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오늘도 본당사수를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본당 도착 예배 전 35분. 이미 꽉 차 있고 간간이 한 두 자리 남아 있다. 오늘도 세잎이다. 30분 전이면 반주도 코드도 요란하지 않는 피아노의 선율이, 10분 전이면 중세 교회로 회귀하는 듯한 오르간 소리가 본당 작은 공간을 채운다. 이 빽뮤직에 젖어 침묵으로 기도하는 30분이 좋다. 일주일을 돌이켜보고,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점검해보고, 그리고 나는 결국 절대자 앞에 예배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깊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고백을 하면서 눈을 뜨고 예배 드리고 싶은 심정 간절하다.
헌데 현실을 그렇지 않다. 뒤쪽에 앉으신 부부는 월말 회계보고 내용을 짚어보시며 나지막히 토론 중이시고, 몸을 던져 본당을 사수하신 타교회에서 오신 듯한 여자 교우 두 분은 '30분 전에 본당이 꽉 차도록 사람이 밀려드는 이유'에 대해 폭풍수다 중이시고, 어떤 날은 모녀가 스마트폰 들여다보며 앞으로의 학원 스케쥴을 짜기 열중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소근소근 소근소근.... 이렇게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보통은 또 이렇다. 주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부터 예배로 향해 달려가는 마음이라 본당에 도착할 때는 내 맘이 홀리 홀리 홀리, 그 자체이다. 자, 본당에 도착했다. 안 쪽에 자리가 비어있다. (절대로 끝자리가 비어있지는 않다. 안이 텅 비었어도 보통은 먼저 오신 분이 끝자리를 잡고 앉아계신다) '저기... 죄송하지만 안으로 좀 들어갈께요' 라고 굽신굽신 할 때 밝게 웃으면서 '네, 들어가세요. 아니, 제가 들어갈께요' 라고 하시는 분은 찾아보기 어렵고 비켜주시며 인상만 안 쓰셔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소근거리는 분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기도는... 개뿔... 무슨 기도? 앉아서 그 분들을 판단하기에 바쁘다. '우이씨, 예배에 온 사람들이 것두 본당사수를 위해 30분 전 부터 이 자리를 지키는 열심이 특심이신 분들이 옆에 있는 사람 헤아려 배려하는 태도라곤 없고, 이기적이고....$%^&%*$#$%$#....' 라면서 말이다.
예배에 대해서 언젠가는 들었을 얘긴데 처음 듣는 얘기처럼 새신자반에서 배웠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는 일이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그렇게 꼬박꼬박 예배 드리고, 열심으로 예배 드려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예배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죽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못해서) 이다. 구약의 속죄제의 제물처럼 죄의 사함을 위해 내 손으로 제물을 잡아 손에 피를 묻히며 드려야 하고, 속건제 처럼 이웃에게 해를 끼치고 속인 일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배상하는 것을 예배에 포함 시켜야 하고, 소제처럼 나를 곱게 갈아서... 가루처럼 갈아서 들여야 한다. 헌데, 예배의 의식만 있을 뿐 나를 갈고, 나를 죽이고, 나의 거짓과 속임수로 아픔 당한 사람들을 헤아리는 헤아림이라고 없다.
본당사수를 하고도 곁에 앉은 사람들의 경박함과 배려없음 등 사람냄새에 마음의 집게 손가락을 꺼내들고 흔드는 나는 도대체 무슨 예배를 드리고, 나를 어떻게 갈아내겠다는 것인가? 사회 보는 목사님의 목소리 톤이며, 성가대의 찬양에 일일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평가를 한다면 정작 예배하는 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은 누구의 몫이란 말이가? 그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 거룩한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 이상으로 절실한 것은 마음으로 든 집게 손가락을 거두는 것 아닐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홀리한 표정과 눈물짓는 찬송은 됐다! 물론 그 집게손가락을 돌려 다시 내게로 향해 '거봐. 너는 언제나 그렇게 교만하고, 자의식이 강하고, 너만 잘났다 하지' 하면서 다시 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도 힘써도 나라는 사람은 곁에 앉은 조금 불편한 사람들을 잠시나마 마음으로 품어주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본당사수와 예배는 참된 의미가 될터이다.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 강변으로 나갔다. 조금 전 들은 주일 설교를 다시듣기 하며 걷는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삶에 대한 욕망을 매일 직시하고 매일 내려놓자. 내게 권력과 힘이 있어 이 거대한 도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한들 내 안에 나만 옳다하는 자뻑과 거짓과 욕망만이 도사리고 있다면, 예배는 그 욕망을 부추기고 합리화하는 도구가 될 뿐 아니겠나. 이제, 그런 예배 그만 드릴 때도 됐다 아니가. 예배는 끝나지 않았다. 남편, 아이들, 시어머니, 삶에서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을 향한 겉으는 온화한 웃음, 마음으론 공포의 집게손가락을 거두는 그 일. 그것이 여전히 내게는 끝나지 않은 예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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