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국에 눈이 자꾸 나려 덮여 따라 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년 열 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전 날 놀러오셨던 까옥까옥님께서 베란다 앞에서 '눈이 펑펑 내려주면 좋겠다'
하시는 예언을 한 마디 남겨 놓으시더니...
담날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어느 새 일어난 망아지 두 마리가 베란다 앞에 나란히 앉았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모습이 제법 어르스러워보여
'저 분위기에는 커피를 한 잔씩 타다 주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는 눈 때문에 일과 운동과 모든 어머니 병원 모시고 가기로 한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난 아이들은 무장을 하고 밖으로 튀어나가 뒹굴고,
3층이며 놀이터 앞인 집이라 두 망아지 뛰노는게 그대로 보인다.
눈을 즐기는 건지, 뛰노는 망아지들을 관람하는 건지 아무튼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이런 날을 커피 쫌 많이 마셔도 돼. 하면서 석 잔을 마셨다.

윤동주의 <눈 오는 지도>가 생각이 났다.
순이, 쪼그만 발자국.... 이런 시어가 생각이 나서 오랫만에 윤동주 시집을 꺼내들어봤다.
중학교 때 산 시집이다.

윤동주가 그린 눈 오는 지도와 저 밖에 펼쳐지는 지도는 '쪼그만 발자국' 말고는 통하는 정서가 없는 듯 하다. 그래도 좋다. 왜냐면 눈이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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