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교회에 와서 남편이 물리적으로 매우 바빠졌다. 너무 자주 보아온 주변의 아빠들처럼 같이 저녁식사 하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고 아주 늦게 들어왔다 아주 일찍 나가는 아빠가 되었다. 오늘 교회에서 남편의 얼굴을 봤는데 너무 반가워서 손을 잡았을 정도.
먹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늦게 들어오거나 잠깐 옷 갈아 입으러 들어오면 '뭐 먹을 거 없어?' 하며 간식을 찾는다. 애들도 과자나 간식을 찾는 편이 아니어서 집에 주전부리를 비축할 일이 없었는데 새로운 국면이다.
잠깐 들어와 커피 한 잔과 먹을 것을 찾는 남편을 위해 있는대로 끌어모아 간식을 준비하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바빠서 얼굴도 잘 못보는 이 남편에게 간식 한 번, 커피 한 잔을 주더라도 내 사랑과 마음을 깊이 담아 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론 이래야지. 더더욱 이래야지. 나도 모르게 결심이 되면서 그랬다.
목회를 하기 전부터 그랬지만 목회자가 된 이후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했다.
'목회에는 성공했는데 가정생활은 실패했다'는 말을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남편이 아닌데 좋은 목회자다' 라는 말도 있을 수 없다.
누가 그런 사람이 있다더라 해도 믿겨지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성숙한 사람은 삶의 통합을 이루는 사람이기에 목회자 뿐 아니라 정말 좋은 아빠라면 부하직원에게도 좋은 상사일 것이고, 좋은 아들일 것이고, 좋은 시민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걸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목회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상을 통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강단에서 말만 번지르르 하다면 그건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교회의 비극이다.
이런 거창한 생각으로 목회자가 된 남편에에 나는 늘 높은 수준을 요구했던 것 같다.
살아보니 꼭 '교회 일이냐, 가정일이냐' 이런 식으로 양자택일의 문제로 불거지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체로 교회일이 급했고, 공적인 일이 우선시 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아빠를 교회 일이나 청년들에게 양보하고 셋이서 쓸쓸하게 보내던 시간이 그간에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만약 당신 앞에 '교회냐, 가정이냐'를 선택할 일이 있다면 '가정'이어야 한다. 라는 전제는 늘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참 좋은 지도자를 만났다.
목회자가 바빠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바빠야 하는 지를 끊임없이 알려주고,
본인이 그렇게, 아니 그보다 더 철저하게 목회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사는 본을 보이는 분이다.
그 분을 지켜보면서, 그 분의 아내되시는 분의 말씀을 잠깐 들으면서 그간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교회냐, 가정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조건 가정이야!' 하는 유치한 신념을 나도 모르게 버리게 된 것 같다.
바쁜 남편을 기꺼이 응원하며 격려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쓸쓸하게 보내야 하는 주말, 휴일이 있다 할찌라도 더 적극적으로 남편을 응원하며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젯 밤에도 늦게 들어온 아빠가 모과차 한 잔 하겠다고 거실에 앉았다.
어느 새 네 식구가 조르르 달려와 아빠 옆에 둘러 앉았다.
잠깐 앉아 싱거운 농담 따먹기를 할 망정,
바쁜 목회자 아빠는 여전히 좋은 아빠고 좋은 남편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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