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소명을 찾아 방황하고 나는 기도했던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남편의 소명은 무엇일까? 진정코 교사가 아닐까? 다른 게 있을까?'라면서 말이다.
남편의 소명찾기가 난항에 빠지고 안개 속에 길을 잃어 가장 캄캄하던 시기에 '신경성 소화불령' 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물론 남편에게.
병원은 물론 난다 긴다 하는 민간요법을 다 동원해도 가시지 않는 소화불량이었다.
곡절 끝에 신대원을 가겠다는 결정을 하고 하남 도서관에 다닐 무렵.
희한하게 별 약도 없이 그 병이 나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남편이 가는 이 길이 별로 탐탁치 않아도 남편의 길이 맞기 맞는가 보다'라고.
몇 개월 공부도 못하고 입시를 치뤘고, 남편은 영어에 매우 약한데도 불구하고.
기적같은 수석입학을 하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니 남편이 갈 길이니 너무 서러워 말아라. 하고 낙인을 찍어주시는 구만...'
3년 내내 남편이 죽도록 공부하고 그 사랑하는 잠을 포기하면서 공부했다.
인간인가? 오디오인가? 라는 오래된 CF의 카피가 생각나도록 죽도록 공부했다.
주말에 올라오면 목장과 초등부 사역을 하느라 눈 한 번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고 기숙사에 내려가기도 하였다.
그래도 미치도록 공부하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 이 공부가 좋은가봐....'
졸업을 하고 청년부 사역을 시작해서 평소 그답지 않게 목자들을 향한 애정의 표현을 하는 걸 보면서 질투도 나고
믿어지지도 않았다. 때로 알아주지도 않는 짝사랑 같은 걸 하는 남편을 보면서.
미쳤어. 미쳤어. 그런 사랑 있었으면 나를 더 사랑할 일이지... 근데 저 남자 왜 저러지' 했었다.
목회라는 게 양을 사랑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보다 더 델리킷트한 역학들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타협할 수도 포기할 수도 좌절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헌데, 이 남자가 포기를 안 하네!
넘어져서 못 일어날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다시 검을 찾아 거머쥐는 남편을 보면서 '이거 장난 아니네 '싶었다.
비로소.
나는 요즘 알았다.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렇게도 바라던 남편의 소명을 찾았고,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
어느 새 그 소명에 나도 오염돼 가고 있었고....
그 소명은 사랑이었다.
이번 수련회에서 '외로움'이란 주제로 짧은 강의를 했다.
아주 짧고 단순한 강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간의 내 독서와 여정이 다 녹아들게 되었다.
헨리나우웬, 래리크랩, 데이비드 베너, 브레넌 매닝, 고미숙, 칼 융, 제랄드 메이, 스캇펙.
강의 이후로 기도 할 때마다 그 강의는 내가 청년들에게 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게 하신 강의라는 확신이
든다. 내 외로움, 내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텅 빈 구멍을 위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내 텅 빈 웅덩이를 그 분께 맡기고 나는 그저 사랑을 선택하면 살 것인가?
비로소 내 반 쪽 남편의 소명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말하자면 남편과 상관없이 내가 우리 청년부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사랑했었다. 지금보다 더 이기적으로.
그래서 비로소 목회의 길을 선택한 남편에게 감사의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를 사랑, 그 깊은 길,
그 좁은 길로 안내해 준 그 선택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나의 강의를 듣던 그 의외의 아이들과 낯선 눈빛들에 대해서도 이젠 더 자유로움으로
나를 내어주고 싶으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많은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다.
소명으로 사는 삶.
이 삶이 주는 자유를 누리고 또 누리는 일이 내 삶에 숨겨진 보물인가보다.
이 깊은 밤에도 떠올리면 그저 사랑스럽고 고맙고 미안한 젊음이 내 맘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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