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3
친구의 축 처진 어깨, 자신감 잃은 말투가 눈에서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 일처럼 마음이 무겁다. 늦둥이로 얻어 애지중지 키우는 아들과의 갈등으로 생사를 오가고 있다. 생사가 실제 생사겠는가. 마음이 죽어간다는 뜻이다. 시들어가는 친구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커다란 덩치에 가정, 친구들, 교회 공동체…. 어디서든 해결사 역할을 하는 남자 사람 친구이다. 한 교회에 다니며 중고등부 때부터 알아왔다. 그 시절 친구 모임이 느슨하게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최근에 시간들이 많아져서인지 더 자주 얼굴을 보고 있다. 친구 J는 우리 중 제일 늦게 결혼했다. 아들 둘을 내리 낳았는데 지금 현재 그 무섭다는 중2, 중3이고. 사춘기를 맞은 첫째, 그 뒤를 이어 다른 방식으로 질풍노도에 발동을 걸고 있는 두 아들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임에서 쉽지 않단 얘길 가끔 했지만, 어느 집에나 있는 일이려니 했다. 우리 아이들도 지나온 시간이니까. 도움을 구할 것이 있다 하여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 무기력과 우울감을 호소해 왔다.. 성격이 불같은 면이 있긴 하지만, 정의를 사랑하는 친구이기에 그 뜨거움은 용기와 당당함으로 보였다. 적에도 내겐 아름다운 강함을 선물로 가진 친구였다. 그런데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한다. 때로 극단적인 생각이 든단다. 기도도 어떤 노력도 다 의미 없는 것 같다고.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잔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얼굴은 초췌해졌고 전 같은 열정이나 밝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 큰 덩치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구부정하게 앉은 것이 내가 아는 강한 용사가 아니었다. 뭐든 맞서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 여기며 살아왔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결하려고 나서면 자꾸 폭력을 쓰게 된다고. 그러고 나면 후회가 밀려오고, 아이와는 더 멀어지고, 인생 잘못 살아온 것 같단다. 실패한 인생이라며 자괴감에 빠져 내놓던 말이 귀에 쟁쟁하여 마음이 아프다. 다행히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싶다고 하여 최 선생님께 연결을 시켰다.
자식 문제엔 다들 무력한 해결사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가 봐. 친구야 내가 안 봤으니 모르겠다만, 정 선생이 죽어가는 얼굴인데. 당신 친구 아니어도 마음 써서 상담할 텐데, 염려하지 말아요. 잘 부탁한다는 말을 몇 번을 하는 거야.
감사해요, 선생님.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함께 지낸 친구 모임이 있어요. 서로 모르는 게 없고요. 이 친구는 유난히 더 마음이 가는 친구예요.
남자라며? 뭐, 젊을 때 좋아했었어?
에이그 선생님. 남자 사람 친구라니까요.
남자 사람 친구는 또 뭐야. 그냥 친구라 이거지? 암튼 각별하구나. 그렇게 마음을 쓰는 것이.
말하자면 저희 모임의 대장이거든요. 청년부 때 교회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불의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함께 항의하고 그랬어요. 이 친구가 앞장섰고 몸을 사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표로 불려 가 야단도 맞고, 교회를 파괴하는 녀석들이라고 정죄도 당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런저런 일로 늘 고마운 친구예요. 정말 용감하고 강한 친구거든요.
아하, 그래서 친구의 약한 모습이 크게 보이는구먼.
네, 그런가 봐요. 해결사죠, 해결사. 그런데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 앞에서 무력하다는 거예요. 무력함 너머 생의 의미까지 잃은 것 같아서 걱정이 많이 되네요. 저러다 정말 뭔 일 저지르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게요. 제가 과도하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 정 선생이 많이 슬퍼 보여.
왜 그럴까요. 실은 저희 아이들도 사춘기 지났으니까요. 그 심정 저도 모르는 바 아니죠. 자칭 타칭 엄마 중독자라 했던 아이의 눈빛에서 저에 대한 냉소, 아니 어쩌면 혐오 같은 것이 느껴졌을 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이었어요. 무너졌죠. 이렇게 우리 사이는 끝난 건가? 그 사랑스러웠던 아이가….
아, 그 운동화 좋아하는 철학자 아드님 말인가?
네, 선생님 정말 기억력 끝내주세요. 그 녀석도 그렇고. 사실 첫째 사춘기 때는 처음이라 더 당황스러웠죠.
사춘기를 심하게 했어?
아니요. 사실 여느 집에 비하면 그리 요란하지는 않았어요. 친구네 아들들 얘길 들어보면 저희 아이들 사춘기는 사춘기도 아니죠.
그래, 밖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부모로부터 분리되고 떠나는 게 사춘기니까. 부모로서 상실감이야 비슷하겠지.
맞아요. 상실감요! 애가 말을 안 듣거나, 맥락 없는 화를 내고 하는 것들은 각오도 되어 있었고요. 어떻게 견디겠더라고요. 그런데 저나 제 아빠를 향한 냉소나 불신의 눈빛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때 감정이 상실감이에요. 그 귀여웠던 아이 어디로 갔지? 이런 거죠. 친구 얘길 들어보면 그 눈빛이 온갖 행동으로 다 나오는 거고요. 때려도 보고, 용돈도 끊어보고, 달래도 보고 해도 개선이 안 된다는 거예요.
사춘기가 어떻게 개선이 돼. 통과의례인데. 어떻게든 터널 끝까지 가서 빠져나오길 기다려야지.
아, 그렇죠….
그러엄. 정 선생 아이들 다 컸잖아. 안 그럽디까?
그렇죠. 둘째도 이제 눈에서 독기가 빠져가는 것 같아요.
독기라?
네, 딱 사춘기 눈빛이 있거든요. 눈에 독이 들어가고, 얼굴은 막 못생겨지고, 머리에서 냄새나고…. 하이튼 딱 그 표징이 있어요. 하하. 눈에서 독기가 사라지면 사춘기가 끝나는 거예요. 맞아요. 그런데 고통 중에 있는 친구에게 사춘기 결국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렇지. 아이는 아이대로 두고 부모의 인생길을 가야지 뭐. 그래. 상담은 친구가 자원한 거요? 정 선생이 권한 거요?
뭐라도 해야겠다고요. 저한테 상담받을 수 있냐는데, 저랑은 편하게 수다 떨고요. 상담을 받고 싶으면 선생님을 소개하겠다고는 했어요. 생각해본다 하더니 연락을 해왔더라고요. 상담까지 받아야 하는 제 처지가 처량하다면서요.
하하. 상담까지 받아야 하는 게 처량하구나. 그렇게들 생각하지. 대단히 문제가 많아서, 수선이 필요한 인간이라서 상담으로 고쳐야 한다고. 아직도 사람들이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그렇게들 보지?
그러니까요. 선생님과 자주 얘기했듯, 그나마 자발적으로 상담받으러 오는 분들은 희망이 있는 건데요. 제 친구도 지금 괴로워하는 걸 보면 안타깝긴 하지만 결국 나아질 거라 믿고요. 게다가 선생님께서 만나주실 거잖아요.
아들 사춘기가 들고 온 초대장
그래, 나라고 별 뾰족한 수는 없지만, 중년에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야. 상담이든 무엇이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친구는 영적 초대장을 받은 것만은 확실해요. 아들 사춘기가 들고 온 초대장이지.
영적 초대장이요? 사춘기가 가져온 초대장이라….
그래요. 아, 왜 카를 융이 그랬잖아요. 자신이 만난 중년 이후의 내담자는 모두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왔다고. 표면적으로 가져온 문제는 다 달랐지만 결국 상담하다 보면 영적인 문제였다고.
아, 그렇죠. 카를 융이 중년을 중요하게 말했죠. 선생님도 늘 중년, 생의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에 대해 말씀하시는 그 맥락이군요. 제 친구도 그럴 수 있겠네요. 단지 아들과의 갈등이 문제가 아니에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인생을 이끌어가시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요. 생애 발달에서 아이 사춘기와 부모의 중년기 또는 갱년기가 거의 겹치거든. 교차한단 말야. 그 교차점에 어떤 신비가 있는 것 같아.
오, 어떤 신비일까요? 알 것도 같고요.
내 보기에 인간 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두 번의 시기가 있어. 언제예요?
일단은 사춘기겠죠. 아이가 자고 일어나면 키가 커서 나와요.
그렇지. 신체발달이 어마어마하지? 2차 성징과 함께 말야. 그 빠른 신체발달에 성적 에너지가 분출하는데 정신적 성장이 따라가질 못하고. 스스로 그 분열을 어쩌지 못해서 하는 행동들이 사춘기의 질풍노도 행태일 거야.
아, 그렇겠네요. 몸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버렸는데, 정신은 어린애니…. 맞아요. 딱 그런 것 같아요. 하는 짓이 말할 수 없이 유치한데, 제 딴에는 어른인 척한단 말이죠. 아주 그냥 꼴 비기 싫죠.
척 보다는, 어느 정도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 어설프게…. 하하.
그러면 또 한 시기는요? 정해진 답인가요? 중년기?
그래. 영적 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때. 내 식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말해보자면……. 영적 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데 여기서도 내 정신이 그걸 따라가질 못해.
흠…. 정신적 발달이 영적 발달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려운데요, 선생님.
어렵지. 그 왜 어떤 공허감, 허무감 같은 것 있잖아요. 선생님 친구가 했다는 말. 내가 뭐 하고 살았나 싶다. 인생 잘못 살아온 것 같다. 실패했다. 살 이유를 못 찾겠다…. 같은 말들. 저만치 가는 영적 수준을 정신적인 것이 따르지 못하는 괴리 같은 것 아닐까.
으으…. 더 어려워요. 그러니까 허무감 같은 게 영적 발달에서 오는 감정이라고요?
의미를 찾는 거지. 인생의 진짜 의미. 그러니 사춘기가 고맙지 뭐야. 중년기 영적 초대장을 받아 든 제 부모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딱 알려주니까.
엇, 뭐라고 알려주는데요?
하하. 그걸 보여줘야겠다. 내가 강의하다 즉흥적으로 칠판에 그렸던 건데 말이야. 그 옆에 메모지 좀 줘 봐. 내가 그래프를 그려봤다우. 자 봐봐. 이건 부모와 자녀 사이 존재 힘의 그래프야. 아래쪽이 아이 위쪽이 부모라 생각해 봐요. 처음 만났을 때 어때? 갓 태어난 아이는 완전히 무력하고 의존적 존재지? 아이의 힘은 바닥이다. 그렇지? 부모의 전적인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어. 부모의 힘은 최대치가 되겠지. 24시간 붙어서 돌봐야 하잖아. 그런데 아이가 뒤집고, 기고, 걷기도 하며 기동력이 생기고. 존재의 힘이 커져. 그러면 점점 부모의 돌보는 힘이 이렇게 줄어드는 거지.
오호! 그러네요. 와아아, 맞아요. 선생님. 처음에 끄덕끄덕 목도 못 가누는 걸 안는데 잘못 만지면 어떻게 될까 봐 어쩔 줄 모르던 순간이 생각나네요. 얼마 안 가서 목을 빳빳하게 세우는데 신기했어요. 그렇군요. 아, 그랬던 적이 있었죠. 식당에서 밥 먹다가도 ‘엄마, 쉬’ 하면 데리고 화장실 가야 하고…. 그런데 혼자 화장실 가는 것도 엄마에겐 얼마나 자유예요.
그러니까. 육아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거야. 갑자기 가장 무력한 상태로 내 앞에 나타난 한 존재를 24시간 책임져야 하잖아. 다행인 것은 시작이 최고점이고 갈수록 그 힘이 줄어든다는 거지. 떠나보내는 과정이라는 거야. 젖을 떼고 기저귀를 떼고 해 봐.. 점점 부모 손이 자유로워지지. 그렇게 둘 사이에서 힘의 그래프는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 아니겠어?
아하, 참 이것 어렵고도 신박하군요. 그러면 사춘기 아이가 중년 이후를 어떻게 살으라고 딱 가르쳐 준다는 거죠?
정답 나왔잖아. 힘 빼라고. 이기지 말라고. 이길 수 없다고. 그래프를 보라고.
도(道) 중의 도는 내비도!
아아…. 어, 어려워요. 그러면 제 친구는 아들들에게 무조건 져야 하는 건가요? 중년의 초대장을 받아 든다는 건 그런 뜻인가요? 훈육하지 말라고요?
글쎄. 나는 훈육의 골든타임이 있는 것 같아요. 인간 된 도리를 가르치고,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가르치는 것, 더 나아가서 신앙의 훈련까지도 사춘기 이전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춘기는 아이들이 자신을 한 성인, 한 존재로 받아들여 달라는 몸부림을 하는 거거든. 부모 가르침이 들리겠수? 옳은 말씀 하는 부모 말에 반발심만 들걸. 내가 상담했던 아이는 그러더라고. 부모가 잔소리 시작하면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하며 딴생각한다고..
그랬던 것도 같네요. 어쩐지 사춘기 때 애들 얼굴 떠올리니 그랬을 것 같아요. 맞아요. 가르치려 할수록 엇나갔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막 나가는 아이를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친구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냥 두면 애 인생 망칠 것 같다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모가 힘을 쓸수록 아이는 더 저항하는 것 같아요. 하하, 그래서 엄마들끼리 그런 말을 하죠.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도 닦는 심정으로 살아야 하는데요. 도중의 도는 내비도! 래요.
허허허, 내비도. 그거 좋네. 거기서 득도하는 게,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선생님 친구도 J 씨도 만나서 얘기 들어봐야 하겠지만…. 아이를 어떻게 해보려는 힘을 빼고 물러나는 게 자기가 살길일 수도 있어요. 여하튼 내가 만나 보리다.
선생님, 참 쓸쓸해요. 뭔가 이렇게 인생에서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간다는 게 참 그래요. 언젠가 제가 선생님과 약속 잊었던 일도 있었잖아요. 지금도 건망증은 더 심해지고 있거든요. 안심하라고 하셨지만, 처음처럼 그렇게 걱정이 되진 않아도 뭔가 좀 쓸쓸해요. 이렇게 존재가 스러져가는 건가…. 이 그래프에서처럼 최대치의 힘을 점점 빼고 하강하며 소멸해가는 것인가요?
이런 그래프도 있어. 봐봐. 요제프 골드브룬너라는 이가 이런 그래프를 그렸대. 뭔지 알겠소?
글쎄요. 감이 잘 안 잡히는데요. 아까 그 존재의 힘의 교차와는 다른 것 같고요…. 뭐예요?
자, 여기 실선이 뭐랄까 활동성이나 몸의 기능 같은 것들? 인생의 외적 부분이 진행하는 과정이라고 합시다. 점선의 화살표는 정신적 발달이라는 거야. 외적 곡선은 어느 순간 하강하는 반면, 그러니까 정점에 이른 다음부터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소. 바로 그 지점에서 정신적 발달을 가리키는 화살이 새로운 자유를 향해서 나간다는 거야. 정신적 발달, 영적인 발달은 오히려 이때부터 더 먼 곳으로 날아가지. 멋지지 않아? 쓸쓸함도 진실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그러네요. 뭔가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와, 고린도후서의 말씀이 이런 뜻일까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갑자기 이 말씀이 훅 알아들어지네요..
아이구, 성경을 줄줄 외는구나.
아니요. 외우는 구절 거의 없는데요. 뭔가 참 꽂히는 말씀이라 마음에 맴도는 몇 안 되는 구절 중 하나거든요. 선생님, 정말 갱년기 허무감이 희망으로 다가와요. 선생님이 저 그래프의 살아있는 버전이시잖아요.
무슨 소리야. 살아있는 버전은 또 뭐야.
저는 느껴져요. 저의 인생 롤모델이시잖아요. 제 눈에 보여요. 선생님의 정신발달 화살표가요. 얼마나 높이 멀리 나아가고 계시는지 보인다고요. 저기, 저어~기 타원형같이 생긴 구름 있잖아요. 그 정도까지 가 계세요. 히히히.
또, 또, 노인네 골리기 시작한다.
모든 일에 반항하는 아이는 사춘기, 엄마 아빠는 오춘기인가 봐요. 뭐 의미 있는 게 없고 삶의 낙이 없고 쓸쓸하기만 한 엄마는 오춘기... 육춘기도 있으려나요?
아, 그런 책이 있어. 『신앙 사춘기』라고. 제목을 제대로 지었더라고. 신앙생활에서 아이에서 어른 신앙으로 넘어가면서 오는 질풍노도를 딱 잘 그렸던데. 마침 그 저자도 나이가 딱 중년기더라고. 어쩌면 아이가 생물학적 사춘기를 겪는 동안 부모는 영적 사춘기를 함께 통과해야 하는지도 몰라. 하나님께서 생애 발달을 그렇게 묘하게 엮어 놓으셨나 봐.
친구 문제 상담하다 제가 깨달음을 얻네요. 아이들 사춘기 때 느꼈던 휑하게 텅 빈 것 같은 그 느낌이 다시 살아와요. 인생에서 아름다운 시간은 다 끝났구나. 되돌릴 수도 없구나. 허망하구나 싶었던 것 같은데. 제 친구가 저와 결은 다르지만, 그 시기인 것 같네요. 강한 친구가 약해 보이니 더 안쓰러웠던 것 같아요. 이 시기가 정말 그 친구에게 영적 전환점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제게도요. 상담 잘 부탁드려요.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리다. 얘기 나누다 보니 나도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르네. 언젠가 내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정 선생이 좋은 노인에 관해 물었을 때 했던 말 같아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힘을 빼고, 주도권을 이양하며 남이 나를 띠 띠우기를 허용하는 것, 생애 후반의 영성이야.
네, 선생님. 조금 알아들어져요. 그런 의미로 아이의 사춘기는 요란하고도 세미한 그분의 초대의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요. 친구의 마음 여정을 보면서 저도 잘 배울게요. 더 많이 가르쳐 주세요.
* 시니어 <매일성경> 2023년 1,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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