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이사야서를 묵상하며 "철저하게 절망하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이사야의 예언은 "너희는 망했다! 이미 망했고, 계속 망할 것이다. 오늘 하루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이집트를 의지하며 희망을 말하지 말아라. 너희는 망했다." 온전한 절망에 구원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래서 저 그림을 (언젠가 남편이 설교 제목으로 붙인 이름)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라 부르며 자주 떠올리곤 한다.
무력한 아기의 몸으로 평화를 가져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 대림시기를 계엄 선포와 함께 맞았다. 이 무슨 믿기지 않는 아이러니란 말인가. 무력한 아기의 시간에 실탄 장착한 무력의 국민을 향한 난입이라니... 어제 하루는, 아니 이 며칠, 아니 몇 달 몇 년…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란 이 말을 머금고 산다. 국가적 위기에 더하여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다. 절망 속에 있다. 힘을 내라는 말이 무의미하고 무력한다.
대림기간, 이 기다림의 시간에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어젯밤 잠들기 전에 본 스웨덴 한림원에서의 한강 작가 인터뷰가 그분의 음성처럼 들렸다. 희망이 없을 때 희망하는 것이 신앙이다. “오호라,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외친 후에는 이집트가 아니라, 앗시리아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말하고 사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한강 작가가 느릿하고 착한 말로 내게 신앙을 일깨웠다.
" 때로는 희망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요즘은 얼마 전부터, 몇 달 전부터 아니면 그 전부터일지도 모르겠는데,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생각을 한다."
이 절망의 순간에 무슨 설교를 할 수 있을까, 어제 종일 마음을 뜯던 남편을 위해 기도한다. 삶의 무게에 지친 내 동생, 깊은 절망 속에서 기도하는 내 친구의 막막한 시간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기도한다. 이런 시절, 군대에 갇혀 있는 생명을 사랑하는 영혼, 자유로운 영혼 우리 현승이를 위해 기도한다.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라는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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