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중요한 결정들을 앞두고 또는 뒤로 하고 떠난 2011휴가는 무거운 출발이었습니다.
행선지 부산.
올라오는 길에 봉하마을.
두 가지만 정해놓은 상태였지만
출발하는 아침에 휴가 자체를 취소할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둘 다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예민해져 있구나를 깨달을 순간 차분해졌고,
일단 떠나자. 내려가면서 봉하에 먼저 들르자로 정하고 출발합니다.
그 분이 봉하로 내려가시고부터 '한 번 가자 한 번 가자' 벼르기만 하고 이제야 발을 디뎌본
봉하마을.
사진으로 그렇게나 많이 봐서인지,
마음으로 수십 번 왔다 갔던 곳이기 때문인지 동네가 낯설지가 않습니다.
부엉이바위, 사자바위가 동네를 안고 있는 듯, 사저를 안고 있는 듯 합니다.
욕심없이 그저 이 조용한 곳에서 자연의 품에 안겨 살고자 했던 사람이었는데...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사진마다 네 식구 얼굴에 아직 가시지 않은 슬픔이 가득합니다.
감동의 경선 때부터 대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던 탄핵,
그리고 벼랑끝 선택에 이르기까지 채윤이는 이 분과 더불어 역사의식을 배웠습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그의 눈물을 여러 번 보았고,
대선개표 방송을 수민이 집에서 보고는 그 추운 길을 춤을 추며 걷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탄핵정국 때는 다섯 살 채윤이 양갈래 머리를 하고 광화문 네거리에 서서 촛불을 들고
'타낵꾸요. 민주수오'를 외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인가, 채윤이가 노무현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남다릅니다.
어디든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휘리릭 보고는 '엄마, 이제 가자'이러는 채윤인데,
여기선 누구보다 구석구석 살펴보고 찬찬히 보고 또 바라보는 모습이네요.
우리 인생에는 아주 많은 것들이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일도, 감정도, 앎도....
우리 부부에겐 그 분의 떠남이 미완의 감정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감정은 시간과 함께 정리되어 가는데 이 분의 죽음은 여전히 그 5월의 충격 그대로 남아 있나봅니다.
사진을 정리하는데 봉하에서 찍은 사진들이 다 표정이 그저 무겁기만 했습니다.
우리들 마음의 표정이 저러한 것 같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이 싯구가 마음 속에 올라오는 여러 말을 대신해 주는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살지언정 욕되게는 살 수 없어서 벼랑 끝에 생애를 던지 한 영혼.
그의 삶과 죽음을 다시 맞닥뜨리며 오늘 우리의 삶을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살지언정 안일함을 위해 자기기만의 삶을 살지는 말아야지.
우리 생애,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는 새벽은 사실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오랜 기도는 응답되지 않고, 선한 사람들이 더 많이 고통당하고,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삶은 여전히 그러할지도 모릅니다.
참된 지도자는 그 팍팍한 현실을 포장하여 아름답다 하지도 않고,
비관하여 두 손 놓고 물러나 앉지도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며, 그 현실로 인해서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참된 목자, 참된 지도자입니다.
그럴 수 있으려면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새벽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할겁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다가올 새벽에 대한 확신으로 길을 보여주고 독려해 함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질 수 밖에 없는 선거에 나가고 또 나가며 실패의 쓴잔을 마다하지 않을 수도 있고, 높고 편한 자리를 포기하고 위험하고 불안정한 길로 용기있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인생의 선택에서 앞문을 연 후에 뒷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아직 앞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용기있게 뒷문을 닫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벼랑 끝에 선 느낌이지만,
믿음이 그걸 이끌어 갈 때가 있습니다.
그래요. 늘 그랬듯 믿음의 사람인 김종필 아빠는 그의 믿음대로 앞문을 열게 될 거예요.
앞문과 뒷문 사이에 끼어있어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떠난 휴가지만 이 또한 좋은 시간이 될거예요.
이렇게....
휴가 첫 날, 우리 마음 속 대통령을 만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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