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으로 이사와서 지은 지 4년 된 새 아파트가 갖추어 놓은 첨단 편의시설에 여러 번 놀라고 감탄하였다. 심한 부적응 현상으로 너무 뻔한 수납장 여는 걸 못하고 신경질을 냈는가 하면, 버젓이 잘 되는 가스레인지 안되는 줄 알고 이사 와서 하루내내 밥을 못해먹기도 했다.

살면서 남편은 '이 놈들 진짜 신경 많이 썼네' 하면서 집안 구석구석 숨은 편리한 것들에 새롭게 감탄한다. 그러나 그 중 우리 부부을 함께 감동시킨 것은 단연코 안방 화장실의 변기 옆에 있는 책꽂이다. 지난 10여 년간 화장실에 늘 두 세 권의 책을 놓고 '항문에 힘쓰며 동시에 학문에 힘쓰는ㅋㅋㅋ' 우리 부부로서는 이거 진짜 맘에 드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이야,. 이것 좀 있었으면 하는 건 다 있구만' 싶다.

그 화장실에 계속 이사와서부터 계속 꽂혀있는 책이 윤구병 선생님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이다. 참 아이러니 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저 책이 저기 꽂혀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도시와 권력과 명예와 부를 버리고 가난을 선택한 분의 책이 가장 도시스러운 아파트의 샤워부스가 설치된 화장실에 꽂혀있다니 말이다.

"다 좋다 쳐도 가난은 지긋지긋하다고요?
강요된 가난은 그렇겠지요.
그러나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한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은 나눔을 가르쳐줍니다.
잘 사는 길은 더불어 사는 길이고,
서로 나누며 함께 사는 길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라고 선생은 말하지만 책을 통해 읽는 변산공동체는 가난해도 너무 가난하다.
더욱이 높은 곳, 성공, 더 많이 가지기를 지향하는 이 세속사회에서 그 분이 선택한 길은 가난할 뿐 아니라 외로운 길이라는 생각이 뼈에 사무친다. 그래도 그는 행복할까? 정말 행복할까?
행복할 것이다. 아마도 누구보다 자유로움으로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본 진리를 외면하지 않고 진리가 지시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진리로 인해서 자유로울 것이기 때문에.
 
정말 내게 정말 절절한 모순은 현대식 화장실에 꽂힌 윤구병 선생님의 책이 아니다.
책이 보여주는 그의 삶과 생각 고민, 그리고 행간에서 읽혀지는 그의 진짜 행복과 외로움은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과 너무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설교보다 나를 더 사랑하도록 자극하고, 낮은 곳을 향해서 나눔과 섬김의 살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내게 모순은 말이 아니라 삶 때문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신앙의 선배를 자칭타칭 신앙 안에서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니, 이제 철부지 같이 이런 말을 할 때가 지났는지 모른다. 나 스스로 그런 신앙의 선배가 되어야할진데.... 사랑, 섬김, 친절, 온유함, 나눔을 입에 달고 사는 소위 목회자 또는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서 삶은 그것과 반대로 향하는 이 모순인 것이다.
교회 밖의 훌륭하신 분들이 내가 사랑하고 자랑하고픈 예수님의 삶과 더 닮아 있으니 이 아픈 모순을 어찌한단 말인가?

내 집은 그리스도의 마음인데....
내 집은 늘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부끄러운 모순, 슬픈 모순....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모순 속에서도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향해 끝없이 손을 뻗고 발돋움 하는 것이 내 집에 주어진 소명임을.

'내 집 그리스도의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밀리 데이_가정예배 또 다른 이름  (14) 2009.03.31
식당, 식탁  (10) 2009.03.25
봄맞이 가족 음악회  (16) 2009.03.19
고개 숙이고 마주보기  (16) 2009.01.28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  (14) 2009.01.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