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 -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내적여정 6 

 

 
☆ 모님, 너무 힘들어요

모님, 안녕하셨어요. 뵌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문자도 아니고 카톡도 아니고 뜬금없 메일을 드려요. 주일에 뵈었을 때 힘든 일 있냐고 물으셨죠? 괜찮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제가 괜찮지가 않나봐요.ㅠㅠ 솔직히 씀드리면 요즘 매사에 의욕도 없고 힘이 들어요. 딱히 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생각해보니, 지난번 모님을 뵙고 난 이후 서서히 마음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맞아요. 늘 근심 걱정에 휘둘리며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면서 마음에 바람 잘 날 없이 살고 있는 게 저예요. 그리고 그걸 명확하게 짚어주시니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나를 어쩌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모님 MBTI 검사해주시고 유형을 설명해 주실 때는 정말 속이 후련했거든요. 남과 다른 모습들에 대해 열등감에 시달리던 제가 그야말로 부족한 점을 ‘다른 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게 없는 자질들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내향형이고, 세심하고 꼼꼼하며 책임감 강한 나를 좋아해야겠구나’하고 말이요. 헌데 이제 와서 저 자신의 장점들이 나쁜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려요.ㅜㅜ(죄송해요.) 심지어 ‘죄’라고 말씀하시는데… 뭐 그리 죄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맞아요. 제 안에서 저를 움직이는 큰 힘은 안전하지 않은 상황이 될까 두려워 늘 대비하고, 그러고도 하는 걱정 근심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을 수가 어야죠.ㅜㅜ 그러지 않을 방법을 모르겠는데 ‘죄’라고까지 하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것도 제가 6유형인 탓일까요? 모님께 실망을 드리는 말씀이 아닐까 싶어서 망설여졌지만 늘 그렇듯이 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실 줄 믿고 잠 안 오는 밤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봤어요. 제 맘 아시죠? 모님. 답신 기다려도 되겠죠?^^ 그럼, 안녕히 계세요.

림.

 

☆ RE : 모님, 너무 힘들어요

육미에게.

하루 종일 비가 오는구나. 이렇게 비오는 날에는 커피 한 잔할 수 없지. 구수하고 달달한 커피가 땡겨서 오랜만에 봉지 커피를 하나 뜯었다. 가끔 내가 인스턴트 커피, 것두 프림 설탕까지 넣은 커피 마시는 걸 보면 ‘자칭 바리스타께서 이런 커피도 마시냐’며 놀라더라만.^^ 내게 황홀한 커피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일명 ‘삼박자’ 커피가 난 여전히 싫지 않아. 달달한 커피 한 잔 하면서 육미의 메일을 다시 읽으며 내적인 여정을 되돌아본다. 육미가 겪는 내면의 전쟁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더더구나 6유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해주고 싶구나. 나도 지나온 길이라는 얘기고, 오늘은 그 얘기를 좀 나누고 싶다.

 

MBTI를 만났을 때

MBTI를 접한 지가 10년이 훨씬 넘었구나. 웃기는 얘기 하나 해줄까? 처음 MBTI 검사를 했을 때 ‘내향형’으로 나왔단다. 맞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니가 무슨 내향형이냐
외향형이 확실하다는 거야. 내가 그 친구와 얼마나 싸웠는지 아니? 것두 진심으로 화를 내면서 ‘나는 내향이다’ 주장하면서 말이야. 지금 네가 나를 알다시피 내가 도대체 어디를 봐서 내향형이냐?^^ 생각해 보 당시 나는 ‘외향형’을 ‘나대는 사람, 남을 통제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애. 그게 비난으로 들렸나봐. 나의 외향적 에너지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중에 내가 외향형이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더라고. 내향형이라고 눈물겹게 우겨대던 자기방어에서 놓을 뿐 아니라,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의 간극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으니까. 말하자면 크게 성숙의 한 걸음을 내디딘 때였지. 심리유형 도구가 주는 일차적 유익은 나 밖으로 나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인 것 같아. 그야말로 남과 다를 뿐인 일부분 때문에 열등감에 빠, 내가 잘못 이름 붙인 용어들에 민감해져 불필요하게 나를 방어할 때 좋은 처방이 될 수 있. 무엇보다 내게 있는 성격적 특성이 나만의 달란트라는 것을 인정할 때 한껏 자유로워지는 것 .

암튼, MBTI를 친구삼아 짧지 않은 시간 내면 여행을 하며 자타가 함께 인정하는 내 유형(true type)을 찾았어. 마음과 행동은 훨씬 자유로워졌어. ‘내가 원래 익살녀구나~’ 하면서 열심히 재미를 쫓아다니고, 분위기 썰렁해지면 얼른 빵 터지는 농담 하나 던져 분위기 업 시키고, 누구보다 밝고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말이야. 나를 찾았다는 자유를 만끽하며 내 성격의 밝은 면에 충실하며 살았지. 헌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서 어떤 은 것이 느껴졌어. 내가 특별한 재능과 사랑으로 공동체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재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었다는 거야. ‘분위기를 띄우지 마라, 친절하지 마라, 칭찬하지 마라’고 하면 죽음인 거야. 그러고 보니, 내 장점 안에 내 공로는 없더라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록 친절, 웃음, 재미, 긍정적인 것과 멋진 것에 지나치게 매여 있는 나를 보게 되었지. ‘아니요’라는 부정적인 말 한마디를 못해서 하루 종일 시어머니 사 노릇을 하고 돌아와 마음 복닥거리던 밤이 기억 나. 맘은 부글거리는데 내색도 못하고 헤헤거리며 ‘괜찮아요’하며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서는 억울하고 화가 나고 견딜 수가 없었지. 그러나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내 행동과 동기의 분열이었어. 내 행동은 사랑 비슷한 것일지 몰라도 내면의 동기는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는 거야.

장점이 있는 그 지점에 바로 내 연약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좌절스러웠어.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 ‘저 사람과 내가 이렇게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겨 먹었다는데 어쩔 것인가? 정반대 유형인 ESFP와 INTJ는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만나 대화와 삶의 일치점을 찾을 것인가?’ 이러면서 다시 길을 잃었지.

 

나를 만나는 또 다른 길

길을 잃은 그 지점에서 나는 영적으로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가고 싶은 갈망이 커졌어. 그 즈음 에니어그램을 만났는데, ‘너의 빛! 너의 장점! 멋지다! 박수 짝짝짝!’ 이렇게 접근하질 않더라고. 오히려 내가 ‘재미와 긍정’에 매여 있는 것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동기라고 말해
주더라. 조금만 고통스럽고 무거워져도 견디지 못해서 웃기고 웃어버리면서 그게 진짜 기쁨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던 거야. 그동안은 내 유형의 빛을 붙들고 살았다면 에니어그램을 만난 시점부터 내 그림자 또한 서서히 끌어안 갈 수 있게 된 것 같애. 물론 고통스런 작업이었지. 어쩌면 지금의 육미처럼 말이야. ‘내 동기가 고통을 무작정 회피하려는 거라면, 지금까지 내 기쁨이 반쪽짜리라면 나는 이제 어쩌라는 말이냐! 동기가 나쁘니까 기쁘지도 말고 행복하지도 말라는 말이냐!’ 바로 ‘죄’라는 거대한 벽 앞에 맞닥뜨렸어.

‘근원적인 죄’라는 말이 불편하다고 했지? 이 찬송 아니?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나는 오랫동안 이런 류의 찬양은 회심하기 전에 부르는 찬양일 거라 생각했어. 여기서 말하는 ‘죄 있는 자’는 ‘믿지 않는 사람’이겠거니 했으니까. 그러니까 모태신앙인 나는 해당사항 없는 거지. 그 ‘죄’를 도덕적인 죄라고 규정한다 해도 그닥 나에게 유죄판결 내릴 것이 없는 거야. 딱히 눈에 띄는 도덕적인 죄를 지은 건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명령은 좀 많이 어겼지. 그런데 이건 누구나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거니까…. 이런 식으로 보면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할 때 내 자리는 결코 ‘죄 있는 자’의 자리가 아니야.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님 옆에 안타까움과 약간의 자부심으로 힘이 들어간 어깨를 하고 그들을 향해 함께 손짓하고 있었던 거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향하는 길 

에니어그램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죄야. 사랑하는 육미야, 죄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은총의 자리란다. 유형의 ‘근원적인 죄’를 통해서 아니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육미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거다. 네가 아무리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도 스스로는 결코 안전해질 수 없어. 책임감 있는 행동이나 미래를 대비하는 걱정과 염려를 당장 그만두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 영혼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텅 빈 공간이 있는데 네 유형의 집착으로 그것까지 다 채워보겠다고 애쓰는 걸 멈추라는 거야. ‘혼자서도 잘해요’라며 하나님 손 뿌리친 자리가 유형의 근원적인 죄라면 그저 거기서 뿌리쳤던 사랑의 손을 다시 잡는 거라고. 어렵게 들리니?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내 마음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며 자기방어라는 것을 조금씩 더 깨달아가던 어느 날 새벽기도 시간이었어. 기도하면서 돌이켜보니 아주 점수를 후하게 줘도 내가 5% 정도의 선한 동기와 95% 이상의 자기방어적 동기로 살아가고 있더라. 절망적인 그 순간에 내 마음에 울리는 말씀이 있었어. ‘얘야, 너무 놀라지 마라. 네가 깨달은 그것을 나는 이미 보고 있었단다. 너는 너 자신을 속인 5%가 하나님인 나까지 속일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내가 어찌 모르겠니. 얘야, 설령 99.999%가 순전하지 않은 동기였다 할라도 괜찮아.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널 사랑했고, 네 안에 있는 5%의 나를 향한 갈망과 사랑을 보고 그저 기뻤단다. 95톤의 무거운 짐을 내게로 와 내려놓고 쉬어. 깃털처럼 가볍고 쉬운 사랑이라는 멍에와 짐으로 바꿔줄게. 너는 이 깃털 같은 짐 하나만 갖고 행복하게 살아라. 그게 내가 너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MBTI가 열어준 내면의 여행은 내겐 달고 구수한 삼박자 인스턴트커피 같았어. 지금은 신선하 맛있고 유해 첨가물도 없는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고 있지. 그 쓴 걸 왜 마시냐 하지만 신선한 원두로 잘 뽑은 에스프레소의 크레마에 800여 가지 향이 난다는 거 아니? 영성적으로 접근하는 에니어그램은 내겐 당장은 입에 쓰지만 그 깊은 풍미를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에스프레소 같아.^^ 그러나 육미야, 인스턴트든 신선한 원두든 커피는 기호식품일 뿐이야. MBTI든 에니어그램이든, 성격유형적 접근이든 영성적 접근이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 우리의 목적은 ‘사랑이신 그 분’이다. 우리 육미 의문이 좀 풀리고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같이 있으면 예가프 한 잔 내려서 나눠 마시면 좋겠구나. 더 궁금한 얘기들 또 나누자. 평안을 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