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QTzine>에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나자연)'라는 꼭지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애강의를 하고 상담하며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한 마디가 이것입니다. 연애를 실패하는 이유중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되어 연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되라'는 말은 얼마나 모호하고 어려운 말인지요. 왜 아니겠습니다. 평생의 과업인데요. 요즘은 연애를 돕는 책이며 강의가 정말 많습니다. 연애하는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실제적인 스킬이 널리고 널렸지요. 저는 그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연애 당사자들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라. 어떻게 되어라.'는 방식은 순간적으로 뭔가 연애가 잘 될 것 같은 기분은 느끼게 하지만 결국 자신의 연애를 (궁극적으로 자기의 인생을) '방법'에 의존하여 본질에 관한 고민을 회피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들을 땐 빵빵 터지고 좋았는데 실천으로 옮기자면 한없이 어려운 연애 노하우가 많아질수록 '못하는 나'에 대한 자괴감이 커져 스스로 더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됩니다. '어떻게 되어라'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한 것은 '더 나긋나긋해져라. 여성적이 되어라' 입니다. 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되지 않더라는 좌절의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더 나긋나긋해진다고 애인이 생기거나 결혼을 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나 자신이 되는 것이 관건입니다.
더 나이 들어 연애계를 은퇴하기 전에 '오우 연애' 그 이후, 은혜의 연애선생으로서 마지막 총정리 한 번 하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나자연 1탄입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요량으로 카페에 자주 갑니다. 하지만 그곳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 없게 만드는 유혹이 많습니다.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는데 인터넷 접속을 안 할 수 없구요. 어쩌다 이 늙은 나이에 연애(戀愛)계를 못 벗어나고 연애강사 소릴 듣자니 옆자리 커플의 애정행각은 놓칠 수 없는 임상현장입니다. 갈등상황이기라도 하면 몸이 그 방향으로 기울면서 한 쪽 귀가 커질 지경입니다. 주책인줄 알지만 어쩌겠습니까. 어느 대학 앞 카페였습니다. 건너편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커플이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세련된 남친이 한 번씩 귀엽고 수줍은 여친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 내가 결혼을 했으니 망정이지 골드미스 제자들(이) 봤으면 ‘부러워서 죽어봐~야’ 정신 차리는 사태가 될 뻔 했습니다. 남친님이 화장실을 가시는지 자리를 비웁니다. 아, 그때 혼자 남은 우리 여친님의 표정. 아까 그 귀요미가 아닙니다. 무뚝뚝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의 무표정으로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폰을 들여다봅니다. 거울을 꺼내 화장을 매만집니다. 남친 등장하자 귀요미도 부활. 눈웃음과 함께 무슨 멘트를 날리는가 싶더니 다시 뽀뽀. 그리고 이중창으로 하하호호.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인가 봅니다. 남친 앞에서 짓던 표정과 혼자 남았을 때의 표정이 놀라울 정도로 다른 여친을 보니 아직 많이 긴장되나 봅니다. 남친 앞에서 편하게 있어도 충분히 예쁜데... 나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예쁜 아가씨, 너 자신이 되어 연애해.’
오늘도 연애 앞에서 애인의 눈에 들기 위해 물속의 다리와 수면 위 얼굴이 따로 노는 채 불안에 떨고 있는 여자, 남자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물론 사랑에 빠지면 스스로에게도 낯선 전혀 다른 모습의 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던가, 이렇게 사소한 일에 상처받는 사람이었던가.’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놀라기도 합니다. ‘너 그런 사람이었어? 깐깐함과 도도함 안에 이렇게 착한 여자가 숨어 있었다니.’ 그렇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갑니다. 사랑의 신비입니다. 아가페(Agape)라 불리는 하나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로맨틱 러브라 하는 에로스(Eros)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에로스는 지속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유효기간이 대략 1년 6개월이라 하지요. 사랑에 빠져있는 그 순간, 영원할 것 같은 콩깍지는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부모님들 같은 으르렁 부부는 없어야지요. 처음엔 나름대로 가슴 뛰는 사랑으로 시작하셨을 테니까요. 떨어질 콩깍지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생에 딱 이 시기, 이성을 향하여 무한 몰입하게 하는 이 충만한 에너지는 짝을 만나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며 그 자체로 아름답기도 합니다. 기나긴 인생에서 아주 짧은 시기를 지나는 감정의 쓰나미입니다. (하긴 환갑이 넘어도 에로스 에너지 충만하신 분들도 있습디다만 그분들은 예외) 에로스는 지나갑니다. 연애는 짧고 결혼은 길며, 허니문은 짧고 한 인간을 받아들이기 위한 인고의 세월은 깁니다.
모든 연애가 결혼이 되는 것 아니지만 연애는 둘만의 몰입관계 라는 점에서 부부관계와 비슷합니다. 부부관계만큼 밀도 있는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부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보여주는 관계입니다. 헉, 알몸이라고요? 네. 손으로 뱃살을 가릴 수도 없습니다. 가릴 데가 한 두 군데여야 말이지요. 알몸은 그나마 낫습니다. 나름대로 착한 사람, 고상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포장하고 있는 인격의 포장지가 다 벗겨지는 것에 비하면요. 많은 선배들이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결혼했던 연예인 커플을 몇 달 만에 이혼소송 기사에서 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남친이 원하는 나로 연애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오래 갈 수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해야 합니다. 물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나를 변화시키겠다는 결단은 아주 중요합니다만 그것조차도 나 자신이 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솔로로 해를 넘기고 억울한 한 살을 더 먹었다 해도 나 자신이 될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입니다.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긴 했는데, 그래서 너무 좋은데 싱글일 때보다 불안이 높아졌다면, 연애가 힘겹다면 멈추고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고 있는가? 나 자신이 되는 것은 연애보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