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엄마가 엄마라는 게 어때?
아니이~ 엄마가 엄마라는 게 좋아?
내가 엄마라면 일할 게 너무 많아서 싫을 것 같애.
아까 설겆이 하고 지금 또 설겆이 하고 청소도 해야하고 밥도 주고...


라는 현승이 말에 잠시 생각해보니 엄마가 엄마라는 건 좀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다행이다.
"생각해보니까 힘들긴 힘든데 다행히 엄마는 엄마들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거 같애. 재밌어'
하니까
"맞어. 엄마가 요리는 하이튼 좋아하는 거 같애"
라고 하였다.






오래 전 먹어 치운 알타리 김치의 무청만 남아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는 지가 몇 개월.
싱싱한 고등어 한 마리 사다가 무 깔고 함께 조려서 주일 저녁으로 준비했다.
(요즘 고등어 한 마리도 너무 비싸ㅠㅠ)
나는 내게서 요리에 관한 창의력이 꿈틀댈 때 아주 의미있는 생기 같은 걸 느낀다. 그리고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냄새를 맡고 달려온 녀석들이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라고 기대에 차서 물을 때 의미있게 충족되는 사명감에 힘이 난다.
(채윤이는 꼭 이걸 이렇게 물음 "엄마, 오늘 저녁 메인 디쉬는 뭐야?"ㅋㅋㅋ 재수없어.ㅋㅋ)






주부의 일상이 요리를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떤 땐 안 좋아했으면 어쩔 뻔 했나. 싶기도 하다. 요리를 좋아하는 건 운동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취향일진대 운동은 안하고 싶으면 안하면 되지만 우리 사회에서 주부가 된 이상 음식만들기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요리에 정말 취미가 없어서 살림이 싫은 친구들에게는 (재수없게도) 미안한 마음마져 든다.






그렇다고 해도 요리나 살림은 참 고된 일이다. 요리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솔까 한결같이 살림에 충실하지 못한다. 마음과 몸이 힘들 때는 치킨으로, 후루룩 국수로, 너구리로, 씨리얼로 끼니를 연명시킬 때도 많다. 그러고 보면 살림 밀착형인 나는 살림에 대한 태도로  마음의 날씨를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아픈 과거와 두려운 미래를 오락가락 하며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는!  여지없이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는 것처럼 냉장고에 먹을 것이 그친다. 아니면 먹을 것과 야채들이 썩어나간다. 그러다 그러다 마음이 지금 여기에 와 다시 성령의 손을 붙잡으면 냉장고에서 놀던 재료들이 음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시골에 계신 이모가 해마다 서천김을 보내주시는데 냉동실에서 오래 묵혔다. 며칠 전 꺼내서 난생 처음 김장아찌를 만들었는데 아으, 밥도둑!^^


일상의 예배 없이 드려지는 예배는 종교행위일 뿐이라 믿는다. 매일일 수도 없고 자주일수도 없지만 드물게라도 일상에서 영원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으면 진정으로 천국을 꿈꾸는 삶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한다. 오늘은 문득 내 일상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요리, 청소, 설거지를 통해서 영원에 가 닿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

정품 휘발유만 넣어주는 주유소 같은 교회에 가서 영혼의 휘발유 만땅 채우고 온  탓인가? ㅎ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슷흐를 당신 앞에 드리옵니다  (10) 2012.04.07
멸치를 다듬으며  (8) 2012.03.20
매생이 굴 떡국  (0) 2012.02.04
퇴근 하지 않는 남편을 부르는 김치찌개  (8) 2012.01.17
2011 크리스마스  (0) 2011.12.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