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체험하는 하나님 나라였다. 아기 태양이 유아세례식을 시작하며 목사 JP가 태양이를 안고 예배당을 한 바퀴 돌았다. 태양이가 움직이는 곳마다 천국의 마법이 뿌려진다. "하아......" 탄성과 함께 무장해제 된 교유들의 표정은 하나님 나라였다. 이름 그대로 구름 뚫고 나온 '태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보다 경건할 수 없는 엄마 아빠의 서약 시간에... 태양이는 청중을 향해서 천국을 발사하며 주의를 흩트렸다.. 천국에 취한 교우들의 귀에 서약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몸으로, 저렇게 뚱한 표정으로, 수십 명 사람들의 영혼을 일순간 말랑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천국은, 이런 곳일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설교가 클라이맥스로 가는 순간이었다. "압빠~!" 하는 소리와 함께 다다다다, 작고 빠른 발소리가 예배당 뒤편에서 들렸다. 그 뒤로 조용하고 급한 무거운 발소리, 쿵쿵쿵쿵.... 그리고 "압빠....아... 압..." 뭔가 빠른 진압의 느낌. 태양이 비치고 우주가 임하여 하늘나라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태양이 형인 '우주'. 유치부(실은 영아) 예배실에서 탈출하여 나온 태양이 형 우주가 엄빠가 있는 예배실로 직진한 것이다. 다다다다, 빠르고 가벼운 이 걸음을 담임 선생님 장로님 (!) 쿵쿵쿵쿵... 체포 완료! 앞을 보고 설교를 듣고 있는데, 예배당 뒤편이 보이는 게... 이게 내 초능력이다. 장난끼 가득한 우주의 얼굴, 웃는 입이 제 엄마랑 꼭 닮아서 더 귀여운 우주를 따라 들어오신 가만한 장로님의 당황하신 얼굴이 보이니 말이다. (장로님은 평소 말씀도 없으시고, 표정 변화는 잘 모르겠는데... 우주만 보면 어린아이 얼굴을 감추지 못하심. 난 사실 그런 장로님 표정이 우주의 장난기 얼굴만큼 좋음.)

 

마침 이 날 설교는 "아비새의 분노"라는 제목으로 "나는 옳다, 나만 옳다"는 어른의 분노 이야기였다. 아침 아홉 시부터 6시까지 일한 품꾼의 분노였다. 탕자 아닌 탕자 형의 억울한 분노였다. 올바르게 살아온 모범생의 분노, 또는 냉소라는 이름의 차가운 분노였다. "기꺼이 영향 받는 말랑한 마음"의 반대, 어떤 일에도 감동하지 않는 마음,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않는, 결코 변하지 않겠다는 심장이었다. 잘못한 사람은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대쪽같은 마음이었다. 나는 잘했으니 응분의 상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로운 잣대'로  포장된 특권의식이었다. 태양 빛이, 천국의 빛이 새어들 '틈'이 없는 빽빽한 마음이었다. 경이 대신 당위로 가득한 마음이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분의 나라를 거절하고 내쫓는 마음이다. 

 

아이들을 그냥 두어라. 
나한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하나님 나라는 이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눅 18:16)

 

'걸어 다니는 하나님 나라', 아이들이 있는 교회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말랑한 마음과 딱딱한 마음이 함께 하는 곳이니 교회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얼마나 어려운 곳인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 바리새인 같은 마음이 공존하는 내 마음은 얼마나 어려운가. 얼마나 신비로운가. 태양이 비치고 우주가 몰려온 이 예배, 그 순간 임한 하나님 나라를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경이를 이긴 당위가 기승을 부리며 "마땅히 이래야지, 모름지기 이래야지..." 딱딱해진 마음이 될 때, 내 마음 지옥이 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볼 하나님 나라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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