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이가 쓴 저 심플한 스승의 날 카드에는 보기 보다는 상당한 의미 숨겨져 있다. 3학년 스승의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즐거운 마음으로 쓴 스승의 날 카드이다.(아, 물론 쓰는 것 자체는 매우 귀찮아했다) 또 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엄마, 우리 선생님 선물 사줘. 꼭 사줘'라고 요구를 해 온 것이다.
스승의 날은 학교에서 뭐라는 것과 상관없이, 주변의 엄마들이 과하게 신경 써서 선물 내지는 봉투를 고민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선물과 카드를 준비한다. 엄마들의 과한 고민 밑에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값싼 선물은 선물로 보지도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점에 무신경할 수는 없다. 헌데, 아이들 유치원 보낼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내 형편에서 넘치지 않는 선물을 마음 담아 준비한다. 누가 뭐라든지 아이들이 일 년에 하루 정도는 선생님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묵상(?)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짧더라도 마음을 담은 카드를 써서 표현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어버이 날, 어린이 날, 스승의 날... 기념일은 그러라고 있는 날이 아닌가.
헌데, 문제는 아이들의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은커녕 신뢰 자체가 없는 경우이다. 작년 재작년 현승이는 '절대 선물 사지마!' 를 비롯해서 심지어 1학년 때는 '나는 선생님한테 고마운 게 하나도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나쁜 점만 생각나!' 하면서 카드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경험은 채윤이 에게도 있다. 채윤이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채윤이 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면 지금도 손이 벌벌 떨릴 정도이다. 그런 선생님들을 향해 고마운 점을 생각하며 표현하라는 건 엄마로서의 위선이다. 정말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었다. 그리고 1학년 때는 '선생님, 화를 조금만 덜 내시면 말을 정말 잘 들을께요' 이런 식의 카드를 쓰기도 했었다.
3학년 현승이, 6학년 현승이가 각각 자신의 담임선생님을 너무 좋아한다. 현승이는 특히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학교 가는 것이 처음으로 즐겁단다. 학교에 가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단다. 올해는 두 녀석 등교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지 모른다. 두 녀석 다 1,2학년 선생님과 안 좋은 기억이 많다. 다행히 채윤이는 3학년 때부터, 특히 4학년 때 선생님을 참 좋아하게 되어 나름 치유를 경험한 것 같고. 현승이 역시 올해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볼 때 정말 좋고, 정말 감사하다.
어느 때 부턴가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 만나기를' 이라는 기도제목을 내 마음에서 삭제해버렸다. 고민 끝에 삭제했다. 조금만 생각하면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물론 살다보면 정말 자기입장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경직된 사람,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그래서 일종의 냉소주의 같지만 담임선생님에 대해서는 '복불복이다' 하며 받아들인다. 내 아이만 좋은 선생님 만나면 뭘 하나? 그 학교에 정말 인격이 안 되는 선생님이 있다면 어떤 아인가는 그 반이 되어 고통당할 텐데... '좋은 선생님 만나게 해주세요'는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닥 좋은 마음의 소원이 아니다. 차라리 이런 기도를 한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든지 적응하고, 그 상황 속에서 배우는 마음의 힘이 있는 아이들이 되게 해주세요'
작년 재작년 스승의 날 카드를 쓰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한 점이 없어'라고 말하던 현승이가 '뭐가 감사한 지 생각해 봤더니 다 감사해요' 이 말에 담긴 마음을 난 안다. 화도 내시고 혼내기도 하시는 선생님을 사랑한단 얘기, 믿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갈수록 '사랑'보다는 '신뢰'가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단 생각이 든다. 같은 선생님을 놓고 왜 어떤 아이에게는 잊지 못할 선생님, 어떤 아이에게는 최악의 선생님으로 추억하게 될까? 같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어떤 사람은 어찌하여 어떤 사람은 화가 나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을까? 어떤 사람의 실수에는 너그러울 수 있는데, 다른 사람에겐 유난히 까칠해지는 것일까? 신뢰하기로 마음먹은 사람과는 더 수용하게 되고, 좋게 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더 좋아지고 그러는 것 아닐까? 올해 두 아이 모두 자신의 선생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런 경험은 때로 신뢰하기 어려운 선생님이나 친구나 관계를 만났을 때 자신의 마음을 지킬 힘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 자신이 신뢰로운 사람들이 되는 것.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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