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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운동화를 안고 어쩔 줄을 모릅니다. 사자마자 갈아 신고 잠실까지 다녀온 운동화를 매만지며 '엄마, 이걸 현관에 둘 수가 없어. 그냥 하루만 방에 두고 자면 안 돼?' 정말 좋은가 봅니다. 나달나달 해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남의 시선을 무척이나 의식하는 채윤이가 어쩐 일인지 엄마 없는 애 같은 운동화를 잘도 신고 다녔습니다. 사줘야지, 사줘야지, 했는데 입시를 앞두고 운동화 사러 갈 여유가 없었고. 날이 갈수록 거지가 되어가는 운동화를 채윤이는 군소리 없이 신고 다녔습니다. 입시 마치고는 섣부르게 사지 않고 마음에 꼭 드는 걸 사겠다며 오래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채윤이 마음에는 꼭 드는 운동화를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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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있고,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하시던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신발을 갈아 신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드디어 꽃친 가족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가족모임 겸 송년회였습니다. '안녕, 그리고 안녕'이라는 표제를 달고 모였습니다. 앞의 안녕은 'good-bye'의 안녕이고 두 번째 안녕은 'hi'라로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채윤이는 무언가를 향해 안녕을 고한 것입니다. 꽃다운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고 수줍은 '안녕'을 했습니다. 신발을 갈아신고 새날을 향해 떠납니다. 무엇에게 '안녕'하며 등을 돌리고 무엇을 향해 '만나서 반가워, 안녕!' 하게 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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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의 운동화 사진은 팽목항에서 바다를 향해 놓여 있던 뉴발 운동화 한 켤레와 오버랩 되어 다시 눈물이 치밀어 오릅니다. 이맘 때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뉴발 새 운동화를 사다 둔 엄마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무너집니다. '돈 없다. 허튼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 하며 '엄마, 뉴발 운동화.....' 하던 아이의 말을 묵살해 버렸던 것을 두고두고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다시 새신을 신길 수 없는 차거운 발을 안고 정신을 잃고 또 잃었을 엄마의 고통이 어찌 그 엄마만의 것이겠습니까. 새 운동화를 신고 펄쩍펄쩍 뛰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이 과연 나의 것이어도 될까요? 이 평범한 행복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려도 되는 것일까요? 네, 저는 아직도 세월호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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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세월호 이후 더욱 절절하게 들립니다. 어쩌다 안산에 살았고, 어쩌다 단원고에 다녔고, 어쩌다 제주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고, 어쩌다 세월호를 탄 그 아이들이 우리 채윤이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아이를 빼앗긴지 2년이 되어가는데 밝혀진 의혹이라곤 없고, 죽은 아이 팔아 돈이나 챙기려는 사람으로 몰리는, 벼랑 끝에 선 저 부모들과 나는 또 말입니다!  지난 여름 수련회에서 '세월호'를 주제로 선택 특강을 준비하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신학과 철학이 세계 1,2차 대전의 충격으로 전혀 새로운 물음을 물어야 했듯, 세월호를 겪은 우리의 신앙과 삶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우리 부부에겐 세월호 이후의 신앙과 삶은 그 이전과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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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나라의, 교회의,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시대 부모들의 민낯을 세월호가 다 비추어주었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이보다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요. 맹목적인 성적관리, 대학입시, 돈을 기본옵션으로 하는 성공, 무엇보다 돈 돈 돈. 역겨움과 환멸이 밀려왔습니다. 결혼 전 젊었을 적부터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93.1 라디오를 트는 것이었는데 작년 4월 16일 이후로 그것도 잊었습니다. 꽃 같은 생명이 눈앞에서 사라져 갔는데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세상, 청명하고 미끈한 목소리로 희망을 논하는 진행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귀와 마음이 그 목소리는 물론 음악까지 뱉어냈습니다. (다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두어 달 전입니다.) 10여 년을 해왔던, 좋아하는 운동인 수영을 끊어버렸습니다. 건강을 생각해 다시 시작해야지 마음먹어보지만 영 다시 발걸음 하게 되질 않습니다. (주부수영 끊은 사연, 클릭) 제 마음에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밖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몸서리를 쳤지만, 그 욕망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입니다. 의식있는 척, 성적 따위 관심없는 척 말도 글도 잘 나불거렸지만 마음 깊은 곳의 세속적 욕망은 숨길 수 없습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꽃다운 생명들, 그 생명을 품었던 엄마들에게 마음을 포개고 바라보니 돈과 성공에 미쳐버린 세상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함께 미쳐돌아가는 제 모습도 더 잘 보였습니다. 물론 어찌나 포장술이 뛰어난지 자신마저도 속고 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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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하고 안식년을 가지면 좋겠지만, 그리고 수진 부부가 꽃친을 하겠다 했을 때 쌍수 들어 환영했지만 왠지 결국 우린 함께 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예중, 예고 가서 웬만한 대학에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이만하면 보통의 엄마들과는 다르게 키우고 있으니 됐다, 적당히 줄타기하면서 살아야지, 어쩌겠나.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생명들이 자꾸만 제게 묻습니다. 채윤이와 현승이가 당신 것이냐고, 세상이 정하고 당신이 세운 계획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내일의 무엇을 위해서 오늘의 사랑과 행복을 유보하느냐고. 무엇을 위해서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자리에 연연하고, 돈과 명성에 영혼을 파느냐고. 매일 단원고 엄마들을 생각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기도의 손을 모을 때 엄마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엄마들은 다름아닌 나이기 때문입니다. 새 운동화를 사주고 좋아 어찌할 줄 모르는 채윤이를 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 채무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수장되었고 그 엄마 아빠들도 고통의 바다로 내몰려 빠져버렸습니다. 남은 자의 몫은 회개, 돌이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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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남은 날이 적다. 더 많이 먹고 더 실컷 놀자, 가 아닙니다. 두 아이와 사람들이 내게 맡겨져 있을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 이들의 행복하게 하는 일을 미루지 말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그만 신경 쓰고 내가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말과 사랑을 유보하지 말자, 입니다. 정권은 사악하고 교회는 천박하여 사방을 둘러봐도 절망이지만 분노하고 서명하고 피켓팅하는 것 이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삶을 근본적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경고이며 동시에 기회입니다. 생명이 스러져가고 숨이 끊어져 가는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남의 아이인줄 알지만 실은 우리 아이인데, 내 아이의 생명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데 알아채질 못합니다. 그래서 내 아이도 나도, 우리 모두가 함께 스러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내 숨을 쉬며 살겠노라는 선택이 어떤 모양새가 될 것인지 잘 압니다. 번듯할 수 없습니다. 까칠하고, 이상하고, 바보같고, 과격하고, 고독한 길이겠지요. 그렇더라도 남겨진 자의 의무를 살아야겠습니다. 남겨진 엄마로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의 행복한 오늘을 지켜야겠습니다.  꽃친을 시작하는 '안녕, 그리고 안녕'에서 채윤이 엄마의 안녕은 그런 뜻입니다. 일부러 더 반대로 가겠다는 뜻의 안녕입니다. 그런 삐딱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이것은 단지 힘들게 준비하여 합격한 예고를 포기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단지 1년을 쉬겠다는 그런 얘기만도 아닙니다. 단지 채윤이 얘기는 아닙니다. 아닙니다만 결론은 채윤이를 주어로 맺어야겠지요.


채윤이는 앞을 보고 막 달려오다 멈춰섰습니다. 그리고 휙 뒤돌아서 '안녕!'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막막한 미래를 향해 '아....안녕' 수줍게 인사했습니다.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꽃 같은 나이 열일곱에 제 숨을 쉬게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 꽃친 첫 가족모임에서 채윤이가 수줍은 '안녕'을 건네고 있습니다.

* 연재는 이렇게 끝입니다. 진짜 꽃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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