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현승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용을 정리하면,

현승이가 개학하고 나서 너무 달라졌다.

엄청 떠든다.

수업시간에 산만하기 때문에 학습면에서도 전 같지 않다.

일기도 잘 쓰는 일기가 아니다.

어머니가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린다.

가정에서 지도 바란다.

예예, '현승이와 얘기하보겠습니다' 허공에 대고 인사를 백 번 하고 끊었다.

 

이느무 시키 들어오기만 해봐라, 다리 몽댕이를 부러뜨릴라.

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니 도대체 얼마나 떠들었기에! 일단 말이나 들어보자. 요놈!

일단 자수가 살 길이라 여겼나보다.

'내가 6학년 1학기 때까지 모범생 아니었냐, 이제 6학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장난꾸러기 한 번 되어 보고 싶었다. 꼭 그렇게 결심한 건 아니다. 다면 내 앞에 앉은 친구가 진짜 웃긴 친구다. 우리 반에서 제일 웃긴 친구다. 그래서 자꾸 떠들게 된다. 아, 그런데 이제 알았다. 나는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크게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전화를 했겠지. 그런 전화 받게 해서 미안하다. 앞으로 잘하겠다'

일사천리로 반성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일기장을 살펴보았다.

저 성의 없는, 시로 쓴 일기와 선생님의 코멘트에서 빵 터졌다.

 

 

여름

 

초여름이다.

곧 더워진다.

 

한여름이다.

휴 더워도 너무 덥다.

 

이제 시원한 바람이 분다.

곧 가을이다.

 

 

 

여기에 달린 담임 선생님의 진지한 궁서체 풍의 코멘트.

 

일기, 성의 있게 쓰세요.

이왕 할 거 제대로. 아님 시작을 안하는 게 더

나을지 모르죠.

 

정제된 언어 속에서도 숨길 수 없는 선생님의 깊은 빡침, 

느낄 수 있었다. 

 

1학기 상담에서 만나 뵌 선생님은 순수한 분이었다. 현승이 칭찬을 많이 하셨다.

'남자 애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힘든데 현승이는 다르다. 수업시간에 멍하니 먼산 바라보고 있기도 하지만 학습능력도 좋다. 학원 굳이 안 보내셔도 된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 특히 일기를 보면 생각이 참 깊은 아이다.....'

현승이가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학교에서 한 MBTI 결과를 보고는 현승이와 선생님이 유형이 같다며 좋아하시기도. 그런데 그놈이 대놓고 말을 안듣는 데다 일기라고 써오는 건 성의가 1도 없으니.... 실망을 하셨을 터. 아이를 대놓고 구박하실 수도 있을텐데 빡치는 마음 누르시고 애써 차분히 달아주신 코멘트가 약간 귀엽고 그렇다. 

 

여하튼 이날 이후로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일기도 정성껏 쓰고,

학교 가서도 최대한 떠들지 않는다. (라고 제 입으로는 떠벌이고 있다)

 

(계속해서 관련된 일기 하나 더 올릴 여정이다. 투비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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