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아버님의 생신입니다.
아버님이 사랑하시는 막내 며느리가 아버님 생신상 차렸습니다.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자주적으로 차렸으면 기쁨이 있었을텐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지라 기쁨이라는 조미료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생신의 주메뉴, 어머님 (나름의) 지혜로움인 영덕게 놓아요.
저 영덕게를 선택하신 어머님의 지혜. 어머님 당신께는 충만한 지혜의 말들이 그저 어머니 한계에서, 어머니께서 원하는 걸 얻고자 하는 지혜일 뿐일 때, 그 지혜의 말씀은 영덕게의 엄지발가락 끝처럼 날카로운 것이 되어 제 마음을 찌르고 상처를 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갈비찜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 그것으로만 오지 않고 때론 너무 과도하거나, 너무 믿거라 하여 표현되지 않기도 하지요. 오랜 시간이 제게 가르쳐 준 것, 때로 넘치거나 부적적해 보이는 사랑의 표현에도 쉽게 오해하지 않는 것을요. 그래서 이 갈비찜이 사랑인 것을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화려함으로 뾰로퉁한 마음을 감춰보려고 준비한 양장피 입니다. 색색의 재료들을 썰고, 볶고, 가지런히 담아 내놓으면서 감추려던 제 마음 제대로 가려졌는지요/
ㅠㅠㅠㅠㅠㅠㅠ
감추고 누르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로 차올랐던 일종의 분노 같은 매운 골뱅이 무침입니다. 새로나온 매운 골뱅이에 태양초 고추가루로 양념한 불같은 맛이지요. 바보같은 제 자신에 대한 분노, 누군가 바보 같은 나를 이용하는 건 아닌가, 바보같은 나를 업신여기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분노로 잠시 분노로 변하기도 했었습니다.
골뱅이 무침으로 입안을 달군 매운맛을 희석시키시라고 올린 굴전입니다. 벌건 음식에 비교해보니 누워있는 굴전들이 착하고 순한 마음 같이 보여요. 서운함과 자기비하로 복잡한 제 마음이지만 아버님을 향한 순한 사랑도 역시 있다는 거, 아시죠?
토마토 카프레제.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요리하는 제 자신을 위한 음식이예요. 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만든, 아버님께는 음식이 아닌 이것을 상에 올려요. 토마토 위에 치지가 아버님이나 어르신들께는 가당치도 않은 조합이지만 저 이쁜, 저 색다른 음식이 만드는 제 마음에 색다른 신선함을 불러일으켜요. 그러면서 저는 생각해요. '아, 나 참 요리 좋아해. 새로운 거 또 한 건 했어. 역시 난 삶은 요리야...' 그러니 아버님 맛있게 안드셔도 저 하나도 섭섭하지 않은 음식이예요. 헤헤...
저는 초록빛 사람이예요. 초록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초록빛 사랑을 나누고 싶기도 하지요. 비록 이번 생신상을 차리는 제 마음 복잡하고 울퉁불퉁하기도 했지만 저는 저를 잃지는 않을 거예요.
다시 저 자신을 추스리고, 마음을 회복하고, 더 깊이 두 분과 제게 주어진 사람들 사랑하는 일을 포지하지 않을께요.
그리고 아버님이, 어머님이, 남편이, 제게 맡겨진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님을 용서할께요. 사람들이 하나님 같은 사랑을 줄 수 없음도 다시 용서할께요.
이렇게 김수영할아버지의 생신을 지냈어요.
울퉁불퉁한 제 마음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래서 힘들고 아팠지만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제 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저는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가요?
이제 많이 편안해요. 저는 지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있으니까요.
아버님 진심이 담긴 생신축하를 조금 늦게 드릴께요. 축하드려요. 아버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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