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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교회 집 딸

larinari 2018.02.06 23:35


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살았던 고향, 충청남도 한산을 찾았다. 남편 제안으로 휴가 중에 일부러 일정 잡아 들렀다. 마침 한산 오일장 서는 날이라 어릴 적 장날을 기억하고 한껏 부풀었으나 한산하기만 한 한산장이었다. 점심을 먹어야 해서 '오라리 집'으로 들어갔다. 내게는 아스라하고도 친근한 '오라리'이다.


혼자 갔으면 조용히 먹고 나왔을 텐데 남편이 주인 할머니께 장사하신지 얼마나 되셨냐, 아내가 어릴 적에 여기 살았다, 말문을 터주었다. 35년 되셨다면서 "오디 사셨슈?" 하셨다. 저 위에 한산제일교회라고, 그 교회 목사님 아시냐고 했더니..... "아, 그 탄 가스로 돌아가신 정 목사님"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그때 당시 잠깐 교회를 댕겼슈" 하시더니 우리 엄마한테 수십 번 들었던 교회 얘기를 들려주셨다. 눈물이 터질락말락 놀랍고 신기했다. 잠시 후에 식사하러 들어오신 어르신에게 "저기, 옛날이 교회 목사님 알쥬? 이 양반이 그 딸이랴" 하...자마자 "정선득 목사님?" 하신다. 당시에는 교회 안 다니셨는데 지금 한산제일교회 장로라고 하시며.


동네 구석구석 돌아보고 사진 찍고 하는데. 지나가는 연세 드신 분 아무나 붙잡고 "제가 예전 교회 집 딸입니다" 하면 다 아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적에 교인 아닌 분들은 나를 '교회 집 딸'이라 불다. 태어나보니 목사 딸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동네 절에서 사는 어떤 아이에게 '절집 딸'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교회 집 딸'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절집 딸, 되게 이상한 애처럼 보인다. 이런 느낌이구나. 부모의 딸이 아니라 '특별한 어떤 집에 사는 사람 중 하나의 아이'


고향 동네를 뒤로 하고 겨울 논 사이 국도를 달리는데 기억의 조각들이 마구 떠오른다. '교회 집 딸'이란 말을 조금 다르게 인식한 후에 무의식 중에 '교회 집 딸, 목사 딸'이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 속으로 자꾸 이렇게 말했다. '교회 집에도 엄마 아부지가 있고, 그냥 당신 집하고 똑같습니다. 죽이 잘맞는 동생과 엄마 아부지 놀릴 궁리를 하다 싸우다 혼나다 하면서 사는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도 목회자 가정이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거룩하지 않다는 걸 설명하기 참 어려웠다. "그냥 당신 가정과 비슷한 정도의 행복과 문제를 가진 가정이라구요." 엄청 홀리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그 사람의 마음에 그린 이미지의 투사라는 것을 알기에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남편이 목사가 된 이후로 남편 직업을 말해야 할 순간이 오면 그냥 낯이 뜨겁고, 한 마디 설명하고 싶은 마음 누르게 된다. "목산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기꾼은 아니에요. 그냥 장점도 있고, 장점만큼의 약점도 가진 한 사람이에요."


늦게 목회자 된 남편보다 목회자로 사는 것에 대해 더 복잡하고 민감한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교회 집 딸, 목사의 딸'이라는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이 어릴 적부터 유난했다. 오라리집 아주머니 말씀을 듣다가 확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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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 프로필사진 BlogIcon Shalom 2018.10.23 07:43 신고 고향 한산입니다 '교회 집 딸' . '목사님 딸'.'저 친구는 교회에서 산데! 라고 이야기 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동창인 저 입니다
    하굣길에 저 앞에서 교회로 들어가는 친구의 뒷 모습을 보며 친구와 함께 '제는(저 친구는) 교회에서 산데! 라고 하며 뭔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이제 제가 '교회집 주인'이 되었고 자녀들이 '교회집 아들' '교회집 딸'들이 되었네요
    태어나보니 교회집 자녀들로 겪었을 일들이 느껴집니다 이 글이야 예전에 읽었지만 갑자기 잠시 글 올립니다 샬롬!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8.11.02 09:46 신고 흔적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안 그래도 될 텐데. 저는 왜 그리 목사 딸이라는 정체성을 크게 받아들였을까 싶어요. 목사 딸이라는 무겁고 때로 영예롭기도 했던 이름을 살고, 성찰하는 것이 제 몫의 인생여정인가 하는 생각도 하고요.
    그러면 샬롬 님께선 한산국민학교, 저랑 동창이란 말씀이신 거죠?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 얼마 전에 건지산 꿈을 꿔서 한산에 한 번 또 가야지 자주 생각해요.
  • 프로필사진 2018.11.02 11:19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8.11.11 22:46 신고 유범수는 확실히 생각 나네요 ^^ 어느 소풍에 동생이랑 사진을 찍었는데 그 뒤에 유범수가 찍혔어요. 그걸 가지고 제가 뭐라뭐라 했던 기억도 나요. 동창 중 친한 친구인 부연이 오빠가 소곡주 장인이신 건 알고 있는데. 말로만 듣던 모싯잎송편을 하는 동창도 있네요.
    동창 목사님, 목회자의 삶이 쉽지 않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샬롬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Shalom 2018.11.14 08:43 신고 예 감사합니다 동창 사모님도 늘 강건하시고 행복하세요 한산제일교회가 있는 고개길(갓고개)이 어릴땐 가파르고 높아보였는데 아스팔트 포장하면서 좀 낮추고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될수록 낮아 보이네요
    하굣길에 갓고개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겨울철에 찬바람이 더욱느껴지고 나부연친구네 집 앞 방죽에는 연꽃도 있었는데 주민들이 몇년에 한번 물을 다 퍼내어 청소겸몰고기를 많이 잡으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부연친구네 앞 떡방앗간에선 명절 앞두곤 떡 하시는 분들로 인해 복적이고 헌번씩은 일하시는 분이 기계에 손가락이 끼어 다치시기도 했죠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셨고 제 큰 누나 때도 담임선생님이셨던 호암리에 사시는 선생님은 농번기철에는 평일에는 퇴근하시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한낮에 한산고등학교 앞 논에서 막걸리 한병 놓으시고 일하시던 정겨운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제 고향도 빈집도 늘어나고 2700여명이 거주하고 계속 인구가 줄어드는 면이 되었죠 샬롬!
    이제 답장 안 올리셔도 됩니다
    평택 내광교회 김진구목사 동창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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