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치료 관련한 웍샵 같은 것을 할 때, 여러 장의 그림 중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라고 할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결국 골라놓고 보면 꼭 초록색. 그런 의식적 선택이 아니라도 스처 지나는 일상에서 초록의 풍경을 만났을 때 결코 눈길을 거둘 수 없다. 그래서 좁다란 거실에 조그만 화분들을 이고 지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초록을 부여잡고 사는 내게 아름드리 나무와 잘 가꾸어진 잔디밭이 펼쳐진 휘튼의 캠퍼스는 힐링 그 자체이다. 저렇게 늘 싱그럽고 싶고, 그냥 자연스러움 그 자체이고 싶고, 생명이고 싶다. (췟, 기분 나쁘게 에니어그램 7번의 색이 초록이다. 결국  지 성향대로 끌리는 것) 어쨌든 폰의 사진 폴더에 보면 코스타 가서 찍어온 사진들은 온통 초록세상이다.


생각해보면, 코스타 가기 전 수년 동안 낚시질을 당했었다. 매년 코스타 강사로 가시는 iami 님이 다녀오시면 후기를 올리시는데 '휘튼에서 먹은 것들' 이라는 제목의 글이 빠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런 걸로 유혹당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유난히 휘튼 식당의 컬러플한 과일은 여러 번 들여다보게 되었었다. 그리고 작년에 처음 휘튼에 가게 되었을 때 드디어 iami님과 마주앉아 과일 한 접시 하게 생겼구나! 이것부터 좋아했었다. 헌데, 작년에 하필 가실 수 없는 형편이셨다. 대신 진짜 무한 책임 서비스로 일부러 만나서 별별 어이없는 질문에 답해주셨고, 비행기 탈 때  키를 잴 거라는 고급정보까지 챙겨주셨다. (대~애박) 결국 휘튼 식당 마주앉아 인증샷 찍을 거라는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거품이 사라지는데 1년이 걸렸다. 올해 드디어 거품 속에서 건진 인증샷! 컨퍼런스 이튿 날 오후부터 세미나가 시작되는데 첫 강의를 마친 후부터는 거의 식사시간은 없다고 봐야 한다. 식사시간은 조별상담 시간이 된다. 코스타는 자칭 타칭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있던 청년들이 한 곳에 모이고, (코스타가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한다고 심증만 가진)  강사들이 한 곳에 모인다. 청년들은 1 년 동안안 모아뒀던 질문을 쏟아내고 강사들은 1년 동안 여기 저기 강의 다니며 듣는 질문을 합친 것보다 많은 질문을 듣고 답을 한다. (아니, 대화한다)  최대한 많은 강사를 (또는 인기있는 강사를  재빨리) 헌팅하는 것이 조장의 최대 임무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약간 하품 나오는 세미나 주제들 사이에서 '벗었으나 부끄럽지 아니하니라' 이런 선정적인 문구로 청년들을 낚는 연애강사가 아닌가. 청년들, 싱글이란 어떤 자들인가. 저녁집회 시간에 설교하시던 목사님이 '고통'이라는 문제를 말하기 위해서 당신의 성욕으로 인한 어려움을 예로 드셨다. 헌데 코스탄들은 그 설교를 온통 데이트 설교로 '아멘' 해버려서 집회 마치고 소그룹마다 그날 은혜 받은 얘기가 아니라 데이트 얘기로 꽃을 피웠다는 후문이다.(믿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싱글이지. 그러니 뭐, 그런 곳에서 연애강사인 내가 든 낚싯대 만한 것이 어디 있으리오. 인기 좋았단 얘기다. 여차했으면 '거품 인기' 때문에 올해도 또 인증샷을 놓칠 뻔 했단 얘기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식사에는 꼭 iami 님과 조용히 식사하리라는 다짐 다짐을 하고 성사된 자리이다. 아, 어렵다.

 

 

iami 님이야말로 진정 낚는 자이셨다. 컬러플 메론으로 나를 휘튼으로 낚으시기 훨씬 이전부터 낚는 분이었다. <복음과 상황> 편집장님으로만 알던, 서부장님으로 불리던 iami 님이 우리 부부가 결혼하던 즈음에 다니던 교회에 등록을 하셨었다. 게다가 신혼집으로 둥지를 튼 하남에서 사셨고, 이런 저런 인연으로 신혼집 집들이에 오시면서 만남이 시작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구역 구역장님이 되셨고, 우리는 새내기 구역원. 두어 해 후에 다니던 교회에서 가정교회를 하게 되면서 구역장님은 '목자'님이 되셨다. 그때 우리 부부는 이제  약한 헌 '목원'. 그때로부터 입에 붙은 '목자님'이 어떻게 떨어지질 않아서 아직도 목자님인데 사람 많은 곳에서 '목짠님'하고 부르는 게 살짝 사이비 집단 호칭 같아서 새로운 호칭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현승이 낳고 얼마 안 됐을 즈음에  엄청난 낚싯대를 들이미셨다. 부부가 다 책을 좋아하니 책과 신혼일기를 엮어서 <복음과 상황>에 기고를 해보라고 하신 것. 오메! 저희가요? 고민 끝에 달려들어 매달 남편과 한 판씩 싸우면서 글을 써냈다. 이로 인해  하남시 동부 주유소 옆 3층 건물 옥탑에 살던 평범한 신혼부부 김종필과 정신실이 'JP와 SS'라는 필명 비슷한 것을 얻게 되었다. 'JP와 SS'는 iami 님이 목장 카페 댓글에서 장난삼아 쓰셨는데 아예 글의 꼭지 이름에 넣으셔서 닉네임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JP와 SS'로 첫 번째 낚였고! (생각해보면 그 시절 복상을 통해서 iami 님께 낚인 분들이 지금 교계 안팎에서 글 좀 쓴다하시며 베스트셀러 되신 분들이 꽤 있다. 오메.....)  두 번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이름으로 낚인다. 당시 함께 하던 가정교회 모임이 분가하고 또 분가하면서 우리는 목자로 낚였다. 부모님 댁에 얹혀 살며 기저기도 안 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조 목짠님이었던 iami 님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이니셜 따서 'AP'목장으로 작명하여 하사하셨다. 그리고 세 번째의 낚임은 코스타!  사실 이런 저런 의미로 나와 우리 부부에게 iami 님과 그 부부님은 그야말로 정겹고도 정겨운 '선배'이시다.

 



대학시절 남편은 몇 군데 기독 동아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는데 나는 전혀 그쪽에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남편 역시 기웃기렸을 뿐 발을 깊이 담근 곳이 없어서 결과적으로는 나와 비슷하다. 어쩌다 남편이 목회를 하고 나는 글을 쓰고, 주로 교계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보니 '어느 선교단체 출신이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우리끼리 '듣보잡 선교회' 출신이라는 농담을 하곤한다. 교계에서 어설픈 말장사 글장사를 하다보니 뭐라도 '출신'으로 갖다 붙일 게 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1년에 1시간 정도 하게 된다. 남편이나 나나 가장 애정을 많이 가지는 대학생 선교단체가 있다. 우리 집 거실의 책꽂이를 유심히 살펴본 분들은 '*** 출신 아니냐'고 묻기고 한다. 사실 나는 오랜 기간 마음만은 그 단체 출신 이상이었고, 그 단체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부지런히 읽었고, 그래서 마인드는 누구보다 더 ***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몇 년 전에 그 단체가 연루된 요란하지 않은 글싸움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일을 지켜보며 내 마음 속 '***'를 향한 애정과 선망을  싹 거둬들였다. 그 때까지 그 단체 출신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좋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에잇, 나도 대학 때 *** 할 걸' 하는 생각도 하곤 했었다. 헌데 그 사건에서 그 단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정말 하나로 똘똘 뭉쳐서 공동체의 명예실추에 분노하며 이성을 잃는 것을 보면서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서 무척 실망했는데 이상하게도 실망감이 싫지 않았다. '대학 때 ***할 걸' 했던 자조적인 말에 담긴 것은 '저렇게 끈끈한 선후배 의식이 참 부럽구나. 나도 저런 선배(후배는 됐고)들이 있으면 좋겠다' 이것이었다. 가장 부러운 점이 그것이었다. 헌데 그 끈끈한 선후배 의식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아서 '듣보잡 선교회' 소속인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어릴 적 왕따 경험 때문인지 끈끈한 선후배 관계, 동기사랑 나라사랑 사랑 넘치는 동기동창 관계, 이런 집단적 애정행각 앞에서 많이 위축된다. 지나치게 선망하는 것 앞에서 지나치게 위축되는 것은 결핍의 심리학 메커니즘일 것이다. 이번 코스타에서도 공동체로 엮인 분들이 형, 동생하며 애정을 확인하는 것을 이래저래 너무 많이 보면서 여전히 위축되었다. 사람 사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아무에게나 덥석덥석 달라붙지 못하는(돌아가신 우리 고모가 그렇게 나를 비난하던 소리였다ㅜㅜ) 내 성격을 탓한다. 나를 글쓰는 사람으로 낚아주신 것, 그것보다 iami 님께 더 감사한 것은 듣보잡 같은 내게 유수의 선교단체 간사님 부럽지 않은 좋은 선배가 되시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카고 시내에서 혼자 하루를 지냈는데 것두 출국 막판에 정해진 일이다. 원래는 코스타를 마치고 휘튼에서 하루 혼자 남아 보낼 예정이었다. 출국에 임박하여 만난 mary 언니님께서 그렇게 보내기는 시간이 아깝다. 다운타운으로 나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지 그러냐. 조용히 용기를 막 불어 넣으셨다. 그리고 다음 날,  이번에는 그분들의 딸, 완전 바쁜 직딩 g가 시카고의 게스트룸을 하나 수배해서 보내왔다. 그 사이, iami님의 깨알같은 상황체크를 잊지 않으셨다. 결국 가족 총동원 주일, 아니고 총동원 도움으로 두 번째 미국 여행을 작년보다 한층 의연한 태도로 더 폭넓게 즐기고 왔다는 얘기다. 



 


휘튼 숙소의 창이다. 이것도 가서 보기 전에 낚는 자라 불리는 그분의 블로그에서 먼저 보았던 것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다. 오직 창문으로만 보이는 세상. 지금 내가 있는 곳의 창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 창 앞에서 서서 이런 세상 내다보길 좋아한다. 세상을 넓게 경험하고 큰 안목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내 좁은 마음의 시야 때문인지도 모른다. 좁아 터진 내 시야과 관계의 지평이지만 내 세상 아닌 것이 그리 부럽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아니 꼭 나이 때문에 사라진 선망은 아닐 것 같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의 여정에서 꼭 필요한 분은 반드시 만나서 그 만남에 낚여서 이리 저리 춤을 추다 여기까지 와 있다는 살아 있는 경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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