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이라면 자신 있다. 굴욕사진? 내 전공이다.
사진 찍는 짧은 순간 캡쳐된 얼굴 쫌 망가진 것 뭐 대수란 말이냐?
하...하지만.... 엄마이길 포기하고 싶은 이런 굴욕이란......ㅠㅠㅠㅠㅠㅠ
얘긴 즉슨,
뭔가를 먹고싶다, 갖고싶다, 하고싶다는 욕구가 밀려오셨다 하면 바로 모든 감각과 지성과 정서의 문들이 셔터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김채윤. 오직, 원하는 그것! 이 몸과 세상 간 곳 없고 오직 원하는 그것만 보이는 것이다.
학교가 일찍 마치는 수요일.
당당 그녀 하교길에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굴욕의 서주를 울리기 시작한다.
'엄마, 나 오늘 예진이랑 놀아도 돼? 예진이랑 대은이랑 우리집에 오라고 해서 놀께....
엄마, 제발....'
말하는 톤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모든 셔터는 내려졌다. 아직까지는 나름 위엄엄마였다. '아침에 엄마가 말했잖아. 니가 더 잘 알잖아. 이따 수요예배도 따라갈거 아냐. 그러면 미리 피아노 연습해야하고....... @#(*^(@#%#^.... 그러니까 오늘은....#%#%$&#$%...'
이미 이 따구의 진부한 설명들은 몰입그녀의 귀에 들리지도 않을테다. 폰으로 시작된 서주는 집에 와서 1악장으로 제대로 돌입.
무조건 '엄마, 제발..... 주일 날에도 못 놀았고....... 예진이도 놀고싶대......'
아직까진 이성을 잃지 않은 엄마가 차분히, 친절하게 오늘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그 때, '엄마. 엄마가 빨리 예진이 엄마한테 전화해봐. 놀아도 되냐고 전화좀 해봐'
이 순간 (G의 디지털 알트로 표현됐다면 엄마의 머리 쪽에서 냄비 뚜껑이 하나 날아가면 불꽃 하나 작렬, 동시에 입에서 뿜어내는 분노의 열기는 화산폭발을 방불케 할 터) '뭐? 엄마가 지금 계속해서 열 번도 넘게 설명했지? 예진이 문제가 아니라 니 시간이 오늘 안된다고! (이 때의 폭발엄마의 목소리는 거의 인간이 낼 수 있는 데시벨의 맥시멈 일것임. 안 들어본 사람은 상상을 못함)
니.마.음.대.로.해~애!!!!!!!!
그리고 엄마는 이 지점에서 김채윤 딸과 의사소통의 셧터를 내려버렸다. 김챈의 어떤에도 묵비권으로 응대하다가 아예 침대로 가서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버림(바로 여기서부터 느리게 2악장이 시작된다) 엄마의 의사소통 스위치가 나가자 바로 챈이의 정신줄이 제자리를 찾아온 것. 이 때부터.
'엄마, 엄마 화났어? 미안해. 엄마. 나 이제부터 뭐할까? 빨리 피아노 할까? 늦으면 아래층에서 뭐라고 하니깐 지금 피아노 해야겠지? 아, 그런데 참 수영가야 하지. 그럼 나 수영 갔다와서 저녁 안 먹고 피아노 연습하고 수요예배 갈께. 엄마, 미안해. 그렇게 계속 말 안할거야? 엄마, 내가 잘못했다고 하잖아 맘 좀 풀어'
한 템포 쉬었다가.
'엄마! 내가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잘못한 것 같애. (살짝 목소리를 낮춰서 독백처럼) 많이 잘못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쪼금은 잘못한 거니까... (다시 원래 톤으로) 그러니까 내가 사과할께. 엄마 이제 맘 풀어.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거야? 휴유'
한 템포 쉬었다가.
'엄마! 엄마 맘 풀 때까지 나 여기에 께속 께속 앉아 있을거야. 엄마 내가 엄마가 친절하게 말하면 빨리 알아들을께. 진짜 약속이야. 맘 좀 풀어 (약간 격앙된 소리로 단호하게) 엄마! 내가 잘못한 것도 알고 사과도 다 했는데 엄마가 계속 이러고 있으면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거야? 엄마, 왜 이렇게 작은 일을 깊은 일로 몰고가? 엉? 엄마!'
2악장의 클라이막스다.
알았어. 엄마 내가 약속하고 또 안 지킬까봐 그러지? 나 이번에는 진짜 약속 지킬거야. (약간 울먹이며) 나 또 엄마가 친절하게 말할 때 말을 안 들으면 오늘을 기억할거야. 엄마가 이렇게 속상해서 맘 상한 걸 꼭 기억할거라고' 엉엉엉...
이불 뒤집어 쓴 엄마는 맘은 이미 풀렸지만 도저히 웃겨서 이불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음. 음...음! 간신히 목소리 가다듬고, '알았어. 엄마 맘 풀께. 이제 좀 나가서 엄마한테 시간 좀 줘' 했더니.
(반색하는 목소리로) 그래. 엄마. 이제 엄마 혼자 시간을 좀 가져. 내가 현승이 데리고 수영장 갈테니까 엄마 조금 쉬면서 맘이 다 풀리면 수영장으로 와. 알았지?
이러고 현승이 챙겨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신 금메달녀 채윤.
아니 출전함만 못했던 예선탈락 굴욕녀 정신실 엄마는 굴욕에 겨워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이불 뒤집어 쓴 채로 가위눌려 헉헉대기도 함. 그리고 마음도 풀리고 다리도 풀려서 주섬주섬 파카 입고 비실비실 수영장으로 갔다는 얘기.
ㅠㅠㅠㅠㅠ
'푸름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파게티 쌈싸먹는 소리 (24) | 2010.04.21 |
---|---|
오래 전 그 날 (10) | 2010.04.17 |
엣지녀 부려먹기 (8) | 2010.02.23 |
사회자 채윤 북치고 장구치다. (18) | 2009.12.26 |
난 잘할 수 있어. 할 수 있다잖아. (21) | 2009.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