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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가까이 낑낑거리며 끌고다니던 키보드의 건반 하나가 부러졌다.

남편이 대학원을 마치면서 파트타임으로 전환을 했고 그 사이 직장생활 2년, 신대원 3년, 강도사 3년의 시간을 파트타임 음악치료사, 유리드믹스 음악교사로 여기 저기 셀 수 없는 곳에서 일을했다. 저 키보드로 말하자면 8년 동안 말 그대로 밥줄이었다. 무게도 어찌나 무거운 지 일이 한참 많은 때는 바로 저 키보드 때문에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팠으니 딱 밥벌이의 무게이고, 삶의 고단한 무게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연스레 음악치료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시누이가 하는 어린이집 유리드믹스 수업 하나로 겨우 전공의 명목을 이어가고 있는데 키보드가 저 모양이다. 남편의 아이디어로 살짝 부러진 부분을 걸고 테잎으로 고정하니 그럭저럭 또 버티겠다.
거금 들여서 산 키보드가 무게만 나가는 구물이 되고, 그나마 건반마저 부러져 걸리적거리는 것처럼 음악치료 대학원 2기라는 전설적인 깃수를 자랑하는 내 몸도, 내 에너지도 나이를 따라 소진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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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느 교회 아기학교에 엄마와 함께하는 음악수업을 갔다 왔다. 오랜만의 일이라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어제 아침 묵상을 하면서 수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오래 잊었던 나만의 열정과 에너지가 쭉쭉 뻗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악기를 챙기고 노래 반주를 녹음하면서, 젊은 시절부터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나를 만난다. 그리고 오늘 수업? 물론 행복했다.


 

내가 눈을 떼지 못하고 너무 좋아서 미치는 것 중 하나가 아가들이다. 잘생기고 이뻐서 이쁘고, 못생겨서 이쁘고, 똑똑해서 이쁘고, 맹해서 이쁘고, 적극적이라 이쁘고, 소심해서 이쁘고, 착 앵겨서 이쁘고, 까칠하게 굴어서 이쁘고..... 그런 아기들이 내 노래에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내가 시키는 악기연주에 넋을 놓으며 그저 난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다. 아기들 앞에 기타 들고 서면 바로 저렇게 여자 짐캐리로 변신이다. 내 의식으로 통제되지 않는 다른 내가 되는 느낌이다. 음악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날 때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언제부턴가 알아들어지기 시작했다. 평생 내가 죽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거라는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 억울하고 안타깝기도 했었다. 밀려오는 감정들이 '상실감'이라 이름 붙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 말씀이 알아들어졌다. 나는 젊어서 얼마나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주목을 받으며 살았던가. 주도하고 통제하며 살았던가.

오래 되어 어쩔 수 없이 낡아진 키보드를 받아들인다. 노병 아직 죽지 않아 고운 목소리로 아이들의 귀를 잡아 끌 수 있다해도 실은 내 몸의 한계를 느낀다. 이제는 '내 팔을 벌려서 남이 내게 띠 띠우고 원치 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에 기꺼이 나를 내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 말하자면,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남이 나를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는 듯 보여도 궁극적으로 그 '남'을 움직이는 손은 그 분의 손이라는 것 말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만 행복이 있다고 믿었는데 진짜 행복이 '내가 원치 않는 곳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네 팔을 벌리리니...... 
다시 보니, '늙어서는'이구나. 그래 뭐...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늙음도 유익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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