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zine>에 11월호부터 '브리짓 자매의 미혼일기'라는 꼭지의 글을 씁니다. 교회생활에 열심인, 아직 결혼계획도 남친도 없는 브리짓이라는 30세 자매의 입을 빌어서 크리스챤 미혼청년들의 문제를 애기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글이고, 두 번째 원고를 며칠 전에 넘겼습니다. 실은, 제가 스물일곱 되는 해부터 '싱글일기'를 썼더랬습니다. 대학노트 한 권을 거의 다 채우고 결혼을 했지요. 그 때 솔직하게 써놨던 것들이 이 글을 쓰는데 효자노릇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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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울하고 허탈한 감정은 또 뭐지?
주일이다. 몸과 마음의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들어온 듯 하다. 이 시간이면 손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지만 깊은 밤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생긴 극단적인 감정 교차에 대해 더 이상 그러려니 넘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교회에서 보내는 주일은 사실 내게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아침에 유년부 아이들과 드리는 예배로 시작해서 청년예배, GBS, 그리고 나서 리더모임과 중보기도모임까지…. 하다못해 유년부 예배를 마치고 잠깐 갖는 교사들의 티타임조차도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인가. 매주 열정을 다해 피를 쏟듯 선포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는 또 얼마나 도전을 주면서 은혜와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드느냐 말이다.
그런데 주일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느껴지는 이 우울하고 허탈한 감정은 또 뭐지? 나는 왜 주일마다 그렇게 황홀한 천국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는 이 시간쯤에는 허전한 마음으로 지옥에 내려온 듯한 무거움 속에 빠지는 걸까? 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건가? 사실 이건 한두 주 겪는 문제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주일 저녁은 늘 이런 마음이었다.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로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가게가 떠나가라 웃고 떠들었다. 그러고는 지하철역 앞에서 사람들과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스멀스멀 어두워지고 무거워지는 마음이라니…. 이렇게 심하게 정서가 오락가락 하다니…. 혹시 나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주일 저녁에 느끼는 외.로.움.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이 허전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생각했다. 감정에 지배받지 않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직면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뭘까? 주일 저녁마다 혼자 있기 힘든, 견디기 힘든 이 느낌말이다. 아! 그렇다. 이건 단지 허전함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가끔은 이 외로움에 대해 한두 사람에게 '혹시 너도 주일 저녁에 이런 느낌이 드니?' 하고 묻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선뜻 물을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이것이 '외로움'의 감정이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주일 내내 교사로, 리더로, 청년부의 선배로 성도의 교제에서 핵심에 서 있었던 내가 '외로움'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고백한다면? 그 화려했던 성도의 교제는 도대체 무엇이 된다는 말인가? 아니 솔직하게 자존심이 상해서 할 수 없는 것이지, 이게 외로움이라면 일단 이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게 내 마음이다. 누구에게 대고 '나 외로워. 주일날 저녁이면 유난히 더 외로워.'라고 고백할 수 있겠나.
혼란스럽다. 정말 이 외로움의 문제는 나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 공동체 모두의 문제일까?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오늘 열심히 예배하고 기도하고 돌아간 다른 리더들도 느낄까?
'독처'로부터 오는 외로움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오면서 혼란스럽고 답답한 마음에 작년에 결혼한 K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슬쩍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언니 혹시 예전에 청년부에서 리더할 때요…주일 날 같은 때 집에 혼자 가면서 뭐 허탈감이나 그런 감정 안 느꼈어요?' 했더니 '허탈감? 허탈감은 무슨, 외로움이겠지!' 하는 것이었다. '외로움? 언니도 그랬어요? 주일 저녁이 되면 유난히 더 마음이 쓸쓸하고 외롭고 그랬어요?' '당연하지.' '그러면 지금은요?''지금? 지금은 외로울 새도 없다∼야. 한 번 외로워봤으면 좋겠다야. 근데 지금 애기 젖 줘야 하거든 담에 통화하자.
' 딸깍! 정작 본론은 얘기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순간 한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독처! 혹시 이 외로움이 창세기에 나온 '독처(獨處)', 그걸 말하는 게 아닐까? 우리 공동체의 교제가 공허함 때문도 아니고, 내가 진실하게 마음을 다하여 교제하지 못함도 아니며,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온전히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함이 아니라 '독처' 즉 '싱글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 그 감정이 아니겠냐 말이다. 가끔 교회 내에서 새로 생긴 커플들이 커밍아웃 하거나, 유비통신으로 커플탄생의 얘기를 듣는 주일저녁은 유난히 더 마음이 무거웠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런 일에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괜한 죄책감에 이중으로 힘들었던…결국 '독처'로부터 오는 외로움과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감정의 혼란스러움 아니었었나?
아∼ 이렇게 쉽고 단순한 진리를!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 이 감정,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 이것이 이 밤에 나를 무겁게 누르는 감정 그것인가보다. 그래! 풍성한 교제를 맛보고 돌아온 주일 저녁에 유난히 더 싱글의 외로움이 찾아드는 것도 당연하겠구나. 그렇다면 쓸데없는 죄책감들을 먼저 털어버려야겠다. 예배를 잘 드리고 왔는데 왜 마음이 어두울까? 열심히 섬기고 삶을 나누고 기도했는데 왜 외로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는 식의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이 좋겠다.
싱글의 외로움과 맞짱 뜨기
막연하던 실체에 대해서 분명히 규명을 했으니 맞짱을 떠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스멀스멀 주일 저녁 신드롬이 고개를 들면서 마음을 좀먹기 시작할 때 자기연민에 빠져 질퍽거리지 말아야겠다. 늘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독처의 외로움'으로 정의한 이 감정을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자. 오히려 이것이 결혼을 위해 주시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 그리고 이 '독처의 외로움'으로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를 하고 싶을 때면 일기를 쓰자. 외로움에 직면해서 미혼일기를 써보자. 오늘처럼 끝까지 생각하다 보면 미혼의 삶에 대해서 좀 더 잘 정리될 것이고, 잘 정리되는 미혼의 삶은 좋은 결혼 준비가 될 것이다.
오늘 이 지구 어느 구석에서 나처럼 '독처하는 외로움'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하나님께서 손수 지어 놓으셨을 '돕는 배필'을 기대하며 맞짱 뜨는 거다. 싱글의 외로움과 맞짱 뜨는 거다.
>>> 브리짓 자매가 다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 왔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올 초여름까지 란 인기 연재글로 QTzine의 지가(紙價)를 올려놓았던 브리짓 자매는, 유아교육과 음악치료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이곳저곳에서 아이들과 음악으로 신나게 놀아주고 있으며, 교회에서는 악보를 잘 모르던 50대 어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찬양대 지휘자로 즐겁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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