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엄마가 집에 오셨다. 동생네 대식구와 함께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잠깐 집에 들러 가셨다. 용돈을 드리기로 한 날이라서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미처 돈을 못 찾아놓고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엄마 몰래 애들 지갑에 있는 지폐까지 긁어 모아서는 만 원 짜리 네 장, 오천 원 한 장, 천 원 짜리 다섯 장 해서 오 만원을 만들었다. 시어머니면 천 원 짜리 까지 넣어서 맞추는게 좀 그렇지만 우리 엄마니까 하고 드릴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봉투는 꽤 두툼해지고....ㅋ
다음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야, 신실아! 내가 봉토지(봉투)를 보고 울었다. 돈도 없으믄서 엄마 조금이라도 더 줄라천 원 짜리까지 느서(넣어서) 어트게 구천 원은 그냥 두지 뭐하러 그르케 까지 혔냐? 내가 그걸 봉게(보니까) 눈물이 났어'
'무슨 구 천 원? 구 천 원 아닌데.....'
'그릉게 말여. 돈 없으믄 오만 원 만 주지 잔돈 구 천 원 까지 늤어(넣었어)?'
알고보니, 만 원 짜리 하나를 천 원 짜리로 보고 넣어서 결국 오만 구천 원을 넣어 드렸던 것. 엄마는 그걸 엄마 식으로 말도안되는 해석하시고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시고.
'아냐, 엄마. 오만 원 만 줄려고 했어. 구천 원은 잘못 들어갔어. 괜히 감동받고 울고 그러지말어. 그거 쓰지말고 나뒀다가 다시 줘'ㅋㅋㅋㅋㅋ 했더니..
'야~이, 이 년아! 푸후후후후후....'
한참을 수다 떨고 전화 끊으면서 '아! 엄마, 구천 원 꼭 잘 놔둬. 아놔, 완전 아까워. 나중에 꼭 줘' 했더니 엄마 다시 한 번 폭소.
이 얘길 들은 동생은 엄마한테 가서 '엄마! 누나가 구천 원 잘못 준 거 이리 내놔. 그거 누나가 나 주래. 빨리 내놔' 이러고. 엄마는 안된다고 나중에 누나한테 다시 줘야 된다고 그러고. 여든 넘으신 엄마, 40 줄의 아들 딸이 구천 원 가지고 오늘 오후 내내 전화로 실갱이 한 얘기.ㅋㅋㅋㅋ
'그리고 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정산 휴양림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20) | 2009.08.27 |
---|---|
외할머니의 배려, 수습불가 (18) | 2009.08.11 |
뒤늦은 고백 (20) | 2009.05.29 |
검찰이여, 하나님의 저주를 두려워하라 (0) | 2009.05.23 |
청동설 (25) | 2009.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