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모임이 있어서 명동에 다녀오는 길, 혼자 가는 길이 아니었다. 오는 길, 가는 길 나우웬님께서 동행해주셨다. 지하철에서 나누기에는 너무 심오한 얘기를 들려주시며 말이다. 특히 돌아오는 길의 대화는 압권이었다. 명동역에서부터 그 분의 차분하고 강요하지 않으며 자기고백적인 조근조근한 얘기는 나를 사로잡아버렸다.



수년 동안 공동체에 목말랐던 삶이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공동체는 한 번도 주어진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꿈꾸지만 그런 곳은 한 번도 없었어.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헌데, 요즘 문득 문득 공동체를 향유하고 있는 나. 이건 코페르니쿠스적인 전이이며 기적같은 발견이다. 


 










내가 공동체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어' 라고 말 할 때 대부분 나는 현재를 살고 있지 않았다. 늘 미래의 어느 날, 지금의 근심 따위는 해결되는 어느 날을 그리며 현재는 단지 벗어나야할 어떤 감옥 같은 것이었으니까. 지금, 지금 몸담고 있는 이 공동체는 이러이러해서 문제지만 이것만 없다면 괜찮을 거야. 나중에 진짜 공동체를 만나게 되면 이렇게는 하지 않을거야. 하면서 말이다.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는 사람만이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다.




공동체가 누군가, 막연히 말해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내가 감당한 어떤 것으로 강요된다고 느끼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했을 때 그건 결코 향유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사람이나, 교회를 빙자한 권위에 대한 순종의 개념이 아니라 그 분을 향한 '온전한 경청'의 태도일 때 그 때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 역시, 오늘 여기서 지금을 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또 사랑받는 자이며, 무엇보다 순례자이다.  나는 '착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공동체를 선택하고 거기에 나를 드리지 않는다. 나는 그저 은혜가 필요한 순례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거짓된 안락함 속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순례자의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보니 최근 나는 너무 자주 공동체를 경험한다. 커피 한 잔 마주 하고 앉은 유쾌한 만남에서, 공원의 벤치 위에서, 아파트의 잘 조성된 길을 걸으면서, 매일 들락거리는 사이버의 여러 집과 집들에서, 우리 집의 널띠 넓어 정이 안 가는 거실에서 조차도 말이다. 심지어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이미 이 세상을 살지 않는 헨리 나우웬님과 깊은 나눔과 공동체를 경험했다. 

지하철이 광나루역을 지나 천호역을 향해가고 있는 중이어서 책을 덮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나우웬과의 목장모임ㅋㅋㅋ은 계속되고 있었다. 순간 아저씨 한 분이 환영처럼 내 앞에 서서 고개를 들이밀면서 '%#&%&**@) 천원 짜리 한 장....' 이러신다. 나누웬님과의 대화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는 중이어서 아저씨의 말이 빨리 해석이 되지 않았다. 아~ 천원 짜리 한 장만 달라는 얘기였다. 버스비가 어쩌구 하는 말도 들었다. '아~ 차비가 없으세요?' 하고는 지갑을 열어서 천 원 짜리 두 장을 꺼내 드렸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내려서 계단을 오르다보니 사태파악이 되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설교에서 그러셨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 그거 주면 안된다. 그 중에는 근처에 자가용 주차시키고 그걸로 퇴근하는 사람도 있다. 또 그렇게 번 돈으로 하는 일이 뻔하다. 하시면서 말이다. ㅠㅠ
천 원 짜리 두 장을 받아들 아저씨도 행색으로 보아서 정말 차비가 없었던 건 아닐 확률이 높다. 여전히 나와 함께 걷고 있던 나우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어떤 곳에서든 너의 마음을 온전히 열면 너가 그렇게도 갈망하는 공동체를 바로 그 순간 경험할 수 있다니까. 방금 만났던 그 아저씨조차도 말이다' 라고 하셨다.
계단의 마지막 몇 칸을 오르면서 자연스레 방금 만났던 아저씨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다. '하나님 제가 드린 이 천원이 오늘 저녁 저 아저씨의 술이 되지 않게 하시고 밥이 되게 해주세요. 가장 따뜻한 사랑으로 저 아저씨를 감싸 안아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순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서 있었다. 나우웬 선생님이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안녕' 손을 흔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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