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아빠가 모처럼 긴 식탁 수다를 이어가고 있었다.
주제는 '기도'였다.
안 듣는 척 옆에 앉았던 현승이가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들었다.
그런데 뭐 주세요, 뭐 주세요,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는 잘못 된 거 아냐?
아, 뭔가 신앙적 성숙미 뿜뿜 풍기는 이 느낌.
왜애? 그게 왜 잘못된 기돈데?
아니, 그러면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는 거 아냐?
막 뭐 주세오, 대놓고 말하지 않고 뭔가 쫌 돌려 말해야 잘 들어주잖아.
뭐, 나는 괜찮은데 당신 뜻대로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천잰데!
모태 바리새인의 아들답구나!
#2
현승이 베이스기타에 입문하였다. 방에서 딩딩디딩딩 하다 툭 튀어 나왔다.
엄마, 엄마는 찬송가 말고 CCM 같은 거에서 좋아하는 곡 있어?
좋아하는 곡이 워낙 많아서. 음, 지금 생각나는 건 '오 신실하신 주'
뭐야, 자기 이름 들어갔다고 좋아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그 찬양 가사가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이렇거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 얼굴에 냉소의 빛이 어른어른.
그 입에서 나올 말이 듣기 싫어 선수를 친다.)
물론! 하나님이 자주 실망시키시지. 현실은 찬양 가사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실망했다고 한 것도 결국 나중에 보면 그닥 실망할 것도 아니었더라고. 다른 뜻으로 더 좋게 된 것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생각지 못했던 것이 있더라고. 음냐음냐, 횡설수설, 횡횡설설수설수설, 그렇다는 거야.
(공감 1도 안 되는 표정)
그런데 신실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성실하다는 거야?
성실한데, 변함 없이 성실하다는 거야.
그리고 설거지 하며 오토리버스 플레이어가 돌아간다.
하나님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다는 것은 진실, 매일매일 그분께 실망하는 것도 사실.
믿어져서 부르는 건지, 안 믿어져서 더 부르는 건지.
믿음의 찬양인지, 불신앙의 찬양인지 자꾸 불렀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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