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3주기와 함께 다시 돌아온 고난주간이다. 지난 4월 11일, 채윤이는 [세 번째 봄, 열일곱의 노래]라는 이름의 음악회 무대에 섰다. '꽃다운 친구들에게'라는 노래를 부르고 '내 영혼 바람되어'와 '친구'를 콜라보 하여 연주하였다. 뭐가 뭔지 모르고 덥석 하겠다 했는데 쉬운 무대가 아니었다. 채윤이 같은 고딩 아마추어에게는 너무도 큰 무대였고, 공연 며칠 전에는 검정고시가 있어서 연습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리허설 다녀와서 울고, 음악회 시작 한 시간 전에는 손가락이 떨려 피아노를 못 치겠다고 울고..... 채윤이 음악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겠구나, 각오를 하고 있었다. 막상 무대는 음악이 아니라 열일곱, 열여덟 꽃다운 나이의 존재 자체로 감동을 주었다. 또 다른 꽃친 지인이, 그리고 경이 언니. 세 청소년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3년이면 탈상인데. 3년 정도면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울고 난 후에 기꺼이 떠나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에 탈상이다. 헌데 아직 슬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부모들이 피멍 든 가슴을 안고 마지막 무대에 섰다. 여기까지 쓰고는 공허한 말을 나열했다 지웠다, 나열했다 지웠다...... 말을 찾지 못하겠다. 채윤이 같은 아이를 잃고 타버린 가슴을 국가권력에 의해 교회라 이름하는 종교집단에 짓밟히고 또 짓밟히는 부모들이 노래한다. 노래가 아니라 피 울음이다. 그 무대에 내 아이를 세워놓고 연주를 잘할까 틀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에게 쌍욕을 해주고 싶은 마음. 가 닿을 수 없는 저들의 고통 앞에서 내가 밉고, 이 나라가 싫고 교회가 역겹다.  

주님, 언제입니까. 탈상은 언제입니까. 언제쯤 진실을 드러내 저들을 신원하시렵니까. 이미 돌아오지 못할 내 사랑, 뼛조각이라도 품에 안아보자는 엄마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으시겠지요

"지금 저의 나이였던 언니 오빠들을 떠나보낸 부모님들이 저의 부모님이기도 합니다." 연주 중 했던 채윤이 짧은 나레이션이다. 물론이다. 나도 같은 말로 받는다. '지금 내 아이 나이였던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님들은 나 자신이기도 하다.' 평생 이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끝까지 이분들과 함께 하겠다는 뜻이며 동시에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오늘 이 비극적인 음악회에서 내 아이가 노래하다 삑사리 낼까, 피아노 치다 손가락이 미끄덩할까, 온 신경을 집중하는 비루한 엄마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렇게 '작은' 엄마로만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큰' 엄마이다. 이땅 모든 아이들의 엄마이다. 내 새끼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도 똑같이 소중하단 것을 잊지 않고 살겠다. 

음악회 마치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음악회에 오신 100주년기념교회 S구역장님이다. 반가움에 얼굴 뵙기로 했다. 채윤이를 격려하시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음악회 마치고 지인들 인사하니 꽤 늦은 밤이었다. 채윤이에게 케이크 하나를 주고 싶은데 기다려줄 수 있겠는지 물으셨다. 평소 같으면 아니라고, 마음만 받겠다고 손사래를 했을 터. 그러시라고 했다. 그 밤에 문 연 케이크 가게를 찾아 뛰어다니실 것이 몹시 죄송하고 불편하면서도 그러시라고 했다. 구역장님이 건네시고 싶은 케이크가 채윤이는 물론이거니와 열일곱 꽃다운 그 친구들을 향한 더 큰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채윤이는 채윤이가 아니다. 채윤이는 꽃다운 친구들이다. 채윤이가 연주하고 부른 노래 '꽃다운 친구들에게'는 작년에 1기 꽃친들과 만든 노래이다. 함께 무대에 선 지인이와 함께 꽃친 1기 모두의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1기 친구 중 희연이는 태평양 건너 미국에 가 있으니 이것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품는 노래이다. 연습하며 자주 이런 얘길 했다. '아, 이 가사는 유진이 감성에서 나온 건데. 마지막 멜로디는 지우가 만든 건데. 지우가 꼭 와서 들어야 하는데......' 채윤이 안의 1기 꽃친이 함께 부른 노래이다. 채윤이는 채윤이가 아니다. 내 딸 채윤이는 세월호에서 수장된 그 딸들이다.

나도 내가 아니다. 나는 그 구역장님과 함께 심야의 청파동 길을 뛰어다닌 나이다. 열일곱 꽃다운 친구들에게 케이크 하나 주고 싶어서 말이다. 나는 416 합창단의 어머니 단원이다. 채윤이 현승이 아닌 이 땅의 아들과 딸을 품고 낳았던, 그리고 억울하게 그 아이를 잃은 엄마이다. 국가권력과 종교의 폭력에 연거푸 두들겨 맞고 거리에 패대기쳐지는 삭발한 엄마이다. 비록 오늘 이 널따란 무대에서 내 새끼 얼굴 외에 보이지 않는 이기적 엄마라 할지라도. 그렇더라도 나는 세월호의 엄마이다. 객석에 앉아 내 딸만 바라보는 엄마이며 동시에 무대에 노란티 입고 서서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노래하는 엄마이다. 이것을 잊는 것은 내 앞에 고통받는 자의 얼굴로 다가오신 고난의 예수님을 잊는 일이다. 그것은 나를 잊는 일이니 나는 세월호 엄마이다.

2017년 고난주간은 음악회 중간에 드린 창현이 엄마 최순화 님의 기도로 족하다.
이 기도에 가슴 치며 절망하다 희망 한 줄기 붙들게 되니
이 기도야말로 십자가의 신비, 고난과 부활의 신비이다.


창조주이시며 전능자라고 불리우는 당신께 기도드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3년 전 우리 아이들의 살려달라는 마지막 기도를 외면했었으니까요. 당신께 등돌리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당신이 계시더군요. 더 이상 울 힘조차 없어 그저 멍하니 앉아 바다만 바라보던 팽목항에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하늘을 보며 잠을 청해야 했던 국회에도, 내리쬐는 땡볕을 피할 그늘 하나 찾기 어려웠던 광화문에도, 하수구 냄새에 시달려야 했던 청운동 사무소에도, 침몰지점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동거차도에도, 그리고 병든 몸을 이끌고 세월호가 누워있는 목포신항에도 당신은 계셨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몰랐던 분들이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다가와서 안아주시며 같이 울어주시는 따뜻함에서 당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당신께 기도할 때 그 기도 좀 들어주시지 왜 우리 아이들이 없어진 지금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나요?

고난주간이면 우리 죄를 대신해서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묵상하고 죄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 고통에 가 닿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없어진 이후엔 그런 노력 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이 고난주간이고 십자가와 세월호는 동일시되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신 십자가와,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아이들을 태우고 가다가 침몰당한 세월호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 불경스러우신가요?

2천년 전 그날,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세시간 동안 어둠이 덮치고,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다는 기록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아픔을 느끼게 해줍니다.

같은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분이 하나님 당신이셔서 다시 당신께로 향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으면서도 자신을 못박은 사람들이 몰라서 저지른 일이라며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닮기란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렇게 기도하신 예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가장 잘 섬긴다는 큰 교회들은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보다는 애써 외면하거나 오히려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처럼 모르고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쌓아 올린 바벨탑이 너무 높고 견고해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저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저들을 불쌍히 여기실 분은 하나님 당신 밖에 없습니다. 저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예수님이 짊어지셔야 했던 십자가의 고난이, 십자가의 용서가 저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세요.

낮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당신의 임재와 사랑을 기다립니다. 팽목항에서,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청운동 사무소에서, 동거차도에서, 목포신항에서 만났던 당신을 닮은 사람들이 오늘 이 곳에 가득합니다. 부디 이들에게 청결한 마음을 주셔서 당신을 보게하시고 세미한 당신의 음성이 들려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017년 4월 11일
단원고 2-5 이창현 군 어머니 (최순화 님)










'리멤버 04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로틱 파워  (3) 2019.10.05
진정성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진정한 슬픔  (0) 2019.07.06
세 번째 봄, 열일곱의 노래  (0) 2017.04.03
전도  (0) 2016.12.20
눈물 마를 날  (2) 2016.12.03

+ Recent posts