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저녁에 뭐 먹어?"
이런 불온한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여보, 저녁은 치킨 시켜 먹을까?" 라고 한다.
이 어정쩡한 주체적 태도를 어여삐 여겨 내가 말한다.
"아냐, 저번에 맛있다던 통삼겹살 구이 할 건데."
"힘들잖아. 그냥 뭐 시켜먹자."
훈훈도 하여라.
이사 와서 한 달 내내 오가며 기웃거렸던
집 들어오는 길목의 '누룽지 백숙'을 먹기로 한다.
끌차를 끌고 내려가 장을 보고 주문한 백숙을 찾아온다.
귀때기가 떨어질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다.
엑스레이 같은 나뭇가지에 걸린 달이 예뻐서 사진 찍으려 했더니
달은 안 잡히고 그의 형광색 잠바에 촛점이 꽂힌다.
채윤이가 좋아하는 게맛살, 채윤이가 좋아하는 팽이버섯을 섞어 전을 부쳤다.
그리하여 이 전의 이름은 '채윤전'이니!
전을 부치는데 채윤이 동생 현승이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주방으로 온다.
새로 알게 된 김광석 노래라며, 들어보라며.
김광석 노래에 맞춰 전을 굽자니
고소한 기름냄새와 함께 달달한 희열 같은 것이 코 끝을 간지른다.
일주일의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주일 저녁,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일상의 무게로 어깨는 쳐지고 고개는 떨궈지지만
알 수 없는 좋은 느낌이 텅 빈 마음을 채운다.
포장해 온 백숙과 채윤전을 배부르게 먹고 치우느라 분주한데
이번엔 흥얼흥얼 부르는 현승이의 노래가 귀를 간지른다.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이다.
이런 저런 일상의 짐이 무겁지만
살아야 할 이유 역시 이 일상이다.
양손에 무거운 짐 다 들고 저만치 걸어가는 형광색 잠바가 있는 세상.
덕분에 내 손은 비어 있어 달을 찍고, 하늘을 찍고,
달을 빙자하여 형광 잠바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찍었다.
e편한세상! 이 편한 세상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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