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입구에 미용실이 하나 있다. 작년, 막 날씨가 추워지던 때 오픈한 곳이다. 미용실 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1년에 두 번 정도 파마를 한다. 내 머리는 그렇다치고 한 달만 지나면 덥수룩해지는  현승이 머리가 너무 자주 찾아오는 귀찮은 숙제이다. 들고나는 길의 미용실이라 괜히 좋았다. 매섭지 않은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저녁 처음으로 현승일 데리고 갔다. 어쩌면 현승이가  첫 손님이었을지도 모른다. 머리를 자르고 카드로 계산을 하려하니 아직 카드 결제할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현승일 볼모 잡혀놓고 집으로 가 현금을 가져다 지불했다. 아줌마가 마음에 들었다. 미용사로서는 초보인 것 같은데 말이 없고 착해 보였다.


지나다닐 때마다 마음이 쓰였다. 손님이 있는 날이 많지 않았고, 아줌마 혼자서 작은 난로에 손을 대고 불을 쬐며 TV 보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저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떡하냐?' 걱정을 하니까 현승이도 덩달아 걱정. '엄마, 오늘 학교 갔다 올 때 보니까 미용실에 손님 있어' 온 가족이 단골이 되었다.  남편은 일단 가까워서 편하게 다녔다. 사실 머리를 잘 자르는 편은 아니라서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나 아줌마 성품이 좋아 다니는 것 같았다. 미용실 가면 앉아서 신상 캐기 질문공세 당하는 게 나도 그게 싫은데 남편은 얼마나 싫을꼬. 그런데 이 분은 나한테도 많은 말을 안 하니 남자에겐 더더욱 그러하겠지. 차츰 익숙해져서 현승이가 혼자 머리 자르러 가기도 해서 나는 더 편해졌다.


아줌마도 우리 식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현승이가 참 예뻐요. 이 앞을 지날 때마다 꼭 쳐다보고 눈 맞추고 지나가요. 현승이네 식구들이 다 착하신 것 같아요. 이 정도 얘길 주고받았는데 어쨌든 마음이 늘 쓰이고 잘 됐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그 바로 옆은 훈남 총각이 하는 카페이다. 여기 역시 장사가 잘 되나 신경을 많이 썼는데 갈수록 손님이 많아지고 잘 되는 것 같아 마음을 좀 놓았다. (오지랖도) 미용실도 최근에는 손님이 꽤 많아졌다. 헌데, 얼마 전에 머리를 자르고 온 남편이 미용실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 건물주가 새로 건축을 하겠노라고 다 비우라고 했단다. 지난 주에 일부러 파마를 하러 가서 물었더니 이제 좀 단골이 생겼는데 나가야 한단다. 이 근처로 옮기려고 알아보는데 세가 비싸서 등촌동으로 가기로 했다고. 그러면서 현승이 못 보게 되어 섭섭하다고 했다.


마음이 많이 짠하고 슬프다. 얘기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나는 딱 두 번 머리를 했다. 헤어지고 다시 못 보는 것도 슬프고, 겨우 안정되고 무엇보다 이 동네에 마음을 붙였을텐데 원치 않게 떠나셔야 하는 것이 남일 같지가 않다. 현승이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에 대해서도 크게 내색하진 않지만 아쉬워 하는 마음 느껴졌다. 여기서도 그랬지만 다른 곳에 가서도 인테리어를 거의 하지 않고 시작할 것이다. 밖에서 보면 그다지 들어가고 싶지 않은 번듯하지 않은 미용실이 될 것이고. 그러면 또 한참을 혼자 앉아 난로를 쬐며 TV를 보며 손님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수입이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까?


그제 저녁 현승이가 '엄마, 나 너무 슬퍼'했다. 학교 갔다 오는데 미용실 아줌마가 불러서 '현승이 아줌마 이사가. 이제 현승이 못 봐. 잘 지내. 안녕' 했단다. 아, 게다가 이 아줌마가 동네 고양이들 밥을 살뜰하게 챙긴다. 자신처럼 고양이 밥을 챙기는 동네 다른 아줌마에게 앞으로 앞으로 더 넉넉히 챙기셔야 할 거라고 부탁했단 얘기도 들었다. 아, 진짜! 늘 약한 사람들이 약자를 챙기고,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챙길 줄 아는 이런 사람들은 꼭 강하고 많이 가진 사람들로 인해서 고통을 받더라. 얘기를 듣자하니 건물주가 다른 입주자들보다 여자 혼자 하는 이 아줌마에게 가장 가혹하게 대했다. 가진 것 없는 우리와 우리 이웃들의 여전한, 더 가벼워질 것 같지 않은 일상의 짐이 참 아프다. 학교 다녀 오는 길, 따스한 마음으로 기웃거려주는 현승이를 보지 못하는 아줌마의 허전한 마음에 내가 지레 슬프다. 아 그냥, 헤어지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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