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가져온 팔뚝만 한 고구마가 있었다.
벌써 한참 전이다.
'보기는 이래도 맛있어. 잘라서 삶아 먹어 봐'
잘라서 삶으라는데....
칼을 집어 넣어야 빼도 박도 못할 것 같아 손도 못 대고 있었다.
그 사이 속이 노란 해남 고구마 한 박스를 선사 받았다.
속이 노란 고구마가 어찌나 맛있는지 아침 식사 단골메뉴가 되었다.
팔뚝만 한 고구마는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삶은 고구마 되는 건 진즉에 포기, 삶을 포기한 고구마가 진정한 생명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싹을 틔운 것이다!
스케일 있는 이 녀석, 흡사 무슨 분재 같도다.
이제야 칼을 집어 실랑이 한 끝에 싹이 난 부분을 뚝 잘라냈다.
그리고 나의 성소 싱크대 앞, 영예의 전당에 모시었다.
가을 겨울 지내며 거실 창 앞의 작은 화분들이 초토화 되었다.
한 놈 두 놈 시들해져 가더니 강한 놈 몇이 살아 남았다.
가을, 겨울이 아니라 여름의 에어컨 바람에 든 냉방병을 끝내 이기지 못한 것 같다.
사그라든 생명의 빈 자리를 대림절 초와 성탄 트리로 메꿨는데......
이제 그마저도 을씨년스럽다.
연휴 동안에 박스에 넣어 정리하고 올 대림절을 기약해야 할 것이고,
햇살 드는 거실 창 앞이 텅 비게 될 것이다.
전 같으면 벌써 분갈이를 하고 작은 화분들로 다시 줄을 세웠을 터.
어쩐지 의욕을 상실하고 손을 놓고 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 58:11)
이번 달 주일 예배로 초대하는 말씀으로 매주일 듣고 있다.
전 같으면 '물 댄 동산'만 빼고 다 귓등으로 들어 흘려 보냈을 것이다.
어쩐지 '메마른 곳'에서 턱 막혀서 한 걸음 나가질 못한다.
먼지 폴폴 날리는 메마른 땅을 걷고 또 걷는 느낌이다.
갑자기 시니컬해져서가 아니라 이제야 철 든 마음의 눈을 가진 것 아닐까 싶다.
주인 엄마 마음이 이런데, 이런 시국에 분재 코스프레를 하며 싹이 난 고구마순이라니!
어린 생명을 향한 과도한 감수성 탓에 당근이나 무를 자르다가도 손톱만 한 싹을 지나치지 못한다.
자주색의 고구마순은 왠지 더 사랑스러운 것!
이런 매의 눈을 피하여 이토록 무성히 자랐다니. 너 뭐냐?
채윤이의 놀림을 받으며 아침마다 저 녀석을 모델 삼아 사진을 찍어댄다.
무심한 주인 아줌마에 아랑곳 하지 않고 틔워낸 생명.
기특하고 짠하지 아니한가.
풍성한 명절, 행복한 설 보내세요~
(도대체) 어떤 이들에게는 행복하고 풍성한 명절인지 모르겠으나.
외롭던 사람 더 외롭고,
슬프던 사람 더욱 슬프고,
가난한 이들이 더욱 추운 명절의 시작이다.
명절이라 이름한 특별한 날들, 그 며칠 잘 견뎌내자.
특별할 것 없어 비교할 것도 없는 진짜 나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명절 끝이 되면 저 고구마순이 한층 자라고 억세어져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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