정운형 목사(40)와 현 사무국장 남오성 목사(41)는 한국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시도를 각자의 자리에서 해 왔다. 그렇기에 이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외치는 소리는 공허하지 않다.

정운형 목사는 나름대로 안정적인 중형 교회의 부목사 자리에서 나와 3년 동안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있다가 다시 작은 교회의 부목사로 돌아갔다. 남오성 목사는 세습하라는 교회에서 굳이 나와 교회 개혁의 최전선에 있는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왔다. 권력과 자본이 집중된 교회와 교권을 감시하고 자정하라고 외치는 일은 거친 일에는 틀림없다. 남오성 목사 스스로 개혁연대를 '특공대', '총알받이'라고 부른다. 알면서도 무슨 이득을 보자고 특공대에 자원했을까.

부흥하는 교회에서 떠나고, 세습 유혹 떨치고

정운형 목사는 안정적인 중형 교회의 부목사 자리를 내놓고 나왔다. 교회 회복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담임목사의 전횡 때문에 교회에 문제가 많은데, 정 목사가 맡은 부서는 사람이 많아졌다. 오래 고민하다가 "교회가 엉망인데 혼자 사역을 잘하고 있는 게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담임목사는 "개척을 시켜주겠다"며 붙잡았지만 뿌리치고 나왔다. 사임한 후에도 오랜 시간을 기도한 뒤 담임목사를 찾아가 충언하기도 했다.

그렇게 교회를 나온 후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가자 정 목사의 어머니는 좋아하지 않으셨다. 중대형 교회에서 안정적으로 사역하기 원하는 어머니의 바람과 다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께 "교회의 허물은 내 아픔과 같고, 그 기도 제목은 곧 어머니의 기도 제목"이라고 설득했다.

남오성 목사는 교회를 세습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기까지 갈등이 심했다. 교회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세습해도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구나 최근에 교회는 남 목사로 인해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남 목사는 개인 구원에 집중하던 교인들의 시각을 사회 참여로 확장시키기 위해 애썼고, 담임목사인 아버지를 계속 설득했다. 목사 아들이라는 이유로 교인들이 남 목사를 잘 따랐다. 남선교회가 장애인을 찾아가고, 청년회가 외국인 노동자를 섬기고,  고난 받은 이들을 위한 성탄 모임 등에 함께하는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었다.

지금 교회를 떠나면 그마나 있었던 개혁의 움직임이 도루묵이 될 것 같아서 갈등했다. 반면 마음 한구석엔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를 물려받으면 최소한 평생 굶지 않고 애들 대학 등록금 걱정은 안 하고 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이 깊어져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분에게 조언을 구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도 물었다. 어떤 사람은 가지 말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런 세습이라면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러 어찌하든 좋다고도 했다.

동일한 처지였던 김장생 박사를 만났는데, "남 목사가 교회를 물려받는 게 이 교회에는 유익할 수 있지만 하나님나라에는 유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타격이 있지만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것에는 세습을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남 목사는 망설임 없이 세습을 포기했다.

독단적인 목사, 가식적인 교수가 바로 나

정운형 목사와 남오성 목사가 교회 개혁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생뚱맞은 일이 아니다. 그들 삶의 연장선인 셈이다. 본인이 살았던 대로 한국교회에 말하기 위해서고, 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기도 하다. 하지만 조심스럽기도 하다. 나날이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 개혁연대 7,000인 찾기 프로젝트 전국 투어하면서 지방의 분쟁 교회를 찾아 예배하고 모임하던 사진. 사무실 직원들이 한사코 사양해도 지방에 있는 개혁연대 회원들은 멀리 찾아 왔다며 밥을 사려고 했다. ⓒ 뉴스앤조이 김세진  
 
정운형 목사는 교회 문제를 상담하면서 자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어 힘들었다. 독단적, 파행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난 것 같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고 거듭 채찍질하면서 성찰하려 애썼다.

남오성 목사도 웨신에서 교수로 있을 때, 허위와 가식이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교수가 되니 사람들이 엄청난 권위를 실어줬다. 같은 말을 해도 이전과 다르게 주의 깊게 경청하고 모두 꾸벅 인사했다. 연봉도 괜찮았고 사회의 존경을 받는 자리였다. 어느새 즐기고 있는 자신을 봤다. 그런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기에 교만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에서 추방당하고, 교수직에서 물러났지만

정운형 목사와 남오성 목사가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사역하다가 한계에 부딪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 목사나 남 목사는 이를 실패라고 생각하기보다 사명이 거기까지려니 생각했다.

정운형 목사는 탈북자를 돕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추방당하면서 깊은 좌절을 경험했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탈북자 사역에 관심이 있었기에 교인들과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행을 결심했다. 정 목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20여 명이 함께 모이던 가정 교회가 공안의 단속에 걸렸다.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종교 활동을 하는 것이 위법이다. 같이 일하던 중국인 전도사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틀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따귀를 맞고 협박을 당하기도 했지만 동료 선교사의 이름을 대지는 않았다.

조사 끝에 바로 추방을 당해 공항으로 가는데, 마음이 허탈했다. 1년의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절한 무기력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중국에 가서 탈북자들을 돕겠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무언가를 하실 것이다 하는 마음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기대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하게 쫓겨나면서 마음이 어찌나 절박했던지, 공항까지 동행한 공안에게 마지막으로 전도했다.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 목사는 중국에서의 시간을 통해 교회 개혁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에서 초대 교회 형태의 '날복음'을 접했는데 그에 비해 한심하기 그지없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봤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당장 생존하는 문제로 고민하며 "하루라도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며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교회 건축과 직분자 임직식에서 돈 내는 것 때문에 싸우는 모습이 너무나 한심해 보였다. 그 경험을 하니 개혁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남오성 목사는 사실 교수가 되기엔 조금 부족한 스펙이었다. 박사 과정을 공부하다가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할 수 없이 휴학하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웨신에서 교수와 기획처장 제의를 받았다. 근본주의였던 웨신을 개혁적으로 바꾸는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남 목사가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일의 진행을 맡았다. 웨신이 개혁연대, 성서한국, 성토모 등과 제휴를 맺고 '기독교 경제학과 사회 윤리' 같은 과목을 개설한 것도 남 목사가 있을 때 일이다.

남 목사는 지난 2월, 3년여 일했던 웨신 교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모두가 선망하는 교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었지만 남 목사는 홀가분하다고 했다. 교수라는 옷이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옷을 입으면 뒷목이 당기는 듯 불편했다. 학교에서 나오면서 "하나님이 가식적인 것을 털어버리라고 좋은 자리 주셨나 보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


 

   
 
  ▲ 남오성 사무국장이 '사랑의교회 건축, 어떻게 볼 것인가' 포럼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 뉴스앤조이 유연석  
 

웨신에서의 경험은 남 목사를 교회 개혁의 현장과 연결해 주었고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해 주었다. 연봉이 괜찮고 존경받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일종의 자기 싸움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이 개혁 운동의 교두보가 되었다.

교수 자리에서 나왔다고 남 목사가 신학 교육을 통한 교회 개혁 운동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웨신에 있을 때도 활동가였고 지금도 활동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개혁연대에서도 특히 교육 사업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교육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인들과 함께 교회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내 좌표가 어느 위치에 있고 내 임무와 교회 임무는 무엇인지를 아는 역사의식이 있으면 문제를 달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지금 한국교회가 중세 시대와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둠이 깊기에 희망도 있다. 남 목사는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있다"는 말을 인용했다.

교회 분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현장에 있기에 감사

이제 인수인계한 지 한 달여 지났는데 정 목사는 아직 교회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담했던 교회의 이야기가 아직 머릿속에 꽉 차 있다.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교회 문제에 관한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왜곡된 구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것이 사무국장의 일이다. 하지만 안 좋은 사건을 주의 깊게 들으니 감정이 이입되어 덩달아 힘들다. 그들 문제는 대부분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힘을 얻기도 하지만 힘에 부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너무 지쳐 상담하기 싫은 마음이 생겼다. 힘든 마음을 안고 강남제일교회가 여는 '양들을 위한 음악회'에 참석했다. 분쟁을 겪고 있는 강남제일교회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다른 교회 교인들을 초대해 위로하는 자리였다. 음악회에 참석한 교인들이 "땅 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찬양하는데 눈물이 났다. 교회에서 불의가 이기는 것 같아도 감춰진 것들이 밝히 드러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교인들이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교인들은 불의에 동조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무국장으로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학자의 혀, 듣는 귀, 철면피 같은 얼굴을 달라고 기도했다. 개혁연대에 부임하기 전, 금식 기도를 하면서 마음에 이사야 50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의 기도를 하라는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도는 곧 하나님의 정의를 잘 설명하고 잘 듣고 어떤 상황에서도 견디는 힘을 달라는 기도였다. 개혁연대 협동 사무국장으로 있는 지금도 그 기도를 하고 있다.

정 목사는 이제 뜨인돌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한다.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정 목사에 대한 기대감을 내보이지만 부담스럽다. 그동안 개혁 운동을 하면서 했던 비판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댈 생각을 하니 두렵다. 개혁 운동의 기운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긴장감 있게 매사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단순히 목사라는 이유로 교인들이 교역자를 우대하는 것을 지혜롭게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목사와 교인이 하나님 앞에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개혁연대 사무국장으로 오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아침에 즐겁게 출근할 수 있을까'와 '저녁에 보람찬 마음으로 퇴근할 수 있을까'였다. 지난 한 달여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없어졌고, 분쟁 교회 상담이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어렵고 답답한 얘기를 참고 오래 들어주는 것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 목사는 이제 더 이상 <뉴스앤조이>에 실린 교회 문제 기사를 읽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만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 눈물 흘리고 답답해하는 대신 직접 개혁 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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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얼굴 
 

詩 / 김현승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내게 불행이 와도
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 사랑한다.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고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


2009년 마지막 날에 한 해를 돌아봅니다.

행복과 불행이,
삶의 빛과 그림자가,
사랑과 증오가,
기쁨과 슬픔이,
성공과 실패가,

밀물과 썰물처럼 출렁거리며 함께하는 것이 삶임을 배우는 한 해 였습니다.
창조주께서 우리 삶에 숨겨둔 보물은 대부분 그림자 속에서, 슬픔과 실패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그림자 속에 숨겨진 빛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여러 벗님네들과의 만남을 돌아보며 갑사합니다.

인생의 귀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하시니 오는 새해에는 오고 오는 행불행의 순간에도 천국의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 동안 이 곳을 드나들면 마음을 나누었던 여러분 고맙습니다.


* 사진은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다는 말에 득달같이 달려와서 부부가 함께 찰칵찰칵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찍어주신 털보님과 털보부인의 작품이십니다. 언제나 감사할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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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온종일 서로에게 집중하는, 쉬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 절실했습니다.
10월부터 이제나 저제나 했지만 도통 시간을 낼 수 없었지요.
어렵게 시간을 만들어 하루만에 다녀올 곳을 물색하다가 아산 현충사, 스파비스 낙찰!




어렵게 잡은 날이 한파가 몰아치는 날이라니....
우린 단풍도 제대로 못봤는데...
현승이가 '노란 길' 이라고 불렀던 은행나무 길도 제대로 한 번 못 걸와봤는데...ㅠㅠ
오리털 파카로 중무장을 하고 나서서 아산 현충사에 도착했습니다.
채윤이의 오리털 파카 입은 뒷태가 간지스럽습니다.



새로 산 간지 모자까지 쓰고 단풍나무 아래 서니 사춘기 머지 않은 언니 분위기 제대롭니다.




하고 많은 모자 중에서 채윤이가 저걸 고른 이유는 하나입니다.
엄마가 겨울마다 쓰는 모자와 색깔이랑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거지요.
아빠가 묻습니다. '채윤아! 너의 로망은 엄마지?' 그리고 단도리를 합니다. '엄마 기럭지는 닮으면 안된다~'




둘인 또 모가 그렇게 닮았는지....
요즘엔 TNTer들이 예배시간에 도사님이 설교하러 강단에 서면 도사님인지 현승인지 구분이 안된다고 합니다.
최근에 교회 새로 등록하신 분이 2부예배 전에 찬양인도 하시는 분 중매를 하신다고 하셨다는데...
그 찬양인도 하시는 분은 바로 저 분입니다. 열 살, 일곱 살 두 아이를 둔 아빱죠. ㅠㅠㅠㅠㅠ
찬양인도 하는 그의 왼쪽 옆에 서서 싱어를 하는 주름살 작렬 아줌마.
그 아줌마가 중매하시려던 총각(?)의 아내라는 걸 그 분은 상상이나 하실까요? OTL




붉은 단풍 아래 이 촌스러운 포즈의 남녀는 부부임을 밝혀드립니다.ㅠㅠ
이모랑 조카.... 이런 사이 아니고요.ㅠㅜ




이순신 장군이 자라셨다는 아산의 현충사에는 아직 단풍이 남아 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정말 좋았겠다 하는 말을 계속 되뇌였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짧은 시간의 산책이었지만 가을의 끝자락, 완전 끝자락에 급히 인사는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것은 영화 속 연인들이나 한다는 낙엽비 만들기 로맨스 놀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웅다웅 하는 남매끼리는 좀 제대로 스타일이 살아나질 않지만요.




이젠 어디 나가면 엄마보다 아빠 곁에 붙어 있는 현승이.
아빠와 현승이 갈림길에 서서 잠시 고민 중입니다.
어디로 갈까?



아빠! 이 쪽으로 가자.
됐어 임마. 일루와.
엉.



내내 둘이 붙어 있는 분위기 입니다.
전에는 현승이는 엄마 곁, 채윤이는 아빠 곁에 있었는데....
이제 점점 채윤이는 휴대폰 곁, 현승이는 아빠곁, 엄마는 왕따? ㅋ





달리기 시~이작! 하고 가장 멋진 폼으로 스타트 라인에 섰다가  현승이 내달리며 앞으로 나가면
바로 뒷짐 지고 걷는 아빠. 아직은 Start zone!

012345



그런 아빠를 버리고 가던 길을 벗어나 의미없이 달리다 넘어지기 놀이 한 판.




그리고 다다른 성웅 이순신 장군님의 옛집. 김종필 아빠 마음의 영웅, 이순신 장군님이 자라신 집입니다.




현충사 본관(?)에 다다라 참배를 하면서 짧은 시간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로 마음을 모읍니다.
사리사욕을 앞세우지 않고 나라과 민족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던진 선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이 나라에 그런 지도자를 세워 주시고, 이 백성에게 참된 지도자를 발견해내는 눈을 주소서.

채윤이는 명일 초등학교 3학년 5반.... 이렇게 방명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께서 활 연습과 더불을 무예를 닦으시던 활터에 섰습니다.
마음의 영웅께 비장하게 묻습니다.


장군님! 아까 출발할 때 차에서 우유를 마신 다음부터 계속 배가 아픈데.... 여기 화장실이 어디예요?
ㅋㅋㅋㅋㅋ

아래 두 개는 아빠의 영웅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오래 전 얘기지요.

http://larinari.tistory.com/213

http://larinari.tistory.com/209



현충사를 나오면서 애들과 퀴즈놀이.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 누구~우게?'
'이순신 장군!'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할아버지!'
'엄마!'
아, 영광이다야~ 그런 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진짜 영광이다.






현충사에는 유난히 모과나무가 많습니다. 땅에 떨어진 모과를 줍고 한 번을 일부러 떨어뜨려도 보고....
몇 개를 주워 모았습니다.
유난히 모과차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서 모과차를 담궈야겠습니다.
장군께서 당신을 좋아하는 까마득한 후손이 왔다고 주신 선물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보다 며칠 앞서 현충사를 다녀오신 해송님께서 발견하신 초겨울에 핀 진달래 입니다.
현충사를 도는 내내 저걸 찾아다녔다지요. ㅎㅎㅎ
결국 나오는 길에 찾아서 해송님께 약속드린대로 사진 남겨 왔습니다.



그리고나서 아산 스파비스로 고고씽.
네 사람 입장료면 10만원이 넘는데 스파비스에서 '오만원 신권 한 장을 내면 4인 가족 입장' 시키는 기가 막힌
이벤트가 있는 것입니다. 아~ 이런 횡재!

정말 재밌게, 뽀지게 놀고 나와서 지난 여름 이후 현승이가 노래를 부르던 조개구이를 먹고 집에 오니 9시30분.
아침에 일어난 현승이는 '아, 지금이 어제였으면 좋겠다' 이럽니다.

장군님께 인사드리고 온천에 몸을 담그고 의미있고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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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재래종플루, 독종플루 중에서
신종일 확률이 가장 높은 플루에 걸렸습니다.

정확힌 지난 수요일 수요예배 가서부터 목이 간질간질 기침이 나기 시작.
목요일 오전에는 간간이 기침. 오후로 갈수록 기침의 횟수가 잦아지더니...
금요일 오전에는 살짝 아주 살짝 미열이 있었지요.
목, 금에 몰려 있는 아가들 음악수업을 모두 취소하고 병원에 갔는데...
신종도 배제할 수 없는 일반 플루라는 의사 선생님으로서는 가장 안전한,
환자로서는 가장 모호한 답을 듣고 약처방을 받아와서 집에서 쉬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애들과 격리된 채.

금요일 밤을 지나며 토요일 새벽에 38.7도 정도의 고열이 나면서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
그리고 다리를 비롯한 몸 여기 저기 심한 근육통.
해열재와 진통제가 든 처방약을 먹고는 열과 함께 두통도 가라앉았습니다.
또 혹시 몰라서 다시 병원으로 갔더니 타미플루 처방을 해줍니다.
이게 부작용도 있고, 이미 아플대로 아팠는데 먹기도 뭣해서 화장대 위에 고이 모셔뒀는데...
아까 오후에 살짝 가슴이 뻑뻑하면서 숨이 막히는 증상? 비슷한 게 있길래...
겁이 덜컥나서 얼른 한 알을 털어넣었습니다.

몸은 이제 대체로 괜찮습니다.
며칠 격리상태로 쉬면 되겠는데...
애들을 집에 둔 상태로 격리상태가 이게 쉬울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제 밤 현승이는 누워있는 엄마 침대 멀찍하니 앉아서
'흑흑.... 엄마가 다 날때까지 엄마를 안지도 못하고...흑흑흑...
손도 못 잡잖아....흑흑흑.... 엄마를 한 번만 안고 싶다' 이러면서 멜로 영화 한 편을 찍었다지요. 

포스팅을 할만큼 몸은 괜찮으니까 너무 염려들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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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 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

가을입니다.
언어 가운데서 노래를 고르던 봄이 아니고 가을입니다.
언어의 뼈 마디를 고르는 시간을 갖기에 적절한 날들이죠.
이사를 한 일주일 앞두고 있어서
이런 저런 집안 정리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얼마간 시인의 말처럼 언어의 뼈 마디를 고르며 보내려고 합니다.
'블로그 좀 쉬어볼께요'
대신
'당분간 언어의 뼈 마디를 고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러니깐 참 있어보인다. 그죠?
그 얘기가 그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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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 김채윤양이 만난 런닝 메이트는 자신처럼 장래희망이 뮤지컬 배우인 민서. 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친군데 이 친국 전학온 날부터 유난히 얘길 많이 하더니 뭐 통하는 게 있었나봅니다. 서로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걸 확인하고 민서가 엄마랑 보기로 한 <지킬앤하이드>를 채윤이랑 보겠다고 하더랍니다. 임원 엄마 모임에서 만난 민서 엄마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하셨고 본인이 애들을 세종문화회관 까지 데려갔다 오시겠다는 고마운 배려까지 해주십니다. 그렇게 채윤이는 작년 이맘 때 <클레오파트라> 본 걸 가지고 1년을 곱씹더니만 오리지날 뮤지컬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친구 민서도 고맙고, 그런 민서의 마음을 그대로 허락해주신 민서 엄마도 고맙고.... 애들 데리고 오가는 길에 보시라고 책을 한 권 선물했는데 그 책이 너무 좋고 위로가 된다니 것두 참 감사했습니다.



채윤이 뮤지컬 보러 가는 금요일에 갑자기 정명화 협연 콘서트 티켓을 얻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또 가을밤 대가의 첼로 선율에 빠지는 행운을..... 아, 고마워. 혜연! 그 사이 아빠랑 현승이는 교회에서 있었던 마술쇼를 보았구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아주 짧은 이 찬송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곤 합니다. 이런 저런 일들로 몸과 마음의 고통이 다가올 때, 때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마음이 아플 때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그러나 오늘처럼 생각지도 못한 기쁨의 선물이 주어질 때도 새의 날개같은 자유로움으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라고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공짜로 본 두 공연, 일명 대머리 공연으로 넘치는 감동,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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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들 방학, 수련회, 이사, 휴가,
한꺼번에 벌어진 많은 일들로 정신줄을 놓고 지낸 것 같은 여름이 작별인사도 안하고 떠났다.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지... 섭섭하긴 하지만.
예의가 바른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지 뭐. 오는 가을에 눈인사라도 하러 가야겠다.


망아지 둘이 사이좋게 수영간 두 시간의 틈을 이용해서 양수리 데이트를 나서다.
꼴렁 하나 쓰는 원고 가지고 쓸 때마다 너무 징징거리는 거 같지만 암튼 써서 보내고 나면 학교 다닐 때 시험 끝난 느낌이고, 몸은 살짝 아프고 그렇다.
나가보자. 양수리로 가보자~
클라라 커피가 뽕칼국수가 되어 쫌 그렇지만 좀 아쉽다는 그 정도?

우린 뽕!칼국수를 먹고도 로맨틱하게 데이트 할 수 있는 사이니깐.ㅋㅋㅋ

하늘이 맑고 저녁 햇살이 마구 쏟아지고, 우리는 쉴 새 없이 얘기하고.
(너~무 청년부 얘기만 하고....ㅜㅜ)

그래도 짧게나마 가을에게 반갑다는 인사는 전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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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가슴 저리게 깨끗한 물이 아직도 있단 말인가?
황정산 자연휴양림에 가서 계곡을 바라보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체크인도 하기 전에 댐을 막아 맑디 맑은 물로 만들어 놓은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애들은 춥다고 덜덜 떠는데, 부모님은 엄두도 못 내시고 바라보며 벙글벙글 하시는데...
남편과 둘이 뛰어들어 마구잡이 게헤엄 수영대회로 몸과 마음을 누르는 무게를 덜어냈다.


사실 한 달 전쯤 TV에 국립 휴양림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시고 늘 그렇듯이...
'아니, 테레비에 나왔는데 그런 데 가서 산림욕 하면 두통에 좋다드라. 야, 엄청 좋드라.... 아니... 뭐 좋다구' 이렇게 부모님의 의중이 전달되어 왔다. 이미 예약이 다 끝난 상태임을 알았지만 혹시나 하고 알아보니 간간이 예약취소로 나오는 방들이 있었고, 마침 우리 휴가 기간과 맞아 떨어졌다. 그래, 내내 우리끼리 여행하고 하루쯤.... 효도여행으로..... 희생하는 거야. 하는 계획이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자는 게 여행의 최고 목적이니깐 잃을 것이 무얼까? 미리 미리 장 봐서 식사준비도 알차게 해서 봉사겸 휴가로 떠났다. 아, 그러나.... 휴가의 백미가 여기 숨겨져 있을 줄이야. 너무 맑은 물과 자연이 나를 무장해제 시켰고 산에서 내려온 물로 만든 25M를 넘는 수영장이 나를 감동시켰고, 고마워 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이 위로를 주었고, 이런 저런 일로 무기력에 가까운 마음상태가 차라리 모든 걸 내려놓게 만들기도 하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놀러가면 어머니 옆에서 얘기들어 드리는 것도 큰 사명 중 하난데 그저 수영을 하고, 계곡에서 애들과 놀고, 바위에 혼자 앉아 몸을 말리고 하면서 더욱 몸과 마음의 힘이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참 쉼이 찾아든다. 준비해 간 고기며 아침식사며 간식이 맛있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도 참 감사하다.



이제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을 더 이상 효도여행이라 부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저 우리 모두 함께 누리고 즐기는 순간이 되면 족하다.

황정산에는 나의 무기력과, 조바심과, 잔머리를 보시면서도 한결같이 기다리시는 그 분의 사랑과 변함없는 따스한 품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내가 그 품에 안기지 않을 때는 TV 프로그램을 동원하시고, 어머님의 두통까지 동원하셔서, 그리고 당신 손으로 지으신 창조의 빛이 숨겨진 아름다움을 동원하셔서 날 부르시고 안으신다.
황정산 자연휴양림에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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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오셨어도 이런 저런 이유로 다같이 식탁에 둘러 앉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다 우리 네 식구와 엄마가 다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입니다.
아빠가 채윤이를 놀릴 요량으로
'너는 앞니 두 개가 진짜 크다. 이빨이 왜 그렇게 크냐?'
채윤이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신데다가 농담으로도 부정적인 느낌이 새어나오는 걸 못 견디시겠는 외할머니가 바로...

'얼라, 그르믄 잘 산댜아~ 이빨이 크믄 부자루 잘 산댜~아' 하시면서 채윤이의 엄청난 대문 이빨을 복 받을 징조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그 말 끝에 아무 생각없이 제가 그랬습니다. '현승이는 이빨이 다 디게 쪼끄맣지' 하니깐 채윤이가 바로 '엄마, 현승이 이빨은 진짜 쪼끄만게 꽉 차 있어. 꼭 옥수수 같애' 하면서 현승이 이로 화제가 옮겨갔습니다. 그러자 또 바로 외할머니 등장...

'얼라, 그게 좋은 거여. 이빨이 그르케 생기믄...(아주 짧은 침묵)..... 좋탸~아'

이빨이 쪼그만 건 어떻게 좋다는 건지 추가 설명은 없으셨고 그저 뻘쭘한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이빨이 큰 채윤이가 좋은 건지, 이빨이 작은 현승이가 좋은 건지 수습은 어려울 듯 합니다. 할머니의 마음만은 우리 모두 알겠고요.

그 날 이후로 우리 집에선...
키 얘기가 나오면 무조건 '키가 크믄 부자로 잘 산댜~아. 키가 작으믄 좋탸~아.'
피부 얘기가 아오면 '얼라, 얼굴이 희면 부자로 잘 산댜~아. 얼굴이 검으면 좋탸~아'
이러고 놀게 되었습니다.




이 글 보고 댓글 달믄 부자로 잘 산댜~아.
댓글 안 달믄...... 좋탸~아'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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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엄마가 집에 오셨다. 동생네 대식구와 함께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잠깐 집에 들러 가셨다. 용돈을 드리기로 한 날이라서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미처 돈을 못 찾아놓고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엄마 몰래 애들 지갑에 있는 지폐까지 긁어 모아서는 만 원 짜리 네 장, 오천 원 한 장, 천 원 짜리 다섯 장 해서 오 만원을 만들었다. 시어머니면 천 원 짜리 까지 넣어서 맞추는게 좀 그렇지만 우리 엄마니까 하고 드릴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봉투는 꽤 두툼해지고....ㅋ

다음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야, 신실아! 내가 봉토지(봉투)를 보고 울었다. 돈도 없으믄서 엄마 조금이라도 더 줄라천 원 짜리까지 느서(넣어서) 어트게 구천 원은 그냥 두지 뭐하러 그르케 까지 혔냐? 내가 그걸 봉게(보니까) 눈물이 났어'
'무슨 구 천 원? 구 천 원 아닌데.....'
'그릉게 말여. 돈 없으믄 오만 원 만 주지 잔돈 구 천 원 까지 늤어(넣었어)?'
알고보니, 만 원 짜리 하나를 천 원 짜리로 보고 넣어서 결국 오만 구천 원을 넣어 드렸던 것. 엄마는 그걸 엄마 식으로 말도안되는 해석하시고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시고.
'아냐, 엄마. 오만 원 만 줄려고 했어. 구천 원은 잘못 들어갔어. 괜히 감동받고 울고 그러지말어. 그거 쓰지말고 나뒀다가 다시 줘'ㅋㅋㅋㅋㅋ  했더니..
'야~이, 이 년아! 푸후후후후후....'
한참을 수다 떨고 전화 끊으면서 '아! 엄마, 구천 원 꼭 잘 놔둬. 아놔, 완전 아까워. 나중에 꼭 줘' 했더니 엄마 다시 한 번 폭소.

이 얘길 들은 동생은 엄마한테 가서 '엄마! 누나가 구천 원 잘못 준 거 이리 내놔. 그거 누나가 나 주래. 빨리 내놔' 이러고. 엄마는 안된다고 나중에 누나한테 다시 줘야 된다고 그러고. 여든 넘으신 엄마, 40 줄의 아들 딸이 구천 원 가지고 오늘 오후 내내 전화로 실갱이 한 얘기.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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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한 자도 쓸 수 없었습니다.
뒤늦은 사랑고백, 뒤늦은 커밍아웃을 합니다.


2002년 민주당 경선 즈음이었습니다.
늘 바닥으로 가서 기적을 이루어내던 저 분은 그 때도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습니다.
끼니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눈이 뒤집히는 임산부였습니다.
그럼에도, 경선의 승리를 위해서 한 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저 사진은 그 즈음, 영화배우 문성근 씨의 연설을 보면서 흘린 눈물일겁니다.
우리 부부 역시 작은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함께 울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잊지못할 2002년 12월 19일 대선.
티브이로 개표결과를 보기 위해서 수민네 집에서 감격의 순간을 확인했습니다.
두 가족이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시간을 보내다가 늦은밤, 24개월 된 채윤이와 겨울 그 찬바람을 맞으며
춤추 듯 걸어서 집에 돌아왔었죠. 그 밤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기뻐하니 뱃속에 있던 현승이에게도 엄청난 태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나서였을까요?
탄핵, 탄핵정국 입니다. 그 날 역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그 소식을 접하고 넋을 놓고 컴 앞에 앉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4년 여의 풀타임 직장생활(음악치료사로서 풀타임으로 일한다는 것은 당시에는 영광인줄 알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을 접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직장 내 노조에서 보여준 탄핵정국에 대한 자세였습니다. 노조가 그저 월급을 올리고, 치료수를 낮추는 일에 목숨을 걸 뿐이라는 걸 확인하고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에게 실망하고 계속 다니기가 싫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일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 중요한 영역이기에 늘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다섯 살 채윤이를 데리고 광화문의 탄핵무효 촛불 시위에 함께 했었습니다. '타낸꾸요, 민주수호' 를 외치던 채윤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어린 채윤이와 그 역사적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중요한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내 봉하마을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들에게 욕 먹고 손가락질 당해도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는 지도자를 가까이서 보여주지 못한 것이 말이죠. 몇 번 갈까 하는 마음을 가졌었지만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뤘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아쉬움과 슬픔 가득했던 지난 월요일에 아이들과 서울역 분향소에 갔습니다. 굳이 서울역을 택한 것은 그 곳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시민 아저씨가 상주로 조문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뙤약볕에서 한참을 서서 기다렸는데 낮잠시간을 지낸 현승이도 잘 기다려주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서거 소식 이후에 엄마 아빠는 말을 잃었고, 늘 거실을 메우던 음악도 들리지 않았고, 끼니마다 식사도 대충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모니터 앞에 앉아서 말을 잃고 슬픔을 삭이고 있는 동안 두 아이도 말없이 놀고 있었습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현승이가 거실의 이면지에 해놓은 낙서입니다.
바보 노무현. 이렇게 바보를 앞에 붙이는 것과
이명박 바보, 라고 뒤에 붙이는 것이 참 느낌이 다릅니다.
청소를 하다가 이 낙서를 발견하고 한참을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채윤이는 채윤이대로 도통 말을 잃은 엄마 아빠에게 묻고 싶은 말을 한꺼번에 적어서 설문지를 만들어 내밉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이 설문지에 답을 하면서 헛웃음이 흘러나와 울면서 웃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바보.


영결식에 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차마 볼 수가 없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수영장에 갔습니다. 아주머니들수 수영은 안 하시고 열심히 수영하는 사람 진로방해 하시면 이러시대요. '조문하러 가는 미친 것들은 또 뭐야?' '오늘 김동길교수가 바른 말 또 했대. 서거는 무슨 서거냐고?' '텔레비도 짜증나 죽겠어' '지금 뭐 다들 할 말이 없어서 그러나, 노사모 미친 것들 달랠려고 그러지. 이러다가 또 촛불 들고 지랄할까봐....'
예, 저는 참여정권 내내 노무현대통령에게 하는 욕을 제게 하는 욕으로 듣고 모욕을 느꼈습니다. 오늘 수영장에서도 그랬습니다. 떨어지는 눈물을 참으면서 물을 갈랐습니다. 수영장 아주머니들의 독설, 그리고 함께 살던 시절 시아버님의 끝없는 '노무현 때문이다' 하는 욕...... 다 소화가 됩니다.

실은 대통령 취임 이후 잘못된 행보라고 지적받는 FTA, 이라크 파병... 이런 것도 저희 부부는 미워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믿고 유시민님의 말처럼 '비를 같이 맞아주는 사람' 에 심정적이 동의를 했습니다. 그 시절 생각이 같다고 여기던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하는 비난도 정말 정말 마음 아프고 듣기 어려웠지만 ...... 다 소화가 됩니다.

그런데, 정말 소화가 되지 않는 조롱과 욕과 비난이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빌어서 노무현대통령을 조롱하고 비하하던 제가 들은 무수한 설교입니다. 단언하건데, 제가 아는 이 땅의 개신교 지도자들 중에 노무현 대통령 만큼만 정직하고 진실하고 용기있는 분을 한 분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저는 오늘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될 자리인줄 알면서 가서 낙선하고 또 낙선하는 그 심정을 한 번이나 헤아려본 후에 그렇게 조롱들을 하는지요. 자신들이 앉은 그 지도자의 자리를 잃을까봐 전전긍긍 두려워 하는 그 두려움을 본인들만 모르고 우리는 다 아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과 한 번 쯤 비교해 보는 성찰도 없으면서요....

웬만큼 말로 하다 안되면 힘을 좀 써도 될텐데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거지요' 하는 상황까지 가도록 대화를 하는 자발적으로 권위를 잃은 지도자. 코너에 몰려도 뒤로 숨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다 '말 실수가 많다'는 욕을 들어먹는 참 용기있는 지도자. 이런 지도자를 기독교 안에서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도 밉고, 맘에 안 들었던 노무현이 잘 죽었다. 라는 메세지가 그대로 와닿는 교계 지도자들의 발언에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입니다. 책임없이 자살을 했다고 탓하기 전에 혹시 우리 손에 묻은 타살의 혈흔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은데 이런 얘기는 씨도 안 먹힐테니까 그저 마음만 무너져내립니다.

뒤늦은 커밍아웃을 합니다.
정치적인 견해는 아무리 옳다고 확신하는 것이라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저희 부부의 소견입니다. 이미, 우리가 그로 인해서 상처를 받을 만큼 받아봤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고, 존경했고, 한 번도 지지를 거두어 본 적이 없습니다. 비록 그가 우리 삶의 존재 이유인 예수님의 삶을 몰랐다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에게 비친 그는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아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더더욱...... 눈물이 납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말하지만 삶으로는 예수님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향해서 정치적이라느니, 자살이라는 최고의 죄를 지었다느니 하는 말로 조롱할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남편의 동기 강도사님 한 분이 자신의 후배이기도 하며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청년부에 있는 청년 하나가 하는 그런 식의 얘기를 듣고 그랬답니다. '야, 임마! 너 같은 놈들 때문에 내가 기독교가 싫어' 라고요.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스스로 위로가 됩니다.
최근에 청년부 주보에 인터뷰를 한 친구같은 제자가 있습니다. 어느 질문에서 강도사님과 사모님의 사는 모습이 결혼에 대해서 비관적이던 자신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해주었고, 닮고 싶은 모델이 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걸 읽고 제 자존감은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어느 영역에서 닮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런 영광이 어디있겠습니다.그래서 저는 믿었던 교회와 사회의 여러 인생의 선배들에게 실망을 하면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최고의 복수로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을 존경하지 않아' 라고요.

수많은 추모인파를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우리 부부에게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 중 하나이니.... 당신은 제가 아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대통령이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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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을 서프라이즈에 '이사야'라는 필명의 목사님이 올린 글을 퍼왔습니다.
5월 2일이니 서거 한참 전입니다.

이 포스팅에는 어떤 댓글도 사양하겠습니다.

==============================================


검찰이여, 하나님의 저주를 두려워하라
(서프라이즈 / 이사야 / 2009-05-02)



지금의 사태로 인하여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저는 울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보면서 가슴이 매어지는 것처럼 아픔을 느낍니다. 목사로서 나보다 더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그 분을 보면서 부끄러움에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아니 한편으로는 시기심마저 듭니다. '아니, 자기가 뭔데 목사인 나보다도 역사의 공의를 더 잘 믿고 저렇게 역사의 공의 앞에 자신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 목사인 나는 어떻게 살란말인가?', '이건 정치인이 보여줄 행보가 아니라 종교인, 그것도 세상의 등대요 촛불이라고 하는 기독교인, 특히 목사가 보여줘야 할 태도인데, 자타가 공인하는 기독교회의 지도자 목사들은 다 어디가고 이 일을 노무현 혼자서 감당하고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에 좌절하게 됩니다.


역사의 공의를 믿어 봅시다.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 가장 밝은 빛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과 같이 우리가 보고자 하는 의의 승리와 진보는 반드시 우리 앞에 오게 될 것입니다.


검찰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참으로 치사하고 유치하며 불공평하고 불의하게 느껴집니다. 세상의 다른 모든 불의와 불법에 대해서 눈감고 오직 노무현의 약점에는 어떻게 하든지 개떼처럼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떡찰에 이어 개찰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모습은 진정으로 이 땅 위에 공의를 세우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공소권을 오직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과 노무현을 동일한 선 위에서 수사하고 기소하겠다는 검찰됨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다 자신들을 삼성 떡찰에 이어 정권 개찰이라고 놀린다고 하여도 비리는 비리이고 불법은 불법이기 때문에 아무리 조소를 받는다고 해도 자신들의 할 일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발현이라면 역사 속에서 박수를 받을 만한 일입니다.


물론 이렇게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동안 검찰이 보여온 모습으로 인하여 당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여실히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떡에 약하고, 권력에 꼬리를 흔들며, 힘 없는 자들에게 무자비하고 비열한 모습을 보여온 당신들을 이렇게 순수하고 순결한 심정으로 봐주길 바랄 순 없을 것입니다. 아니, 제가 이런 상상을 한다는 것조차 '돌았나?'라는 비난을 받을지 모를 만큼 당신들은 지금 '미친 개' 같습니다. 목사인 제가 '미친 개'와 같은 단어를 쓴다고 해서 놀라실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반대자들에 대해서 '개와 돼지(마태복음 7:6)', '독사의 새끼(마태복음 23:33)'와 같은 욕을 하셨는데, 저 같은 무지랭이 목사가 욕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예수님 보다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웃긴 짓입니다.


성경은 무수히 많은 곳에서 검찰과 법원의 공평성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선지자들의 그 무서운 저주와 멸망의 예언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약한 자에게 비열하게 억압하고 떡에 미쳐 있는 검찰과 법원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런 성경 말씀에 대해서 비기독인 검찰들이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검찰 내에는 기독인들이 하나도 없습니까? 자신을 신실한 크리스찬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그런 사람들은 사법 시험에 한 사람도 합격하지 못했으며, 한 사람도 검찰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만일 있다면 한국교회의 목사 중에 한 사람으로 하나된 교회의 회원인 당신에게 묻습니다. 공평과 공의를 바르게 시행하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 당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 자리까지 오게 된 것 아닙니까? 지금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바르게 공의와 공평이 시행되고 있습니까?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랴? 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더에 대해서 떠올려 보십시오. 양보모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을 당신께 전합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 4:13-14)"


이제 검사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자리에 세우신 것이 지금과 같은 역사의 퇴보, 공평과 공의의 퇴보를 막으라고 보내신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이 땅에 공평과 공의가 살아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의탁하면서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6)"는 에스더의 각오가 당신의 각오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노무현을 놔 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하여 전임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전력을 다한 검찰의 수사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노무현을 그렇게 했다면 그것을 그대로 다른 정치인들, 특히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노무현을 거꾸로 매달아 털었듯이 이명박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공평과 공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당신들이 시작한 일입니다. 노무현에서 끝난다면, 이명박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검찰은 떡찰이며 개찰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인내하심은 더 이상 바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저는 매일 다음과 같은 저주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릴 것입니다. 목사가 저주의 기도를 올린다고 하니 놀랄 것 없습니다. 조금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시편에 얼마나 많고 무서운 저주 시가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공의에 대해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를 서슴지 않는 시편 기자들의 심정을 알 것입니다. 저도 이와 같은 심정으로 이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 저주의 기도를 계속 할 것입니다.


공의와 공평의 하나님, 이 땅을 보옵소서. 이 땅에서 법을 수종들고 집행하며 판결하는 자들의 행위를 보소서. 그들이 법을 가지고 공의와 공평을 무시하며 '하나님의 보응하심이 어디 있느냐?'하고 조롱하나이다. 이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는 저의 심령이 상하고 어지럽사옵니다. 주님 바라옵나니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게 하소서. 하나님 바라옵나니 저들이 이 땅 위에서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인 것 같이, 마치 자신들이 법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것같이 여기며 오히려 악을 행하고 있음을 보시며 분노하시옵소서. 당신의 분노하심을 이 세상 모두가 알게 하옵소서. 저의 심정이 시편의 기자의 심정이 되옵나이다. 시편 기자가 기도한 것을 저도 하나님께 기도 올리옵나니 들어주소서.


하나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


악한 자와 속이는 자가 일제히, 나를 보고 입을 열고, 혀를 놀려서 거짓말로 나를 비난합니다. 마음으로 가득 찬 말을 나에게 퍼붓고, 이유도 없이 나에게 싸움을 걸어 옵니다.나는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리건만, 그들을 나를 미워합니다.그들은 선을 오히려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습니다.


악인을 시켜, 그와 맞서게 하십시오.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고발하게 하십시오. 재판을 받을 때에, 유죄 판결을 받게 하십시오. 그가 하는 기도는 죄가 되게 하십시오. 그가 살 날을 짧게 하시고 그가 하던 일도 다른 사람이 하게 하십시오. 그 자식들은 아버지 없는 자식이 되게 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십시오. 그 자식들은 떠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폐허가 된 집에서마저 쫓겨나서 밥을 빌어먹게 하십시오. 빚쟁이가 그 재산을 모두 가져 가고,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재산을 모두 약탈하게 하십시오. 그에게 사랑을 베풀 사람이 없게 하시고, 그 고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자도 없게 하십시오. 자손도 끊어지고, 후대에 이르러, 그들의 이름까지도 지워지게 하십시오. 그의 아버지가 지은 죄 주님이 기억하시게 하시고, 그 어머니가 지은 죄도 지워지지 않게 하십시오. 주의 감시가 잠시도 그를 떠나지 않게 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남에게 베풀 생각은 않고, 도리어 가난하고 빈곤한 자를 괴롭히며, 마음이 상한 자를 못살게 하였습니다. 저주하기를 좋아하였으니, 그 저주가 그에게 내리게 하십시오. 축복하기를 싫어하였으니, 복이 그에게서 멀어지게 하십시오.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였으니, 그 저주가 물처럼 그의 뱃속까지 스며들고, 기름처럼 그 뱃속에까지 배어들게 하십시오. 그 저주가 그에게는 언제나, 입은 옷과 같고, 항상 띠와 같게 하십시오.(시편 109:1-19)


주님 이들은 이런 시편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이옵나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로우시며, 공평을 사랑하시는지 모르는 자들이옵나이다. 이들이 알게 하시옵고, 세상이 다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나타내 주시옵소서. 자신들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의를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음을 깨닫게 하시옵소서. 그런데도 그들이 불의를 행함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모든 저주가 저들에게 임하게 하소서.


이 땅을 공의롭게 통치하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3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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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구는 청년 중심으로 돈다면서요? 청동설이라나 뭐라나....ㅎㅎㅎ
청년의 이름이 무색하지 않은 TNT 공동체의 목자들, 일명 '목자시대' 랍니다.


서종면의 그림같이 예쁜 모 집사님 댁으로 MT를 가서 '목자시대' 화보 촬영을 했다지요.
아~ 그룹 이름 말이죠? '처녀시대' 좋은데... 처녀시대는 공동체 내에 이미 결성돼 있는 관계로 처자시대? 이렇게 갈 수도 있었지요. 헌데 처자들 중에 푼수 아줌마가 계속 고추가루 끼듯이 껴 있어서 것두 어렵구요. 에이~ 모 그냥 '목자시대'로 갑니다.


이러면 소녀시대 와서 울고 가지 않겠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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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는 할 수 없는 코믹버젼 화보. 이건 목자시대만 할 수 있다구요. 배경으로 늘어서 있는 멤버들 표정도 좀 봐주시라구요. 안 보이시면 사진을 크게 보시구요. 몸을 던지는 한 사람과 그 뒤에서 표정으로 열심히 받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런 화보 가능하답니다.


모든 키를 이 시대의 마지막 호빗, 싸모님에게 맞춰 평준화 시켜주는 배려와 센스! 


우리 언니들 청년의 열정으로 공중부양 시작하셨습니다.


모 한 1미터 정도를 5분 정도 떠 있는 건 이제 일도 아닙니다. 가뿐하지요.


청년의 정기를 받은 초딩까지 같이 뜨기 시작합니다. 그 옆에만 서면 몸이 붕붕 뜨게 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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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디어 초딩 완전히 필 받아서 발이 땅에 닿지를 않습니다.


그 바람에 옆에 서서 담화를 나누던 도사님과 두 원로 청년들 같이 떠오르셨습니다. 예~ 도사님 오늘도 용안은 제대로 망가지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정원의 한 구석 사다리 위에서는 사랑이 싹트고 있었구요.형준이 형아에게 꽂힌 현승이는 내내 형아 옆을 떠나질 않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안에서 모두들 밥을 받고 식사를 하려하는데 유딩 현승이는 그릇을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이유인즉, 형준이 형아가 아직 식사를 못하고 밖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거든요. 형준이 형아랑 밥 먹겠다고 조르던 현승군, 형준형아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이러더이다.

'나 그러면 밖에서 형준이 형아 바.라.보.면.서. 밥 먹을거야'



맞습니다. 요새 지구는 청년중심으로 돕니다.

청동설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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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로 살아봤어요?
안 살아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부모님이 목회를 하셨고 동생이 일찌감치 우리보다 먼저 목회를 했지만,
그리고 누누히 목회자의 삶이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들어봤지만...
목회자로 사는 건 백만 번의 말과 다르다니까요.

고난의 길이라는 목회의 길이 약간의 고상함이 어우러진 고난이라면
겪으면서 스스로 뽀대도 나고 그렇겠지만....
어디 그리 고상해야지요.

사람들 세우는 일에 남달리 관심이 많아서 목회의 길을 선택했지만,
펄펄 뛰게 좋은 사람들의 변화를 보면서 세상에 태어나 이리 좋은 일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 얼마나 찌질한 일로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지요.
사역을 열매를 보면서 천국을 경험하는 한편,
찌질한 일들로 질퍽거리며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요즘입니다.

사진 정리를 하다가 이 사진이 눈에 들어오더니 가슴이 울컥합니다.
얼마 전 근처에서 사역하는 남편의 동기 전도사님과 사모님들 모임이었지요.
다른 사람 돕는 것, 나누고 섬기는 것에는 말보다 몸이 먼저 가 있는 분들이지만
정작 자신들에게 닥친 아픈 일들에 대해서는 쉽게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며 하늘을 향해서만
고개를 조아릴 수 밖에 없는 분들이지요.
할 말이 가장 많을 때 정작 말을 멈추어야 하고,
항상 가장 중대한 결정이 타인에 의해 되어지도록 두어야 하는 그런 선택이 일상인 삶이지요.

힘 내요. 박사모님!
같은 길 가는 우리가 있잖아요.
졸업식에서 만나 우리 스스로 지난 3년의 고생을 위로하고 영광을 누리자구요.
저는 그 졸업식에서 최고의 사모님 상을 박사모님에게 수여할래요.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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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국에 눈이 자꾸 나려 덮여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 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전 날 놀러오셨던 까옥까옥님께서 베란다 앞에서 '눈이 펑펑 내려주면 좋겠다'
하시는 예언을 한 마디 남겨 놓으시더니...
담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어느 새 일어난 망아지 두 마리가 베란다 앞에 나란히 앉았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모습이 제법 어르스러워보여
'저 분위기에는 커피를 한 잔씩 타다 주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는 눈 때문에 일과 운동과 모든 어머니 병원 모시고 가기로 한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난 아이들은 무장을 하고 밖으로 튀어나가 뒹굴고,
3층이며 놀이터 앞인 집이라 두 망아지 뛰노는게 그대로 보인다.
눈을 즐기는 건지, 뛰노는 망아지들을 관람하는 건지 아무튼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이런 날을 커피 쫌 많이 마셔도 돼. 하면서 석 잔을 마셨다.

윤동주의 <눈 오는 지도>가 생각이 났다.
순이, 쪼그만 발자국.... 이런 시어가 생각이 나서 오랫만에 윤동주 시집을 꺼내들어봤다.
중학교 때 산 시집이다.

윤동주가 그린 눈 오는 지도와 저 밖에 펼쳐지는 지도는 '쪼그만 발자국' 말고는 통하는 정서가 없는 듯 하다. 그래도 좋다. 왜냐면 눈이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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