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유로 '올 여름은 휴가고 뭐고 없다'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이런 저런 이유로 경주에서 있었던 QT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급 휴가가 결정되었습니다. 세미나가 끝나는 지난 주 목요일에 애들을 태우고 다섯 시간에 육박하는 거리를 홀로 운전해서 경주로 갔습니다. 그렇게 가족에게는 2008 여름이 또 하나의 추억으로 새겨집니다.
경주에는 오래된 석탑이 참 많았습니다. 석탑이 오래된 것이 분명한 것은 바로 위에 있는 돌이끼 때문입니다. 석탑마다 저런 이끼가 잔뜩 끼어 있습니다.
경주, 그리고 수학여행과 관련해서 이끼 낀 기억 하나가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잊은 지가 한참인데 경주를 향해 달리던 차 안에서 새록새록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 적에 교회의 여고생 언니들은 해마다 가을이면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수학여행을 갔다 온 언니들은 기념품을 사다가 선물로 주곤 했는데 제일 흔한 것이 책받침이었습니다. 바로 저 각도에서 불국사를 찍은 사진이 담긴 책받침이었지요. 여러 개의 불국사 책받침이 집에 뒹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다녀 온 언니들을 보면서, 특히 가방을 열어 기념품을 펼쳐보이던 언니들을 보면서 '아~ 경주. 나도 고등학생이 되면 양갈래 머리를 따고 수학여행을 가겠지' 마음이 설레였습니다. 경주, 불국사, 석굴암.....이런 단어들은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게 만드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수학여행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고1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주일날을 끼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일날은 구별된 날이라 배웠고 예배하는 날이라 배웠기 때문에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나는 수학여행 못가겠구나' 싶었습니다.
수학여행을 안 가겠노라 결정하는 것은 쉬웠는데 그 이후에 힘든 일들이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 기독교반 선생님, 심지어 교회 목사님까지도 이상한 아이 취급을 했습니다. 기독교반 선생님은 '너 꼭 바리새인 같다' 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가지 않았고 친구들이 여행 가 있는 동안 매일 학교에 가서 자습을 해야했습니다. 훵한 교실에 앉아서 자습을 하는 그 시간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후회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주는 내 마음에 항상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담임선생님, 기독교반 선생님, 누구보다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들었던 비난의 말들로 오래오래 슬프고 마음이 아팠었습니다.
다보탑과 석가탑이 저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늘 사진으로만 봤기 때문에 특히 다보탑은 10원 짜리 동전 안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저렇게 큰 탑인줄을 몰랐어요.
불국사 안을 거닐면서 남편에게 수학여행 얘기를 해주었더랬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열 여섯 살의 저를 만나보려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학교가 주일을 끼어서 수학여행 일정을 잡은 건 부당하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종교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존중되지 않았을 때 스스로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뭔가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로 그 때는 이렇게 정리가 되지는 않았었습니다. 열 여섯 살 때의 신실이를 만나서 말해줬습니다. '대견하다'고. 바리새인이든 뭣이든간에 그 나이에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선택하고, 선택한 것을 위해 감수할 것을 감수한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번 경주여행은 어쩌면 그 시절의 나를 만나보라고 주신 기회인 것 같습니다. 열 여섯의 편협하나 용감했던 신실이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경주를 보고 왔습니다. 더 이상 경주가 신비로움과 동시에 어떤 상실로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든든한 남편과 귀찮지만 사랑스런 두 마리 보라돌이가 함께 하니 더 의미있는 여행일 수 밖에요.
불국사 초입에서부터 본 두 아가씨 입니다. 보아하니 친구 둘이서 여행을 온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 단짝이었던 친구와 둘이 하루 여행을 많이 다녔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서 밤 늦게 오는 일정으로 변산, 광주 망월동, 강릉, 선운사..... 둘이 저 아가씨들 처럼 조그만 베낭 하나 씩 메고 조용히 소곤대면서 다녔었지요. 저 아가씨들을 보니 그 때의 자유와 젊음이 생각나 뒷 모습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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