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환경에 맞춰 욕구가 바뀌는 사람이었다. 가장 흔한 엄마들의 그것처럼 '엄마는 생선살 안 좋아한다. 대가리만 좋아한다' 이런 것 말이다. 어릴 적에 동생과 내가 결코 먹지 않았던 과자가 젤리였는데 엄마는 젤리를 좋아했다. 그러니 나랑 좋아하는 게 겹칠 리 없고, 돈이 들어가는 음식은 아예 엄마가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생선 중에 제일 싼 동태, 깍두기 국물 같은 것들이 엄마가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음식이었다. 당연히 고기는 입에 대지도 못하셨다. 그러던 엄마가 최근 몇 년 고기사랑에 빠졌다. 소고기 샤브샤브는 물론이거니와 생전 입에 대지도 않았던 후라이드치킨 등등. 처음엔 당황도 했지만 평생 억누르던 욕구를 이제라도 맘껏 느끼고 채우시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도 했다.



아마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꽃게나 대하인 것 같다. 병원에 입원만 하면 은근 또는 대놓고 찾으시는 게 꽃게찜이다. 이번에도 입원 당일에 뭐 드시고 싶은 거 없냐는 내 말에 '꽃게찜...' 하는데 슬쩍 짜증이 올라왔다. 일단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꽤 의미있고 상당히 긴장이 되는 강의를 앞두고 있는 탓이었다. 강의 전날, (아직도 엄마가 좋아한다고 믿고 싶은) 애호박 새우젓국을 만들고 꽃게찜 대신 그나마 손질이 쉬운 대하를 사서 찜을 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하루였다. 왠지 마음이 불안했고 불안한 이상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썼다. 강의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자꾸 스쳐갔지만 망쳐도 할수 없다는 생각으로 나를 달랬다.
 



강의는 무사히 마쳤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엄마에게 가야하는데 도저히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내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뭔지 모른 우울감 또는 분노 같은 것이 먹구름처럼 영혼을 덮는 것 같았다. 괜한 우회전, 괜한 직진을 거듭하며 헤매다 집 앞까지 왔다가 다시 괜한 직진을 해서 동네를 돌다가 주차 가능한 카페에 들어갔다. 몸이 힘든 탓일까? 긴장했던 강의를 마친 허탈감일까? 내 마음 나도 몰라! 였다.



어제 월요일. 엄마랑 통화를 하다보니 입맛이 없어서 새우찜 국물에만 식사를 하셨단다. 국물이 다 떨어졌단다. 국물을 많이 잡아서 해오란다. 그러겠다고 끊었지만 속에서 자꾸 분노가 올라왔다. 엄마의 욕구를 분명하게 밝히고 요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나는 내 욕구가 부끄럽다. 무엇을 먹고 싶어하거나 갖고 싶어할 때마다 수치심이 올라온다.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의 욕구를 철저하게 통제하며 사는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 가지고 싶은 걸 늘 쓸 데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엄마의 돈은 오로지 동생과 나를 대학까지 보내는 것에만 쓸 작정인 것처럼 그 외의 모든 소비는 '악'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로 인해서 느끼는 결핍으로 나는 정말 엄한 곳에서 과소비를 하고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다시 수치심을 느끼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아직도 일정 정도 그러고 살고 있는 중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엄마가 이제 와서 당신의 욕구에 저렇게 당당해지고,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당혹스럽고 버겁다. 게다가 엄마의 그 원초적이고 간절한 욕구를 알아주는 것을 물론이고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 물론 몸이 힘들어서 힘든 것 역시 당연하다. 지난 금요일 강의를 앞두고 음식을 할 때 올라왔던 그 복잡한 마음의 실체는 그런 것들이었다.



어제 오랜만에 남편과 점심, 커피 데이트를 했다. 오후가 되어 장을 보고 들어와 새우찜과 당근 나물과 양배추 나물을 했다. 전날에도 나 대신 병원에 다녀왔기도 했거니와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컸을텐데 남편이 기꺼이 동행해주었다. 힘든 내 마음을 토닥여주는 배려임을 알기에 힘이 났다. 엄마가 반찬을 보고 반색을 하면서 좋아했다. 고맙다고 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 딸 안 낳았으면 큰일 날 뻔 했지? 누가 엄마 이런 거 해다 줘' 했더니 '암, 그렇고 말고' 란다. 골절된 다리를 주물러 주며 엄마 얼굴 가까이 보며 얘기하고 농담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제 엄마 음식을 다 한 후에 식구들에게는 저녁으로 콩불을 해주었다. 냉동실에 양념된 돼지고기가 있었는데 엄마 새우찜 하고 남은 콩나물을 얹어서 팬에 구웠다. 세 식구가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아니 조금 과장해서 행복하기까지 했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아한다는 것, 그것을 맛있게 먹어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맞다. 내가 내 나름의 창작행위를 참 좋아한다. 창작행위는 내가 나를 믿어줘야 가능한 것이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힘, 이것은 원래 내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준 그 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 사랑과 믿음의 원천은 끊임없는 잔소리와 비난으로 내 영혼에 수치심을 채워넣은 엄마 목소리의 이면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엄마를 온전히 사랑할 수도, 온전히 미워할 수도 없다. 다만 내 마음 조금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가볍운 마음으로 새우찜, 꽃게찜을 해다 나를 수 있게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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