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남자.
남의 마음,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의 헤아리는 것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남자.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감동을 안겨주는 남자.
계속 이렇게 살면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서 조금은 안쓰러워지는 남자.
이 작은 남자 또 나를 감동시키다.
요리의 달인이 이러면 안되는데 왜 이리 요즘 식사준비 하면서 부상이 잦은지....
뜨거운 후라이팬이나 오븐에 데이기, 싱크대 서랍에 찍히기, 수세미에 긁히기...
손만 보면 이거 완전 왕초보 주방보조 따까리.
어제 저녁에 교회의 젊은 도사님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막 식사를 하려는데 손가락 하나가 찌릿찌릿해서 보니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
언제 베었는지 모르겠는데 꽤 깊은 칼자국과 찬찬히 보니 주방 바닥에 핏자국까지...
도사님들 돌아가시고 정리를 해야하는데 집에 대일밴드 한 개가 없는 것이었다.
'아... 아퍼.... 대일밴드도 없고.... 스..... 아...... 아퍼' 하며 울트라 캡숑 엄살 대마왕님의 포스를 발휘하니 저 작은 부드러운 남자 좌불안석이다. 계속 따라다니면서 '엄마, 아퍼? 피나? 대일밴드 없으면 안 나아? 대일밴드 붙이면 빨리 나? 한다.
잠시 눈 앞에서 사라지셨나? 티슈 하나를 길게 말아 와서는 손가락에 매란다.
대일밴드 대신.....
빨리 정리하고 잘 생각에 마음은 바빴고, 그리고 그러잖아도 쓰려 죽겠는 상처에 티슈를 대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런 맘으로 '아, 그거 대면 더 아퍼. 절루 가' 정도로 반응을 했나보다.
내가..... 내가 저 티슈같이 부드럽고 야리야리한 정서를 가지신 남자께 말이다. ㅠㅜ
그 다음.
부드러운 남자 어깨를 떨구고 조용히 말아온 티슈를 잘게 찢더니 휴지통에 탁 버린다.
그리고 벽에 턱 기대고 앉아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파다닥 파다닥 의미없이 넘기고 계신 것.
'아우, 현승아 미안해. 현승이 마음을 엄마가 몰라줬네. 맞어. 대일밴드 대신 티슈를 말면 되겠다. 어서 다시 티슈 아까처럼 해줘' 했더니,
못 들은 척 하다, 못 이기는 척 일어난다.
'엄마, 휴지로 대면 왜 더 아파?'
'어어~ 휴지는 보이지 않지만 가루가 날려. 그 가루가 상처에 닿으면 아프지' 했더니...
이번에는 휴지를 말아서 스카치 테잎으로 끝부분을 다 붙여가지고 온다.
'이러면 괜찮아? 가루가 안 날릴거 같애?'
그리고 정성스레 손가락에 휴지를 말아주고 스카치 테잎을 붙여 주었다.
그래도 맘이 안 놓이시는지 정리하는 엄마 졸졸 따라 다니면서 손가락을 살펴주시니,
이 부드러운 남자에게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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