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 채윤이 빼고 세 식구만 속초엘 다녀왔습니다.

울산바위는 울산은 안 지키고 여전히 속초로 가는 길목에 떡 버티고 서 있고,
바다는 참 좋았습니다. 어느 휴양지가 부럽지 않은 그런 바다였습니다.
이 여행은 의미가 남다른 여행이 되었고, 그 의미를 담은 글을 <크로스로>에 썼습니다.

 

======

 

결혼 후 둘만의 우아한 시간을 1년 정도 즐긴 후 첫애를 낳았고 그 때로부터 육아의 험산계곡은 시작되었다. 큰 아이 기저귀 떼고 우유를 떼고 만세를 부를 무렵 둘째가 생겼다. 둘째를 낳은 후 다시 시작된 밤중 수유며 우유병 삶기 등의 신생아 돌보기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남편이 말했다. “여보, 오랜만에 우윳병 닦는데 어떤 느낌인줄 알아? 다시 군대 들어간 느낌이야. 언제 키우지?” 언제 쯤 우아하게 식당에서 밥 먹어볼 수 있을까? 밤에 한 번도 안 깨고 아침까지 자볼 수 있을까? 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인생의 선배들은 말했다. ‘힘들어도 좋은 때야. 품안에 자식이라고....’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때는 알아들을 귀가 없었다.

 

난 집에 있으면 안 돼?” 드디어 그 말이 나왔다. 질풍노도가 우리 집 담을 넘어 밀려들고 있다는 신호다. 남동생을 살아있는 장난감 취급하며 그렇게 신나게 놀이의 세상을 살던 아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놀이의 재료로 만들어내는 환상의 눈과 손을 가진 아이였다. 그 호기심 가득하고 생기 넘치던 모습은 어디가고 세상 모든 것이 시덥지 않다는 표정이다. 그렇게 잘 다루며 데리고 놀던 살아있는 커다란 장난감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책꽂이 구석구석엔 삐뚤빼뚤 글씨의 식당놀이메뉴판이며 말도 안 되는 어린이집 놀이가정 통신문 등 주인을 잃은 놀이의 흔적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키는 삐죽이 자라서 엄마보다 커진 아이가 갔다 올게하며 생기라곤 없는 목소리를 남기고 등교하고 나면 엄마 아빠는 마주 앉아 추억 더듬기로 허전함을 달랜다. ‘그 때 복숭아 사건 기억나? 어머니한테 얘가 막 야단치고 그랬잖아.......’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이제 느껴지는 텅 비어가는 느낌이 이 녀석이 빠져나간 내 품의 공간이구나. 이제야 알아들어지는 품 안의 자식이다.

 

단지 품 안이 비어버린 상실감이라면 그나마 견딜 만 할 것 같다. 상실감이 아니라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문제다. 어릴 적부터 웬만한 일은 말로 다 되는 아이였다. 눈을 맞추고 이유를 설명하면 잘 들었고, 논리에 수긍이 되면 오래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빨리 사과하고 감정도 잘 털어버리는 아이였다. 아이의 이런 점은 엄마인 내게 무한한 자긍심이었다. ‘역시, 나는 좋은 엄마야그런데 아이의 눈빛이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자칭 좋은 엄마인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말한다. ‘저 여자 왜 저래? 완전 어이없어아니 어...어쩌면 재수 없어일지도 모른다. 들릴락 말락 중얼거리는 짜증나소리에 분노의 오른 손이 올라가려는 걸 겨우 참아야 한다. 사춘기에 관한 책을 미리 읽기도 했고 주변에서 본 아이들을 통해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사춘기에는 뇌가 뒤집어진다는 말을 마음에 새긴 지 오래고 언젠가 우리 집에도 닥칠 것이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헌데, 뒤집어지기 시작한 뇌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머리로 하는 예습과는 다른 차원이다. 순간적으로 폭발하려는 분노의 뚜껑을 부여잡고 휴우한숨으로 바꾸는 일은 내 가슴을 까맣게 태우고야 가능한 일이다.

 

분노든 상실감이든 무엇을 안기며 찾아오든 아이의 사춘기는 나와 가족 전체를 새로운 국면으로 초대한다. 작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만 10, 네 식구가 정말 껌딱지처럼 딱 붙어다녔다. 안고 매달고 다니던 아이들이 스스로 걷게 되었고, 엄마 아빠의 무릎에 앉았던 아이들이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는 등 모양새는 달라도 어쨌든 넷은 함께였다. ‘여자끼리 남자끼리, 각각 데이트하기이런 식으로 일부러 따로 시간을 가진 적도 있지만 넷은 패키지로 묶여있는 한 덩어리였다. 여행사진 폴더에는 장소는 다르지만 구도는 비슷한 네 식구의 셀카가 수두룩하고, 사진만큼이나 넷이서 공유하는 추억도 많다. 그런데 이제 때가 왔다. “나는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돼?” 하면서 긴 성인식을 위한 자기만의 여행을 떠나려는 아이가 짐을 꾸리고 있다. 지금껏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스폰지처럼 흡수하며 살아왔던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의심하고, 괜한 트집을 잡으면서 가는 길이라 걸려 넘어지는 것이 많을 것이다. 못된 눈과 삐딱한 고개, 이기적인 말과 행동으로 우리를 떼어놓으려 한다. 방문을 굳게 닫고는 혼자 떠나는 여행임을 재천명한다. 나머지 세 식구는 닫힌 방문 앞에 서서 당황한다.

 

끝도 없는 상상력으로 거실 가득 놀이의 세계를 열어주던 누나를 바라보는 철없고 유치한 동생이 말했다. ‘엄마, 중학생이 되면 원래 재미가 없어져? 아니~, 누나가 그래 보여서. 누나가 웃기는 웃는데 즐거워 보이지가 않아. 누나는 원래 진짜 즐거운 사람인데.... 즐거움이 없어졌어. 달라진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사춘기라서 그래? 그러면 나중에 다시 즐거움이 돌아와?’ 이 아이도 분명 몇 년 안에 행선지는 같지만 여정은 다른 또 다른 여행을 떠날테다. 아직은 부모의 그늘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로서는 누나를 떠나보내는 것이 그저 안타까움일 뿐이다. 안타까움으로 이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누나가 뭔가를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어왜 아니겠는가. 놀이의 세상은 건재하고 거기서 불태울 상상력과 즐거움은 여전히 꿈틀대는 살아있는 장난감의 입장인데 말이다. 유년의 것들을 잃어버려야 얻어지는 또 다른 세상은 도통 상상이 안 되는 곳일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심지어 동생까지도 어른이 되기 위해 청소년기로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월요일에만 쉬는 아빠로 인해서 종종 학교를 빼먹고 놀러 다니곤 했었다. 처음으로 큰 아이를 빼놓고 셋이서만 동해로 하루여행을 다녀왔다. 아침 일찍 넷이 집을 나서 큰 아이 등굣길 까지 함께 했다. 바다도 좋아하고, 바닷가에서 먹는 회를 제일 좋아하는 녀석이 잘 갔다 와한 마디 하고 자동차 문을 쿵 닫고 내렸다. 일말의 아쉬움과 부러움도 내비치질 않는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차거운 바람이 휙 불고 지나갔다. 사춘기를 지내고 그야말로 엄마의 친구가 되어 돌아와 줄 것을 믿는다. 도덕선생 같은 말로, 교회 선생님 같은 말로 섣부르게 아이를 통제하지 않겠다. ‘네 가지없는 말과 행동에 순간순간 욱하고 올라오더라도 타는 가슴 부여안고 존중하며 대하도록 하겠다. 중년이 되도록 내 인생 여정을 인도하신 분께 아이의 사춘기 여정을 맡길 도리 외에는 없다. 부모의 중년이 아이의 사춘기와 맞물리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인생의 시간표 같다. 성인이 되고부터 나의 노력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며 열심히 인생의 산등성이를 올라왔다. 열정을 다해 나와 세상을 통제하며 생의 전반기를 살아오다가 젊음의 정점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그 시기만큼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제는 생명력 충만한 정상을 찍고 하산의 여정이 시작된 중년이다. 생의 빛보다는 그림자를 끌어안으며 더 깊은 내면의 삶을 살아야 하는 때가 왔다. 사춘기 아이는 그런 엄마 아빠를 일깨운다. 생명은 통제되지 않으며 내가 낳은 아이일지라도 내 통제권 안에 있지 않음을, 아이의 존재가 통제의 대상 너머에 있듯 부모인 우리 역시 나름의 선하고 아름다운 피조물임을 동시에 깨닫게 한다. 부와 권력과 성공이나 사람들의 인정, 심지어 아이를 번듯하게 잘 키워내는 것과 상관없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배워가야 한다. 아이의 출생이 말로 다할 수 없었던 선물이었으나 인간답게 밥 먹고 잠자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던 것처럼, 2의 출생이라고 하는 아이의 사춘기는 당혹스러운 선물이 될 것이다.

 

첫째를 빼놓고 갔던 하루 여행이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허전한 듯 충만하고 평온한 여행이었다. 옛 추억을 더듬어 일부러 선택한 미시령 옛길은 한적했다. 미시령 꼭대기의 휴게소를 한껏 기대하며 올랐다. 거기서 커피 한 잔 들고 꼬불꼬불 올라왔던 길, 내려갈 길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려보자 싶었는데, 아뿔싸! 휴게소는 폐쇄되고 텅 빈 건물만 을씨년스러웠다. 아쉬워라.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속초해수욕장은 춥지도 덥지도 않는 날씨에 고즈넉하여 해변에 앉아 책을 읽고 쉬기에 딱 좋았다. 일부러 챙겨간 유진 피터슨의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를 다시 읽으며 속으로 말했다. ‘오늘은 이별여행이야. 긴 성인식을 위해 채윤이를 떠나보내는 이별 여행이다. 내 인생의 여정에 늘 함께 하셨던 그 분이 아이의 곁에 딱 붙어 보호자 노릇 하실 거야. 딸아, 너의 말과 노래와 재롱으로 나의 세상이 가장 밝고 찬란했었어. 거북하고 거룩한 십대를 통과하며 넌 멋있는 어른이 될 거야

 

 

출처 : 웹진<크로스로>

 

 

 

 

 

 

 

** 우리 채윤이보다 쇠기둥이 더 또렷이 보이지만, 등교하는 채윤이 뒷모습 몰카입니다.
조~오기, 노란 가방 맨 여중생인데.... 삐딱하고도 예쁘게 잘 크고 있어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